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3화 〉 [외전 12화]사소한 오해 : 동서양 전쟁
* * *
도미노 경은 도미닉 경과 히메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다.
그 말인 즉, 도미닉 경의 탱커적 기질과, 히메의 딜러적 기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말도 안 돼..."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성자 세인트 루이스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머리에 깃털을 꽂은, 시대착오적인 웬 이상한 기사가 나타나 동방 연합의 인원 수백 명을 참살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은 탱커라기엔 너무나도 피해량이 높았고, 딜러라기엔 너무 단단했다.
"저 사람은 대체...?"
"이걸로 마지막!"
시대착오적인 옷을 입은 기사는 동방 연합의 마지막 인원을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방패에 새겨진 사자 문양의 날카로운 이빨이 그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음!"
기사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성자와 추기경을 향해 걸어왔다.
"어디 다친 곳은 없소?"
"괜찮... 아니, 당신 누구야?"
세인트 루이스는 하마터면 기사의 페이스에 넘어갈 뻔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는 기사의 정체를 물었다.
"난 도미노 경이오."
"도미노 경?"
세인트 루이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로군?"
"그럴 거요. 이번이 강호 초출이니까."
"...옷은 기사면서, 말은 무사군. 이상한 사람이야. 그나저나..."
세인트 루이스는 도미노 경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우린 좆된 것 같군."
"성자님! 말을 조심하시지요!"
"뭐 어때. 지금 우리 상황이 좆된 건 사실인데."
세인트 루이스는 한숨을 내쉬며 도미노 경을 바라보았다.
"너, 도대체 뭣 때문에 갑자기 저들에게 달려든 거야? 날 도와주려 했다는 말은 그만둬. 정말 날 도와주려 했다면, 그냥 지나갔겠지. 도대체 저들이랑 무슨 원한이 있어서 이런 거야?"
"음? 그냥 당신들을 구하려고 한 것이오."
"뭐?"
세인트 루이스는 그때 생각했다.
이 녀석, 뭔가 이상하다.
아니, 이상하다는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그 외에도 무언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니, 그, 뭐라고 해야 하지? 아, 젠장."
세인트 루이스는 도미노 경을 보면서 한 문장을 떠올렸다.
그것은 세인트 루이스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좆됐다.
...
도미닉 경의 저택.
"도미노 경? 아직 안 왔니?"
저택 내부에선 히메가 돌아다니며 도미노 경을 찾고 있었다.
"성인이 된 걸 축하할 파티를 준비했는데, 이 아이가 어디로 갔담..."
히메의 말대로, 현재 저택은 파티 준비로 한창이었다.
도미노 경이 좋아하는 유명 셰프의 햄버거부터, 최고급 소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는 물론이요, 도미노 경이 딱 한 번 우연히 먹고 괜찮다고 했던 칠면조 구이까지, 식탁에는 도미노 경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기다려 봅시다. 그토록 바라던 어른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분이 날아가겠소.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도 많겠지."
걱정이 많은 히메와 달리, 도미닉 경은 도미노 경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래도..."
도미닉 경의 설득에도, 히메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히메의 불안감은 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똑똑.
"계십니까?"
도미닉 경과 히메가 거실에서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현관문에서 누군가가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도미닉 경은 꽤 익숙한 목소리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미닉 경이 현관문을 열자, 그곳에는 자베르 경감이 있었다.
아니, 이제는 자베르 경정이었다.
"자베르 경정 아니시오. 이번에 진급했다는 소리는 들었소. 축하드리오. 그나저나 무슨 일로...?"
도미닉 경은 자베르 경정에게 진급을 축하해주며 본론을 바로 물었다.
"오랜만이로군요, 도미닉 경. 그, 확인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확인할 것이라고?"
"네. 혹시 오늘 오전에 어디에 계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나 말이오?"
"그렇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내가 관련이 된 일이오?"
"아마도 그렇습니다, 도미닉 경."
"일단 저희는 도미닉 경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혹시라도 몰라서 말입니다. 도미닉 경께서 혹시라도 불편해 하실까 봐 이렇게 제가 찾아왔지요."
"그렇구려."
도미닉 경은 오늘 온종일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말했다.
아들이 성인이 되었기에, 그 축하하려고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아, 아드님께서 성인이 되셨습니까? 이거, 가차랜드 전체에 알려야 할 기쁜 소식이로군요!"
자베르 경정은 과할 정도로 기뻐하며 도미닉 경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나저나, 이제는 사건에 대해서 좀 알려줄 수 있겠소? 아무래도 내가 용의선상에 들어갔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 말이오."
"어려울 것 없지요."
자베르 경정은 어깨를 으쓱하며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도미닉 경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동방 연합의 사람 수백 명을 죽이고 도망쳤다고 합니다."
"나와 닮은 사람이?"
도미닉 경이 놀란 눈으로 자베르 경정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떤 간 큰 사람이 날 따라 한다는 말이오?"
도미닉 경은 도대체 누가 자신을 사칭하는지 궁금해졌다.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유명인 중 하나였기에, 자연스럽게 도미닉 경의 사칭도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때마다 사칭범에게 아주 따끔한 제재를 내렸다.
이는 그의 처가가 운류 가문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정보에 있어서, 운류 가문은 가차랜드에서 가장 뛰어난 가문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이렇게 내게 물어보러 왔다는 말은, 아직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뜻이겠구려."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베르 경정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사실 범인을 잡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범인이,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성자를 납치했다는 것이 문제지요."
"납치까지?"
도미닉 경은 이제 슬슬 그 간 큰 범죄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동방 연합과 요한 양치기 원정대는 가차랜드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클랜 중 하나였다.
그런 클랜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도발하다니.
"간도 크구려. 두 클랜을 동시에 골탕 먹이다니."
"그래서 또 문제입니다. 범인을 아직 잡지 못해서인지, 지금 두 클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거든요."
"그게 무슨 의미요?"
"동방 연합에서는 자신들의 클랜원들이 죽었다는 이유로 이 모든 것이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짓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요한 양치기 원정대에선 성자가 납치되었다는 이유로 동방 연합의 짓이라고 단언하고 있지요."
"단순히 한 사람의 범행이라기엔, 지나치게 판이 커졌구려. 이상할 정도로 말이오."
"이건 비밀입니다만..."
자베르 경정이 도미닉 경에게 고개를 살짝 가까이 대며 작게 말했다.
"동방 연합의 일원인 주씨 가문이 먼저 요한 양치기 원정대에게 시비를 건 모양입니다. 요한 양치기 원정대는 이에 사과를 요구하러 왔다가 봉변을 당한 거구요. 그래서 더 골치가 아픕니다. 둘 다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서 말이죠."
자베르 경정이 다시 원래대로 자세를 바로잡더니,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어쨌든, 도미닉 경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상부에는 그렇게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상부라? 당신도 꽤 높은 직위에 있으니, 당신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오?"
"아무래도 이번 사안이 사안인지라, 더 높으신 분들이 관심을 가져서 말입니다."
자베르 경정이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저는 다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살펴가시오."
도미닉 경은 터덜터덜 걸어가는 자베르 경정을 마중한 뒤,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에요?"
"아무래도 날 사칭하는 녀석이 있는 것 같소."
"당신을 사칭해요?"
히메는 그럴 리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일주일 전에 전부 벌금형에 처해졌잖아요."
"그렇긴 하오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모양이오. 제법 실력이 좋은지, 동방 연합의 클랜원 수백 명을 학살한 모양이오."
"수백 명을요? 몇 명이서요?"
"아마도 한 명인 듯싶소. 게다가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성자도 납치했다더군."
"세상에."
히메는 도미닉 경의 말을 듣고는 세상이 말세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거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구려."
"준비라뇨?"
히메가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동방 연합과 요한 양치기 원정대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하오. 아마도 다툼이 있거나,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좋지 않겠소?"
도미닉 경의 말에 히메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동방 연합에는 히메 당신의 가문인 운류 가문이 속해 있지 않소. 그러니 여차하면 동방 연합에 합류할 준비해야 하겠지."
"그래도 다행이네요. 얼마 전에 도미노 경 성인식 선물을 살 때 탈 것과 장비도 모두 재정비했었잖아요? 혹시 일이 터지면 바로 합류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말이오."
도미닉 경과 히메는 그렇게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는, 부디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가차랜드에서의 전쟁은 그나마 가벼운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클랜 사이의 관계가 나빠질 일은 관여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 법.
띵동.
"음?"
"천국택배입니다! 편지 받으세요!"
도미닉 경은, 다시금 현관문을 열고 천사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 편지를 열자, 도미닉 경의 표정이 싸악 굳었다.
"무슨 편지예요, 여보?"
히메가 도미닉 경의 분위기를 알아차리고는 가까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준비해야 할 것 같소."
도미닉 경이 굳은 표정으로 히메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쟁이 일어날 것 같으니."
히메는 도미닉 경의 말에 도미닉 경이 들고 있는 편지를 바라보았다.
[선전포고문]
편지의 내용은, 그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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