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2화 〉 [491화]추적
* * *
도미닉 경은 운류 무사시가 도착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
아니, 오히려 전선을 조금 더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다.
이는 도미닉 경의 특성 [탱커]와 특수 기술 [기수]로 인해 아군 전체에게 피해량 감소 버프를 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밀리던 전선은 이내 한 게이트 앞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고, 운류 무사시의 합류로 게이트 하나를 파괴하는 것까지도 성공했다.
"늦었네, 사위."
운류 무사시는 넉살 좋게 말하며 검에 묻은 차원의 조각들을 털어내었다.
운류 무사시는 붉은 말을 타고 있었는데, 그 말마저 예사롭지 않았다.
도미닉 경은 운류 무사시의 일격에 반으로 갈라져 사라지는 게이트를 보며 말했다.
"늦지 않았소."
"그렇다면 다행일세. 그나저나 왜 나를 보자고 했는가?"
운류 무사시는 달려드는 마수들을 향해 일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운류 무사시를 중심으로 약 5미터 내에 있던 모든 마물들은 깔끔하게 반으로 잘려 쓰러졌다.
얼마나 그 단면이 깔끔한지,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할 정도였다.
"오면서 조금 듣기는 했지만, 우리 성에 오려는 이유에 대해선 정확히 설명해주지 않더군."
무사시의 말에 도미닉 경은 무사시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무사시에게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당신의 성 지하에 있는 봉인이 풀리려고 하고 있소."
"음."
도미닉 경의 말에 운류 무사시는 거기까지는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에서 온 내 손녀를 제물로 바쳐서 말이오."
"...그것만 들어도 왜 내가 성의 출입을 허락해야 하는지 알 수 있군."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말에 넉살 좋게 말했다.
"자네에게 손녀라면, 내게는 증손녀가 아닌가!"
"...확정 된 것은 없소."
"히메하고 만나기로 했다면서?"
"그렇소."
도미닉 경은 원래대로라면 내일, 히메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내 딸은 내가 잘 알지. 요즘 들어 눈빛이 달라졌더군. 분명히 내일 자네에게 고백을 할 생각이었던 게야."
"...그런 걸 지금 말해줘도 되는 거요?"
"이런, 실수했군."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지적에 호탕하게 웃으며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이거, 실례를 했으니 어떻게든 사죄를 해야 하는 법 아니겠나."
그렇게 말한 운류 무사시는, 이내 도미닉 경에게 낡은 열쇠 하나를 던졌다.
도미닉 경은 무심코 그 열쇠를 잡아챘다.
"열쇠?"
도미닉 경이 고개를 갸웃했다.
"성의 지하로 통하는 열쇠일세."
운류 무사시는 여전히 말 위에서 도미닉 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죄의 의미로, 성의 출입을 허가하겠네."
"..."
도미닉 경은 운류 무사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운류 무사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정중히 말이다.
"고맙소."
"별 건 아닐세."
운류 무사시는 말의 고삐를 쥐고 잡아당겼다.
말은 무사시의 행동으로 인해 앞발을 들고 마구 휘둘렀다.
그리고 달려드는 악당의 얼굴에 말의 발굽을 제대로 새겨 주었다.
다시 땅에 네 발을 모두 디딘 말 위에서,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 가게! 혹시라도 길을 뚤어야 한다면, 얼마든지 도와주지!"
운류 무사시는 다시금 정신을 집중해 있는 힘껏 일검을 휘둘렀다.
그 검이 얼마나 예리하고 빠른지, 검의 풍압으로 인해 생겨난 바람에 전장에 넓은 길이 생겨났다.
"가게!"
"...고맙소!"
도미닉 경은 그대로 뚫린 곳을 향해 달려갔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니카 경과 앨리시아가 근처에 있었기에 도미닉 경은 그 둘과 바로 합류할 수 있었다.
"갑시다! 허락을 받았소!"
"오케이!"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과 합류해 길을 뚫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앨리시아는 자기 특수 기술, [페럴란트 갱]을 사용해 이 길이 다시 메워지지 않도록 임시 조치를 취했다.
페럴란트 갱으로 소환된 갱단들이 마족들과 마물들, 그리고 악당들을 막아섰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앨리시아는 그 길을 따라 달리고 또 달렸다.
["멍청한 놈들!"]
그러나 아무리 빠르게 이 상황을 헤쳐 나간다고 해도, 이렇게나 적이 많으니 당연히 방해도 많아지는 법.
히메토츠키사이고 성으로 달려가는 도미닉 경 일행 앞으로, 슬라톤 벡스가 나타났다.
슬라톤 벡스는 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지는 그의 특성상 이번 전장에서 아주 끔찍할 정도로 활약하고 있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수백 개의 입으로 쑤셔 넣으면, 그 수백 개의 입이 그것이 어떤 고기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마구 씹어대었다.
그러면 슬라톤 벡스의 권능은 점점 커져가고, 그렇게 커진 권능으로 슬라톤 벡스는 더 많은 고기를 입에 쑤셔 박았다.
그렇게 지금의 슬라톤 벡스는 힘으로만 따진다면 마왕급 이상.
마왕급의 힘에 걸맞은 거대한 몸뚱이로 도미닉 경의 일행 앞을 막아선 슬라톤 벡스는 이내 도미닉 경에게 사악한 말을 내뱉었다.
["저번의 굴욕을 갚아줄 때가 왔구나, 필멸자!"]
"슬라톤 벡스!"
도미닉 경은 검과 방패를 들고 슬라톤 벡스의 진명을 외쳤다.
그러나 슬라톤 벡스는 진명을 들었음에도 끄떡 없었다.
["내 강대한 힘에 비하면, 이름을 불리는 것 정도는 사소한 일이지. 흐흐."]
슬라톤 벡스는 전장에서 마구잡이로 포식한결과,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진명을 불리는 것은 그다지 큰 페널티가 되지 않을 정도.
슬라톤 벡스는 비열하게 웃었다.
도미닉 경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빨리 도미니아 경을 구출하러 가야 하는데, 하필이면 이런 강대한 마족이 앞을 가로막다니!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슬라톤 벡스의 정수리에 검이 하나 꽂혔다.
["으윽!"]
슬라톤 벡스는 머리에 박힌 대검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내 슬라톤 벡스의 감정은 놀람에서 경악으로 바뀌었다.
자기 힘이 대검으로 인해 생긴 상처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 어째서?"
"도미닉 경! 빨리 가라!"
도미닉 경은 슬라톤 벡스의 정수리에 대검을 박아 넣은 거구의 사내를 보았다.
도미닉 경은 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바로, 학살자 왕이었다.
과거 누명을 썼을 때... 아니, 누명을 해결하기 전에 던전에서 만났던 인연이었다.
"도미닉 경에게는 은혜가 있지. 오늘 그 은혜를 갚겠다!"
학살자 왕은 그렇게 말하며 자기 대검을 비틀었다.
["크아아악!"]
슬라톤 벡스는 자기 힘이 더 빠르게 새어 나가는 것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고맙소!"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슬라톤 벡스를 지나쳤다.
만일 시간이 있었더라면 슬라톤 벡스를 또 한 번 추방했겠으나, 지금은 도미니아 경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그러나 운명의 장난일까?
도미닉 경의 앞을 막아서는 건 슬라톤 벡스 만이 아니었다.
"우리 다시 만난다고 했지, 자기?"
도미닉 경은 일행의 앞을 막아선 미스 달콤달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차랜드에 기상 이변을 일으켰던 범죄자로, 역시나 추방되었던 악당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사탕으로 된 골렘들과 젤리로 된 슬라임, 그리고 솜사탕으로 된 유령들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녀의 진정한 정체는 바로 설탕술사인 모양이었다.
설탕을 통해 마법을 부리는 종류의 마녀 말이다.
도미닉 경은 일행의 앞을 막아서는 이들을 보며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쉽게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탕 자체가 단단해봤자 얼마나 단단하겠냐마는, 도미닉 경의 일행은 딜러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다.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이 분명했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의 조력자도 한 사람이 아니었다.
"후배! 내가 왔다!"
도미닉 경은 하늘이 어두워짐을 느꼈다.
아니, 이미 하늘은 도미닉 경의 기함 페럴란트의 영광으로 인해 한 번 어두워진 상태였지만, 도미닉 경은 또 한 번 하늘이 어두워졌다고 생각했다.
펄럭이는 소리가 들린다.
도미닉 경이 하늘을 바라보자, 거기엔 붉은 피부의 거대한 악마가 불타는 채찍을 들고 박쥐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고 있었다.
"선배!"
도미닉 경은 자기도 모르게 그 호칭으로 그를 불렀다.
그렇다.
그는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경비로 들어갔을 때 도미닉 경에게 도움을 많이 주었던 선배, 왈록이었다.
왈록은 불타는 채찍을 휘두르며 사탕 골렘들과 솜사탕 유령들을 불태웠다.
"내 아이들!"
설탕으로 만들어진 피조물들은 불길에 닿자마자 녹아내리거나 타버렸기에, 미스 달콤달콤은 비명을 질렀다.
"지금이야!"
왈록은 도미닉 경에게 소리쳤다.
왈록이 집중적으로 채찍을 휘두른 곳에, 사람 셋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틈이 생겨난 것이다.
도미닉 경은 왈록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재빨리 그 틈새로 뛰쳐나갔다.
다행스럽게도 설탕 피조물들은 혼란에 빠져 있었기에 도미닉 경의 일행은 손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서 빠르게 명성을 쌓았던 만큼 적도 많은 사나이였다.
["하하! 나 트롬이 돌아왔다!"]
도미닉 경이 달려가던 땅이 갈라졌다.
갈라진 땅의 틈새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양산박의 힘에 취한 전 의원, 그리고 현 레이드 보스 트롬이 나타났다.
이 상황을 묵묵히 따라오던 앨리시아가 순간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뭐 재생실인가요?"
"재생실?"
"지금까지 잡았던 보스를 다시 한번 잡아야 되는, 아주 극악한 방이죠."
"그거 재밌겠구려."
"생각보다는 아니에요, 아버님."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의 말을 듣고 꽤 재밌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앨리시아는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트롬은,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감히, 감히 이 서버 제일검 트롬 의원의 말을 무시해! 내가, 내가! 가차랜드 최고가 될 이 내가! 무시를 당해!"]
트롬은 이성을 잃고 도미닉 경에게 봉황이 새겨진 화려한 검을 휘둘렀다.
검의 궤적을 따라 무지개색 이펙트가 흘러나와 시선을 분산시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