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0화 〉 [외전 9화]극장판 : 폭풍을 부르는 클래시카 섬의 비밀
* * *
"스탯을 못 쓰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구려."
"으, 걷는 게 어색한 걸요?"
도미닉 경은 현재 스탯이 봉인된 채 클래시카 섬을 둘러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는 클래시카 섬의 제약이었다.
클래시카 섬은 그 어떤 보정 없이 정정당당한 승부를 캐치 프라이즈로 삼고 있었다.
그런 만큼, 클래시카 섬에서 놀기 위해선 스탯 보정을 받지 못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도미닉 경은 히메와 같이 해안 가를 걷고 있었다.
클래시카 섬의 해안 가는 굉장히 맑고 투명한 바다와 유리처럼 반짝거리는 부드러운 모래사장이 합쳐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런 만큼 이질적인 부분이 눈에 잘 들어오는 법이었다.
"저기에 동굴이 하나 있구려."
"동굴이요?"
히메는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돌려 도미닉 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정말로 해안 동굴이 있었다.
해골 모양의 거대한 입구로 바닷물이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는 그 동굴은 그 자체로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주변이랑 굉장히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곳이네요."
히메는 그 동굴을 그렇게 평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심정이오."
"그건... 그래요."
도미닉 경과 히메는 그 동굴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들어가보지 않겠소?"
"네? 하지만 저흰 지금 스탯도 봉인된 상태잖아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여기도 가차랜드의 일부잖소. 죽으면 부활하면 되오. 뭘 걱정하시오?"
"아..."
히메는 스탯이 봉인되었다는 것만 떠올렸지,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긴, 누가 신혼여행을 와서 죽으려고 생각하겠는가.
그런 경우는 신혼여행지에서 바로 이혼하게 된 사람들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적어도, 도미닉 경과 히메는 이 사례에 포함되지 않는 부부였고 말이다.
"일단 가봅시다. 이런 우연도 여행의 재미 아니겠소?"
"...그래요. 가죠."
그렇게 도미닉 경과 히메는 그 동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그리고 그 뒤를 누군가가 따라붙고 있었다.
...
"안은 생각보다 깨끗하네요?"
"그런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소. 어쩐지 불길하오."
도미닉 경은 히메에게 주의를 주며 동굴 안을 둘러보았다.
동굴 안쪽은 꽤 넓고, 밝았다.
해골 모양의 바위에 뚫린 눈 부분에서 햇볕이 충분히 들어올 뿐 더러, 동굴 내부에도 발광석들이곳곳에 박혀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딱히 볼 만한 것은 없는 것 같소."
도미닉 경은 이 광경 자체에 감탄하기는 했으나, 뜻밖에 이 공간은 그 크기에 비해 그다지 특이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신비하네요.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음."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에 동의했다.
"그럼, 이만 나가보는 것이 어떻겠소?"
"그래요. 딱히 더 볼 만한 건 없네요."
도미닉 경과 히메는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이 없다는 듯 동굴을 나가려고 했다.
동굴의 입구가 갑자기 내려와 두 사람들 가두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이게 뭐죠?"
히메는 갑자기 일어난 이 상황에 당황했다.
도미닉 경은 곧바로 닫힌 부분으로 달려가 어깨로 부딪쳐보거나 들어 올리려는 등 노력해봤으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군."
도미닉 경은 갑자기 갇혀 버린 이 상황에 당황했다.
다행스럽게도 빛은 여전히 들어오는 상황이었으나, 그 외에는 그 어떤 구조 수단도 없었던 탓이었다.
"...일단 나가는 곳을 찾아봅시다."
"네."
도미닉 경과 히메는 같이 이 동굴 내부를 돌아다니며 나갈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오라는 길은 나오지 않고, 어째서인지 이상한 퍼즐만 가득 나타났다.
"음?"
도미닉 경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퍼즐을 보았다.
그 퍼즐은 9개의 구역으로 나뉜 원판이었는데, 가장 바깥고리부터 가장 안쪽 고리까지 9개였다.
그리고 그 원판의 중심이 되는 부분에는 태양이 그려져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 퍼즐이 어째서인지 의도적으로 몇 부분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흠..."
도미닉 경은 그 퍼즐을 지나가려고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퍼즐 아래에는 [나가는 문]이라는 팻말이 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릿하고 삐뚤삐뚤한 글씨였지만 확실하게 나가는 문이었다.
"이 퍼즐을 풀어야만 나갈 수 있는 모양"
"다 풀었어요."
"이... 음?"
도미닉 경은 히메에게 이 퍼즐을 풀어야 나갈 수 있겠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히메는 벌써 퍼즐을 모두 풀어 버린 상태였다.
도미닉 경이 주변을 둘러보자 몇 군데에 퍼즐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퍼즐들은 모두 보기 흉하게 박살이 나 있었는데, 아무래도 히메가 어떻게 망가뜨린 모양이었다.
"...닌자의 비술이죠."
히메는 부끄러워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구려."
도미닉 경은 닌자의 비술이란 참으로 신비한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히메에게서 퍼즐 조각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아홉 개의 고리에 비어 있던 부분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그것이 행성들의 고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걸 풀면 나갈 수 있다는 건가? 힌트는?"
도미닉 경은 어딘가 힌트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이미 히메가 모든 장치를 박살 낸 상황.
도미닉 경은 결국 힌트를 찾지 못했다.
"미안 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천천히 푸는 건데..."
"괜찮소. 다른 건 다 풀었으니, 이 하나만 어떻게 하면"
그때였다.
도미닉 경이 아홉 개의 고리를 정렬시키자, 우연찮게도 그것이 정답이었는지 무언가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음?"
하지만 그 소리는 입구나 출구가 열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바로 천장이 열리는 소리였다.
"천장이 열린다고...?"
도미닉 경과 히메는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탈출구를 여는 퍼즐이라고 생각한 것이, 전혀 엉뚱한 것이었으니까.
도미닉 경과 히메가 멍하게 이 상황에 대해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동안, 동굴의 바닥에서 갑자기 다이아몬드로 된 커다란 피라미드가 나타났다.
그 피라미드 위에는 붉은 수정이 있었는데, 그 수정은 과충전 된 듯 맑은 에너지를 마구 수정 안쪽으로 발산하더니, 이내 열린 천장을 향해 빛줄기를 하나 쏘아내었다.
그것은 마치 저 먼 외우주에 있는 무언가에게 보내는 신호같기도하고, 우주 공간에 있는 위성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기도 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일단 출구가 열리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출구는... 없네요."
히메는 여기에 갇혀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는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나 도미닉 경과 단둘이 있다는 생각에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
"아니, 하나 있소. 출구로 갈 길이."
"네??"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에 어느 한 곳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가리켰다.
히메는 도미닉 경의 말에 그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도미닉 경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렸다.
"저거라면..."
히메의 눈에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
잠시 후.
"영차."
"음."
도미닉 경과 히메는 동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빠져나온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다이아몬드 피라미드를 밟고 그대로 뚫린 천장을 통해 나왔던 것이다.
"설마 그 피라미드에 사람이 밟기 좋게 계단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원래는 수정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고 만든 계단이었을 거요."
도미닉 경과 히메는 동굴을 빠져나와 잠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동굴 탐험은 제법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저건 무엇일지..."
도미닉 경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치솟는 빛의 신호를 바라보았다.
빛의 신호를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으나, 도미닉 경은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
빛의 신호는 저 먼 행성들에게 이어졌으나, 맨눈으로는 확인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큰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요?"
히메가 잠시 걱정했다.
그러나 그 걱정도 잠시.
"야!"
어깨에 앵무새를 얹은 외다리 여해적이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
"해적? 히메!"
"괘, 괜찮아요. 해적에 대한 트라우마는 이제 거의 다 나았다구요."
도미닉 경은 해적이 나타나자마자 히메의 상태를 확인했다.
히메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고통스러워 했으나, 그래도 기절을 하거나 숨을 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히메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외다리의 해적은 도미닉 경과 히메를 향해 버럭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뭐 하는 짓이야! 내가 그거 숨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걸 발동시켜 주고 있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여해적은 목발을 붕붕 휘두르며 도미닉 경에게 짜증을 부렸다.
"그것도 몰라? 너희가 결국 그것들을 불러버렸다는 뜻이야! 망했어! 망했다고!"
"망했다! 망했다!"
그녀의 어깨에 있던 앵무새가 그녀의 말을 따라 했다.
"그것?"
도미닉 경은 여해적이 말하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망했다는 말로 미루어보아 가차랜드에 해가 될지도 모르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도미닉 경은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모르고 맞이하는 것보단, 알고서 대처하는 것이 나을 테니까.
"그것들이 무엇이오?"
"그것도 몰라? 그건"
그때였다.
여해적은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한 듯, 몸을 움찔했다.
그리고 삐그덕거리며 하늘을 바라보더니, 이내 놀란 눈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맙소사, 마침내 오고야 말았어...!"
"온다! 온다! 그들이 온다!"
도미닉 경은 그 말에 바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들을 본 도미닉 경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엔, 절구를 든 작은 토끼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