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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501화 (에필로그) (468/528)

〈 501화 〉 [500화]에필로그

* * *

집사 닌자는 그런 남자를 무감정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이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았다.

"제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

집사 닌자의 말에 도미닉 경이 고개를 저었다.

"늦지는 않았소. 그나저나 지금 상황은 대체..."

도미닉 경은 집사 닌자에게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지금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는 건 집사 닌자 뿐이었으니까.

집사 닌자는 당연하다는 듯 도미닉 경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방금 전 암기를 가지러 위에 올라갔을 때, 우연히 운류 가문의 비서(?書)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봉인에 관련된 문서였지요."

집사 닌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었습니다. '업데이트 예정'."

"...그게 무슨 뜻이오?"

"아직 봉인 내부에 있는 존재는 업데이트 되지 않았다는 소리입니다."

"아."

그제야 도미닉 경은 갑자기 오오뉴도가 사라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오뉴도의 등장 장면까지만 만들어 둔 상태에서, 정작 본체는 만들어두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오늘날의 가차랜드를 살렸다.

"비서의 아래쪽에는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그렇게 말한 집사 닌자는,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도미닉 경에게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회장은 여기까지 내다보고 있었다는 말이오?"

"네. 그리고 여기엔 저 남자에 대한 처분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집사 닌자는, 어디선가 촛불을 꺼내어 두루마리 아래에 두었다.

그러자, 숨어 있던 글자가 드러났다.

도미닉 경은 그 글자를 유심히 읽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겠소."

도미닉 경은 그 두루마리에 적힌 대로 남자의 처분을 결정...

엄마?

응?

엄마?

....

"엄마?"

"응? 왜 그러니, 도미노 경?"

"나 지루해."

"아, 그렇니? 그럼 조금 건너뛸까?"

"응."

기모노를 입은 단아한 여성이 무릎에 어린 남자아이를 올려놓은 채 책을 읽어 주고 있었다.

책 이름은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으로서, 탱커를 꿈꾸는 탱커 꿈나무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교보재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책은 도미닉 경의 자전적 동화책이었다.

"그럼 어디서부터 해 줄까..."

"있지, 엄마."

"응?"

"엄마는 어떻게 아빠랑 결혼한 거야?"

도미노 경의 날카로운 질문에 기모노를 입은 단아한 여성은 순간 움찔했다.

그러고는, 아주 먼 옛날을 회상하듯 아련한 표정으로 이렇게 운을 띄웠다.

"그래. 너희 아버지랑 어떻게 결혼했냐면..."

...

모든 것이 끝난 직후, 가차랜드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가차랜드에 혼란을 일으켰던 남자는 가차랜드보다 더 높은 차원의 존재들에게 재판을 받아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이라고 했다.

"...정말 바람 잘 날 없구려."

"그러게 말이에요."

도미닉 경과 히메는 가차랜드 시내에 있는 광장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남자가 쓰던 에디터가 사라진 이후, 가차랜드에 나타났던 게이트들은 언제 나타났냐는 듯 싹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말이야, 게이트 하나를 붙잡고 벙커 버스터를 빵! 하고 휘두르자, 고작 삼류 무인에 불과한 마졸들이 우수수­"

"어이, 거기 김 씨! 지랄하지 말고 벽돌이나 날라!"

"아, 네!"

가차랜드는 굉장히 분주해졌다.

게이트로 인해 가차랜드의 절반 이상이 박살 나버렸고, 하필이면 그 당시에 시스템들이 맛이 간 상태였기에 복구도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가차랜드의 사람들은 시내를 일일이 손으로 복구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고된 노동에도, 가차랜드의 사람들의 표정엔 웃음이 가득했다.

가차랜드 사람들의 특성상, 이 모든 것들을 그저 하나의 즐거움으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정말 가차랜드란 곳은 재밌네요."

히메는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운을 띄웠다.

"그러게 말이오."

도미닉 경이 히메의 말에 대답했다.

"..."

"..."

그리고 둘 사이에는 어째서인지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무언가, 둘 모두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였다.

"그­"

"저기­"

"..."

"...먼저 말하시오."

"아니, 먼저 말씀하세요."

도미닉 경과 히메는 다시금 어색한 분위기에 잠겼다.

...이 분위기를 먼저 깬 것은 도미닉 경이었다.

"히메 공."

"네."

"혹시, 방금 했던 말 기억하시오?"

"방금...이요?"

히메는 도미닉 경이 한 말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일단 모르는 척했다.

도미닉 경이 잘못 말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먼저 고백하겠다고 한 것 말이오."

"...네."

도미닉 경의 말에 히메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

히메는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여기서 도미닉 경이 내게 고백을?

그러나 히메의 기대와는 달리, 도미닉 경은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그, 잠시 손가락을 만져 봐도 되겠소?"

"손가락이요?"

히메는 의아해하면서도 도미닉 경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미닉 경은 잠시 히메의 손을 만지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부끄러우신 걸까?"

히메는 도미닉 경의 모습에 다소 실망했다.

어째서인지 그렇게나 당당하던 도미닉 경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손은 왜 만지게 해 달라고 하신 걸까?"

히메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가득 박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수련을 해왔기 때문에 생긴 것들이었다.

"참 못생겼다..."

히메는 자기 손가락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평소의 히메라면 이런 상처들과 굳은살들을 자랑스러운 훈장 쯤으로 여겼겠지만, 어째서인지 도미닉 경에게 보여주기엔 너무나도 부끄럽고 못생겨 보였다.

"설마, 도미닉 경이 손가락을 보고 정이 뚝 떨어졌다거나 하진 않았겠지...?"

오죽했으면, 히메는 완전히 자신감이 떨어져 자신을 비하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히메가 자신만의 나락으로 떨어지려고 할 때쯤.

"미안하오. 갑자기 자리를 비워서."

마침, 아주 적절한 때에 도미닉 경이 돌아왔다.

"...돌아오셨네요."

히메는 그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손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렸다.

"음."

도미닉 경은 잠시 히메를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히메는 우울해 보였다.

"혹시 내가 무언가 실례되는 행동이라도 한 거요?"

도미닉 경은 조심스럽게 히메에게 혹시 자기 행동에 대해 물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그냥...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요."

히메는 도미닉 경의 말에 대답하려다가, 다시 한번 방금 전의 생각이 떠올라 시무룩해졌다.

도미닉 경은 이러다간 타이밍을 놓칠 것 같다는 생각에, 다소 무리하게 히메의 손을 잡아챘다.

"!"

히메는 도미닉 경의 행동에 너무나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기사도를 숭상하는 도미닉 경이 하기엔, 너무나도 과격한 행동이었으니까.

"도, 도미닉 경?"

"미안하오. 하지만 너무 마음이 급해서 그랬소."

그렇게 말한 도미닉 경은, 이내 히메의 손을 양손으로 포개어 꼭 잡았다.

"도미닉 경..."

히메는 도미닉 경의 거칠고 커다란 손의 감촉을 느끼며 행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째서일까?

투박하고 까슬까슬한 손일 텐데, 이토록 따듯하고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는.

히메는 도미닉 경과 손을 잡았다는 그 사실 하나로 마음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그, 고마워요. 손이 참 따뜻하시네요."

"...? 고맙소."

도미닉 경은 갑자기 칭찬을 하기 시작한 히메를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금 히메의 손을 매만졌다.

그러고는, 이내 히메에게서 손을 떼었다.

"아..."

히메는 도미닉 경의 손이 떨어지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든든하고 따뜻한 감촉이 사라지자, 어째서인지 서늘한 감각과 손가락을 옥죄는 감각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잡아주시지..."

"음? 무슨 말 했소?"

"아니, 아니에요."

히메는 아쉬움에 작게 중얼거렸으나, 도미닉 경의 반문에는 차마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아직 부끄러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히메는 아쉬움에 손에 남은 온기라도 느끼고자, 방금 전까지 도미닉 경의 손이 있던 곳을 매만졌다.

"...응?"

그리고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반...지?"

히메는 갑자기 나타난 반지를 보며 혼란을 감추지 못했다.

히메는 잠깐 반지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그런 히메의 시선을 마주 바라본 채, 볼을 긁적이며 부끄러워했다.

"그러니까, 아까 내가 말했잖소. 내가 먼저 고백하겠다고."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한 뒤, 벤치에서 다시 일어서서 히메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히메의 손을 잡고는 손등에 키스한 뒤, 이렇게 말했다.

"나와 결혼해주시겠소, 히메 공?"

히메는 그 말에 그 어떤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대신, 히메는 왈칵 흘러나오는 뜨거운 눈물과, 격한 고개 끄덕거림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이게 내가 네 아버지랑 결혼하게 된 이유란다."

"헤..."

도미닉 경과 히메의 아들, 도미노 경은 히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왔소."

그때, 마침 저택의 문이 열리고 도미닉 경이 돌아왔다.

도미닉 경은 양복을 입은 채였는데, 여전히 젊음을 유지한 채였고, 머리 위에는 삼색 깃털이 존재했다.

"음? 도미노에게 책을 읽어 주고 있었소?"

"아버지를 닮으려나, 당신 이야기를 좋아하네요."

"그렇소?"

도미닉 경은 아들이 자기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히메는 그런 도미니 경을 보며 참 귀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도미닉 경의 손을 보았다.

도미닉 경은 히메와 다르게, 결혼 반지를 오른쪽에 끼고 있었다.

"여보.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뭐요?"

"여보는 왜 결혼 반지를 오른쪽에 끼는 건가요? 보통 왼쪽일 텐데..."

"아, 그거 말이오?"

도미닉 경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표정으로 히메에게 말했다.

"별 건 아니오. 그저 내가 안대가 왼쪽에 있잖소."

"그렇죠."

"오른쪽에 반지를 껴야, 항상 반지를 보면서 당신 생각하지 않겠소?"

"...!"

그 말에 히메는 몸을 배배 꼬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은 뭐요? 저녁을 같이 먹으려고 일찍 돌아왔다오."

"장어예요."

"음?"

"오늘 둘째 한 번 만들어 보는 게 어때요?"

히메는 조용히 도미닉 경의 귓가에 그렇게 속삭였다.

도미닉 경은 갑자기 유혹해 오는 히메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노 재운 뒤에 말이오."

"아빠! 무슨 말이야?"

"아니, 아니란다. 우리 도미노, 오늘은 뭘 하고 놀았니?"

"응! 다른 애들은 다 버스를 타고 통학한대서, 엄마랑 같이 버스 하나 사러 갔어!"

"오! 확실히 유행은 중요하지."

"아빠는?"

"나는 오늘 크라켄과 싸우고 왔단다! 엘랑 이모 알지? 그쪽에서 도움을 요청해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하는 도미닉 경과 도미노 경 부자를 보면서, 히메는 이렇게 생각했다.

참 행복한 삶이라고.

이는 도미닉 경도 마찬가지였다.

도미닉 경은 이제 자신을 소개할 때,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부른다.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이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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