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화 〉 [외전 17화]사소한 오해 : 동서양 전쟁
* * *
도미닉 경은 자기 방패를 막아 낸 율리우스를 꽤 대단하다는 듯 보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도미닉 경의 공격을 막아 내서가 아니었다.
방패를 튕겨낼 때, 그 반탄력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도미닉 경의 방패 활용술은 가차랜드 전체를 통틀어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기에, 그런 도미닉 경의 방패술을 파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미닉 경의 존중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너는 누구지?"
"...율리우스."
도미닉 경은 금속으로 된 투구 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잠시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율리우스라."
도미닉 경은 잠시 어떤 고민에 빠지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여기에 있다는 것은 내 앞을 막아서기 위해서겠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검의 끝자락을 율리우스에게 겨눴다.
"..."
율리우스는 말없이 도미닉 경에게 방패를 들어 올렸다.
대화가 필요하냐는 뜻이었다.
도미닉 경은 그런 율리우스의 행동에 씨익 웃으며 자리를 박차고 달려들었다.
도미닉 경의 검이 율리우스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물론, 율리우스가 피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도미닉 경은 공격이 빗나간 척 사석포를 노린 것이었다.
현재 도미닉 경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석포의 무력화였으니까.
그러나 율리우스는 도미닉 경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검의 옆면에 방패의 윗쪽 모서리를 걸어 도미닉 경의 공격을 걷어내었다.
그 기술은 도미닉 경의 방패술과 엇비슷할 정도!
"대단하오... 아니, 대단하군."
도미닉 경은 그런 율리우스의 기술에 찬사를 보냈다.
"아무래도 이기지 않으면 목표도 수행할 수 없겠어."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율리우스에게 방패를 휘둘렀다.
율리우스도 마찬가지로 도미닉 경에게 방패를 휘둘렀다.
두 방패는 중간에 마주쳐 거친 마찰음을 내며 서로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
"아직이야?"
"모르겠소!"
도미노 경과 세인트 루이스는 흰 준마를 타고 전쟁터로 향했다.
가차랜드는 뜻밖에 컨텐츠에 대한 정보 전달이 빨랐기에 그저 길 가던 아무나 붙잡고 길을 물으면 되었다.
"아! 저기가 전장인가 보오!"
도미노 경은 저 멀리 어마어마한 군세가 격돌하는 것을 보았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도중이었고, 거칠게 휘날리는 바람으로 인해 자세한 것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두 무리가 서로 먹고 먹히며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좋아! 보니까 오른쪽이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군세같아!"
"오른쪽? 잠깐, 오른쪽이 어느 쪽이었지?"
도미노 경은 너무나도 급하게 말을 몰았던 탓인지 잠시 단순한 것을 헷갈리기 시작했다.
"숟가락 드는 손!"
"아! 그렇구려!"
도미노 경은 그 즉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긴 왼쪽이야!"
"숟가락 드는 쪽이라고 하지 않았소!"
도미노 경은 버럭 화를 내었다.
도미노 경은 왼손잡이였다.
"으, 일단 말 머리를 돌려. 요한 양치기 원정대로 가야 일단 오해를 풀 수 있을 거 아니야."
"...아쉽게도 그건 힘들 것 같소."
"왜?"
세인트 루이스는 도미노 경의 말에 의문을 가졌다.
그냥 말 머리를 돌리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우린 지금 돌격하는 기사단의 사이에 있는 것 같소."
도미노 경은 당황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제야 세인트 루이스는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들의 주변에는 서로 다른 문양을 가진 각양각색의 기사들이 말을 탄 채 동방 연합을 향해 랜스 차징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당한 속도였다면 빠르게 달려 빠져나갈 수 있었겠으나, 기사단은 이미 전속력으로 동방 연합을 향해 달려가는 도중이었고, 무엇보다 도미노 경은 아직 경험이 부족한 기사였기에 말을 모는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가 겹쳐, 도미노 경과 세인트 루이스는 기사단이라는 파도에 휩쓸리듯 동방 연합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파괴학파의 대마도사, 율리우스의 마법이 동방 연합의 방진을 타격했다.
대마도사 율리우스의 대 마법은 그야말로 뭉쳐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 재앙이었다.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며 주변에 큰 피해를 준 뒤, 남아 있는 잔해로 틱 데미지를 주는 식이었다.
직격한 자들은 그나마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부활 대기소로 돌아갔으나, 문제는 빗맞은 사람들이었다.
빗맞은 이들은 폭발의 후폭풍으로 인해 서서히 체력이 깎여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틱 데미지를 받지 않으려고 그 지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다른 방진들에게 혼란과 공포를 가져다주는 역할했다.
혼란과 공포에 빠진 방진은 그 결속이 살짝 느슨해지는 법이다.
그 말인 즉, 율리우스의 마법 이후 달려오는 저 기사단을 막을 방도가 없다는 뜻이었다.
"거창!"
기사단 가장 앞에 서 있는 랜스 마스터가 기사단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기사들은 들고 있던 랜스를 옆구리에 끼며 그 끝을 적진으로 향했다.
랜스의 끝자락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그곳에서 나오는 위력은 작지 않았다.
기사단이 방진 하나를 휩쓸었다.
창을 들고 있던 무리였다.
창을 들고 방진까지 짠 상황에서 기사단의 공격은 자살이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방진이 온전했다면 말이다.
현재 동방 연합의 방진은 대마도사 율리우스의 마법으로 인해 느슨해진 상태였고, 기사들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그 말인 즉, 방진 하나 정도는 그냥 와해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기사단의 돌격은 매우 무시무시한 것이어서, 직접 기사들을 마주한 것이든, 아니면 간접적으로 그 장면을 본 것이든 동방 연합의 사기는 뚝뚝 떨어져 갔다.
"...아직이다."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던 운류 무사시는 검을 뽑아 들고는 아군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다시 재집결하라! 방진을 유지해! 방진을 제대로 유지하면 기병의 돌격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외친 운류 무사시는, 이후 작게 또 다른 말을 중얼거렸다.
"그들이 제대로 활약하길 바라는 수밖에."
...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기사들이 전장을 휩쓰는 동안, 동방 연합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직접적인 충격에 주안점을 둔 요한 양치기 원정대와는 달리, 동방 연합이 택한 방식은 바로 후방 기습이었다.
"케식들은 들으라! 지금부터 적의 사격진을 약탈한다!"
"예!"
검과 활로 무장한 경기병대가 [촉수의 탐구자]의 은총을 받아 계몽의 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촉수의 탐구자가 제공한 '길'을 통해 적진의 후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은 계몽을 받기 전에도 무시무시한 존재들이었으나, 계몽 이후 더욱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그들이 길로 도착한 곳은 바로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보급로가 있는 후방이었다.
조금만 더 이동하면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사격진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 무시무시한 경기병대는 보이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 짓밟기 시작했다.
"지원하겠습니다!"
케식이 모든 것을 짓밟고 있을 때, 길을 통해 추가적인 인원이 따라왔다.
머리에 관을 쓴 채 깃털을 꽂은 이들.
바로 화랑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보급고가 불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적진의 후방으로 침투했다.
그러고는 적의 사격진을 향해 활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적의 쇠뇌 사수만 조심하라!"
"전열병은 어떻게 합니까?"
"그들의 화기는 가공하지만 그래 봤자 전열이다! 우리는 후열을 노린다!"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중기병대가 동방 연합을 유린했다면, 동방 연합의 경기병대는 상대의 목 아래 칼을 들이밀었다.
물론 이런 상황을 계속해서 유지할 요한 양치기 원정대가 아니었다.
지휘관 율리우스는 등에 날개를 단 경기병대를 투입해 동방 연합의 경기병대를 막고자 했다.
"후사르의 역할은 저들을 제압하는 것이다! 알겠나?"
지휘관 율리우스의 외침에 요한 양치기 원정대 측의 경기병들이 출동했다.
"케식은 후퇴한다! 후퇴하면서 최대한 성가시게 해라!"
그리고 달려오는 적의 경기병을 본 동방 연합의 경기병들은 그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직접 싸워서 질 것 같지는 않았으나, 피해가 막심할 것이 틀림없었다.
대신 동방 연합의 기병들은 적에게만 일방적인 피해를 강요하기 위해 후퇴를 택했다.
물론, 후퇴하면서 쏘아낸 화살은 선물 아닌 선물이었다.
"그럴 것 같았지!"
후사르들은 제법 크게 피해를 입었지만, 이는 지휘관 율리우스의 계략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총기병들을 투입하기 위해 후사르를 미끼로 쓴 것이었다.
총기병들은 후사르들의 사이사이에서 튀어나와 다시금 동방 연합의 기병들을 쫓기 시작했다.
한쪽에서 전술과 전략을 내보이면, 다른 쪽에서 그 계략을 카운터치는 계략을 내놓는다.
그야말로 한쪽에서 장군을 부르면, 반대편에서 멍군을 부르는 일의 연속.
이제 전쟁은 더 이상 세련되지 않았다.
그저 진흙탕에서 구르듯, 피곤하고 짜증 나는 일의 연속일 뿐이었다.
"어, 어어?"
"꽉 잡으시오!"
그리고 그 혼란스러운 전장 사이에서, 도미노 경과 세인트 루이스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