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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505화 (472/528)

〈 505화 〉 [외전 4화]엔딩 크레딧

* * *

"눈이 마주치면 승부!"

박춘배와 말레이는 여전히 도미닉 경의 라이벌을 자처하며 도미닉 경에게 달려들었다.

둘은 어느새 3성에 도달해 있었는데, 이는 다른 이들에 비하면 꽤 높은 성장세였다.

지금까지 1성에 머물러 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박춘배와 말레이가 도미닉 경을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물론 박춘배와 말레이는 서로가 시너지를 일으키기에 합연산으로는 6성, 곱연산으로는 9성이므로 5성인 도미닉 경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런 엉터리 논리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오늘도 박춘배와 말레이는 처참하게 지고 말았다.

"...오늘 몇 번째 패배지?"

"11723전 11723패. 신기록이야."

말레이는 어지러움을 느끼는 박춘배의 말에 목에 걸린 기네스 메달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둘은 어느새, 한 사람과 싸워 가장 많이 패배한 사람으로 가차랜드 기네스에 등재되어 있었다.

물론, 이는 도미닉 경도 마찬가지였다.

도미닉 경도 같은 사람에게서 연승한 기록으로 가차랜드 기네스에 등록되어 있었다.

도미닉 경은 기록을 세웠음에도 그다지 흥미가 없었던지 창고에 증서와 메달을 넣어 뒀지만, 두 사람은 도미닉 경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며 그 메달을 가슴에 달고 다녔다.

"이제 슬슬 이길 때도 되지 않았냐?"

두 사람은 패배의 쓰라림을 달래기 위해 바 올드 월드 블루스에 들러 술을 한 잔 마셨다.

박춘배가 버럭 화를 내며 술잔을 탁하고 탁자에 내리쳤다.

바텐더가 박춘배를 노려보며 주의를 주었지만, 박춘배는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며 씨익씨익 화를 냈다.

"어째서 우린 라이벌이면서 한 번을 이기질 못 하는 거지?"

"글쎄."

말레이는 3성과 5성의 차이가 아닐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박춘배의 성격상 그런 말은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말레이는 말을 아꼈다.

대신 박춘배에게 술을 잔뜩 먹이기 시작했다.

말레이는 박춘배의 절친한 친구였고, 오히려 술이 들어갈 수록 얌전해진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말레이의 처방은 아주 훌륭해서, 박춘배는 혀가 꼬인 발음을 내면서도 꽤 온순해져 있었다.

대신 박춘배는 술 취한 사람 특유의 헛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이 강한 이유는, 지킬 것이 있어서야."

"지킬 거라고?"

"가족 말이야."

"..."

말레이는 박춘배의 말에 순간 엄숙해졌다.

말레이도 그치만, 박춘배도 가족이 없었다.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말레이가 박춘배에게 투덜거렸다.

"가족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건가?"

"바로 그거야!"

박춘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족이 있으면 뒤가 든든해지고, 뒤가 든든하면 앞만 보고 가면 돼. 그 말인 즉, 가족이 있는 도미닉 경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야."

"...정리 좀 하고 말해."

박춘배는 너무나 취한 나머지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말레이는 그 말의 뜻을 알아차렸으나, 일부러 모르는 척 박춘배를 타박했다.

사실, 박춘배와 말레이는 그 누구보다 가족을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평생 홀로 살아왔던 둘이었기에, 가족이라는 존재는 마치 환상 속에나 존재하는 신수와도 같았다.

가족을 가지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 뿐 더러, 가족이 되더라도 좋은 사람이 될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말레이는 일부러 가족에 대한 언급을 피하려고 박춘배의 말을 듣지 못한 척했다.

그러나 박춘배는 달랐다.

이미 술에 과하게 취한 박춘배는, 어째서인지 이상한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결혼을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그건 바로 아내지. 아내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우리처럼 엉터리인 사람이 결혼하려면, 돈이 많아야 해. 그래야 돈이라도 보고 오겠지. 그럼 가족이 될 수 있어. 근데 우린 돈이 없잖아. 그럼 어째야겠어?"

"...?"

박춘배는 엉터리 논리를 내뱉은 다음,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야, 어디가?"

"가자! 털자!"

"뭘 털어?"

말레이는 급하게 바텐더에게 술 값을 계산한 뒤 박춘배의 뒤를 따랐다.

박춘배는 여전히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은행을 털자!"

"뭐?"

"은행을 털어서 돈을 버는 거야! 가장 쉽고 빠르게 돈을 버는 방법이지!"

그렇게 말한 박춘배는, 말레이가 채 말리기도 전에 가장 가까운 은행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번호표를 뽑고, 자기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뜻밖에 가차랜드의 사람들은, 준법 정신이 투철했다.

"야,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술이 깨고 다시 생각하자. 응?"

"134번 손님? 7번 창구로 가주세요."

드디어 자기 차례가 온 박춘배.

말레이는 최대한 박춘배를 말렸으나, 박춘배는 막무가내로 일어나 7번 창구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나요?"

그러고는,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내 건너편에 있는 은행원에게 겨눴다.

"대출 건이신가요? 그 권총이면 연 금리 13.2%로 최대 700만 크레딧까지 가능하십니다."

은행원은 이런 일이 제법 자주 있는 일이었던지, 자연스럽게 자기 할 일하기 시작했다.

가차랜드의 사람들은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 많아 그다지 특이할 것은 없었다.

그런 담담함이 박춘배의 자존심을 긁었는지, 박춘배는 더욱 총구를 은행원에게 가까이 가져다 대며 말했다.

"내놔."

"네?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나 결혼하고 싶어. 근데 돈이 없어. 그러니까, 돈을 내놔. 아니! 사랑을 내놔!"

박춘배는 술에 너무 취한 나머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여 나오는 말들을 그대로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내놔! 내놓으라고! 안 그러면 쏠 거야!"

그러나 그 말 대로 총이 발사되는 일은 없었다.

그 말을 끝으로, 박춘배는 갑자기 몸을 멈칫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술에 과하게 취한 탓에 의식이 끊겨 버린 것이었다.

박춘배는 천천히 몸이 기울어졌다.

그리고 풀썩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큰 대자로 누워 드르렁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은행원과 그 주변에 있던 동료들은, 그런 박춘배의 모습을 보며 입을 가리고 피식 웃었다.

"미, 미안 합니다. 제 친구인데, 술을 너무 마시는 바람에..."

"괜찮아요. 진짜 강도들에 비하면 이런 건 애교나 다름없으니까요."

은행원은 말레이의 말에 입을 가리고 웃었다.

말레이는 그런 은행원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박춘배를 말리느라 몰랐는데, 꽤 미인인 여성이었다.

"저기, 혹시 괜찮으시다면, 오늘 일의 사죄로 다음번에 제가 밥이라도 사드릴 수 있겠습니까?"

"네?"

말레이는 자기도 모르게 은행원에게 그렇게 말을 걸었다.

"지금 저에게 작업 거시는 거예요?"

은행원이 그렇게 말하며 웃자, 말레이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채 볼을 긁적였다.

"아니, 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좋아요."

"네?"

"좋다구요."

"...!"

은행원은 말레이의 제안을 수락했다.

사실, 은행원은 집에서 결혼에 대한 압박을 조금 심하게 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은행원은 지금까지는 딱히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자기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말레이를 본 순간, 은행원은 말레이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허당에, 지켜 주고 싶고, 의리도 있고.

이렇게 당당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도 있고.

게다가 나름 잘 생겼기 때문이었다.

"오늘 저녁은 어떨까요?"

"네?"

"오늘 저녁 약속이 비거든요. 오늘 저녁을 사주시는 건 어떨까, 하고."

"아... 네! 좋습니다!"

말레이는 은행원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말레이는 은행원과 식사하며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 뒤 말레이는 세상의 축복 속에서 결혼할 수 있었다.

"배신자."

박춘배는 말레이가 먼저 결혼해버린 것에 길길이 날뛰며 화를 냈으나, 이내 은행원의 친구를 소개받아 사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레이가 결혼한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박춘배의 결혼 소식이 일성 동맹 내에 전해졌다.

"야. 나중에 네가 딸이 태어나고, 내가 아들이 태어나면 그 둘을 약혼시키는 건 어때?"

"좋지. 일단 자식들의 의사가 중요하긴 하겠지만, 그 반대여도 약혼은 성사되는 거다?"

박춘배와 말레이는 그렇게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돈 지간이 되기로 약속했다.

그 덕분일까?

박춘배는 아내를 닮아 커서 미녀가 될 법한 딸을 낳았고, 말레이도 아내를 닮아 여자 꽤 울리고 다닐 것 같은 아들을 낳았다.

박춘배와 말레이는 둘이 성인이 되었을 때 과거에 했던 약혼 사실을 알려주었다.

다행스럽게도 둘 모두 서로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미 사귀고 있던 사이였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나중에 혹시라도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들어지면, 같이 양로원이나 들어가자."

"그래도 같이 들어가는 건 그렇지 않냐? 내가 너보다는 그래도 더 일하다가 갈 것 같은데."

"뭐?"

그렇게 박춘배와 말레이는 친구이자 사돈댁인 사이가 되어 더욱 돈독한 우정을 다지게 되었다.

"아버님! 뭐하고 계세요?"

"아! 담배 피고 있어서. 지금 간다!"

"네!"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가족과 함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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