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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522화 (489/528)

〈 522화 〉 [외전 21화]사소한 오해 : 후일담

* * *

도미닉 경의 등장으로 전쟁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아무리 양측에 5성 인원들이 많다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비밀 병기에게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동방 연합과 요한 양치기 원정대, 두 세력은 그 어떤 이득도 보지 못한 채 전쟁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오해해서 미안하오."

물론, 두 세력 간의 오해가 풀린 것은 덤이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는 도미닉 경의 중재와 세인트 루이스의 발언을 통해 이루어낸 쾌거였다.

"죄송합니다."

물론, 도미노 경의 진심 어린 사과도 함께였다.

도미노 경은 방금 전 에이션트 메카 드래곤에 타서 날뛰던 모습과는 달리, 굉장히 정중하게 사과했다.

"내 아들이 큰 실수를 했소. 아들의 실수는 곧 나의 실수와도 같소. 그러니, 이번만큼은 내 얼굴을 봐서라도 넘어가 주지 않겠소?"

도미닉 경도 마찬가지로 두 세력에게 고개를 숙였다.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였고, 그런 사람이 고개를 숙인 만큼 동방 연합과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사람들 모두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도미닉 경과 도미노 경의 진심 어린 사과에도 버럭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도미닉 경의 '진심 어린 사과'에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두 세력 사이의 전쟁은 끝이 났다.

오해로 인해 서로 상처만 남았으나, 정작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성좌들의 관심을 통해 나름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가차랜드에서 기존의 검증된 이들과 달리, 성급이 낮은 이들은 자기 가치를 올리기가 매우 힘들었다.

괜히 일성 동맹처럼 오랫동안 1성을 넘지 못하고 수십 년, 수백 년을 머무르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그런 이들에게 있어 기회의 장이었다.

적어도 수천 명의 사람들은 이 기회의 끈을 부여잡고 성급을 높일 수 있었고, 그러지 못하더라도 나름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었다.

오직 일부의 사람들만이 이 전쟁에서 자기 가치를 보여 주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 전쟁은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도미닉 경의 사과와 보상, 그리고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말이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미닉 경은 도미노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노 경은 자기 잘못을 아는지 시무룩한 상태였는데,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실수를 한 것에 대해 너무 과하게 축 처져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도미닉 경은 도미노 경을 격려해주기로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도미노 경은 도미닉 경의 아들이었으니까.

"아들아."

"네..."

"잘했다."

"네?"

도미노 경은 갑자기 칭찬하는 도미닉 경의 행동에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이내 도미노 경은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아직 젊을 때의 실수는 경험이란다. 그 실수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 경험을 발판 삼아 다시 실수하지 않으면 되는 거다. 그러니 그렇게 시무룩해 있지 말고."

"...네."

도미노 경은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꼭 상황을 확인하는 버릇을 들이거라. 비록 겉으로 보기엔 도움이 필요해 보여도, 그 속은 어떨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

도미노 경은 도미닉 경의 말을 가슴속에 고이 간직했다.

아직 젊은 도미노 경에게 있어서, 경험 많은 도미닉 경의 조언은 천금의 값어치가 있었으니까.

...

"...그래서 그걸 내게 말해주는 이유가 뭔데?"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소. 그 어떤 상황을 보더라도 확실하게 상황을 파악한 뒤에야 움직이자고."

"그러니까 그걸 왜 나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냐고."

도미노 경은 골목길에서 흰 머리의 여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맹수처럼 사나운, 치켜올라간 눈으로 도미노 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피가 묻은 파이프가 들려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피는 그녀의 뒤에 쓰러진 불량배들의 것인 모양이었다.

"그야, 지금, 이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대화기 때문이오."

"아니, 상황을 파악하고 자시고 확실하잖아! 불량배와 싸움이 붙었고! 내가 불량배들을 모조리 패버리고! 어?"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불량배를 도와줘야 하는가에 대한 건 고민을 해 봐야 하는 것 아니겠소? 당신이 나와 싸우고 싶어서 불량배들을 처참히 박살 냈다고는 하지만 그건 당신의 주장일 뿐 그게 정말 진실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문제요."

"...너 바보야? 대놓고 보이는데,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그렇소. 아버지께서는 내게 아주 큰 교훈을 주셨지."

"...하. 그래. 내가 졌다."

흰 머리의 미녀는 피가 묻은 파이프를 땅에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가장 유명한 신흥 강자라고 해서 도발해봤더니, 그냥 바보였잖아?"

그녀는 불량배들 위에 올려져 있던 그녀의 코트를 주섬주섬 주워들었다.

그러고는 어깨에 걸치고는, 코트 안주머니에 있던 궐련을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흡연자인 모양이군?"

"그래. 뭐야. 한 대 필래?"

흰 머리의 여성은 도미노 경에게 혹시라도 피겠느냐고 한 대 건넸으나, 도미노 경은 고개를 저었다.

도미노 경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그야말로 기사도의 화신이 되고 싶었으니까.

"괜찮소."

그렇게 말한 도미노 경은 여성을 빤히 쳐다보았다.

"...? 뭐야. 뭘 봐."

"아니, 그저 지금 상황에 대해 정보를 모으고 있는 거요."

"뭐?"

여성은 도미노 경의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상황은 끝났잖아? 내가 포기했는데, 뭘 정보를 모아?"

"아니, 상황은 끝나지 않았소. 아직 내겐 의문이 가득하기 때문이오."

"의문이라고?"

여성은 그렇게 말하며 궐련의 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였다.

"무슨 의문인데?"

"별 건 아니오."

도미노 경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저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지,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응?"

"당신이 좋아하는 꽃은 무엇인지, 당신이 좋아하는 색깔은 무엇인지..."

"자, 잠깐. 잠깐."

여성은 도미노 경의 말에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치며 콜록거렸다.

아무래도 너무 당황한 나머지 연기를 잘못 들이마신 모양이었다.

"그, 그건 왜 궁금한데?"

"...?"

여성의 당혹스러운 물음에 도미노 경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야, 아까도 말했잖소. 지금 상황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랑 그 질문들이랑 무슨 관계가 있냐고."

"아."

도미노 경은 그제야 여성과 자기 대화가 자꾸 헛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미안하오. 아무래도 우리 대화가 조금 헛돈 모양이오."

도미노 경은 여성에게 사과하며 그리 말했다.

"당신이 생각한 건 뭐였소?"

"뭐긴 뭐야. 그냥 너랑 싸우기 위해 도발한 거였지."

"그건 이해했소."

"응?"

"설마, 이후에 했던 이야기도 전부 그 이야기의 연장선이었던 거요?"

"그럼?"

"...난 중간에 화제가 한 번 바뀐 줄 알았소."

도미노 경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서로 오해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당신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요."

"뭐?"

"당신에게 한눈에 반했으니까. 아니, 내 눈은 두 개니 두 눈에 반했다고 해야 하나."

"...그건 왠지 도미닉 경 스럽네."

여성은 도미노 경이 도미닉 경의 아들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이 가끔 나사 빠진 농담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도미닉 경을 아주 잘 알고 있어, 도미닉 경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해주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더욱 도미노 경에게 싸움을 걸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도미닉 경은 이미 저 높은 곳에 있어 닿기 힘들지만, 그의 아들이라면 어떻게든 싸워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내게 알려주지 않겠소?"

도미노 경은 잠시 생각에 빠진 여성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당신의 이름과, 당신이 좋아하는 것과, 당신이 흥미를 가진 것들을 말이오."

여성은 도미노 경의 말에 잠깐 말없이 도미노 경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마침내 마음을 정리했는지 도미노 경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랑 한 번 싸워주면."

"좋소."

도미노 경이 즉답했다.

"...즉답이네?"

"당신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하지 않았소?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는 법. 내가 원하는 것과 당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는 것이야말로 윈윈의 자세가 아니겠소?"

"궤변이군."

도미노 경의 말에 여성은 피식 웃었다.

도미노 경은 어째서인지 굉장히 허당에다가, 엉뚱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름은 이겨야 알려주실 거요?"

"...이기든 지든 상관없어. 난 싸우는 게 목적이거든."

"그러면 내 쪽이 굉장히 유리해지는데..."

도미노 경은 여성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여성에게 말했다.

"그럼 싸우고 난 뒤에 다방에 가는 것이 어떻겠소? 천천히 차를 마시며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거요."

"다방이라니, 너 어느 시대 사람이야?"

여성은 그렇게 말하며 도미노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노 경은 한시라도 빠르게 여성의 이름을 듣고 싶었던지, 곧바로 여성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자, 그럼 싸워봅시다.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기 위해."

"그래. 싸워 보자고. 서로에 대해 알아보러."

결투가 시작되고, 카운트 다운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카운트 다운이 0이 되었을 때, 두 사람은 두 사람을 잇는 선의 정 중앙에서 주먹과 방패를 마주했다.

이런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런 둘이 결혼까지 이어진 것도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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