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508화 (475/528)

〈 508화 〉 [외전 7화]극장판 : 폭풍을 부르는 클래시카 섬의 비밀

* * *

도미닉 경과 히메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서로 손을 마주 잡았다.

이제 둘은 부부였으니, 이러한 일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물론 대개 도미닉 경이 어디선가 들은 말로 히메에게 부탁하면, 히메가 부끄러워하면서도 들어 주는 형태였다.

도미닉 경은 히메의 손을 그냥 잡으려고 했으나, 히메는 도미닉 경의 방식 대신 그녀의 방식으로 손을 잡았다.

바로, 도미닉 경과 깍지를 끼는 것이었다.

"...손이 참 크네요."

"그렇소?"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손이 크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손이 크다고 한들 보급형 무기를 쥐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을 정도의 크기였으니까.

그러나 히메의 처지에서는 조금 달랐다.

히메는 도미닉 경에 비하면 조금 아담한 편이었고, 손도 그만큼 아담하고 섬세했다.

두 사람의 손 크기는 제법 차이가 커서, 히메의 손가락 사이가 조금 땡길 정도였다.

그러나 히메는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도미닉 경과 이렇게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너무 기뻐, 다른 모든 것은 신경도 쓰지 못할 정도였다.

도미닉 경과 히메는 그렇게 손을 마주 잡고는 호텔에 도착했다.

"음?"

도미닉 경과 히메는 호텔 안으로 들어가 체크 인을 할 생각이었지만, 어째서인지 호텔 입구는 폴리스 라인으로 막혀 있었다.

"...사건인가?"

도미닉 경은 봉쇄된 호텔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히메를 향해 사과를 건넸다.

"미안하오. 어째서인지 또 사고가 터진 모양이오."

"네? 아, 아니예요. 이건 그냥 사고니까요. 설마 도미닉 경 때문은 아닐 거잖아요?"

"어째서인지 내가 가는 곳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아서 말이오."

도미닉 경이 조금 시무룩한 상태로 그렇게 말했다.

그건 그렇긴 하지만...

히메는 도미닉 경이 사건과 사고를 몰고 다닌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상황과 도미닉 경 사이의 연관 관계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까지는.

"음? 거기 도미닉 경 아니야?"

도미닉 경은 갑자기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도미닉 경은 그곳을 보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선배?"

거기에는 도미닉 경의 직장 선배, 왈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야, 여기서 도미닉 경을 다 보네."

왈록은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채 복근을 자랑하듯 드러내며 알록달록한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선배가 여기엔 무슨 일로...?"

"휴가지."

왈록은 도미닉 경의 말에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클래시카 섬은 휴양지로 유명하니까 말이야."

"음."

"그러는 도미닉 경은 무슨 일로... 아. 그렇지. 결혼했었지. 신혼여행?"

왈록은 도미닉 경을 보며 질문하다가, 이내 스스로 그 질문에 답했다.

"그나저나 저건 무슨 일입니까?"

도미닉 경이 왈록에게 지금 상황에 대해 물었다.

"글쎄."

왈록은 조심스럽게 칵테일에 꽂은 빨대를 쪽쪽 빨았다.

알록달록한 액체가 왈록의 입안으로 사라져갔다.

"아무래도 봉인이 풀리고 있는 모양이야."

"봉인이 말입니까?"

"응. 저번에 오오뉴도의 봉인 같은 거 말이야. 가차랜드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존재들."

도미닉 경은 왈록의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선배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도미닉 경이 놀란 것은 봉인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왈록이 봉인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그 존재가 가차랜드의 멸망을 가지고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야, 난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직원이니까."

왈록은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다행히 나처럼 휴가를 나온 코더들이 몇 명 있어. 그들이 봉인을 손보는 중이니까, 걱정 말고­"

"보, 봉인이 풀렸다!"

"버그 터졌다!"

"아, 젠장."

왈록은 봉인이 풀렸다는 소리에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까지 도미닉 경에게 호언장담한 것이 있었기에 더더욱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일단 봉인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으니, 다른 호텔을 찾아보는 걸 추천해."

그렇게 말한 왈록은 도미닉 경에게 호텔 환불 절차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전했다.

"요즘 성수기라 호텔에 방이 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눈을 조금 낮추면 충분한 곳이 많으니까 그런 곳을 노려 봐."

"아 참, 요즘 수상한 존재들이 보인다고 해. 뭐랄까, 가차랜드를 포함한 행성 9개가 태양과 일렬로 정렬되어서라던데, 자세한 건 잘 모르겠어."

"도미닉 경이라면 모르겠지만, 그... 혹시 모르니까."

왈록은 그렇게 말하며 남은 칵테일을 모두 마셨다.

"그럼, 나도 이만 가 볼게. 나는 이 옆 호텔에 묵고 있거든? 그러니까 뭔가 곤란하면 찾아 와. 찾아올 때 맥주 한 박스 사오는 것 잊지 말고."

그렇게 왈록은 옆 호텔로 사라지고 말았다.

도미닉 경은 지금 상황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다가, 히메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겠소?"

"어쩔 수 없죠."

히메는 뭔가 일이 안 풀린다는 듯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도미닉 경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주며 안심시켰다.

"다른 숙소를 찾아봐요."

"음. 그럽시다."

그렇게 도미닉 경과 히메는 다른 숙소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

그리고 그런 도미닉 경과 히메를 뒤쫓는 존재는 말없이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

"설마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은."

도미닉 경은 클래시카 섬에서 한참 떨어진 해변가까지 도착했다.

작은 마을이 있는 해변이었는데, 이곳의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하는 것 같았다.

"으음... 이런 곳에 괜찮은 숙소가 있겠소?"

도미닉 경은 조금 회의적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찬 밥 더운밥 따질 때는 아니니까요."

반면, 히메는 이곳이 제법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해변과도 가까웠고, 무엇보다도 아기자기한 느낌이 히메의 마음에 꼭 든 모양이었다.

"당신이 마음에 든다면 괜찮지만..."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검색한 숙박 업소로 가보도록 합시다."

도미닉 경과 히메는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이 작아서 다행일까?

도미닉 경 부부는 순식간에 숙박 업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곳은 굉장히 중세 풍의 분위기가 강한 여관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조금 음침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여긴가 보오."

"그러네요."

도미닉 경은 제법 큰 여관의 모습에 일단 걱정을 내려 두었다.

이 정도의 크기라면, 내부의 시설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일단 들어가 봐요. 방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구요."

"그럽시다. 그나저나 요즘 세상에 전화기도 없는 곳이라니..."

도미닉 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여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말대로, 이 여관은 이상하게도 전화가 없었다.

인터넷에 올려진 소개문에는 컨셉에 충실하기 위해서 라고 하던데, 아무래도 중세 컨셉인 만큼 그런 세세한 디테일을 챙기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도미닉 경 부부는 이곳에 방이 남아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어서 오세요."

여관 안으로 들어가자, 카운터에서 술잔을 닦던 배불뚝이 바텐더가 도미닉 경 부부를 반겼다.

도미닉 경 부부는 그 바텐더를 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정말로 중세 풍의 옷을 입고, 중세 풍의 오크 통 사이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이것이 컨셉이지 헷갈릴 정도였으니까.

도미닉 경은 그 디테일에 감탄하면서 바텐더에게 다가 갔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며칠 묵고 싶소만."

"아, 잘 오셨습니다. 마침 빈방이 많지요. 방은 몇 개나 필요하십니까?"

"몇 개? 그 정도는 필요 없소. 하나만 있으면 되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여기 열쇠를 받으시지요."

바텐더 이자 이 여관의 주인장은 도미닉 경 부부에게 열쇠 하나를 건넸다.

그 열쇠는 통짜 강철로 된 열쇠였는데, 정말 중세에서 쓸 법한 열쇠였다.

"...대단하군."

도미닉 경은 이런 세세한 디테일에 감탄하면서 바텐더에게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별말씀을."

바텐더도 도미닉 경에게 슬쩍 고개를 숙였다.

"참, 아침 식사는 7시부터 9시 사이이니, 이왕이면 시간 맞춰서 내려오시면 됩니다. 내일 조식은 에그 베네딕트와 베이컨, 토스트된 빵과 베이크드 빈즈입니다."

"음. 꽤 마음에 드는구려."

"그리고 체크 아웃 말입니다만, 원래 규정으로는 11시까지 나가셔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손님도 없고 하니, 나가시는 전 날 제게 이야기해주시고, 이튿날 13시까지 비워주시면 됩니다."

"알겠소."

"그럼, 편히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바텐더는 다시금 술잔을 닦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그 술잔이 한 번 쓰인 것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술잔 안에는 술 찌꺼기와 맥주 거품들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낮에 마을 사람들이 술을 마시러 온 것일지도 모르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히메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

"301호실... 301호실... 여기로군."

도미닉 경은 자신들에게 배정된 방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아니, 깨끗한 정도가 아니었다.

중세 시대에 현대적인 정도의 위생 관념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이랬을까 싶을 정도로 컨셉과 깨끗함이 공존하는 방이었다.

"마음에 드는구려."

"그러게요."

"일단 짐부터 풉시다."

도미닉 경과 히메는 오늘 갑작스러운 일로 호텔 예약이 취소되는 불운을 겪었지만, 대신 이런 좋은 곳을 알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침대는 2인용 하나였는데, 아무래도 두 사람은 같이 자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부부였기에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이제 신혼인 두 사람에게 있어서 같이 잔다는 건 조금 부끄러울지도 모르는 일이다.

적당히 짐을 풀어 놓은 도미닉 경화 히메는, 어색하게 침대에 나란히 앉았다.

물론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샤워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그, 일단 오늘은 피곤할 테니 이만 눕는 것이 어떻겠소?"

"그, 그러네요. 일단 오늘은 자죠!"

도미닉 경과 히메는 부끄러워하며 침대에 누웠다.

밤은 늦었고, 그들의 부끄러움은 해소될 줄을 몰랐으니까.

그렇게 두 사람이 뜬눈으로 밤을 지샐 무렵...

철퍽.

바닷가에서, 무언가 수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철퍽.

아니, 하나가 아니었다.

그건 소리가 아니라, 소리가었다.

철퍽.

그것들은 이내 해변가에 올라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마치 육상 생물들처럼 곧게 자세를 취한 뒤, 해안 가에 있는 어촌 마을을 향해 절뚝거리며 다가 갔다.

밤은 길다.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생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밤은 짧다.

이들이 마을에서 무언가하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철퍽.

그러나 그것들은 여전히 이상한 소리를 내며 걸었다.

그 하나만큼은 진실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