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519화 (486/528)

〈 519화 〉 [외전 18화]사소한 오해 : 동서양 전쟁

* * *

도미닉 경과 광전사 율리우스는 정말 혼신의 전투를 펼쳤다.

도미닉 경이 검을 내지르면, 율리우스가 방패를 들어 올리고, 율리우스가 방패를 들어 올리면 도미닉 경이 그 방패를 걷어찼다.

둘은 마치 서로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합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절대로 도미닉 경이 율리우스의 투구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흐."

도미닉 경은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렇기에, 일부러 상대방의 정체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도미닉 경은 이미 상대방의 진정한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이 깨지 않도록,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이었다.

도미닉 경이 다시 한번 방패를 내질렀다.

이 공격은 아주 교묘해서, 상대방이 차마 반응하기 어렵게 파고들었다.

"...!"

율리우스는 이 공격을 제대로 막아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 상태에서는.

탕! 하는 소리가 전장에 울렸다.

그러나 그 소음은 이내 전사들의 함성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도미닉 경은 순간 몸이 굳어 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후."

율리우스는 이때가 기회라는 듯 방패를 다시 휘둘렀지만, 도미닉 경은 한숨만 내쉴 뿐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도미닉 경에게 율리우스의 방패가 작렬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두 눈을 부릅... 아니, 한눈을 부릅뜬 채 율리우스를 노려보았다.

"컨셉 깨졌소, 율리우스."

도미닉 경이 허망한 듯 말했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그러자 쨍강­하는 소리와 함께 율리우스의 투구가 두 개로 쪼개졌다.

도미닉 경은 갈라진 틈새로 땀에 푹 젖은 전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만 합시다, 도미니카 경."

"...하."

그곳엔,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은 도미니카 경이 있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처음 방패끼리 부딪쳤을 때부터요."

도미닉 경은 검을 바라보며 이가 나간 곳은 없는지 확인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처음 마주쳤음에도 익숙한 방패 활용법. 무엇보다도 가차랜드에서 이만큼 방패를 잘 쓰는 사람은 몇 없소."

가차랜드에는 탱커가 적은 편이었다.

지금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활약으로 조금 늘어난 상황이었지만, 가차랜드의 특성상 탱커의 부족은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도미닉 경은 탱커들의 패턴을 아주 잘 알았다.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탱커였고, 그만큼 전투 경험도 남들보다 배는 더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척 했던 거야?"

도미니카 경이 거추장스러운 갑옷을 한 겹 벗어 던졌다.

몸매를 가리기 위해 한 겹 더 겹쳐 입었던, 의미 없는 갑옷이었다.

"왜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지?"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야, 정체를 알면 맥이 빠질 것 아니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있는 힘껏 싸우고 싶었소."

"그럼, 어째서 중간에 내 정체를 밝힌 거지?"

도미니카 경은 또 한 번 질문을 던졌다.

"모르는 척하고 계속 싸웠으면 되었을 텐데."

"그야, [충격과 공포]를 썼잖소."

도미닉 경은 총성과 함께 몸이 한순간 굳어 버린 것을 통해 도미니카 경이 특수 기술을 썼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숨겨놔서 안 들킬거로 생각했는데."

"광전사인데 총성이 들린다는 것부터가 몰입이 깨지는 요소였소."

"그런가."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말을 듣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미닉 경의 말대로, 컨셉이 깨져 버리는 바람에 흥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야. 덕분에 몸을 좀 풀 수 있었으니까."

"몸을 풀다니?"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의문을 해소시켜 주었다.

"내일 5성 심사가 있거든."

"! 마침내...!"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이 5성 심사를 본다는 말에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곧 의문으로 바뀌었다.

"이상한 일이로군. 생각해 보니 도미니카 경은 이미 5성이지 않소?"

"아, 그거?"

도미니카 경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 정도는 말해도 괜찮겠지라는 생각하며 도미닉 경에게 설명했다.

"도미니카 경이라는 이름과, 광전사 율리우스라는 이름을 따로 등록했거든."

"...그게 가능하오?"

"왜 안 돼? 도미닉 경이랑 나처럼 평행세계의 나라는 설정도 여기선 얼마든지 통용되는데, '두 사람은 사실 한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잖아?"

"조금 다른 것 같소만... 그렇다는 말은, 도미니카 경은 5성이 2개라는 소리요?"

"그렇게 되겠지."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도미닉 경으로서는 도무지 한 사람이 두 번의 5성 심사를 볼 이유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의 의문을 해소시켜 주었다.

"난 도미닉 경처럼 부자가 아니니까. 나름 중산층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벌이는 많을수록 좋은걸 아니겠어?"

도미닉 경은 그제야 도미니카 경이 왜 두 번의 5성 심사를 보는지 알 수 있었다.

가차랜드의 온갖 재화를 긁어모으는 도미닉 경과는 달리, 도미니카 경은 전형적인 중산층의 표본과도 같았다.

한때 도미닉 경과 함께 살며 재산을 일부 공유하던 적이 있었지만, 도미닉 경이 결혼한 이후 독립하면서 따로 돈을 모아야만 했다.

도미니카 경은 상당히 수준 높은 탱커였기에 카드 팩에서 나오는 인센티브와 굿즈 수입이 꽤 많은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돈을 더 모으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도미니카 경은 새로운 5성 카드를 만들어 추가적인 수입을 올리고자 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도 심사를 볼 수 있었구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신기해했다.

"아무튼, 난 정체를 들켰으니 이만 기권. 다행스러운 건, 도미닉 경만 내 정체를 본 것 같다는 걸까?"

도미니카 경은 그렇게 말하며 양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녀의 말대로, 주변의 사람들은 도미니카 경이 율리우스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거대한 사석포의 몸체가 둘을 가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병들이 마구 돌아다니는 통에 먼지가 잔뜩 피어올라 한 치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도미닉 경."

도미니카 경은 그렇게 말하며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잠시 가만히 보다가, 이내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떠올리고는 방패를 들어 올렸다.

도미닉 경의 방패가 사석포를 톡 하고 건드렸다.

그러자, 사석포는 우렁찬 쇳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무승부로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정체를 밝히고 전장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본래 임무였던 사석포 견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게 도미닉 경이 한숨을 내쉬던 그때.

두두두두하는 소리와 함께 도미닉 경이 있는 방향으로 무거운 말발굽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미닉 경은 아군의 지원인가 생각했지만, 이내 흙먼지를 뚫고 나타난 이들을 보고는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문양의 서코트를 입고, 각자의 소속이 그려진 깃발을 든 채 마갑을 입은 말을 타고 도미닉 경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적어도 그들이 동방 연합의 인원들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아차렸다.

복장 양식이 동방 연합의 것과는 크게 차이가 났던 것이다.

"요한 양치기 원정대로군."

도미닉 경은 괜히 생각을 복잡하게 꼬아버렸다고 생각하면서 달려오는 기병들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있다간 도미닉 경은 저 기병대에게 밟혀 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도미닉 경의 스탯과 특성, 특수 기술을 생각하면 도미닉 경에게 흠집이나 낼 수 있겠나 싶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력하게 밟혀 버리기엔 도미닉 경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도미닉 경은 달려오는 기사단을 보았다.

그리고 방패를 앞세우고 살짝 기울여 경사로를 만들었다.

다리는 바짝 굽혀 평소의 키의 반 정도로 보일 정도였고, 검을 수납한 채 양손으로 방패를 고정했다.

거기까지 끝냈을 때, 기사단은 도미닉 경의 코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기사단의 군마들이 도미닉 경을 가차 없이 밟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방패에 가해지는 군마 발굽의 충격을 잠시 가늠하더니, 이내 방패를 쑤욱 들어 올렸다.

그러자, 기사단의 중심에 있던 한 기사가 훌쩍 하늘을 날아 다른 기사들에게 날아가 부딪쳤다.

이로 인해 수많은 기사들이 말에서 떨어져 낙마해 버리는 사태가 생기고 말았다.

"...흠."

도미닉 경은 자신이 해낸 성과에 나름 만족하면서 다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낙마의 충격으로 잠시 기절 상태 이상에 걸린 이들을 찾아다니며 목에 칼을 한 번 씩 찔러 주었다.

그렇게 수십 명의 기사가 부상을 당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도미노 경?"

"...아버지?"

도미닉 경은, 우연히 그사이에서 도미노 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쓰러진 채 기절해 있는 세인트 루이스와 함께.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