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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507화 (474/528)

〈 507화 〉 [외전 6화]극장판 : 폭풍을 부르는 클래시카 섬의 비밀

* * *

결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웨딩 드레스? 주례? 축의금과 뷔페?

이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바로 신혼여행이라고.

[오늘도 저희 가차랜드 항공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비행기, 곧 클래시카 섬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아, 도착한 것 같소."

"그러네요."

도미닉 경은 비행기 내부 방송을 들으며 기지개를 켰다.

무려 23시간에 걸친 장거리 비행이었던지라, 아무리 체력이 좋은 도미닉 경이라도 몸이 결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퍼스트 클래스라 생각보다는 덜 결린다는 점일까.

이윽고 비행기는 클래시카 섬의 공항에 도착했다.

도미닉 경과 히메는 창문 밖을 바라보며 클래시카 섬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클래시카 섬은 굉장히 심플한 멋이 있는 곳이었다.

바닥에 깔린 타일들은 검은색과 흰색으로 큼직큼직하게 배치되어 있어 마치 거대한 체스판처럼 보였고, 열대 지역에서 자주 보이는 나무들이 가로수로 심어져 있었다.

그 가로수에는 망고, 바나나, 사과등이 달려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나무에 열린 열매는 5개를 넘지 않았다.

직원들은 지나가면서 나무 하나하나를 확인했는데, 가끔가운데로 달려가 커다란 종을 울리기도 했다.

"저게 바로 클래시카 섬의 전통 놀이, 할리갈리네요."

히메는 팜플렛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 그 놀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저런 거 잘못할 것 같소."

도미닉 경은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도미닉 경은 탱커였고, 움직임이 다소 느린 편이었기에 순발력을 요구하는 상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겠네요. 아. 이거 봐요, 여보. 할리갈리 외에도 다양한 전통 놀이들이 있어요."

히메는 도미닉 경에게 팜플렛을 보여 주며 몇 가지를 더 가리켰다.

그것들은 모두 약간의 운과 실력만 있으면 되는 게임들이었다.

어쩌면, 이곳은 스탯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곳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졌다.

애초에 맹렬하게 돈을 벌어가는 타이쿤 시티와 가챠 시스템으로 돈을 버는 가차랜드와 달리, 클래시카 섬은 그다지 돈을 벌 방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도미닉 경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히메는 도미닉 경에게 클래시카 섬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여긴 관광 사업으로 유명해요. 우리처럼 신혼여행지로도 좋고, 그냥 놀러 오기도 좋은 곳이죠. 괜히 '여행지라면 클래시카 섬!'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라니까요."

히메는 비행기가 완전히 통로와 연결될 동안 말을 이어 나갔다.

"무엇보다도 클래시카 섬에는 장난감 공장이 있어서, 전 세계 사람들이 보드게임을 사러 몰려오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과연."

도미닉 경과 히메가 그렇게 클래시카 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비행기는 완전히 공항 통로와 연결되었다.

[승객 여러분들께 알려드립니다. 저희 비행기, 클래시카 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실 때 두고 가시는 물건 없는지 확인하시고­]

"음. 이제 일어나면 될 것 같소."

도미닉 경은 사람들이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가면 밥부터 먹어요. 시간이 어정쩡해서 배가 고프네요."

히메도 역시 도미닉 경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두 사람은 클래시카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제법 먹을 만 하네요."

"그러게 말이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신기한 맛이오."

도미닉 경과 히메는 공항 로비 내부에 있는 푸드 코트에서 간단한 식사를 시작했다.

테트리미노라는 식당이었는데, 재밌게도 나오는 음식들은 사각형 블록 네 개로 되어 있어 그 맛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도미닉 경과 히메는 순간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행지에서 먹는 음식이니 한 번 시도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한 조각을 찍어 입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꽤 재미있는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도미닉 경은 이 맛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웠지만, 어째서인지 8비트스러운 맛이라고 생각했다.

"맛있지?"

도미닉 경과 히메가 예상외의 맛에 놀라고 있자, 어째서인지 수염을 잔뜩 기른 노인이 도미닉 경 부부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는 굉장히 마을 촌장의 스테레오 타입 같은 사람이었다.

"공항 내부의 테트리미노 스테이크는 꽤 일품이란 말이지."

"...이거 스테이크였어요?"

히메는 이것이 스테이크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아무리 봐도 스테이크는 아닌 것 같았으니까.

차라리 이건, 케이크에 더 가까울 것 같았다.

"뭐, 처음 먹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갑자기 테트로미노 스테이크를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건 그냥 먹는 것보다, 이렇게 먹는 게 더 좋을 거야."

그는 자기 스테이크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무려 4단에 걸쳐서 쌓은 스테이크는 어느 순간 한 줄을 남기고 있었는데, 남자는 가차 없이 긴 막대기 모양의 테트리미노를 그 빈 자리에 채워 넣었다.

그러자 테트리미노 스테이크는 사라지고, 깜빡거리는 이펙트만 남았다.

"이게 정말 테트리미노 스테이크의 진수란 말이지."

그리고 남자는 그 깜빡이는 이펙트를 포크로 찍어 입안에 집어넣었다.

와구와구 씹는 입에서, 육즙이 팡팡 터지는 소리가 났다.

8비트로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먹는 게 가장 좋은 걸야. 어디 가서 이런 팁, 듣기 어렵다고."

그렇게 말한 남자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잘 먹었다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팁 몇 푼을 책상에 올린 채로.

"...여기 사람들은 가차랜드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친절한 것 같구려."

"그러게요."

도미닉 경과 히메는 폭풍처럼 왔다가 사라진 남자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남자가 알려 준 방식대로 스테이크를 차곡차곡 쌓아 먹었다.

"음?"

그러자, 도미닉 경은 스테이크의 맛이 조금 변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역시나 아직도 맛을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16비트의 맛이었다.

"...확실히 이게 더 맛이 좋군."

"그러게 말이에요."

히메도 이 맛의 변화에 놀랐는지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은 이 재미있는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테트리미노 스테이크를 하나 더 시켰다.

그러자, 반대쪽 옆자리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잠시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도미닉 경에게 말을 걸었다.

"그, 있잖습니까. 보아하니 꽤 잘 쌓아 드시던데."

"저희랑 먹는 걸로 내기를 하나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내기 말이오?"

도미니 경은 갑자기 내기를 걸어오는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테트리미노 스테이크 많이 먹기 내기 말입니다."

"흠."

도미닉 경은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기라니,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두 남자는 웃으며 도미닉 경을 안심시켰다.

"그, 내기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달라는 정도지요."

"대신, 저희를 이기면 다른 맛집들도 알려드리죠."

"좋소."

도미닉 경은 그 정도라면야.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겠네요."

히메도 이 내기를 보며 재밌어했다.

도미닉 경을 말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가차랜드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히메도 그런 가차랜드의 일원이었고.

그렇게 도미닉 경과 두 사람 사이의 먹기 대결이 시작되었다.

도미닉 경은 테트리미노 스테이크가 나오자마자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이내 크게 당황하고 말았는데, 갑자기 서비스로 나온 슬라임 주스 때문이었다.

"...이건 뭐요?"

도미닉 경이 슬라임 주스를 보며 말했다.

"저쪽 분께서 콤보를 달성하셔서 말입니다."

"콤보?"

"이렇게 쌓아서 한 번에 터뜨리면, 콤보 점수를 얻습니다. 그 점수로 상대편에게 사이드 메뉴를 제공해 많이 먹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지요."

"그런..."

도미닉 경은 갑자기 추가된 룰에 당황했지만, 차근차근 슬라임 주스를 마시기 시작했다.

또한 차곡차곡 스테이크를 쌓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최종 승자는 도미닉 경이었다.

도미닉 경이 두 줄 정도를 더 먹은 것이다.

"대단하군요. 그렇게나 슬라임 주스를 마시고도 이길 줄이야."

두 남자는 놀랍다는 듯, 그리고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미닉 경이 마신 슬라임 주스의 양은 약 12리터.

일반인이라면 도저히 견디기 힘든 양을 마시고도 그 많은 스테이크를 먹은 것이었다.

"당신은 참 많이 먹는군요. 하지만 이 정착지... 아니, 맛집들 만큼은 힘들 것입니다. 약속대로 맛집들을 알려드리죠. 지도에 표시해 두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며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졌음에도 두 사람의 표정은 환하기 그지없었는데, 도미닉 경은 그제야 두 사람이 도미닉 경을 봐주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두 사람은 일부러 템포를 조절하며 도미닉 경이 이기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 것이었다.

"...어째서 그런 짓을...?"

"아무래도 클래식한 게임을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은 드무니까요."

히메는 두 사람의 의중을 알아차린 듯,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말했다.

"도미닉 경이 이 게임을 즐기길 바라는, 고인물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을 듣고 다시금 계산을 마치고 나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그들은 은근슬쩍 기둥 뒤에 숨어 도미닉 경을 염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거겠지.

"...가끔 머리를 식힐 때 연습을 좀 해 봐야겠소. 아, 다 드셨소?"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히메에게 물었다.

"이만 호텔로 가는 것은 어떻소? 체크 인 시간도 다 된 것 같소만."

"아, 그러네요. 처음부터 너무 즐거운 나머지, 시간도 잊고 있었어요."

도미닉 경과 히메는 테이블에 팁을 놓은 뒤, 계산대로 향했다.

그리고 계산을 마친 뒤 공항 입구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따스한 햇볕, 시원한 바람.

클래시카 섬은, 매우 평화로웠다.

"흐흐흐..."

...그러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한 줄기, 클래시카 섬을 감돌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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