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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93화 (460/528)

〈 493화 〉 [492화]추적

* * *

그러나 트롬의 공격이 도미닉 경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하늘에서 거대한 하이힐이 떨어져 내려와 트롬을 밟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가차랜드의 시스템에 묶여 있다가 겨우 풀려난 트롬은, 가차랜드의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스승님!"

도미닉 경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기둥과도 같은 무언가를 보며 당황했으나, 이내 그의 종자인 앨리스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스승님! 도와주러 왔어요!"

도미닉 경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하늘 높은 곳에 있는 거대한 손 위에서 앨리스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앨리스와 그녀의 어머니는 축제에 놀러 나왔다가 전투에 휘말린 모양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다지 큰 피해를 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

"어머니께서 스승님께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하시네요!"

앨리스는 그녀의 어머니의 말을 도미닉 경에게 전달했다.

앨리스의 어머니는 키가 km 단위였기에 그녀가 허리를 굽히지 않는 이상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앨리스의 어머니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설 속의 서리 거인의 모습이었다.

물론, 굉장히 세련된 복장을 입은 서리 거인 말이다.

"고맙다고 전해 줘!"

앨리스와 그녀의 어머니의 도움으로 트롬이 무력화되자, 도미니카 경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도미닉 경은 트롬의 갑옷 조각들을 방패로 치워가며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트롬의 갑옷이 얼마나 크고 화려했던지, 트롬이 죽고 갑옷이 쪼글쪼글하게 찌그러졌음에도 길을 거의 막을 정도였다.

다행스럽게도, 이후 더 이상 도미닉 경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시내는 다시금 전쟁터가 되어 버렸으며, 이로 인해 외곽까지 빠진 도미닉 경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이제 이쪽으로 쭉 가면 되겠어!"

도미니카 경이 휴대폰으로 히메토츠키사이고 성을 검색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성은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었으며, 가차랜드의 랜드마크 중 하나였기에 제법 위치가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오전 관람객은 11시 반 까지만 받는다는데, 괜찮을까?"

"우린 관광하러 가는 것이 아니잖소! 무사시 공의 허락받았으니 괜찮을 거요!"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도미니카 경이 말하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도미닉 경이 달리는 거리에서, 어렴풋이 히메토츠키사이고 성의 꼭대기가 보였다.

성은 그리 머지 않은 곳에 있었고, 도미닉 경의 일행이 성에 도착하는 건 금방일 것이다.

...

"도미닉 경...?"

히메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남자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야말로 도미닉 경과 비슷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휠체어를 탄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 히메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이런, 풀려 버린 건가?"

휠체어를 탄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했다.

"적어도 의식이 끝날 때까지는 풀려나지 않기를 바랬건만."

"...아냐."

히메는 휠체어를 탄 남자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무엇이 아니라는 거지?"

"당신은 도미닉 경이 아냐."

"흐음."

휠체어를 탄 남자는 히메를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았다.

"날 도미닉 경과 헷갈린 건가?"

"..."

히메는 입을 꾹 다물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분하지만 확실히 눈앞의 남자는 도미닉 경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그렇다면, 꽤 성공한 셈이군."

"...그게 무슨 소리지?"

"이런 소리지."

그렇게 말한 남자는, 휠체어에 탄 채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는 도미닉 경이 가장 처음 돈을 모아 샀던 기사 정복 스킨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머리도 가지런히 묶여 있었고, 머리 위에는 도미닉 경의 상징과도 같은 삼색의 깃털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건!"

"그래. 도미닉 경의 첫 스킨이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스킨이 먼저인가?"

그렇게 말한 남자는 또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거기에는 언찬트 당시 해적 기사 스킨으로 변한 남자가 있었다.

히메는 해적 기사로 분장한 남자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흠? 겁에 질리지 않는군?"

"도미닉 경과 같이 있으면서 완화 되었으니까."

히메는 이 정도는 끄덕없다는 듯 계속해서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남자는 히죽 웃으며 히메의 턱을 잡고 시선을 맞췄다.

"주술이 빨리 풀린 것도 그렇고, 이렇게 공포를 마주하고도 꽤 멀쩡한 것도 그렇고. 생각보다 정신력이 대단하군?"

"...주술이라고?"

"몰랐나?"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분명 어제부터 지금까지 기억이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말이지."

"!"

히메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어제 있었던 이상한 일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당장 말해."

히메는 남자에게 으르렁거렸다.

히메는 옷에 있는 봉합선에서 몰래 옷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는 히메가 모든 암기를 빼앗겼을 때 비장의 한 수로 남겨두었던 것이었다.

"어허. 그 옷핀 버려. 안 그러면 지금 당장..."

남자는 한 손에 양손 검을 소환한 뒤, 사당에 있는 도미니아 경을 검 끝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울먹이는 궁수가 있었는데, 그 궁수는 한 손에 화살촉을 들고 도미니아 경을 겨누고 있었다.

신호만 보내면, 도미니아 경은 바로 제물이 되어 의식이 시작될 것이었다.

"봉인 해제 의식은, 더 빨리 진행될 테니까."

"큿...!"

그러나 남자는 이미 히메의 행동을 다 꿰뚫고 있다는 듯 히죽히죽 웃었다.

히메는 그 웃음이 겉으로는 도미닉 경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으나, 어째서인지 도미닉 경의 웃음보다 더 끔찍하고 기괴하다고 여겼다.

히메는 입술을 앙다물고 남자가 보는 앞에서 옷핀을 집어 던졌다.

완전히 무장이 해제된 것을 알게 되자, 남자는 여전히 빙글빙글 웃으며 검을 역 소환했다.

"넌 누구지?"

기습이 실패로 돌아가자, 히메는 일단 상대에게서 정보를 얻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내 기억이 없는 이유는 뭐지?"

"...뭐, 그게 알고 싶었던 건가?"

도미닉 경을 닮은 남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라고 중얼거리며 히메의 질문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남자는 히메의 말에 성실하게 답해주기 시작했다.

"일단 히메, 당신의 기억이 없는 이유를 알려주지."

남자는 휠체어를 타고 후진했다.

지금 거리는 대화를 나누기엔 너무나도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적당한 거리를 찾은 남자는, 이내 히메가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 주절주절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네 기억이 없는 이유는 간단해. 잠깐 미래의 너를 불러왔거든."

"미래의 나를?"

히메는 그 말에 아연실색하며 소리쳤다.

"그건 불가능해! 난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았단 말이야!"

히메는 그녀의 카드를 통해 이벤트 참여를 항상 거절로 둔 상태였다.

도미닉 경과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 이상, 그녀는 이벤트에 크게 관심이 없는 성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손목에 있는 팔찌가 보이나?"

"팔찌?"

히메는 고개를 숙여 손목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남자가 말한 대로 팔찌가 있었다.

히메가 어제 쇼핑을 나섰다가 마음에 들어 구입했던 팔찌였다.

"이게 뭐 어쨌다는 거지?"

"그 팔찌는 양산박의 것으로, 아주 강력한 주술이 걸려 있다."

"...!"

히메는 그제야 이 팔찌의 정체를 알고 경악했다.

"그 주술은, 시공간 축을 뒤틀어 적당한 목적을 가진 이를 찾아, 우리의 목적과 부합하게 뒤틀어 버리는 거지.일종의 에디터라고 할 수 있다."

"에디터...!"

히메는 처음 듣는 범죄 용어였지만, 그 이름이 굉장히 사악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난 이 에디터를 통해 히메 당신의 몸에 미래의 히메를 씌웠지. 그리고... 도미니아 경을 납치하게끔 인식을 뒤틀었다."

"..."

히메는 그 순간, 모든 퍼즐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에 집사 닌자가 보았던 한냐 가면의 여성. 그리고 어째서인지 납치된 여자아이.

히메는 이 모든 것이 눈앞의 남자의 계략이라는 것을 알고 분노했다.

"도대체 왜, 왜! 왜 나였지?"

"왜 너였냐고?"

눈앞의 남자는 당연한 것을 물어본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야, 넌 도미닉 경의..."

"도미닉 경의?"

"아니, 아니야. 이건 조금 있다가 알려 줘야겠군. 제물이 되기 전에 말이야."

남자는 그게 더 재밌겠다는 듯 히죽거렸다.

"대신 내 정체에 대해서 물었으니, 그것부터 알려주지."

남자는 어차피 제물이 될 히메에게 과할 정도로 정보를 건네주었다.

어차피 제물이 될 것이었기에, 가는 길에 억울하지나 말라는 듯이 말이다.

"내가 도미닉 경과 닮았다고 했지?"

남자는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휠체어 위에서 그의 옷은 백금과 황금, 그리고 은으로 장식된 화려한 갑주였다.

"그건 매우 당연한 거야."

남자는 다시 한번 옷을 갈아입었다.

이번에 그가 입은 옷은 아무 스킨도 입지 않았을 때, 티셔츠와 면바지를 입은 도미닉 경이었다.

그가 입은 하얀 티셔츠에는 '난 이제 도미닉 경이야.'라고 적혀 있었다.

"난, 도미닉 경을 매우 흠모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남자는, 이내 안대마저 풀어헤쳤다.

안대 속에 엉망이 된 피부가 있는 도미닉 경과는 달리, 그의 얼굴은 매우 깨끗하기 그지없었다.

남자는 서서히 안대를 쓰고 있었던 쪽의 눈을 떴다.

안대 속에 있던 그의 눈동자는, 빨간색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 머리, 내 눈, 내 모든 것을 도미닉 경처럼 꾸미기 위해 노력할 만큼."

남자는 섬뜩하게 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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