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504화 (471/528)

〈 504화 〉 [외전 3화]엔딩 크레딧

* * *

타이쿤 시티에 존재하는 도미닉 경의 '농장'.

그 앞에는 어쩐지 말끔한 모습의 청년이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목에 맨 넥타이가 꽤 어색한지, 계속해서 넥타이를 매만지며 침을 꿀꺽 삼켰다.

"도미닉 경의 추천대로 일 거리를 찾아오긴 했는데..."

청년은 고개를 들어 마치 하늘 끝에 도전하는바벨탑처럼 보이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로 큰 직장일 줄은 몰랐는데."

청년은 이 엄청난 직장의 위용에 기가 죽어 버렸다.

이 청년의 이름은 지로스케 폰 아인스페너.

외관이 많이 바뀌어 잘 알아보지 못했지만, 도미닉 경에게 포션을 주었던 바로 그 양아치였다.

"이런 곳에서 일이라니, 절대 무리일 것 같은데."

남자는 일단 타이쿤 시티의 직장이라는 말에 타이쿤 시티 사람들처럼 정장을 입기는 했지만, 그는 일단 기본적으로 아르바이트에만 익숙한 사람이었다.

한때의 방황으로 인해 제대로 된 직장을 전전하지 못했던 탓에, 이런 근사한 직장을 보면 멀미가 나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추천해준 정성이 있으니..."

지로스케는 추천장을 꺼내 그 추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의지를 불태웠다.

"지로스케 씨?"

"아, 네."

"오늘 면접보러 오신 분 맞으시죠?"

"네."

지로스케가 그렇게 의지를 불태우는 사이, '농장'에서 사람이 나와 지로스케를 맞이했다.

"혹시 이력서 가지고 오셨나요?"

"네. 여기."

"그렇군요."

지로스케의 앞에 있는 훤칠한 남자는 머리를 단정히 뒤로 넘기고 양손에 여덟 개의 금반지를 낀 사람이었는데, 재미있게도 밀집 모자와 양복이라는 다소 이상한 패션 감각을 뽐내고 있었다.

"뭐, 이런 건 요식적인 행위고."

남자는 잠시 지로스케의 이력서를 보는 척하더니, 이내 그 이력서를 등 뒤로 던져 버렸다.

지로스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아르바이트만 가득한 이력서로 이런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했던 건 무리였던 걸까?

"'농장'의 일원이 되신 걸 환영합니다, 지로스케 씨."

남자는 환한 웃음과 함께 지로스케에게 악수를 청했다.

지로스케는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당황할 뿐, 그 손을 잡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지로스케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면접관은 멋쩍게 웃으며 지로스케를 안심시켰다.

"이미 회장님의 추천장 만으로 합격은 기정사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희 회사는 발전이 빨라 늘 직원이 부족한 상황이라서요."

남자의 말에 지로스케는 그제야 납득한 표정이 되었다.

"그래서, 이 손을 잡지 않으실 겁니까?"

남자는 지로스케에게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악수 말입니다."

"아, 네!"

지로스케는 그렇게 남자의 손을 잡았다.

이후 지로스케는 포션을 운반하는 부서에 들어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약초들을 포션 제조 부서로 넘기고, 포션을 받아와 다시금 창고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놀랍게도 포션 부서에서는 지로스케가 뉴비들을 위해 포션들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포션 부서에서는 가끔 파기될 물건이라면서 포션 몇 개를 지로스케에게 건네고는 했다.

지로스케가 포션을 사느라 생활비를 쓰지 않도록 알게 모르게 도와주고 있는 것이었다.

지로스케의 선한 영향력은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더 넓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성실하고 정직한 지로스케는 농장 내부에서 나름 튼튼한 입지를 다지며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이후 그는 도미닉 경이 설립한 재단의 이사장으로 취임했으며, 가차랜드에 새롭게 오는 뉴비들에게 여전히 포션을 제공하며 만족을 느끼고 있다.

...

가차랜드에서 가장 신비한 클랜을 고르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종이 인형 극단을 고를 것이다.

마왕 뚜 르 방과 용사 뽀 르 작이 합심해 만든 이 클랜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 규모가 그다지 커 보이지 않지만, 뜻밖에 놀라운 규모를 자랑했다.

또한 마왕과 용사가 손을 잡았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른 클랜에 비해서 굉장히 이질적인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면, 클랜장이 두 명이라거나.

"!"

"?"

"마왕님! 사탕은 하루에 하나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야 합니까!"

"공작님! 뒤에 숨긴 거 빨리 앞으로 보여주시지요!"

그리고 그 클랜장들이 위엄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2등신의 뽀작뽀작 뚜방뚜방한 귀염둥이들이라거나.

"아무튼, 이 사탕들은 다 압수입니다!"

"...!"

"눈물을 글썽여도 소용없습니다! 네? 악마? 마왕? 귀축? 네. 맞습니다. 마왕님께서 자꾸 이러시면, 저도 이제 악귀가 되는 겁니다!"

"?"

"모르는 척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다 봤으니까요. 이제 그 사탕을 넘겨 주실까요, 공작님?"

참모장과 행정관은 오늘도 마왕과 용사의 바른 생활을 위해 잔소리를 시작했다.

마왕은 세상의 모든 규칙을 깨부수는 사람이니 하루에 사탕 하나라는 규칙을 깨버린 거라는 변명을 내뱉었지만, 참모장은 더욱 악마 같은 사람이었기에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물론, 마왕이 정말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탕을 돌려달라며 참모장의 다리를 인절미같은 팔로 툭툭 쳤을 뿐이었다.

이는 용사도 마찬가지였다.

용사도 말랑말랑한 스폰지 검을 들고 행정관을 위협했으나, 이내 행정관의 한 마디에 시무룩해져 사탕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바른 말로 간언하는 사람을 겁박하는 게 용사가 할 짓입니까?"

그 말에 용사는 곧바로 사탕을 행정관에게 건넸다.

행정관은 곧바로 그 사탕을 유리병 안에 넣더니, 둘의 손도, 능력도 닿지 않을 높은 곳에 숨겨두었다.

마왕과 용사는 그 유리병을 빤히 쳐다보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유리병 속의 사탕들이 그들의 손에 들릴 일은 없었다.

"이제 당분간은 사탕이 없습니다. 아셨습니까?"

"...!"

"!"

"그렇게 보셔도 소용없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으니, 벌을 받으셔야지요."

그렇게 말한 참모장과 행정관은 바쁜 일이 있다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더 있다간 마왕과 용사의 귀여움에 넘어가 사탕을 다시 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왕과 용사는 두 사람이 나가고 문이 닫히는 것을 보더니, 이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둘은, 소년과 소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너무해."

소녀로 변한 마왕 뚜 르 방이 말했다.

"그깟 사탕, 하나 더 먹는다고 이가 썩는 것도 아닌데!"

"그러게 말이야."

용사 뽀 르 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사탕을 빼앗긴 것에 크게 상심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말이지..."

"이럴 줄 알고 대책을 세워 뒀다는 말씀!"

그러나 상심도 잠시.

둘은 갑자기 배시시 웃더니, 이내 하이 파이브를 하며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벽면에 있는 초상화를 약간 기울이고 벽에 걸린 촛대를 조작하자, 벽에 비밀 통로가 나타났다.

비밀 통로를 지나자, 그곳은 지상 낙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뚜 르 방과 뽀 르 작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장소였다.

사탕, 인형, 과자, 까끌까끌한 수건, 젤리...

"헤."

마왕 뚜 르 방이 곧바로 그사이로 달려들어 인형을 끌어안으며 과자 봉지를 뜯었다.

용사 뽀 르 작은 조심스럽게 까끌까끌한 수건을 들고 볼을 부비작거렸다.

그러고는, 유리병에 든 젤리 하나를 꺼내 입에 집어넣었다.

그것은 그냥 젤리가 아니라 터키 젤리로, 입안에 집어넣자마자 눅진한 단맛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마왕과 용사는 그곳에서 마음껏 먹고, 놀고, 마시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행복하다."

"그러게."

마왕 뚜 르 방과 용사 뽀 르 작은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록 저주와 봉인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 앞에선 2등신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 모습다운 지능으로 살아가야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땐 이렇게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마왕과 용사에게 있어서 이런 삶은 저주가 아니었다.

뜻밖에, 이런 삶이기에 더 나은 것들도 있었다.

바로 영원한 동심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마왕 뚜 르 방은 그녀의 아버지, 체스터 르 방이라는 사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체스터는 사상 최강의 마왕이자, 뽀 르 작의 아버지 타 르 작의 숙적이었다.

체스터가 가차랜드로 오기 전까지, 그는 원래 있던 차원계에서 영원한 공포로 군림했으며, 수억의 군세를 이끄는 수장으로 존재했다.

먹는 것은 늘 최고급 재료들이었고, 입는 것은 가장 뛰어난 디자이너들의 작품.

그의 창고엔 늘 금과 보석이 가득했고, 그의 부하들은 마르지 않는 재보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체스터는 한 가지를 가지지 못했다.

바로, 행복이었다.

너무나도 쾌락의 끝을 탐한 나머지, 더 이상 행복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 하는 몸이 되어 버렸었던 것이다.

가차랜드에 도착해 뚜 르 방에게 마왕직을 물려주고 요양을 하기 전까지, 체스터는 언제나 우울하고 짜증만 내는 사람이었다.

이는 뽀 르 작의 아버지, 타 르 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로지 마왕을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파티 원들에게 열정만을 강요하는 사람이었다.

자기 스스로가 열정으로만 움직이는 사람이었기에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었다.

문제는, 사람은 열정만으로 살 수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하나둘 타 르 작 주변의 사람들이 떠나가기 시작하고, 타 르 작은 홀로 남았다.

타 르 작은 극심한 외로움과 탈력감으로 고통받았다.

결국, 타 르 작을 용사로 임명한 신은 타 르 작이 더 무너지기 전에 가차랜드로 보내버렸다.

적어도 인간다운 삶을 살길 바라며.

다행스럽게도 타 르 작은 가차랜드에 잘 적응해, 이제는 잘 웃는 사람이 되었다.

다만 마왕을 잡으러 떠난 여행 때문인지 역마살이 끼어, 뽀 르 작을 두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렇게 뚜 르 방과 뽀 르 작은 그들의 아버지 대의 고통을 아주 잘 알았기에, 지금, 이런 생활이 만족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이런 행복이 과하면 안 좋다는 것도 잘 알았고.

"...갈까?"

"그래."

그렇기에 뚜 르 방과 뽀 르 작은 적당한 시기에 이 비밀의 방을 벗어났다.

비밀의 방에서 나오자, 비밀의 문은 다시 감쪽같이 사라졌다.

뚜 르 방과 뽀 르 작은 다시 2등신의 말랑말랑한 몸으로 돌아왔다.

주머니에 과자 몇 개와 사탕 몇 개를 숨긴 채.

이건 그들만의 작은 행복이었다.

물론, 그 행복은 잠시 뒤, 곧바로 참모장과 행정관에게 걸려 사라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