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99화 (466/528)

〈 499화 〉 [498화]끝을 향하여

* * *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공동 내부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전쟁 기계는 방금 전의 엄청난 위용이 무색하게도, 아주 허무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갑자기 왜 전쟁 기계가 박살이 났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이내 전쟁 기계가 있던 쪽에 앨리시아와 히메, 그리고 도미니아 경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안에서 뭔가를 해준 모양이네."

도미니카 경이 그렇게 말했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재빨리 도미니아 경의 일행에게 다가가 폭발에 휩쓸리지 않도록 방패를 들어 올렸다.

물론 폭발이나 폭발의 잔해가 도미니아 경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전쟁 기계는 펑­펑­펑­펑­ 하는 느낌으로, 굉장히 가차랜드 스럽게 박살 났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관절이 있던 부분이 꺾이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전쟁 기계.

"괜찮소?"

도미닉 경은 이내 전쟁 기계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고 판단하고, 히메와 앨리시아, 그리고 도미니아 경에게 물었다.

"...네!"

히메가 갑자기 나타난 도미닉 경을 보더니, 볼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앨리시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니아 경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저 방금 전에 있었던 불꽃 놀이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는 듯 꺄르륵 웃기만 할 뿐이었다.

"괜찮다니 다행이오."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하며 방패를 내리려던 그 순간이었다.

"아직... 아직이야..."

도미닉 경은 섬뜩함이 등줄기를 쓸고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다.

도미닉 경은 다시 고개를 돌려 방금 전 전쟁 기계가 파괴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다시금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사당과 그 사당에 기대어 휠체어로 기어가는 수상한 남자가 있었다.

"!"

도미닉 경은 수상한 남자에게 다가가려고 했으나, 수상한 남자는 도미닉 경이 달려드는 것보다 먼저 휠체어에 앉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손에 든 버튼을 꾹 쥐었다.

그 순간, 도미닉 경은 달려가던 자세 그대로 허공에 멈췄다.

아니, 가차랜드의 시간 선이 모두 멈춰버렸다.

사람들의 의식은 그대로였으나, 몸도, 사물도, 그 어떤 것도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히메도, 도미니카 경도, 앨리시아도, 도미니아 경도.

이곳에서 그나마 제정신을 차릴 수 있는 건, 그저 저항력이 높은 도미닉 경 뿐이었다.

"내가 에디터를 써서 시간 선을 조작했지."

도미닉 경을 닮은 수상한 남자가 휠체어 위에서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는 방금 전 폭발의 여파로 얼굴 절반에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거, 실명하려나."

남자는 왼쪽 눈꺼풀 위로 흘러내리는 고통스러운 진물을 느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완전한 도미닉 경이 되는 거야."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전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도미닉 경은 그런 남자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를 악 물어?

도미닉 경은 문득, 입 만큼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지?"

도미닉 경은 여전히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왜 가차랜드를 파괴시킬 봉인을 푸냐는 말이다."

도미닉 경은 기사의 예법을 벗어던지고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왜냐니."

남자는 화상으로 질척해진 피부 위에 지지듯 안대를 씌운 뒤,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야, 이건 내 형이 만든 거니까."

"형... 이라고?"

"그래. 여기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이었던가?"

컨셉하고는.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형이 싫었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그 자신감부터, 그 재능까지. 나는 반 병신이었는데, 형은 늘 운동신경이 뛰어났고, 나는 죽어라 노력해야 겨우 중상위권을 유지하는데, 늘 게임만 하다가도 항상 1등을 유지했지. 이게 뭐야, 세상의 총애받는 먼치킨? 그런 건가?"

남자는 갑자기 열등감을 폭발시키며 버럭버럭 화를 내질렀다.

"이 다리 보여? 태어났을 때부터 이랬어. 형과는 다르게! 멀쩡한 형과는 다르게, 난 평생을 이러고 살아왔다고!"

남자는 도미닉 경과 형이 겹쳐보이는 듯, 도미닉 경을 마구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건 불공평해. 그렇지?"

남자는 한참을 씨익씨익거리다가,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 사이, 남자는 거의 5년은 늙어 버린 것 같았다.

"아무튼, 그래서 난 생각했지. 왜 나만 이렇게 처참한 삶을 살아야 하지? 왜 형은 승승장구하는데, 난 왜 이렇게 처절하게 살아야 해?"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의 뒤로 향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지. 그래. 이건 불공평해. 그러니까, 형도 처절한 삶을 한 번 살아봐야 해."

도미닉 경은 고개를 돌릴 수 없어 남자의 상태를 알 수 없었으나,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촉촉함으로 보아 그는 울분이 북받쳐 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계획했지. 형이 만든 최고의 프로젝트, 가차랜드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을 말이야."

도미닉 경은 그의 목소리에서 알 수 없는 후련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그는 지금까지 이런 것들을 속으로만 담아 두고 살아온 것 같았다.

묵혀둔 감정들이, 도미닉 경에게 털어놓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해소가 된 거겠지.

그래서일까?

도미닉 경의 등 뒤에 있던 남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도미닉 경의 앞으로 다시 걸어 나왔다.

"그래. 그래서였지. 내가 당신을 닮고 싶었던 건, 바로 그런 이유였어. 당신은 늘 승리의 화신이었지, 도미닉 경. 마치 형처럼 말이야."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의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하지만 도미닉 경은 형과 달라. 도미닉 경은 가장 낮은 곳에서 자수성가한 캐릭터지... 형과는 다르게."

여전히 그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지만, 도미닉 경은 바로 직전만큼의 섬뜩함은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일지도 모르겠어. 내가 당신의 모습에서 형을 보면서도, 당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건."

대신, 도미닉 경은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지금 나를 안쓰럽게 바라봐준 건가? 이렇게 삐뚫어진 나를?"

남자는 도미닉 경의 시선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지금까지의 기분 나쁜 웃음이 아니라, 정말로 마음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오는 환희의 미소였다.

"도미닉 경이 날 보고 걱정해준다니, 정말... 오늘은 최고로 행복한 날이야."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어째서인지, 바닥에 물방울 하나가 똑하고 떨어졌다.

남자는 한참 동안 그렇게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곧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눈은, 살짝 빨갛게 부어 있었다.

"좋아, 도미닉 경. 내가 당신에게 제안 하지."

남자는 도미닉 경에게 한 가지 달콤한 제안 했다.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와 함께 사라지기엔 너무나도 매력적인 사나이야. 그러니, 내가 자비를 베풀어 혼자 살아남을 기회를 주지."

"...혼자 살아남는다고?"

"에디터의 힘으로 도미닉 경의 데이터만 뽑아, 다른 곳에 이식시키는 거지. 가차랜드는 멸망하겠지만, 도미닉 경은 영원히 살아가는 거야."

남자는 도미닉 경에게 손을 내밀었다.

"원한다면, 신처럼. 어때. 내 손을 잡을래?"

남자는 당연히 도미닉 경이 자기 손을 잡을 거라고 확신이라도 하는 듯, 벌써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잠시 남자의 제안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째서일까?

도미닉 경은 어째서 저 말도 안 되는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잠시 고민을 한 것일까?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의 모든 것을 두고, 저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라도 할 것인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내 도미닉 경은 생각을 정리한 듯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손을 잡고 싶지만, 움직일 수가 없군."

그 말에 남자는 놀란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인 즉...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건가?"

"그래."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아 말로 대신 의사를 전달했다.

"...그렇다면 풀어 줘야지."

남자는 곧바로 에디터를 쥐고 멈춰있던 세상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헛!"

"도, 도미닉 경?"

세상이 움직이자, 당연하게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던 다른 이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도미닉 경의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미닉 경이 배신이라니!

"도미닉 경... 도대체 왜...?"

히메는 도미닉 경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문득 히메는 도미닉 경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도미닉 경의 손은 남자의 손을 잡고 있었고, 도미닉 경의 얼굴은 남자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의 눈은 히메를 향해 보고 있었다.

...서술하고 보니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히메는 도미닉 경의 시선을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히메는 그것이 일종의 신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히메는 순식간에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는, 도미닉 경이 정말로 가차랜드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앨리시아의 경우, 이미 미래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에 도미닉 경이 배신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도미니아 경은 지금 상황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도미닉 경은 혹시라도 오해를 할 수도 있는 히메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던 것이었다.

"좋아. 이제 도미닉 경이 내 편이 되었으니, 가차랜드를 더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겠­"

그때였다.

남자가 도미닉 경의 합류에 너무 기쁜 나머지 잠깐 방심을 한 그 짧은 순간, 남자는 손목에서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이는 자연적인 통증이 아니었다.

무언가 커다란 것이 남자의 손목을 있는 힘껏 후려친 듯한 통증이었다.

"어...?"

남자는 갑자기 일어난 통증에 놀라 통증이 일어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자기 손목이 디귿자로 꺾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남자는 지금, 이 순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의 손에 있었던 에디터 버튼은 손목의 통증으로 인해 손에서 스르륵 빠져나왔다.

그리고 땅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왜긴 왜야."

그리고 도미닉 경은 군화를 들어 올려 그 버튼을 짓밟아 부숴 버렸다.

더 이상의 예의는 없다는 듯, 평소에는 듣지 못할 말투를 쓰면서 말이다.

"설마, 내가 널 따르리라고 생각했나?"

도미닉 경이 방금 전 남자의 손목을 가격한 방패를 다시 회수하며 씨익 웃었다.

오늘 있었던 모든 웃음들 중, 가장 환한 웃음이었다.

상대방에게 한 방 먹였다는, 아주 통쾌한 웃음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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