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6화 〉 [외전 5화]엔딩 크레딧
* * *
[귀하에게 알려드립니다. 귀하는 올해 기사 시험을 볼 수 있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어라?"
수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도미닉 경의 종자 앨리스는 행정부에서 보낸 안내문 하나를 받았다.
안내문의 내용은 앨리스에게 기사 시험을 받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종종걸음으로 거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앨리스의 아버지가 앨리스를 위해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 있었는데, 수능이 끝났다는 걸 감안 해도 굉장히 호화롭고 양이 많은 편이었다.
"앨리스 왔나?"
"네!"
"수능은 잘 칬나?"
"네!"
"어데 오면서 다친 덴 읎고?"
"네!"
앨리스의 아버지는 앨리스의 기척을 느끼자마자 그녀가 앨리스임을 알아보았다.
사실, 이 집안에서 3미터라는 어정쩡한 키를 가진 사람은 앨리스 뿐이긴 했으니까.
앨리스는 조심스럽게 식탁에 앉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엄마는요?"
"느 수능 친다꼬 고생했다카면서 술이라도 한잔 하자 카재. 캐서 와인 사 오라고 캤다."
앨리스의 아버지가 식탁에 방금 구운 칠면조를 올렸다.
노릇노릇한 고기의 냄새가 코를 찌르자, 앨리스는 흘러내리는 침을 막을 수 없었다.
연신 소매로 흐르는 침을 닦던 앨리스는, 문득 입구에 있었던 안내문을 기억하고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근데 이런 안내문이 왔어요."
"무슨 소리고?"
"기사 시험을 칠 수 있다나 봐요."
"전문대?"
"네?"
앨리스의 말을 듣던 앨리스의 아버지는 앨리스에게 다가와 안내문을 보았다.
그리고 안내문에 박힌 마크를 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낸 또 뭐라고. 요거 기사 자격증 시험이네."
"기사 자격증 시험이요?"
"글치."
앨리스의 아버지는 앨리스에게 안내문에 적힌 내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너도 이제 성인이니까네, 탈 것 면허부터 기사 자격증, 제과제빵 자격증 같은걸 딸 수 있게 됐다 아이가. 일단 넌 종자로서 기사 협회에 등록이 되어 있으니까네 이래 안내문이 온 거제."
"기사 협회요? 스승님은 가입하지 않은 것 같은데...?"
"기사 협회라 캐도, 그냥 가차랜드에 기사가 얼맨치 있는지 조사하는 기관에 가깝다 안카나. 따로 가입안 해도 기사 협회에는 등록이 될 수밖에 읎다."
"음..."
"캐도, 기사 협회에서 주관하는 기사 자격증은 진짜니까네, 함 치고 온나."
"아빠도 이거 치셨어요?"
"글체. 난 전기 기사, 통신 기사, 그리고 운전 기사 자격증 땄다."
앨리스의 아버지는 손에서 와이파이와 전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운전 기사는 탈 것 이랑은 좀 달라요?"
"다르지. 버스, 택시, 지하철 같은 걸 다룰 수 있어서, 공기업이나 그런데 지원 넣기 수월타."
앨리스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아버지의 말대로 기사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따 둬서 나쁠 것은 없었으니까.
"부녀간에 무슨 대화를 그렇게 즐겁게 나누고 있어요?"
"아, 여보야. 딸내미가 기사 시험 안내문 와서 내 좀 알려주고 있었다 안카나."
"그래요?"
앨리스는 여전히 알콩달콩 신혼부부 같은 부모님을 보며 피식 웃었다.
늘 보던 모습이지만, 언제 보더라도 오글거렸기 때문이었다.
"아빠! 이제 엄마도 왔으니까 이거 먹어도 돼요?"
"오케이! 여보야도 여 앉으입시다. 오늘은 큰맘 묵고 여보야 좋아하는 아우둠라 통구이도 했제."
"정말요? 신난다!"
앨리스네 가족의 모습은 정말 제각각이고, 그 덩치도 제각각이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가진 사랑은 무한해 그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여담으로, 앨리스는 기사 시험에 합격해 어엿한 정식 기사가 될 수 있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합격한 시험은 아버지와 같은 전기 기사 자격증이었다.
...
블랙 그룹 산하 비밀 연구소.
"신기하군요."
"그렇지? 아무래도 신소재를 발견한 것 같아."
도미닉 경의 여동생 레미는 새롭게 생겨난 신소재를 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 재밌다고."
그에 반해, 팬텀 박사는 레미와 달리 그다지 신소재에 흥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 이 두 박사는 이렇게 극명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건 바로, 이 신소재의 성질 때문이었다.
"이거라면, 제로의 인조 피부를 더 자연스럽게 바꿀 수 있어!"
"그러니까, 금속도 아닌 실리콘 같은 거에 왜 그리 좋아하냐니까?"
그렇다.
이 신소재는, 제로의 인조 피부를 대체할 새로운 소재였다.
인간의 피부에 한없이 가까우면서도, 내구성과 신축성, 그리고 복원성이 뛰어나 한 번 성형을 끝내면 아무리 험하게 굴러도 문제가 생길 일이 없었다.
"그런 것보다는, 이게 더 멋지지."
그렇게 말한 팬텀 박사 역시 신소재를 들고 다가왔다.
"현재 제로의 몸으로 쓰고 있는 미스라이트 IV 합금보다 약 7.3% 뛰어난 내구도에, 12.32% 가벼운 소재야. 이 소재라면, 제로는 웬만한 딜러만큼이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걸?"
팬텀 박사가 보여 준 것은 그야말로 가차랜드 공학의 정수로, 지금까지 나온 모든 금속 중에서 왕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소재였다.
"이게 최고야!"
"아니, 이게 최고야!"
밴시 박사... 아니, 레미와 팬텀 박사는 서로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평행세계의 자신들이었지만, 각자가 흥미를 가진 분야가 달랐기에 생긴 일이었다.
"그럼 둘 다 쓰자!"
"뭐? 누가 최고인지 투닥거리는 와중에 갑자기 둘 다 쓰자는 제안 한다고? 당장 하자!"
그리고 둘은 역시나 평행세계의 자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미치광이 과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만일 페럴란트 당시의 레미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렇게 말했으리라.
'나뭇가지로 시간을 파악하거나, 가뭄을 대비해 물을 길어올리는 장치를 생각하는 건 알았지만 말이야. 페럴란트에서는 답답해서 어떻게 살았대?'
물론, 여기에는 그렇게 말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
기껏해야 그들의 언니 오빠인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있었지만, 이 장소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레미와 팬텀 박사는 말려주는 사람이 없어 폭주를 계속할 수 있었다.
"됐다! 마침내 완성했어! 코드 제로 백 마크 42야!"
"음! 이건 아주 마음에 드는걸?"
레미와 팬텀 박사는 제로의 모든 것을 갈아 끼웠다.
제로의 몸을 구성하던 모든 프레임을 신소재로 갈아 끼우고, 외부에 인간과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 인조 피부를 발랐다.
놀랍게도 레미는 조형에 소질이 있었기에 상당한 미녀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소재가 조금 남는걸."
그렇게 말한 레미는, 특정 부위에 인조 피부를 한 겹 더 발랐다.
그러자 나올데는 나오고, 들어갈 데는 들어간 놀라운 외관이 완성되었다.
"응! 완벽해!"
"그러니까!"
레미와 팬텀 박사는 손을 들고 하이 파이브를 날렸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손뼉이 마주치는 그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도착했다.
[축하드립니다! 개체명 코드 제로 백은 인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시스템이 판단, 지금부터 제로는 진정한 가차랜드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엥?"
"어?"
레미와 팬텀 박사는 얼빠진 소리를 내며 시스템 메시지를 다시 한번 읽었다.
그러고는, 자신들이 무엇을 성공 시켰는지를 깨달았다.
그들은, 과거 사람들이 그렇게나 원하던 무생물의 인간화를 성공 시켜 버린 것이었다.
정말로, 그들은 가차랜드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인들이었다.
...
???의 집.
[...의 스토리를 보셨습니다.]
[60가차석을 선물로 드립니다.]
"아, 다 봤다..."
흐아암.
어두컴컴한 방 안, 휴대폰을 들고 있던 사람이 기지개를 폈다.
그녀는 사자와도 같이 산발된 머리가 인상적인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 재밌게도 자기 자신을 꾸밀 생각이 전혀 없는지 목이 늘어난 티셔츠와 돌핀 팬츠만을 입은 채 방구석에 누워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었다.
"으, 휴대폰 연동이 된다고 해서 해봤는데, 뜻밖에 괜찮네. 옛날 사람들은 다 이렇게 했단 말이지?"
여성은 그렇게 말하며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지금 그녀가 휴대폰으로 하는 게임은 최근 그녀가 깊게 빠져 있는 게임으로, 한 달 동안 무려 몇백 만원을 지를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게임이었다.
물론, 초반에 버그로 인해 게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어 접을까도 생각했지만, 좋아하는 캐릭터를 인질로 잡혀 결국 이 게임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때 게임을 접었으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지금에 와선 그다지 의미 있는 상상은 아니었다.
이제 이 게임이 없는 삶은 상상도 하기 싫었으니까.
"운영만 제대로 하면 평생 뼈를 묻어야지."
여성은 그렇게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매력적인 외모로 그렇게 웃자, 어째서인지 이 후줄근한 모습에서 꽃이 퍼져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런 여성의 말을 운영진이 듣기라도 한 것일까?
[지휘관! 스즈키가 지휘관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어!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이야?]
[지금 바로 접속하셔서, 120 에너지와 600가차석을 받아가세요!]
"이거지!"
여성은 운영진이 참 운영 잘한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게임에 접속해 에너지와 가차석을 수령했다.
"마침 에너지도 채웠겠다, 이면 세계나 좀 돌아볼까?"
"얘! 저녁 먹어! 아직 자고 있니?"
"아, 네!"
여성은 이면 세계를 돌기 위해 게이트를 열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저녁 식사 시간인지라 그건 다음 기회로 넘겨야 했다.
물론, 그 기회는 조만간 찾아올 것이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녁 먹은 직후에 말이다.
여성이 저녁을 먹으러 방에서 나간 직후.
아직 게임이 켜져 있는 핸드폰에선, 이내 새로운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그 창은, 마치 여성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밥을 먹으러 간 상황.
그러나 메시지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이런 문구를 떠올렸다.
[가차랜드를 플레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즐거운 게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그 메시지를 띄운 게임 화면은,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곧 다시 돌아와 게임을 즐길 주인을 기다리면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