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7화 〉 [486화]이변
* * *
이런 일은 비단 도미닉 경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의 가차랜드는 아주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어, 어? 잠깐, 왜 포션이 효과가 없지?"
"잠깐! 나 여기 나갈 거라고! 이봐! 거기 누구 없어?"
사람들은 갑자기 일어난 이변으로 인해 큰 혼란에 빠졌다.
스토리 모드를 깨고 있던 사람들의 포션은 그저 빨간 물이 되었다.
스토리 모드의 난이도는 도저히 깰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게, 그리고 급격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런 스토리 모드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했으나 시스템 창이 열리지 않았다.
그 말인 즉, 스토리 모드 속의 사람들은 그 스테이지에 갇혀 버린 상태라는 뜻이었다.
"잠깐! 패턴! 패턴!"
"브레스! 브레스 조심해!"
"무슨 잡몹이 전멸기를 써?"
이는 레이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레이드 보스들은 광폭화 되어 지금까지 자신들을 잡아왔던 이들을 제멋대로 찢어 버렸다.
그러고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풀려나기 시작했다.
"어, 어어? 저게 왜 여기에 있어?"
"아니, 잠깐! 왜 여기가 부활 불가 지역"
가차랜드에서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으흐하하하하! 마침내! 마침내 풀려났다!"
과거 근접 딜러 연합의 수장이었던 트롬 의원이 제일 앞서 가차랜드에 발을 디뎠다.
"지금까지 받았던 멸시와 조롱을 그대로 돌려주리라!"
그렇게 말한 트롬은, 화려한 봉황이 장식된 검을 휘둘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성급이 높아 트롬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으나, 대부분은 아니었다.
애초에 레이드 보스는 제법 높은 성급의 사람들이 모여서, 그것도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해야 하는 컨텐츠였다.
그런 만큼, 레이드 보스의 스탯은 어설픈 성급을 가진 이들이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까지라면 가차랜드에서도 꽤 자주 일어나는 사건 사고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어째서인지, 죽은 사람들이 부활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기는 부활 불가 지역이 되어, 죽은 사람들은 부활 가능 지역이 될 때까지 영혼 상태로 떠돌아다녀야만 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시, 시스템이!"
다행스럽게도, 지금, 이곳에는 이 상황에 대해서 적당히 알고 있을 법한 코더가 하나 있었다.
그는 축제를 즐기기 위해 휴가까지 쓰고 나온 사람이었는데, 하필이면 휴가 나온 첫날 이런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시스템이... 망가지다니."
코더는 망연자실하게 자기 눈에만 보이는 가느다란 선들을 바라보았다.
이 선들은 가차랜드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이어 주는 선이었다.
그리고 이 선들은 모두 시스템을 향해 이어져 있었었다.
그래. 과거형이다.
현재 코더의 눈에는 처참하게 망가진 시스템이 보였다.
일반인들이 아닌, 오로지 코더들의 눈에만 보이는 가차랜드의 내면 속에 있는 바로 그 시스템은, 이어져 있던 모든 선들이 갈기갈기 찢겨진 채로, 쪼글쪼글 찌그러져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 누가, 누가 저런 짓을...!"
코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시스템은 중앙 시스템으로 보호받고 있어. 중앙 시스템은 또 보안 시스템에게 보호받고 있고. 그런데 어떻게 시스템이 망가질 수가 있지?"
내부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일 텐데. 코더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이야."
코더는 갑자기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섬뜩함을 느꼈다.
"내부에서는 절대 불가능하지. 내부에서는."
코더는 폴짝 뛰어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게서 멀어졌다.
코더는 바로 그 괴한을 바라보았는데, 그 괴한은 지금까지 가차랜드에서 본 적이 없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깡 마른 몸에 큰 키를 가지고 있었는데, 얼마나 그 키가 큰지 휠체어에 타고 있었음에도 코더와 시선을 마주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휠체어가 기성품보다는 조금 큰 편이긴 했으나, 그것을 감안 하더라도 수수께끼의 남자는 굉장히 키가 컸다.
"하지만 외부에서라면 말이 다르지."
수수께끼의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그는 거의 땅에 끌릴 정도로 긴 갈색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휠체어의 바퀴에 머리카락이 걸리는 일은 없었다.
그는 탁한 녹색 눈동자로 코더를 바라보았다.
그는 긴 머리로 왼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코더는 어째서인지 누군가가 생각이 났으나, 정확히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코더는 그런 것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바로 수수께끼의 남자가 방금 한 말 때문이었다.
"외부에서라고...?"
"그래."
의문의 남자는 코더를 향해 활짝 웃었다.
"참 긴 시간이었지만, 마침내 성공하고 말았지."
"...?"
"나는 이런 꼴이 되어서 경영에도 참여하지 못하는데, 혼자서 승승장구하는 건 너무하잖아?"
그렇게 말한 의문의 남자는 허공을 향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남자의 뒤편으로 수많은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그 게이트들은 하나같이 사악하기 그지없었는데, 그 게이트에서 나오는 인물 하나하나도 예사롭지 않았다.
코더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게이트를 만들어낸 남자의 행동에 크게 놀랐다.
얼마나 놀랐는지,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코더는 다시 한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시스템의 연결마저 끊겨 버린 허공을.
"불가능해."
코더는 이제 거의 숨이 넘어갈 듯했다.
"시스템도 없는데, 어떻게 무언가를 생성할 수 있지?"
"아까도 말했듯이."
수상한 남자는 코더의 의문에 이렇게 답했다.
"외부에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휠체어에 탄 남자는 활짝 웃었다.
그 미소는 너무나도 밝아, 이 혼란을 만든 사람의 표정이라고는 전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어이쿠."
휠체어에 탄 남자는 자기 뒤에 생성된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이거, 길을 비켜줘야겠군."
그렇게 말한 남자는 코더의 손을 잡고 조금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게이트에서 무언가가 태동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끔찍할 정도로 끈적거리는 검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잉크로 된 팔들이 엮여져 만들어진 검은 팔이었는데, 코더는 그 팔만 보았음에도 등골이 서늘해지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저, 저건 대체..."
"글쎄."
휠체어에 탄 남자는 코더가 충격을 먹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쁜 것 같았다.
그는 생글생글 웃으며 코더를 바라보았다.
"이계의 존재들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이계의 존재들이라고?"
"그래."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게이트가 다시 맥동했다.
그리고 마치 먹은 것을 토해내듯 그 끔찍한 피조물을 뱉어내었다.
끈적거리는 검은 잉크 같은 무언가가 잔뜩 뒤덮인, 끔찍한 피조물을.
그 피조물은 수십 개의 입을 가지고 있었고, 수백 개의 눈을 가지고 있었으며, 수천 개의 팔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마...침...내..."]
그 피조물은 마치 목에 무언가가 걸린 듯 잠시 콜록거렸다.
그러자 모든 입에서 검고 불길한 끈적거리는 덩어리들을 뱉어내었다.
그제야 피조물은 제대로 된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마침내... 내가 돌아왔도다!"]
"저, 저건 대체...?"
코더는 그 끔찍한 모습에 정신이 타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끔찍할 정도의 야근을 버티며 강해진 정신력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그 정신력이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코더는 외면하듯 그 존재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보기 힘들다는 듯이.
그러나 휠체어를 탄 사나이는 그런 코더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더니, 엄청난 괴력으로 코더가 그 괴물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제대로 봐. 지금부터 가차랜드에 일어날 일들을."
휠체어를 탄 이는 온몸을 비틀며 무의미한 저항을 하는 코더의 귀에 속삭였다.
"저자는 슬라톤 벡스야. 추방된 마족이지."
그렇게 말한 남자는, 이번에는 다른 존재들을 향해 코더의 시선을 돌려주었다.
"저자는 미스 달콤달콤. 알지? 저번에 약간... 장난을 좀 치긴 했었지."
"아, 저자는 모를 수도 있겠다. 다른 데서 데려온 용병이니까."
코더는 몸을 덜덜 떨었다.
한계에 다다른 정신이 육체에 영향을 미쳐, 더 이상 육신도 버티지 못하기 시작한 것이다.
코더는 코에서 코피를 흘리며 눈을 파르르 떨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코더의 머리를 쥐고 있던 남자는 그런 코더의 상태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정신력이 좀 부족하네."
휠체어를 탄 남자는 재미없다는 듯 표정을 굳히며 코더를 풀어 주었다.
코더는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것을 본 탓에 다리의 힘이 풀려 버렸으나, 본능적으로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땅바닥을 기었다.
"그래. 그래도 약간의 생존 본능은 있다는 건가?"
휠체어를 탄 남자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코더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최대한 코더와 가까운 거리까지 허리를 숙인 남자는, 코더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제발, 가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에게 전해."
코더에게 말하는 남자의 앞머리가 바람에 살랑였다.
지금까지 앞머리로 가려져 있던 그의 왼쪽 눈에는, 검은 안대가 존재했다.
남자는 탁한 에메랄드색 눈을 빛내며 코더에게 속삭였다.
"네 모든 것을 박살 내고 말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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