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9화 〉 [외전 8화]극장판 : 폭풍을 부르는 클래시카 섬의 비밀
* * *
"으음..."
이튿날 아침, 도미닉 경은 9시 반이라는 꽤 늦은 시간에 일어났다.
도미닉 경이 보통 새벽에 일어나 수련을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이질적인 일이었다.
"9시 반이라... 아침은 못 먹겠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옆을 돌아보았다.
도미닉 경의 옆에는 히메가 곤히 자고 있었는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이 눈부셔서 그런지, 도미닉 경은 히메가 반짝반짝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나머지, 도미닉 경은 손바닥으로 히메의 앞머리를 넘기고는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히메의 이마에 쪽. 하고 자기도 모르게 키스해주고 말았다.
도미닉 경은 히메가 자는 김에 조금 더 자게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침을 놓친 김에 적당히 먹을 만한 것들을 사와야겠다는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도미닉 경은 바로 방에서 나와 1층 로비로 내려왔다.
"아, 손님. 좋은 아침입니다."
"...?"
도미닉 경은 1층에 내려오자마자 바닥을 쓸고 있는 바텐더를 보았다.
바텐더가 닦고 있는 바닥에는 붉은 액체가 스며들어 있었는데, 그 주변에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이 몇 개 널려 있었다.
"무슨 일이오?"
"별 건 아닙니다. 와인을 옮기다가 그만."
도미닉 경은 바텐더의 말에 그럴 듯하다며 납득했다.
그러나 이내 도미닉 경은 더 큰 의문과 마주하고 말았다.
어제는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1층 로비는 일종의 술집이었다.
테이블과 의자로 가득해, 술잔과 안주에 기대어 몇 시간이고 잡담과 욕설을 나눌 수 있는 공간.
도미닉 경은 시야가 굉장히 나쁜 편이었기에 테이블이 있는 공간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침이 되어 빛이 들어오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이렇게 더럽소?"
테이블이 있는 곳에는, 끈적끈적한 점액과 음식물 찌꺼기와 흘린 술 얼룩으로 가득했다.
"뭐, 평소에는 이렇지 않습니다만, 가끔 손님들이 올 때가 있어서 말이죠."
"손님?"
"혹시 어젯밤에 항구에 나가셨습니까?"
"아니, 아니오."
"그럼 해안 가는요?"
"가지 않았소."
"그렇다면 모를 수도 있겠군요. 어젯밤, 배 한 척이 야간 보급을 마치고 가 버렸지요."
"보급? 야밤에?"
"알다시피 여긴 관광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니까요."
바텐더는 당연하다는 듯 도미닉 경에게 대답했다.
"가끔 유람선들이 식재료 보급을 위해 들리기도 한답니다. 덕분에 저 같은 사람도 돈을 벌고 사는 셈이죠."
도미닉 경은 그제야 이 상황을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이 얼룩들과 음식물 찌꺼기들은 밤새 보급을 하다 지친 선원들이 먹고 마신 흔적이리라.
"특이하구려."
"뭐, 이게 저희가 살아가는 방식이니까요."
그렇게 말한 바텐더는 다시금 유리 조각들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참, 그러고 보니 손님. 아침을 안 드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소. 어떻게 아셨소?"
"안 그래도 요즘 손님이 없어 모두 기억하고 있지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조금 있다가 아침 식사를 올려 드릴까요?"
"그래 주시겠소?"
"물론입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하시는 분이 한 분 더 계시니까요."
"우리 말고도 손님이 있소?"
"물론입니다. 사실 손님이라고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군요. 벌써 여기서 삼 년 반을 살고 계시니까요."
도미닉 경은 그 정도면 거의 자기 집이나 다름 없지 않냐고 말하고 싶었으나, 이내 입을 다물었다.
다른 손님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정도로 도미닉 경은 경우가 없지 않았으니까.
대신, 도미닉 경은 바텐더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침을 놓쳤음에도 이렇게 호의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하오."
"별말씀을. 이제 올라가 보시죠.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식사를 올리겠습니다."
"고맙소."
그 말을 끝으로, 도미닉 경은 다시금 계단을 올라 301호실로 향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알지 못했다.
3층에 올라가 복도로 꺾기 전,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누군가가 도미닉 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
도미닉 경이 올라가고 나서 얼마 뒤.
"으음... 엄마... 5분만 더..."
"일어나시오, 히메. 아침이 준비 되었소."
히메는 잠꼬대를 하던 도중, 도미닉 경의 목소리를 감지하고 벌떡 일어났다.
"도, 도,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이 어째서 제 방에... 아."
히메는 도미닉 경이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해 놀라 당황했으나, 이내 자신들이 신혼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잘 잤소?"
"네."
히메는 조금 전, 자기 잠꼬대를 도미닉 경이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며 매우 부끄러워했다.
엉망인 여자로 보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런 히메의 모습마저 사랑한다는 듯, 활짝 웃으며 히메의 앞에 아침 식사를 건넸다.
"지금 몇 시죠?"
"10시요. 아침을 먹기엔 조금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침 식사를 주시더군."
"누가요?"
"주인장께서."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베이컨을 잘라 한 입 베어 물었다.
히메는 그런 도미닉 경의 모습을 보며 문득 멋있다고 생각했다.
눈에 콩깍지가 낀 것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히메의 눈엔 도미닉 경의 식사하는 장면 하나하나까지 멋있어 보였다.
"...왜 그리 뚫어져라 보시오?"
"아, 아니예요. 참 잘생겼다고 생각하던 참이예요."
"...고맙소. 이거참 부끄럽군."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에 멋쩍은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는 히메야말로 예쁘오."
"...이런 기분이었나 보네요."
히메는 도미닉 경이 예쁘다고 말해주자,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둘은 이 상황이 행복한지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침부터 소소한 행복이었다.
"그나저나, 저도 참 피곤했나 보네요."
"음?"
"평소라면 새벽에 일어나니까요. 가차랜드 특성상 시차는 없으니 시차 적응도 아닐 텐데..."
"아, 확실히 그렇소."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둘 다 성실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오늘만큼은 너무 피곤해 늦잠을 자고 말았던 것이다.
"뭐, 어제 잘 곳을 찾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그런 모양이겠죠."
"음."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피곤함을 설명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미 늦었으니 점심이 지나고 나서 섬을 돌아보기로 해요."
"어째서요? 바로 나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보아하니 점심시간에는 브레이크 타임인 곳이 많더라구요. 지금 나가도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 제대로 놀지도 못할 거예요. 그럴 바엔 여기서 조금 더 쉬었다가 나가는 것이 좋을 거예요."
"과연."
도미닉 경은 히메의 현명함에 감탄했다.
"난 브레이크 타임에 대해선 생각하지도 못했소."
"...놀리지 말아요."
"아니, 정말이오."
히메는 도미닉 경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휴대폰으로 정보를 찾아보는 도미닉 경이었으니, 이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정말로 자신은 그런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히메를 칭찬했다.
"헤헤..."
그제야 히메는 마음이 풀린 듯 부드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오후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도미닉 경이 히메에게 물었다.
"난 일단 여기, 카드시노(Cardsino)에 가보고 싶소. 돈 카르텔로가 여행을 가면 꼭 한 번 들려보라더군."
"전 전통 역사박물관에 가보고 싶어요. 팽이 돌리기라는 건 도대체 뭔지 궁금했거든요."
도미닉 경과 히메는 오후에 여행지를 들리기 위해 잠깐 정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만이 가득했다.
....
???의 장소.
"...이제 머지않았어..."
심하게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를 가진 창백한 여성이 두꺼운 커튼을 조금 걷으며 중얼거렸다.
"그들이 올 거야... 마침내 그들이 오고 말 거야..."
그녀는 가래가 끓는 목소리로 수상한 말들을 내뱉었다.
슬쩍 열린 커튼의 틈새 사이로 들어온 빛이 방 안을 잠시 비췄다.
그곳에는, 수상할 정도로 배율이 높은 망원경과 마치 정신병 테스트를 위해 준비된 그림처럼 보이는 무시무시한 그림들,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의 가죽 같은 것이 있었다.
"그들이 오면... 모든 게 끝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키드키득 웃었다.
창백한 그녀의 얼굴과 대비되는 퀭한 눈은, 생기가 없이 번들거렸다.
"하지만... 문제가 있지..."
여성은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고는, 다시 한번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외눈박이 기사와 여우 귀의 쿠노이치가 여관을 나와 어디론가 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왜 하필 지금이지? 왜 하필 지금 도착해서..."
여성은 이를 악물었다.
까드득. 하는 소리가 방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얼마나 세게 주먹을 쥐었는지, 오랫동안 다듬어지지 않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
여성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다시 정신을 차린 듯, 붕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처가 가득한 손에 붕대를 칭칭 감았다.
"그래... 아직 방해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여성은 아직도 살짝 열려 있는, 이 어두운 공간에서 유일한 빛을 발하는 커튼 틈 사이를 바라보았다.
"방해된다면... 그래. 방해된다면..."
여성은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들썩였다.
그 뒤에 이어질 말을 굳이 내뱉지는 않은 채, 그녀는 천천히 커튼으로 다가 갔다.
그리고 도미닉 경과 히메를 다시 한번 노려본 뒤, 커튼의 틈새를 완전히 닫아버렸다.
이제 방 안에는, 다시 어둠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