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0화 〉 [외전 19화]사소한 오해 : 동서양 전쟁
* * *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
도미닉 경은 도미노 경을 보며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도미노 경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전장 한가운데에서 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게..."
도미노 경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바로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도미노 경은 나름의 야심이 있는 전사였지만, 또한 그만큼 기사도를 숭상하는 기사였다.
그러므로 도미노 경은 차마 도미닉 경에게 거짓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명성을 올리고 싶어 일을 저질렀다는 뜻이냐?"
도미닉 경이 말하자, 도미노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은 무언가 변명이라도 내뱉고 싶어 우물거렸으나, 도미노 경은 변명하면 할수록 도미닉 경에게 혼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모두 도미노 경, 네가 한 일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지?"
도미닉 경이 재차 물었다.
"네."
도미노 경이 우울하게 고개를 푹 숙였다.
"흠."
도미닉 경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도미노 경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널 탓하려고 물어보는 것이 아니란다. 그저 지금 상황을 수습하려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기에 네게 계속 되묻는 게야."
도미노 경은 도미닉 경의 말에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된 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일단 동방 연합으로 가서 말을 해 봐야겠구나. 오해로 일어난 일이니, 전쟁을 당장 멈추자고 말이다."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한 뒤, 옆에 쓰러져 있는 세인트 루이스를 어깨에 들쳐 메고는 도미노 경에게 말했다.
"가자. 여기 있는 것보다는, 같이 다니는 것이 더 안전할 거다."
"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도미노 경과 세인트 루이스와 함께 동방 연합의 지휘 본부로 향했다.
중간중간 적의 공격이 있었으나, 도미닉 경의 놀라운 방어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
도미닉 경과 도미노 경, 그리고 세인트 루이스는 안전하게 동방 연합의 지휘 본부에 도착했다.
"아들! 도미닉 경, 어째서 여기에 우리 아들이...?"
"그게..."
도미닉 경은 도미노 경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히메에게 전했다.
그러자 히메도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도미노 경을 꼭 안아주었다.
"혼자서 노력하려고 했다니, 우리 아들 벌써 다 컸구나."
그러나 이내 히메는 다시 엄격한 표정으로 도미노 경을 훈육했다.
"하지만 제멋대로 판단하고 일을 저지른 건 나쁜 일이란다. 적어도 앞뒤는 알아보고 개입했어야지."
"네..."
도미노 경은 히메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만. 지금은 도미노 경을 혼내는 것보다, 전쟁을 멈추는 것이 중요하오. 이 일에 대한 건 집에 가서 이야기합시다."
도미닉 경은 우선 급한 일부터 해결하자고 말했다.
물론, 도미노 경이 혼나는 것은 뒤로 미뤄졌을 뿐이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으... 으음..."
그때, 세인트 루이스가 기절 상태에서 깨어났다.
"여긴..."
"정신이 드나?"
도미닉 경은 세인트 루이스에게 다가가 의식을 확인했다.
"...도미닉 경이 눈앞에 보이는걸 보니, 지금 꿈인가?"
"현실일세."
세인트 루이스는 가차랜드의 유명인 도미닉 경이 눈앞에 있자 지금, 이 상황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가차 없이 루이스에게 이곳이 현실임을 알려주었다.
루이스는 도미닉 경의 말에 눈을 두어 번 끔뻑이더니, 이내 확실히 지금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놀라 펄쩍 뛰었다.
"도, 도, 도,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이 어째서 여기에...?"
"동방 연합 측의 용병으로 참여했네."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하자, 루이스는 문득 이곳이 전쟁터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자, 잠시. 전쟁을 막아야 해요!"
"들었네. 그래서 지금 동방 연합의 수뇌부에게 먼저 모든 것이 오해였노라고 말하려고 온 것일세."
도미닉 경은 당황하는 루이스를 진정시켰다.
"알지는 모르겠지만, 동방 연합의 수뇌부 중 하나인 운류 가문의 수장이 바로 내 장인어른 되시네."
"아...!"
"그 분께 말한다면, 전쟁을 끝낼 수도 있을걸세."
루이스는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도미닉 경의 말대로라면, 이 전쟁은 곧 끝날 터였다.
"하지만 박수도 양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한 손이 전쟁을 끝내겠다고 해서 다른 손도 전쟁을 끝내줄 거라는 보장은 없죠."
세인트 루이스는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절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지휘 본부로 보내주십시오. 그들의 오해를 풀어야, 전쟁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도미닉 경은 세인트 루이스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일단 장인어른에게 보고를 한 뒤, 내가 직접 자네를 도와주겠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한 뒤, 도미노 경에게 다가 갔다.
"그러고 보니, 저 친구가 고생한 건 네 오해 때문이 아니더냐. 사과는 했고?"
"...미안하오."
도미노 경은 도미닉 경의 말에 곧바로 세인트 루이스에게 사과했다.
도미노 경이 사과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는 나머지 잊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도미노 경은 잊어 버렸다는 사실까지 합쳐 두 배로 미안한 마음을 가진 채 루이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난 괜찮아. 그나저나... 두 분은 무슨 사이십니까?"
루이스는 도미닉 경과 도미노 경을 보며 꽤 닮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백전노장에 가까운 도미닉 경과, 아직 애송이인 도미노 경의 분위기는 꽤 달랐으나, 그 외에 외관적인 부분이나 기타 등등이 모두 닮아있었다.
"도미노 경은 내 아들일세."
도미닉 경이 루이스의 의문에 대답했다.
"네?"
루이스는 도미닉 경의 충격적인 말에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차마 도미노 경이 도미닉 경의 아들이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두 사람 사이에는 꽤 닮은 점이 많이 있었다.
"그, 그런..."
루이스는 큰 충격에 빠져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이유는 감히 도미닉 경의 아들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 최고의 유명인이자 손으로 꼽히는 부자였기에 도미노 경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것을 알면 바로 루이스의 인생을 망가뜨릴지도 몰랐다.
물론 이는 루이스의 과대망상이었으나, 지금까지 도미노 경과 같이 있으면서 온갖 이상한 일들을 다 겪어 피폐해진 루이스의 정신력은 그 정보를 사실이라고 인식하고 말았다.
루이스는 도미노 경과 도미닉 경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다가, 이내 너무나 큰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응?"
도미닉 경은 갑자기 루이스가 쓰러지자 당황스럽다는 듯 눈을 끔벅일 뿐이었다.
...
잠시 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오해다?"
"그렇습니다, 장인어른."
도미닉 경은 운류 무사시와 만나 이 전쟁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이 전쟁을 멈춰야 합니다."
"으음... 확실히 시작은 오해였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말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났다는 건 이미 일어난 사실일세. 그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전쟁은 이어지겠지."
전쟁은 관성이 있어, 한 번 시작하면 스스로 멈출 때까지 멈출 수 없네. 라고 무사시가 중얼거렸다.
"...그렇다는 것은..."
"그래. 둘 다 지치기 전까진, 전쟁은 멈추지 않을걸세."
"하지만 상대가 제정신이라면, 저희의 정전 협정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글쎄..."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말을 회의적으로 보았다.
"아마 상대도, 지금 우리와 싸우는 이유를 잊었을 가능성이 높을 걸세."
도미닉 경이 무사시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또한, 이 전쟁은 많은 성좌들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네. 허무하게 정전으로 끝낸다면, 성좌들이 분노할 거야."
도미닉 경은 무사시의 말이 옳다고 여겼다.
가차랜드는 어찌 보면 성좌들의 투자로 이루어진 곳이나 다름없었다.
성좌들이 번 재화를 가차랜드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가차랜드는 굴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성좌들을 실망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가차랜드가 침체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좋겠습니까?"
"...차라리 화끈하게 붙어야지. 지금처럼 어설프게 서로의 의중만 떠볼 것이 아니라."
"그렇군요."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럼, 잠시 제가 빠져도 되겠습니까?"
"음?"
"발을 빼겠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다만, 조금 준비해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음."
운류 무사시는 잠시 전장을 바라보았다.
전장은 백중세.
그 어느 쪽도 우위를 가리지 못한 채, 서로의 피와 살만 깎아 먹는 형국이었다.
"그러도록 하게."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말을 수락했다.
그 기저에는, 도미닉 경이라면 이 상황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은연중에 깔렸었다.
지금까지 도미닉 경은 실패라는 것을 겪은 적이 없는, 상승불패의 전사였으니까.
...물론 몇 번 진 적은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상승불패였다.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그렇게 말한 도미닉 경은 지휘 본부를 나왔다.
...
지휘 본부의 입구.
도미노 경은 도미닉 경이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이윽고 도미닉 경이 나오자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어찌 되었습니까, 아버지?"
"...전쟁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다."
"그 말은...?"
"집에 다녀오자."
"!"
도미노 경은 도미닉 경의 말에 몸을 덜덜 떨었다.
"서, 설마 그걸 쓸 수 있게 해주시는 겁니까?"
"그래. 오늘만큼은 금지를 풀어 주마."
"맙소사."
도미노 경의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것은 공포나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희열이었다.
"오늘은, 어쩌면 최고의 날이겠군요."
도미노 경에게 있어서, 최고의 희열.
어느새 도미노 경의 입꼬리는 광대뼈에 걸쳐져 있었다.
그의 아버지 도미닉 경이 행복할 때 웃는 바로 그 미소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