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2화 〉 [외전 1화]엔딩 크레딧
* * *
도미닉 경은 히메와 결혼을 하기 위해 운류 무사시와 운류 이치코의 허락을 받으러 갔다.
"아버님,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음. 허락한다."
이미 도미닉 경을 사윗감으로 생각하던 운류 무사시와 이치코였기에, 허락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나저나, 도미닉 경은 성이 따로 없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다."
도미닉 경은 성이 따로 없었다.
혹시라도 도미닉이라는 이름을 쓰는 다른 기사가 있을까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라고 소개하기는 하지만 농노 출신의 도미닉 경은 제대로 된 성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혹시, 데릴사위로 들어오는 건 어떤가?"
"데릴사위 말입니까?"
도미닉 경은 놀란 눈으로 무사시를 쳐다보았다.
"음. 운류의 이름을 이어가는걸세."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성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성인 운류라는 두 글자를 주어 도미닉 경에게 힘을 실어 주고 싶었다.
만일 도미닉 경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운류 도미닉 경이라는 꽤 괴상한 이름이 되겠지만, 아무도 그 이름을 비웃지는 못할 것이었다.
"...거절하겠습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잠시 생각한 이후, 무사시의 제안을 거절했다.
"어째서인가?"
무사시는 도미닉 경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남자로 태어나서, 자기 이름은 자기 스스로 얻어야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음? 아하하! 이거 한 방 먹었군!"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말에 크게 웃었다.
운류 가문의 제안은 일견 도미닉 경에게 도움이 되어 보였지만, 오히려 도미닉 경의 명성을 깎아 먹을 수도 있는 수였다.
자칫 운류 가문의 도움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는 루머가 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네. 하지만 내 딸이 운류 가문의 성을 계속 쓰는 건 허락해주게."
"좋습니다."
도미닉 경은 무사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딸, 잘 대해 줘요. 너무 수련에만 매진해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서..."
이치코는 히메의 어머니답게 히메 걱정을 가득 털어놓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모님."
"그 말, 정말 듣기 좋네요."
이치코는 소매로 입을 가리고는 우아하게 웃었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무난하게 결혼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그럼, 전 이만 예식장을 찾으러 가 보겠습니다."
"잠깐, 도 서방... 아니, 도미닉 경."
"?"
"...잠시 나가서 이야기 좀 하세. 가기 전에 부탁할 것이 있네."
도미닉 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운류 무사시가 도미닉 경을 붙잡았다.
무사시는 은근슬쩍 이치코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도미닉 경과 함께 본당 밖으로 나섰다.
"...이거 받게."
"이것은...?"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에게 몇몇 포션과 아이템을 건네주었다.
도미닉 경은 포션과 아이템을 잘 쓰지 않는 편이었기에, 무사시가 왜 이런 것들을 건네주는지 알지 못했다.
"이건 전부, 명중률을 올려주는 아이템들일세."
"명중률이라. 이걸 저에게 주시는 이유가...?"
도미닉 경은 무사시의 큰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되묻고 말았다.
이에, 무사시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자네는 나와 내 아내 사이의 금슬을 아주 잘 알겠지."
"네. 아주 천생연분이시라고..."
"그런데도 왜 내게는 딸 둘... 아니, 사실상 하나만 있었는지 아는가?"
"?"
"그건 바로... 아내의 회피율 때문일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도미닉 경은 무사시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차랜드에서 임신할 확률은 남편의 명중률과 아내의 회피율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 아는가?"
"!"
도미닉 경은 그제야 운류 무사시가 도미닉 경에게 이러한 물건들을 주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나는 딜러라서 그나마 명중률이 높은 편일세. 그런데도 히메 하나만 낳을 수 있었지. 츠키는... 마음으로 낳은 아이니까 넘어가도록 하지. 아무튼 이런 나도 그랬는데, 탱커인 자네는 오죽하겠나?"
"...확실히 그렇군요."
무사시의 말에 도미닉 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도미닉 경은 상대에게 상태 이상을 먹인 뒤 제압하는 스타일이었지, 명중률로 승부보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난 도 서방... 아니, 도미닉 경을 믿네. 도미닉 경은 그래도, 나와는 다르게 강인한 체력이 있지 않은가."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주었다.
"여보? 아직 도미닉 경을 잡고 있나요?"
"아, 지금 보내려던 참이오! 도미닉 경, 이제 가 봐야겠네. 그럼, 부디 행운이 함께 하길 바라네."
무사시는 그렇게 말하며 본당으로 다시 들어갔다.
도미닉 경은 무사시가 사라졌음에도, 계속해서 손에 들린 명중률 관련 아이템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명중할 확률이 낮으면, 일단 길게 보는 것도 좋겠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결혼 전부터 도미닉 경만의 작전(?)을 세웠다.
그리고 결혼 직후, 도미닉 경은 무려 23시간에 걸친 마라톤을 통해 마침내 아들 도미노 경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지혜로운 무사시의 경험담 덕분이었다.
...
"이제 나도 집에 돌아가야지."
앨리스 백작 영애는 이제 신혼방으로 꾸며진 도미닉 경의 저택을 보며 말했다.
"더 이상 여기에 있기엔 눈치가 보이잖아."
앨리스 백작 영애가 그렇게 말하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생각이 난 바로 그때 행동에 옮기려는 것 같았다.
"주군, 그래도 며칠 더 있다가 가지 않겠소?"
"됐거든. 신혼부부 집에 얹혀 살 생각은 없네요."
그렇게 말한 앨리스 백작 영애는, 가차랜드에 왔었던 복장 그대로 입고는 트렁크를 끌며 문밖으로 나섰다.
"...결혼 축하해, 도미닉 경."
"고맙소, 주군."
"나중에 또 놀러 올게."
"...음."
그렇게 말한 앨리스는, 갈색 코트를 여미며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비가 오네."
앨리스 백작 영애는 하늘을 보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째서 하늘엔 저렇게 해가 쨍쨍한 걸까.
"그래도 비가 와."
뚝. 뚝. 땅에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앨리스 백작 영애는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비가 오는 것은 좋지만, 여기서는 아니었다.
적어도 도미닉 경에게 들키지 않을 곳에서.
그렇게 생각한 앨리스 백작 영애는, 한걸음에 바로 가차랜드 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 열차는, 페럴란트. 페럴란트 행 열차입니다. 타시는 곳은, 5번 입니다. 타실 때 승차권을 꼭 지참해주시기]
"...빠르기도 해라."
앨리스 백작 영애는 순식간에 도착한 페럴란트 행 열차를 타고 차원을 도약했다.
기나긴 휴가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페럴란트로 돌아온 앨리스 백작 영애.
페럴란트는 그녀가 떠나온 때와 그리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톱니바퀴와 실린더로 가득한 거리.
공장의 굴뚝에서는 석탄 타는 매연이 흘러나오고, 길가에는 마차와 증기기관차가 달리며, 곳곳에는 공장에서 나오는 상품들과, 군수 공장에서 나오는 태엽장치 전쟁기계들 가끔 보였다.
도미닉 경이 죽었던 때와는 꽤 큰 차이를 보이는 모습.
앨리스 백작 영애는 이 지루한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 페럴란트 상투스 도미니쿠스 스트리트에 위치한 221B번 주택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바로 계단을 타고 올라가 2층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어머나, 오랜만이우."
"아,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어딜 다녀온 거유? 최근에 보질 못한 것 같은데."
"아, 휴가를 좀 다녀왔어요."
"어디로 말이유?"
"...좀 먼 곳으로요."
"아유, 확실히 페럴란트 주변은 휴가를 즐기기엔 별로긴 하지. 나도 언젠가 제국으로 놀라가보고 싶다우."
"아, 그러세요?"
앨리스 백작 영애는 집주인아주머니의 수다를 한참 동안 듣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아주머니의 말을 끊고 말았다.
"그, 죄송한데 제가 휴가를 다녀와서 좀 피곤하거든요. 다음번에 이야기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이쿠, 내 정신 좀 봐. 미안 해유. 내가 피곤한 사람을 잡고 너무 피곤하게 굴었쥬?"
아주머니는 미안하다면서, 저녁에 쿠키를 좀 구워서 주겠노라고 말했다.
앨리스 백작 영애는 괜찮다고 말한 뒤, 다시금 방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자, 앨리스 백작 영애는 한숨을 내쉬더니 주머니에서 예비용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방에 들어서며 있는 힘껏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안에 있는 거 다 알아요. 또 방세 빼먹은 건가요?"
"...그게..."
앨리스 백작 영애의 투덜거림에 저 멀리 사무용 의자에서 기어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로 보아, 꽤 어린 느낌이었다.
"그게는 무슨 그게예요. 방 꼬라지만 봐도 알겠구만."
앨리스 백작 영애는 발에 걷어차이는 종이들을 주섬주섬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아, 그거 중요한 거야!"
"뭐든 안 중요하실까."
앨리스 백작 영애는 그렇게 말하며 좀 더 거침없이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너무해."
"너무한 건 화이트크로우, 당신이 아닐까요? 이게 사람 사는 곳이야, 돼지 우리야?"
삐죽삐죽한 흰 머리, 검은 조끼에 흰 가운.
화이트크로우라고 불린 남자는 꽤 어려 보이는 이였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나이를 제법 먹은 이였고, 나이에 비해 굉장한동안이었다.
"너무하네."
화이트크로우는 한숨을 내쉬며 양팔을 들어 올려 항복의 의사를 밝혔다.
이미 논리적으로 진 상황에서, 더 이상의 논쟁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화이트크로우는 앨리스의 휴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래, 휴가 간 건 잘해결 되었어?"
"...망했어요."
"그래?"
앨리스의 말에 화이트크로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너만 한 사람이 없는데, 그걸 실패해?"
"말은 좀 제대로 해주세요. 그러니까 자꾸 의뢰인들이 오해하지."
"...그런가?"
앨리스는 괜히 화이트크로우에게 심술을 부렸다.
화이트크로우는 본능적으로 더 이상 앨리스 백작 영애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이트크로우는 입을 다물었다.
방 안에는, 앨리스 백작 영애가 종이를 치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나저나 더 어려지셨네요?"
"응."
앨리스 백작 영애는 괜히 화를 낸 것이 머쓱한 듯, 반대로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과학이 발전하고 있다 보니, 더 이상 신화가 설 자리가 없어."
그렇게 말한 화이트크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향했다.
창문은 꽤 뷰가 좋아 광장을 볼 수 있었는데, 화이트크로우는 광장에서 까마귀들에게 모이를 주는 노숙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자가 스러지는 순간, 나도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겠지."
화이트크로우의 목소리가 깊게 잠겼다.
"..."
앨리스 백작 영애는 말없이 종이들을 모아 화이트크로우의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가차랜드라는 곳은 어떤 곳이야?"
화이트크로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즐거운 곳이예요."
앨리스 백작 영애가 그렇게 말했다.
"그래?"
"여기랑은 시간 축이 완전히 다르지만요. 여기서 있는 몇 초가, 거기선 몇 분일 수도, 몇 시간일수도 있어요."
"그렇구나."
"대신, 즐거움도 몇 배, 몇십 배나 더 큰 곳이죠."
"그렇구나."
화이트크로우는 앨리스 백작 영애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 모습은, 마치 먼 곳의 모험담을 듣는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있지 앨리스."
"네."
"우리, 가차랜드로 이주할까?"
"...인간들은 어쩌구요?"
"이제 인간들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화이트크로우가 씁쓸하게 말했다.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과 신앙이 아니야. 이성과 합리지."
그렇게 말한 화이트크로우가 앨리스에게 말했다.
"...마지막 변덕이야. 마지막 신도가 죽는 날, 날 가차랜드로 데려가 줘, 앨리스."
화이트크로우가 간절히 외쳤다.
"...알겠어요."
앨리스가 화이트크로우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며칠 뒤, 경찰은 뒷골목에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 있던 노숙자의 시체를 발견했다.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목격자는 하얀 까마귀를 보았고, 그 까마귀가 이끄는 대로 왔더니 시체가 있었노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을 하얀 까마귀는 지붕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을 향해 날갯짓을 하더니, 이내 페럴란트에서 더 이상 그 까마귀를 볼 수 없었다.
이와는 별개로, 가차랜드에서 흰 머리를 한 남녀가 역에서 내렸고, 몇 년 뒤 결혼해 그들과 똑 닮은 흰 머리의 여자아이를 낳았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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