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88화 (455/528)

〈 488화 〉 [487화]이변

* * *

"이럴 수가."

도미닉 경은 저 멀리■■■■에게 잡혀가는 도미니아 경을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건, 앨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맙소사."

앨리시아가 그 자리에서 바로 주저앉았다.

도미닉 경은 어떻게든 저 멀리 도망치는■■■■를 따라가 보려고 했으나,■■■■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도미닉 경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추적하는 것을 멈추고 다시 저택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택으로 돌아오자, 도미닉 경은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앨리시아를 보았다.

그녀는 어떤 말을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건... 아니, 아니야. 설마..."

그러고는,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열심히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맙소사...!"

"무슨 일이오?"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에게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앨리시아는 도미닉 경에게 지금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가차랜드가 멸망해 버리고 말아요."

"...? 제대로 말해 보시오."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전, 어머님의 손목을 보셨나요?"

"아쉽게도 보지 못했소."

도미닉 경은 방패를 들어 올리느라 상대방의 손목을 보지 못했다.

애초에 도미닉 경은 상대방의 어깨나 골반을 보고 움직임을 확인하는 편이었기에, 손목까지 볼 여유는 없었다.

"어머님의 손목에 팔찌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건..."

앨리시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양산박의 것이었어요."

"양산박!"

도미닉 경은 그 지긋지긋한 이름을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

도대체 왜 양산박의 이름이 거기서 나온다는 말인가?

"제 생각엔 아무래도 도미니아 경을 잃어버린 어머님께 양산박이 접근해 속인 것 같아요."

앨리시아는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감쌌다.

"과연."

도미닉 경은 이제서야■■■■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녀는 양산박의 계략으로 인해 이성을 잃고 본능만 남은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의문이 남아 있소."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에게 아직 남아 있던 궁금증을 건넸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가차랜드가 멸망한다는 거요?"

"...잠시만요."

앨리시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이 정도는 말해도 되겠다는 생각하며 도미닉 경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과거의 뉴스를 보면, 양산박은 가차랜드를 뒤엎을 계략을 꾸미고 있었어요."

"그건 알고 있소. 하지만 최근 양산박은­"

"네. 양지화를 지향하고 있죠. 하지만..."

앨리시아는 도미닉 경의 눈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멸망에 대해서 알려면, 일단 양산박이 어떤 조직인지부터 알아야 해요."

"양산박이 어떤 조직이냐니?"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에게 빨리 말해 보라는 듯 시선을 던졌다.

앨리시아도 뜸을 들일 생각은 없었기에, 곧바로 말을 꺼냈다.

"양산박은 본래 가차랜드의 일원이 아니었어요. 가차랜드가 만들어졌을 때, 외부에서 유입된 불법 체류자들에 가깝죠."

"음."

"그러다가 양산박의 세력이 커지자, 중앙 시스템은 양산박을 가차랜드의 필요 악으로 규정했어요."

앨리시아는 여기서 잠시 한 템포를 끊어 갔다.

"그래서 양산박은 가차랜드에 있을 수 있지만, 죽으면 중앙 시스템의 안내받아 높은 확률로 추방되죠. 그게 바로 이런 이유예요."

"과연."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에 알려진 바로는, 양산박이란 조직은 외부에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가차랜드에 심은 암세포예요."

"누가 말이오?"

"그건 아무도 몰라요."

앨리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양산박이 모시는 자들이 있다고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정보는 미래에도 밝혀지지 않았으니까요."

"양산박이 모시는 자들이라."

"미래의 정보에 의하면, 그들은 악마들처럼 제물을 바쳐 소환할 수 있다고 해요. 정확히 말하자면, 의도치 않은 상황으로 시스템을 마비시켜 그 존재들을 불러오는 거죠."

"...조금 더 쉽게 말해주시오."

"양산박은 세상을 부숴 버릴 악마를 불러내기 위한 제물로, 도미니아 경을 선택했다는 거예요."

앨리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을 덜덜 떨었다.

"물론, 제가 틀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일단 도미니아 경을 구출하러 가는 것이 먼저예요. 도미니아 경이 안전하든, 안전하지 않든 간에 말이죠."

도미닉 경은 그제야 도미니아 경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미적거릴 시간이 없겠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제대로 된 장비를 입고 나올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준비가 되는 대로 도미니아 경을 구하러 갑시다. 준비하는 동안,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해 보시오. 나도 있는 힘껏 도움을 요청하겠소."

도미닉 경의 말에 앨리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앨리시아는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미래의 도미니아 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선, 도미니아 경과 메리, 그리고 미네르바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였다.

...

"...이런 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양산박의 비밀 기지.

왕의 옷을 입은 오만한 자, 왕이는 자기 목 아래 겨눠진 검 끝의 서늘함을 느끼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설마 이런 때에 올 줄은 몰랐다고."

"그렇겠지."

왕이의 앞에는 휠체어를 탄 남자가 있었다.

그는 창문을 등지고 왕이에게 환한 미소를 날리고 있었는데, 그 편안하고 포근한 미소와는 반대로 날이 바짝 선 양손대검을 한 손으로 든 채 왕이의 목젖을 겨누고 있었다.

휠체어를 탄 남자의 뒤편에 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는 불타는 비밀기지가 보였는데, 방금 전 휠체어를 탄 남자가 소환한 괴물들과 악당들이 마구 날뛰고 있었다.

"다들 똑같은 말을 하더군."

휠체어를 탄 남자가 말했다.

그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세 명의 사람을 만났다.

IQ 150 이상이라고 적힌 모자를 쓴 여자, 화려한 갑옷을 입은 전사, 그리고 역시나 화려한 천옷을 입은 궁수.

"하지만 다들 결과가 달랐지."

휠체어를 탄 남자가 히죽거렸다.

"주인을 몰라본 녀석은 죽었고, 알아보고 납작 엎드린 사람은 살았다."

왕이는 힐끔 휠체어를 탄 남자의 옆에 선 엘프 궁수를 보았다.

엘프 궁수는 왕이의 시선을 느꼈는지, 흠칫 놀라며 그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 눈치 빠른 녀석은 도망치고 말았지."

곧 다시 보겠지만 말이야. 라고 휠체어를 탄 남자가 말했다.

"너는 무슨 선택을 내릴까?"

수상한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환하던지, 그의 입꼬리가 광대뼈에 걸릴 정도였다.

"...하나만 묻지."

"뭐, 그러도록 해."

왕이는 겁 없이 휠체어를 탄 남자에게 물었다.

물론 겁에 질린 모습을 보였다간 실망한 남자에게 바로 목이 뎅겅 날아갔을 테지만, 적어도 지금은 남자의 흥미를 끄는 데 성공했다.

"왜 지금이지?"

"무슨 소리지?"

"왜 하필 지금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내려왔느냐는 말이다."

"흠."

휠체어를 탄 남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왕이에게 말했다.

"이유가 있어야만 와야 하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왜 이런 어정쩡한 시기에..."

"어정쩡한 시기?"

남자는 왕이를 향해 피식 웃음을 날렸다.

"어정쩡한 시기라니, 난 분명히 처음 너희를 이곳에 보낼 때부터 말했어. 언제나 내가 올 때를 대비하라고 말이야."

"...그건 몇 세대나 전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긴. 그렇긴 하지. 몇 세대면 이미 내가 준 과업을 잊고 평화로움에 빠질 때긴 해."

휠체어에 탄 남자는 왕이의 목에 겨눈 검을 거뒀다.

그러고는, 검신을 매만지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어쩌면 최고의 타이밍에 온 걸지도 모르겠군. 조금만 더 늦었어도 내 최초의 계획은 완전히 흐지부지 되었을 것 아니야?"

그렇게 한참을 웃던 남자는, 이내 다시금 왕이를 바라보았다.

"자... 그럼, 이제 선택할 시간이군."

남자는 다시 한번 왕이에게 질문했다.

그의 목에 칼을 겨누기 전에 했었던 질문 하나를.

"내 계획에 동참해라. 아니면 죽던가."

왕이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양산박의 간부로서 남에게 허리 한 번 숙이지 않고 살아온 왕이로써, 지금, 이 상황은 아주 자존심을 박살 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왕이는 감히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거슬러서는 안 되었다.

거절의 의사를 밝히는 순간, 저 거대한 양손 검은 곧바로 자신을 두 동강 내버리리라.

혹은 머리, 가슴, 배로 토막토막 잘려져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갈지도 모르지.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가차랜드에선, 죽음이란 딱히 의미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양산박의 간부로서의 죽음은 무서웠다.

죽는 순간, 더 이상 이 가차랜드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가차랜드에서 추방당하면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끔찍한 고통을 곱씹어가며 잔혹한 토착 생물에게 영혼마저 뜯겨나가게 될까?

왕이는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무시무시한 고통의 두려움을 생각해 보았다.

그건 너무나도 두려워서, 왕이 조차도 몸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왕이는, 이내 눈앞에 있는 남자의 제안에 대답했다.

"엿 먹어."

왕이는 저 남자 밑에서 굽실거리며 가차랜드의 멸망에 일조하는 것보다는, 당당하게 한 조직의 머리로서 죽는 것이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비록 그것이, 영원한 고통 속에서 사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 선택을 존중하지."

그 말을 들은 남자는 표정을 싹 굳힌 채, 한 손으로 양손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내 번뜩이는 빛과 함께 무언가가 잘려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양산박의 마지막 안전장치가 사라졌다.

양산박은... 과거로 돌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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