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7화 〉 [외전 16화]사소한 오해 : 동서양 전쟁
* * *
사석포의 포탄이 쿵 하고 내려앉을 때마다, 동방 연합 측의 심장도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만큼 사석포는 강력한 전술적 무기였다.
"...설마 먼저 비밀 무기를 꺼내 들 줄은."
운류 무사시는 혀를 쯧 차며 빠르게 사기가 떨어지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사석포의 등장으로 인해 동방 연합은 많은 것을 잃었다.
우선 동방 연합이 자랑하는 방진을 짜지 못하게 된 것이 그 첫 번째요, 사석포로 인해 동방 연합의 주력 인원이 저격당하기 시작한 것이 두 번째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손실은 바로 사기였다.
동방 연합은 저 괴물 같은 대포가 발포될 때마다 겁쟁이처럼 움찔거렸다.
대포의 진동이 땅을 통해 울릴 때마다 심장의 고동 소리가 어긋났다.
그리고 그런 징조들은 동방 연합에게 있어 나쁜 징조들이었다.
"...아무래도 우리도 비밀 무기를 꺼내 들 때가 된 것 같군."
운류 무사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뒤에 집사 닌자가 나타나 운류 무사시에게 부복했다.
"부르셨습니까?"
"가서 도미닉 경에게 전해라. 사석포를 견제해야 한다고."
"네!"
집사 닌자는 운류 무사시의 말을 듣자마자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리고는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운류 무사시는 계속해서 전장의 상황을 눈에 담으며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도미닉 경이 갈 테니, 잠시 시간을 벌 수는 있겠군."
그런 무사시의 뒤로, 거대한 무언가가 건축되고 있었다.
...
도미닉 경은 방진과 방진의 싸움 속에서 맹활약하고 있었다.
"흐."
"도, 도미닉 경이다! 저 기분 나쁜 웃음, 확실한 도미닉 경이야!"
도미닉 경은 가장 가까이 있던 중보병 하나의 멱살을 잡고 안다리를 걸어 땅에 엎어쳤다.
그러고는, 손에 든 방패로 무자비하게 중보병의 갑옷 사이를 노렸다.
가끔 갑옷의 연결 부위가 방패 끝자락에 걸리긴 했으나, 그마저도 도미닉 경의 놀라운 스탯으로 인해 엉망이 되기 일쑤였다.
기본적으로 도미닉 경은 광역기를 가진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공격력이 높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자신이 전장에서, 그것도 이런 대규모 전장에서 해야 할 일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매우 자비롭게도 상대방의 목숨을 가져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매우 잔혹하게도 살아 있는 상태로 두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엉망이 될 때까지, 갑옷을 입었다면 갑옷이 쪼글쪼글해져 움직이지도 못할 때까지 두드리고 또 두드려 합류도, 부활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는 도미닉 경처럼 피해량이 낮은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도미닉 경은 땅에 누운 중보병의 갑옷이 그의 관짝이 될 때까지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그러면서 갑옷이 없는 부분도 두드리고 또 두드려 해답이 나올 때까지 두드렸다.
그리고 그 해답이란, 전의의 상실이었다.
"그만, 그만! 그만해!"
꽤 베테랑처럼 보였던 수염 난 중보병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마 그 외침이 그의 마지막 발악이었는지, 도미닉 경은 순간 의지가 살짝 깎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의 정신력 스탯과 저항력 스탯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에 그 발악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항복하겠소."
중보병은 자기 마지막 발악마저 실패했다는 걸 알고는 분함의 눈물을 흘렸다.
그건, 확실하게 의지가 꺾였다는 증거였다.
"좋소."
도미닉 경은 더 이상 중보병을 괴롭히지는 않았다.
"더 이상 싸울 사람 없나?"
대신, 도미닉 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타겟을 노렸다.
도미닉 경과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적들은 겁을 집어먹고 뒷걸음질 쳤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도미닉 경을 잡고 가차랜드에서 명성을 높이려는 이들이 많았지만, 중보병이 당한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사라진 것들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의 행동은 당연하다못해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도미닉 경의 눈은 하나였지만, 그 눈에 담긴 살기와 광기는 두 배, 그 이상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좋소. 그럼 내가 먼저"
"도미닉 경?"
"...음?"
도미닉 경은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집사 닌자가 자세를 잡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무사시님의 전언입니다. 사석포를 견제하시라고 하십니다."
"사석포?"
도미닉 경은 집사 닌자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제야 저 멀리서 집채만 한 포탄을 쏘아내는 거대한 대포를 볼 수 있었다.
"저걸 견제하라고 하셨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도미닉 경은 잠시 사석포를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실행한다고 전하시오."
도미닉 경은 그 말과 함께 사석포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읏!"
그러자, 도미닉 경이 가려던 진로로 길이 열렸다.
그것은 마치 홍해를 가르는 모세와도 같았다.
도미닉 경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
그러나 이러한 행보는 당연하게도 굉장히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
"..."
광전사 율리우스는 요새의 성가퀴에 한 발을 걸쳐올리고는 저 아래에 오만한 듯 당당하게 걸어가는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광전사 율리우스는 스쿠툼과 글라디우스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청동으로 된 얼굴 모양 안면 가리개 투구를 쓰고 있었다.
율리우스의 복장은 수상할 정도로 둘둘 감싸고 있었는데, 누구는 그 모습을 보고 어디선가 입은 커다란 상처를 가리기 위해서라고 말했고, 누구는 그저 컨셉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모두 한 입을 모아 인정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도미닉 경의 뒤를 이을 차세대 탱커의 등장이라는 것과, 굉장히 과묵하다는 것이었다.
"율리우스."
그런 율리우스에게 지휘관 율리우스가 다가왔다.
그는 꽤 복잡한 의상을 입고 있었는데, 머리에 쓴 투구는 18세기 섬 양식, 갑옷은 7세기 대륙 양식, 검은 11세기 성전사 양식이었다.
"아무래도 저들은 사석포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
지휘관 율리우스는 광전사 율리우스에게 그렇게 말했다.
광전사 율리우스는 말없이 지휘관 율리우스를 바라보았다.
"대마도사 율리우스의 힘이라면 막아 낼 수 있겠지만, 아군의 피해도 심해질 거다. 그러니 너밖에 답이 없다."
지휘관 율리우스는 광전사 율리우스에게 사석포를 막으라고 지시했다.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도미닉 경의 발목만 잠시 잡아라. 우리의 다음 비밀 병기가 나올 때까지."
광전사 율리우스는 그 말을 듣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성가퀴를 훌쩍 뛰어넘어 성벽 너머로 떨어진 뒤 사석포를 향해 뛰어갔다.
"...광전사라는 별명은 누가 지었는지, 아주 적절한 별명이로군."
지휘관 율리우스는 광전사 율리우스의 호전성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감탄할 시각은 많지 않았다.
아직 전쟁은 진행 중이었고, 지휘관 율리우스의 지휘를 원하는 군단들은 많았으니까.
그렇게 지휘관 율리우스는 몸을 돌려 다시 지휘 본부로 향했다.
광전사 율리우스가 제 몫을 하리라 믿으며.
...
"저게 그 사석포인가?"
도미닉 경은 사석포와 그다지 머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적이 달려들기라도 했다면 성가셨겠지만, 다행인지 아닌지 도미닉 경에게 달려는 멍청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크군."
도미닉 경은 이 거대한 사석포를 올려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황제의 주먹이라고 명명된 이 거대한 사석포는 그 이름에 걸맞게 높이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높아, 도미닉 경이 그 끝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가 뒷 목이 뻐근해질 정도였다.
"도, 도미닉 경이다!"
도미닉 경이 그렇게 사석포에 도착한 순간, 사석포에서 사격을 담당하던 인원들은 곧바로 겁에 질려 덜덜 떨기 시작했다.
"이거, 따로 손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도미닉 경은 순간 그렇게 생각했으나, 이내 생각을 고쳤다.
사석포를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다른 인원이 붙어 재기동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사석포를 향해 있는 힘껏 방패를 휘둘렀다.
깡! 하는 소리와 함께 사석포가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사석포는 멀쩡했다.
도미닉 경은 다시 한번 방패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캉! 하는 소리와 함께 사석포가 더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사석포는 멀쩡한 것처럼 보였다.
도미닉 경은 다시 한번 방패를 주욱 당겼다가 화살을 쏘아낸 활시위처럼 휘둘렀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사석포가 기우뚱거렸다.
사석포는 떨림을 멈추지 못했다.
도미닉 경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며 다시 한번 방패를 휘둘렀다.
뎅! 하는 소리와 함께 까각!하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사석포의 어딘가에 금이 간 것이 틀림없었다.
도미닉 경은 아마 다음 공격이 마지막이 될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방패를 휘둘렀다.
이번 한 번의 공격이면 사석포는 영영 무력화 될 것이었다.
물론, 그 공격이 닿았다면 말이다.
텅. 하는 소리가 도미닉 경의 방패에 울렸다.
"!"
도미닉 경은 자기 방패가 튕겨 나오자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자기 방패를 튕겨 낸 이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전방에 고정했다.
"..."
거기에는, 방패를 들어 올린 채 글라디우스를 늘어뜨린 검투사, 광전사 율리우스가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