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7화 〉 [496화]끝을 향하여
* * *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미친 사람과 싸워 본 적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미닉 경은 미쳐 버린 인간들과는 싸워 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도미닉 경이 상대했던 사람들은 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자들은 전부 시스템이 허락하는 수준의 광증을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는 싸워 본 적이 있지만, 지금처럼... 완성된 미치광이와는 싸워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완벽해, 도미닉 경! 내가, 내가 바라던 바로 그 모습이야! 이게 바로 도미닉 경이지! 이게 바로 도미닉 경이야! 나 같은 가짜와는 차원이 다른!"
"..."
도미닉 경은 눈앞의 남자의 눈을 보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는 도미닉 경이 심적으로 정말 압도당했다는 뜻이었다.
그 강인한 도미닉 경이,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도미닉 경은 지금,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저자는 누구이며, 왜 이런 짓을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왜 나와 비슷한 모습을 하는 건가?
궁금한 것, 의문인 것은 가득했으나, 도미닉 경은 차마 그 모든 것들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도미닉 경의 발은 접착제를 바른 듯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도미닉 경의 팔은 석고를 바른 듯 굽혀지지 않았다.
개구리가 뱀 앞에 선다면 이런 기분일까?
도미닉 경은 정말로 오랜만에... 미지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고 말았다.
"음?"
그리고 그런 모습은 그대로 겉으로 드러나, 의문의 남자는 도미닉 경에게 의문을 가졌다.
"어째서 그렇게 떨고 있는 거지?"
"떤다고? 내가?"
"그래.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지 않은가?"
도미닉 경은 남자의 말에 깜짝 놀라며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대로, 도미닉 경의 다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지금,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 도미닉 경은 점점 위축되고, 가라앉아만 갔다.
마치 처음 전쟁을 겪였던, 징집병으로 처음 소집되었던 그때처럼...
"도미닉 경! 정신 차려!"
"...헛!"
"쳇."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외침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도미니카 경은 어째서인지 저 남자의 영향을 받지 않아, 도미닉 경의 정신을 일깨워 줄 수 있었다.
"어떻게 내 에디터에 저항한 거지?"
"난 도미닉 경이지만, 도미닉 경이 아니니까."
"과연. 결과 값은 다르다는 건가?"
에디터?
도미닉 경은 남자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대가 도미닉 경에게 무언가 술수를 썼고, 도미닉 경이 거의 넘어갈 뻔했다는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그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래서 자꾸 말을 걸었던 거로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사당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일단 저 자를 제압하고, 도미니아 경과 앨리시아를 구출한다.
그리고 히메를 찾아 역시 구출한다.
목적은 확고해졌으니, 이제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도미닉 경은 거기까지 생각한 뒤, 곧바로 검으로 사당을 감고 있는 붉은 줄 하나를 끊었다.
도미닉 경은 키가 꽤 큰데다가 커다란 방패를 썼기에 밧줄의 틈새 사이로 들어가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워, 큰일 날텐데."
눈앞에 있는 남자는 괜히 놀라는 척을 하며 도미닉 경을 놀렸다.
"뭐, 시간을 좀 더 끌어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나."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또 하나의 양손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양손에 각각 하나씩 검을 들어 올리고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향해 겨눴다.
"이렇게 된 이상, 마지막까지 한번 해보자고."
남자의 휠체어가 갑자기 변신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둥근 바퀴였던 것이 이내 네 발로 걸어 다니는 거대한 기계가 되었고, 그가 앉아 있던 자리는 옥좌가 되었으며, 그가 기대고 있던 등받이에서는 수많은 발사체들이 튀어나왔다.
등 뒤에 있던 파이프 오르간 같은 것에서 유탄들이 마구 발사되어 이 공동 안에서 마구 폭발했다.
유탄도 평범한 것이 아니었는지, 엄청난 굉음이 일어나 공동 내부에서 마구 울렸다.
얼마나 그 소리가 크던지, 도미닉 경은 몇 초간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 거대한 기계의 위에는 조금 전까지 그 남자가 있던 사당이 올라가 있었다.
그 말인 즉, 눈앞에 있는 기계를 완전히 부숴 버려야지만 도미니아 경과 앨리시아, 그리고 히메를 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쉽지는 않겠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검과 방패를 들어 올렸다.
"언제는 쉬운 길만 갔을까."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옆에 서서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건 그렇소."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의 말을 듣고는 히죽 웃었다.
"좋아. 한 번 제대로 행복해져 보자고."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웃음이 마음에 든 듯 마주 보고 웃었다.
"그래! 바로 그 웃음이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를 보고 웃어 줘!"
"...조금은 덜 행복해도 좋을 것 같소만."
"그러게."
물론, 눈치 없게 끼어든 남자만 없었더라면 더 멋있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거대한 전쟁 기계와 마주한 그 시각, 사당 내부.
"으음..."
히메는 사당 내부에서 정신을 차렸다.
처음에는 여기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으나, 이내 자신이 수상한 남자에게 공격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윽!"
그러나 일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히메의 가슴팍에는 조금 전 의문의 남자가 검으로 찌른 상처자국이 있었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히메는 스스로 어떻게 살아 있는지 몰라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공격당했을 때, 히메는 즉사를 예견했다.
히메는 높은 민첩성으로 공격을 회피하는 형식으로 생존하는 것이었지, 이렇게 제압당한 상태에서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히메는 살아남았다.
그것도, 꽤 아슬아슬하게 말이다.
"그나저나, 여긴 또 어디지?"
히메는 일단 닌자의 도구 포션을 써서 체력을 회복시켰다.
시스템의 이상으로 포션이 제대로 발동되지는 않았지만, 닌자의 비술로 어떻게든 체력을 모두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히메는 체력을 모두 채운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히메가 있던 사당과 비슷한 곳이었지만, 어딘가 다른 느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의문의 남자가 에디터로 전쟁 병기와 강제 융합시킨 사당 내부였기 때문이었다.
"어딘가 익숙하기는 한데..."
"으윽..."
그때였다.
히메는 어디선가 갑자기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신음 소리?"
히메는 조금 전 여기에 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히메와 어린아이. 둘 뿐이었다.
그러나 들리는 신음 소리는 어른의 것.
히메는 도대체 누구의 목소리인지 궁금해하며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갔다.
그리고 곧 등에 큰 상처를 입어 쓰러져 있는 한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으으으..."
"!"
히메는 그녀가 어린 소녀를 끌어안고 기절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말인 즉, 이 여성은 이 소녀를 지키려다가 다쳤다는 뜻이리라.
히메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이 여성을 회복시키기로 결심했다.
히메는 새로운 포션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닌자의 비술로 그 여성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정신이 드세요?"
"으... 여긴..."
정장에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여성은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눈을 몇 번 끔벅거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도미니아? 도미니아!"
잠시 그렇게 허우적대던 여성은, 이내 자기 옆에 누워 있는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여자아이를 끌어안으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오, 도미니아... 여기 있었구나..."
히메는 그제야 눈앞에 있는 아이가 도미니아 경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혹시 이 아이의 어머니신가요?"
히메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네. 어머님."
"...어머님?"
히메는 갑작스러운 여성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내 여성이 조금 전에 깨어났다는 걸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정신이 없을 때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르거나, 교수님을 그 새끼라고 부르거나 하는 실수는 한두 번씩 있지 않은가.
히메는 조금 전의 발언이 그런 종류의 것으로 생각했다.
"제 이름은 히메예요."
"앨리시아입니다."
히메와 앨리시아는 서로 통성명을 나눴다.
"그나저나 어떻게 해서 여기에 오게 된 건가요?"
히메는 곧바로 그녀에게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된 것인지부터 물었다.
"도미니아 경을 구하기 위해서요."
"도미니아 경을 구하려고..."
히메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실, 도미니아 경을 납치한 것은 히메였었으니까.
비록 누군가의 조종을 받고, 정신을 잃은 채 행한 일이라고는 해도 히메가 한 짓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그와 동시에, 히메는 앨리시아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저 모성애를 보라.
자기 딸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찾아오는, 저 어머니의 마음을 보라.
그건 히메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지고지순한 모성애 중 하나였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히메는 그 순간, 도미닉 경을 떠올렸다.
도미닉 경에게 고백하고 결혼한다면, 자기도 저렇게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
저렇게 예쁜 아이와 함께 좋은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이왕이면 아들이면 좋겠다.
그리고 저런 예쁜 며느리를 얻어 저런 귀여운 손녀를 얻었으면 좋겠다.
히메는 어느 순간 그녀의 나쁜 버릇이 나오고 말았다.
바로, 너무 깊게 생각을 파고드는 버릇 말이다.
"...히메 씨?"
앨리시아는 최대한 호칭에 주의하며 히메를 불렀다.
"아! 네. 네."
히메는 그제야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앨리시아는 아직 잠들어 있는 도미니아 경을 안아 들었다.
도미니아 경은 앨리시아의 품이 따뜻한지, 조금 더 앨리시아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저희는 뭘 하면 좋을까요?"
앨리시아는 히메에게 현재 상황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글쎄요..."
히메는 잠시 고민했다.
일단 여기는 사당 내부인 것이 확실했다.
장식이라던가, 건축 양식 등이 사당과 매우 흡사했으니까.
하지만 여기는 조금 전과는 다르게 외부를 볼 수 있는 그 어떤 요소도 없었다.
그 말인 즉, 외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히메는 계속해서 고민하더니, 이내 앨리시아에게 이런 제안을 건넸다.
"일단 출구를 찾아보죠."
히메는 그 말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선 저쪽으로 가보는 것이 좋겠어요."
히메가 가리킨 곳은 길게 뻗은 통로였다.
조금 전 사원의 크기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긴 통로였지만, 히메는 자기 감을 믿었다.
"...그러죠."
앨리시아는 도미니아 경을 소중히 품에 꼭 안고, 히메와 함께 사원의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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