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6화 〉 [485화]이변
* * *
"...세상에."
앨리시아는 햔냐 가면을 쓴 채 나무들을 베어 넘기며 이 저택으로 다가오는 여성을 보았다.
"시어머니께서... 여긴 어떻게..."
앨리시아는 충격을 받은 눈으로 한냐 가면의 여성을 바라보았다.
"...아는 사람이오?"
"시어머니예요."
앨리시아는 굳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아버님의... 아내죠."
"...!"
도미닉 경은 그제야 눈앞에 있는 무시무시한 여인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여인은, 바로 도미닉 경이 미래에 맞이할 배우자였다.
"맙소사."
도미닉 경은 이 상황에 너무나도 놀라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정말 내가 결혼을 하긴 할 모양이로군."
"...지금까지 아닐 거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그럴 수밖에. 미래라고는 하지만 조금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잖소. 뭐랄까... 확 와닿는 것도 없었고."
"음."
확실히 도미닉 경의 말대로였다.
누군가가 다가와서 당신은 미래에 어떻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하더라도 대체 누가 믿어 주겠는가?
그나마 여긴 가차랜드였고, 이벤트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믿기는 쉬운 편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믿는 것과 납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나저나..."
도미닉 경은 문득 저[☆☆☆☆☆한 밤에 용의 피에 눈뜬■■■■]의 한 부분에 눈길을 돌렸다.
"다른 것들은 다 익숙한데, 저 하얀 별 다섯 개는 무엇을 뜻하는 거요?"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다른 이들의 별을 생각해 보았다.
검은색과 하얀 색.
두 색깔의 별이 혼재되어 있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는 검은 별이 그 사람의 성급을 나타내고, 흰 별은 앞으로 승급할 수 있는 별의 개수를 나타내었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검은 별은 무조건 하나 이상 있어야만 했다.
가차랜드의 성급은 1성부터 시작이었으니까.
그건 지금까지 도미닉 경이 그 어떤 사람들을 봐와도 변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 도미닉 경이 알고 있던 바로 그 사실이 눈앞에서 와장창 깨져나갔다.
눈앞에 있는 자는, 하얀 색 별만 다섯 개를 가지고 있었다.
"설마 0성이라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닐 테고..."
"초월이에요."
도미닉 경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앨리시아가 도미닉 경에게 정답을 알려주었다.
"윷놀이를 할 때를 생각하면 편할 거예요."
"윷놀이가 뭐요?"
"...죄송해요. 페럴란트에는 없는 풍습이라는 걸 깜빡했어요."
앨리시아는 도미닉 경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이런 비유를 들었다.
"5성까지 승급한 이후에, 또 한 번의 승급이 있어요. 바로 초월 등급이죠. 기존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일종의 반신의 경지에 도달하는 거죠."
"그건 알고 있었소."
도미닉 경은 예전에 업데이트에서 초월 등급이 새로이 나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초월에 대한 개념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네요."
앨리시아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 초월 등급은, 기존에 있던 성급을 아예 뒤집어 버리죠. 바로 저렇게요."
앨리시아는 다시금[☆☆☆☆☆한 밤에 용의 피에 눈뜬■■■■]의 등급 부분을 가리켰다.
"과연."
도미닉 경이 앨리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초월 등급이 되면, 저렇게 표시가 된다는 뜻이구려."
도미닉 경만의 방법으로 이 상황을 이해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편할 거예요."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의 말을 듣고는 별문제에 대해서는 납득했다.
그러나 아직 수많은 의문점이 남아 있었다.
"그나저나 그... 미래의 아내가 왜 갑자기 내 저택을 향해 오고 있는 거요?"
도미닉 경은 계속해서 쓰러지고 있는 나무들을 보았다.
"굉장히... 화가 나 보이오."
"아마 도미니아 경 때문일 거예요."
돈 카게야샤가 도미닉 경과 앨리시아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방금 전 손녀를 찾는다는 말을 들으신 분 없나요?"
"...음!"
도미닉 경은 방금 전 한냐 가면의 여인이 내뱉었던 말을 기억해냈다.
분명 '내 손녀는 어디 있지?'라고 말했던 것 같았다.
"과연."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의 모든 정보를 동원해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대략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저[☆☆☆☆☆한 밤에 용의 피에 눈뜬■■■■]는 어린 도미니아 경의 시간 선에서 온 사람일 것이다.
그 시간 선에선 앨리시아 부부가 굉장히 바쁜 삶을 살고 있고, 그로 인해 도미니아 경은 도미닉 경의 저택에서 생활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도미닉 경과 그의 부인은 도미니아 경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나, 어느 순간 도미니아 경이 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는 도미니아 경이 너무 걱정이 된 나머지 도미니아 경의 흔적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너무나도 큰 걱정에 점점 심신이 지쳐가기 시작한■■■■는, 이내 이성을 잃고 그저 도미니아 경을 찾기 시작한 누군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괜찮을지 모르겠군."
도미닉 경은 일단 저 여인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이 행동이 미래의 도미닉 경과 그 부인에게 해가 가지 않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괜찮을 거예요."
앨리시아는 그런 도미닉 경을 안심시켰다.
"예전에도 세 번 정도 저렇게 되신 적이 있어요. 그때마다 엉망이 되시긴 하셨지만,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다 나으셨으니까요."
그 옆에 있던 돈 카게야샤도 한 손 거들었다.
"무엇보다도, 가차랜드에선 죽어도 부활할 수 있으니까요."
"...뭐, 그렇기는 하오."
도미닉 경은 가끔가차랜드의 부활 시스템을 깜빡할 때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미닉 경은 이제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스펙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인 스탯만으로도 레이드 보스들의 전멸기를 막아 낼 수 있을 정도고, [탱커]특성으로 그 효과가 배가된다.
그리고 [기수]로 피해를 경감시키고, [시네마틱]을 통해서 위험한 순간들을 벗어난다.
무엇보다도, 5성에 도달한 이후 얻은 특수 기술 [반응성 장갑]으로 인해, 도미닉 경은 15초마다 현재 체력의 5%의 피해를 받을 경우, 최대 체력의 15%에 달하는 보호막을 얻을 수 있었다.
이 특성과 특수 기술들의 시너지로 인해, 5성에 도달한 도미닉 경은 무려 공간을 절단하는 무시무시한 강자, 운류 무사시가 혼신의 힘을 담아 내지른 일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도미닉 경에게 부활이란 시스템은, 여전히 낯선 것이었다.
"...그렇다면 걱정 없이 싸울 수 있겠구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검과 방패를 소환했다.
그리고 검과 방패를 들어 올리며■■■■를 노려보았다.
■■■■는 도미닉 경의 시선을 느낀 듯, 갑자기 멈칫했다.
["도미닉 경...?"]
■■■■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한냐 가면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떨리는 것이, 도미닉 경이 있는 곳까지 느껴졌다.
["아냐, 도미닉 경은 맞지만, 도미닉 경이 아닌..."]
한냐 가면의 여성은 도미닉 경을 보며 혼란스러워 했다.
["분명히 난 도미니아 경이 숲에서 미아가 되었을 거로 생각해서... 그래서... 윽!"]
■■■■는 도미닉 경을 보고는 혼란에 빠진 듯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벤트... 이벤트가... 난 분명 거부했을 텐데? 아냐, 설마... 도미니아 경이?"]
한냐 가면의 여성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이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가 움직임을 멈춘 이유는 하나였다.
"...할무?"
그녀가, 도미니아 경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오, 오오오... 오오오..."]
■■■■는 도미니아 경을 보자마자 곧바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다시금 도미닉 경의 저택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야를 가리는 나무들은 모조리 잘려 나갔기에, 그 어떤 나무들도 그녀를 방해할 수 없었다.
"...뭔가 좀 이상하오."
도미닉 경은 검과 방패를 바짝 들어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봐도 미래의 도미닉 경의 아내라고 불린 여성의 상태는 정상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갑자기 그의 눈앞에 뜬 수많은 시스템 창 때문이었다.
[이변이 일어납니다! 이제부터 밤은 영원을 상징합니다. 태양이 뜨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변이 일어납니다!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짙은 안개가 가차랜드에 넓게 퍼집니다.]
[이변이 일어납니다! 가차랜드로 수입되는 모든 보드카의 관세가 40% 오릅니다!]
[이변이 일어납니다! 동물원에서 카피바라 떼가 탈출합니다!]
[이 변이 일어납니다! 판사님! 이의 있습니다!]
엉망진창인 시스템 창.
도미닉 경은 평소에 시스템 창을 시야의 가장자리에 두고는 했다.
그러나 이번 시스템 창은, 정확하게 도미닉 경의 시야를 가리기 위해서 나타난 듯 시야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다급하게 팔을 휘저어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창들을 모조리 닫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아버님!"
도미닉 경의 눈앞으로,■■■■가 바짝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도미닉 경은 급한 대로 방패를 들어 올렸으나, 채 대비하기도 전에■■■■가 먼저 선공권을 가져갈 것이 분명한 상황.
도미닉 경은 이를 질끈 다물고 방패를 최대한 들어 올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도미닉 경의 방패에는 그 어떤 충격도 들어오지 않았다.
도미닉 경은 아차 싶었다.
방패를 너무 급하게 들어 올리는 바람에 방패가 도미닉 경의 시야를 가린 것이다.
상대는 초월급 존재였으니, 도미닉 경의 실수를 알아볼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당연했다.
도미닉 경은 다시 방패를 슬쩍 내려 시야를 확보했으나, 역시나■■■■는 거기에 없었다.
도미닉 경은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곧이어질 습격에 다시금 대비했으나...
"아, 아버님! 뒤에! 뒤에!"
도미닉 경이 앨리시아의 다급한 외침에 방패를 뒤로 휘둘렀다.
그러나 마땅히 그곳에 있어야 할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
대신 도미닉 경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바로...
"도미니아 경!"
도미니아 경을 가로채, 숲속으로 사라지는■■■■의 존재였다.
맙소사.
도미니아 경이 납치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