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1화 〉 [외전 20화]사소한 오해 : 동서양 전쟁
* * *
도미닉 경과 도미노 경은 지휘관의 인허가를 받아 잠시 전장을 벗어났다.
그러자, 지금까지 도미닉 경의 버프로 백중세를 유지하던 전황이 한 번에 확 기울기 시작했다.
"퇴각하라! 요새로 퇴각해 공성전을 준비해!"
동방 연합의 사람들은 더 이상 야전에서 싸우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게릴라에 특화된 일부 경기병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을 요새로 수용했다.
"기다려라! 도미닉 경이 비밀 병기를 준비하고 있다! 15분... 아니, 10분만 버텨라!"
운류 무사시는 조심스럽게 동방 연합의 전선 지휘관들에게 도미닉 경이 비밀 병기를 끌고 온다는 소문을 퍼뜨리라고 했다.
그렇게 된다면 상대의 공세는 더 거세지겠지만, 그만큼 전쟁이 빨리 끝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도미닉 경이 빨리 비밀 병기를 가지고 왔으면 좋겠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소문이 거짓말인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도미닉 경은 비밀 병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의 아들 도미노 경에게도 성인이 된 선물로 비밀 병기급 선물을 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사시는 도미닉 경이 최대한 빠르게 그의 저택에 도착하길 기도했다.
어차피 돌아올 때는 금방 돌아올 테니까.
...
도미닉 경은 도미노 경과 함께 택시를 탔다.
가차랜드의 택시 답게 추가적인 보수를 주겠다고 하자, 택시는 숨겨두었던 제트 엔진까지 써가며 도미닉 경을 목적지까지 옮겨 주었다.
본래대로라면 차로도 1시각은 더 걸릴 거리였으나, 이 수상한 택시는 12분 만에 두 사람을 목적지까지 모셔주었다.
"여깄소."
"살펴가시소."
도미닉 경은 택시 기사가 5배나 더 빠르게 왔으니, 그 곱절인 25배의 택시비를 지급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다소 문을 여는 방법이 거칠었으나, 택시 기사는 그런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손에 든 크레딧 뭉치를 세느라 바빴던 것이다.
그렇게 도미닉 경과 도미노 경은 도미닉 경의 저택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 지금 당장 봐도 되나요?"
도미노 경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아직 젊고 경험이 없어, 감정이 외부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런 도미노 경의 모습을 딱히 꾸짖지 않았다.
도미닉 경이 생각해도, 지금, 이 비밀 병기'들'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들이었으니까.
"아직은. 잠시만 기다려라. 일단 절차는 통과해야 하니까."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차고 겸 창고로 향했다.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온갖 잡동사니와 탈 것으로 가득한 곳을.
도미닉 경은 최근 이 창고가 가득 차는 바람에 바로 옆에 있는 부지를 추가로 구입해 창고용 부지로 쓰고 있었다.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가차랜드 초창기에 받은 1/2000 비율의 타이탄급 기함 아틀라스 모형이 작게 보일 정도였다.
1/2000의 비율만 해도 도미닉 경의 기존 창고보다도 컸던 그 모형이!
그래도 그 규모가 짐작이 가지 않는다면, 도미닉 경의 기함인 [페럴란트의 영광]호가 수납될 수 있으며, 그래도 넉넉하게 자리가 남는 정도의 크기였다.
오죽했으면 이 창고 사이를 돌아다니는 탈 것이 따로 있을 정도였으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미닉 경은 그런 곳을 성큼성큼 걸어가며, 가장 최근에 지어진 창고를 향해 걸어갔다.
그 창고는 도미노 경의 성인식 선물로 가득 찬 창고였는데, 도미노 경이 저렇게 흥분할 정도로 대단한 비밀 병기는 바로 이 창고에 있었다.
그르릉.
창고의 무거운 문이 드르륵 열렸다.
"세상에..."
그리고 도미닉 경과 도미노 경은 어두운 창고에 들어오는 역광을 통해 비밀병기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느냐?"
도미닉 경은 도미노 경에게 저것이 마음에 드는지 물으며 무언가를 조작했다.
그러자 창고 속에 있는 것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 눈동자는, 도미닉 경과 도미노 경과 같은 녹색이었다.
에메랄드를 박아넣은 듯한 영롱한 녹색.
"마음에 들다마다요."
도미노 경은 더 이상 기대감에 방방 뛰지 않았다.
대신, 도미노 경은 감동으로 가득 차 차마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건... 이건..."
도미노 경은 말을 더듬으며 그것을 향해 서서히 다가 갔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것을 만지려는 그 순간
[경고]
[이 탈 것을 타기 위해선 면허가 필요합니다.]
"..."
면허를 먼저 치라는 경고문이 떴다.
그렇다.
도미노 경은 이제 막 성인이 되었기에 원동기 면허와 말 면허를 제외한 면허를 따로 딴 적이 아직 없었고, 이로 인해 아직 이 탈 것을 타지 못했다.
"...빨리 면허 따러 가요, 아버지."
"그래. 나도 깜빡 잊고 있었구나."
도미닉 경과 도미노 경은 그렇게 먼저 면허를 따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도미노 경은 도미닉 경의 아들이었으니, 도미닉 경처럼 면허를 따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
"1차 성벽이 무너졌다!"
"제길! 보급이 막혔습니다! 포탄이 부족합니다!"
"..."
도미닉 경과 도미노 경의 부재로 인해 동방 연합은 처참할 정도로 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밀리던 것이 어느새 열 발자국이 밀리는 형세가 되었고, 마침내 적에게 등을 돌린 채 달아나듯 기세가 팍팍 떨어지는 형국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나마 외부에 남아 있던 경기병들이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사람들을 귀찮게 해준 덕분에 완전히 밀리지는 않았으나, 완전히 밀릴 때까지는 시간문제였다.
"...성좌들이 대거 배팅을 바꾸는군."
주걸량은 허탈한 표정으로 성좌들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성좌들은 도미닉 경이 전장을 잠시 벗어나자마자 요한 양치기 원정대에게 승기가 있다고 판단, 그대로 요한 양치기 원정대에게 축복과 보급을 몰아주었다.
물론 아직도 [하늘에서 재면 가장 큰 자]와 [백수의 거인], 그리고 [촉수의 탐구자]와 [별을 기록하는 자], [하얀 까마귀]와 [백작 영애] 등의 성좌가 동방 연합을 지지해주고는 있지만, 수백에 달하는 성좌 무리에 비하면 그 세가 미약한 것이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이런 것도 눈덩이 굴러가듯 점점 불리해져가는 상황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도미닉 경은 아직인가!"
주걸량이 버럭 화를 내질렀다.
당초 무사시가 이야기했던 시각은 10분.
그러나 지금은 30분이나 훌쩍 지나가 버린 상황이었다.
전장에 있는 이들은 시간 감각이 사라져 잘 몰랐지만, 주걸량은 지휘관으로서 작전 시간을 맞춰야만 했기에 이런 사안에 굉장히 민감했다.
"크, 큰일 났습니다! 2차 성벽이, 2차 성벽이!"
"...이제 끝인가..."
주걸량은 2차 성벽마저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침울해졌다.
남은 것은 고작 내성 하나뿐.
이로써 동방 연합의 패배는 확정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아..."
주걸량은 더 이상 지휘가 무의미하다고 판단, 자리에서 일어나 무사시와 이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주걸량이 둘을 찾아 도착하자, 그곳은 내성의 정원이었다.
아직 두 사람은 이 상황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성의 내부에서 지연전을 펼칠 준비하고 있었다.
"...다들 뭐 하시오?"
"아, 주걸량. 도미닉 경이 올 때까지 버틸 계획을 짜고 있었소."
주걸량이 묻자, 무사시가 대답했다.
주걸량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미친사람처럼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이미 다 끝났는데, 도미닉 경이 온다고 해서 뭐 달라지겠소!"
주걸량은 버럭버럭 화를 내며 전략 테이블을 엎어 버렸다.
방금 전까지 무사시와 이원이 말을 놓아가며 전략과 전술을 논하던 테이블은 엉망이 된 채 바닥을 뒹굴었다.
"도미닉 경은 탱커요, 탱커! 이런 상황에서 역전을 할 수 없는 수동적인 클래스란 말이오! 그런데 여전히 도미닉 경, 도미닉 경... 기가 차는군!"
주걸량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주걸량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도미닉 경은 탱커였고, 탱커는 혼자서 무언가를 이루는 직업은 아니었다.
앞에서 버텨주면, 아군이 다른 일들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가까웠다.
"...그대는 도미닉 경에 대해서 잘 모르는군."
무사시는 그런 주걸량에게 도미닉 경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5성이오. 그리고 5성은 군단에 맞먹는다고 할 정도의 강자들이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 하시오?"
무사시가 주걸량을 노려보자, 주걸량은 씩씩거리면서도 감히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건, 도미닉 경이 탱커임이도 군단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요?"
주걸량은 무사시의 말에 본론을 말하라는 듯 투덜거렸다.
"도미닉 경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뜻이오?"
"물론."
"하. 탱커가 어떻게 이 상황을"
"무, 무사시 님!"
주걸량은 무사시의 말에 발끈하며 조목조목 따지려고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야전 지휘관 하나가 주걸량의 말을 방해했다.
"감히 내가 이야기하는 데"
"도, 도미닉 경이 다시 전장에 합류했습니다!"
"그래? 도미닉 경은 지금 어디 있느냐?"
"그게..."
야전 지휘관은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세 사람은 야전 지휘관의 손가락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엔...
[영광스러운 장면을 목도하라!]
[도미닉 경의 기함, [페럴란트의 영광]호가 전장에 합류합니다!]
[더 이상 동방 연합의 용병이라고 부르기엔 좀 그렇지만, 뭐 어떻습니까! 용병은 용병인 것을!]
그곳엔, 수많은 탐조등으로 지상을 비추고 있는 거대한 우주 전함, 페럴란트의 영광이 있었다.
전장에 휘몰아치는 전운, 즉 구름을 몸에 두른 채 마치 신들의 하늘섬처럼 떠 있는 페럴란트의 영광호는, 순식간에 전장에 도미닉 경의 버프를 전달시키고 통신망을 복구시켰으며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물론, 이것뿐이었더라면 전장의 상황을 뒤집기에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도미닉 경의 전함인 페럴란트의 영광호는 조금 말이 웃기긴 하지만 꽤 유명한 비밀 병기였고, 그만큼 요한 양치기 원정대에서도 대비책을 세워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대비책은 다음 한 수로 인해 완전히 쓸모없는 것들이 되고 말았다.
[공포에 떨어라!]
[도미노 경의 사역마, 에이션트 메카 드래곤 [베네스 드 아스바르 르 도무르스노 폰 아케인 레 몽듀 13세]가 전장에 합류합니다!]
[하하! 용기병이 전장을 누빕니다!]
페럴란트의 영광호의 격납고가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대한 기계 드래곤이 나타나 전장에 그 위엄 넘치는 모습을 드러내었다.
치익소리와 함께 무려 32개의 배기구에서 증기를 배출하던 이 거대한 기계 드래곤은 이내 모든 배기구의 뚜껑을 닫더니, 입을 열어 지상에 뜨거운 증기 브레스를 내뿜었다.
"하하! 최고야!"
그리고 그런 드래곤의 목 부분에는 도미노 경이 안장 위에 앉아 있었는데, 도미노 경은 검을 들어 올린 채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는 드래곤에 내장된 확성기를 통해 전장에 쩌렁쩌렁 울려, 마치 신의 아바타가 전장에 강림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들게 하였다.
도미닉 경과 도미노 경은 그대로 전장에 화력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전장이 뒤바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