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5화 〉 [484화]정리
* * *
도미닉 경은 잠시 앨리시아의 부탁을 고민했다.
어째서 앨리시아는 어린 도미니아 경을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인가?
"어째서 그렇소?"
도미닉 경은 결국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물었다.
"조금 전까지도 도미니아 경과 같이 있었을 것 아니오."
"물론 그렇긴 해요."
앨리시아는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렸을 때의 도미니아 경은 아니었죠."
앨리시아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도미니아 경이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도미니아 경을 낳았을 땐, 저도 아주 바쁠 때였어요. 세력을 넓히고, 넓어진 세력을 정리하고, 다시 세력을 넓히는 순환의 연속이었죠."
앨리시아는 굉장히 착찹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인지, 도미니아 경의 육아는 남편이 주로 전담했죠. 그 이는 항상 집에 있었으니까요."
가끔 친구들과 술 한 잔하러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말이죠. 라고 앨리시아가 첨언했다.
"하지만 그 당시엔 그 이도 바빴던 모양이예요. 이렇게 미래의 도미닉 경에게 육아를 잠시 부탁할 정도라면 말이죠."
앨리시아 경은 고개를 살짝 돌리고 '이 파파보이 같은 사람.'이라고 중얼거렸다.
당연하게도, 도미닉 경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이라도 어렸을 때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어요."
앨리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에 와서는, 당시에 도미니아 경에게 관심을 주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던 앨리시아는, 인벤토리에서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진기들이었는데, 폴라로이드 카메라부터 아날로그 카메라, 디지털카메라까지 다양한 카메라들이 있었다.
"그러니, 제게 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있게끔 해주세요. 부탁입니다."
그렇게 말한 앨리시아는 도미닉 경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이 상황을 난감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 시원한 대답은 해주지 못했다.
"...그건 내가 선택할 문제가 아닌 것 같소."
도미닉 경은 고개를 저으며 앨리시아의 부탁을 보류했다.
"내가 아니라, 도미니아 경과 이야기해봐야 할 사안이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앨리시아의 등 뒤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앨리시아는 갑자기 도미닉 경이 손가락을 뻗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알지 못했지만,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먀?"
고개를 돌린 앨리시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앨리시아가 이렇게 놀란 이유는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도미닉 경이 가리킨 그 자리에 어린 도미니아 경이 있었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비틀비틀 아장아장 걸어 나오는 도미니아 경은, 그 부스스한 흰 머리를 그대로 둔 채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도미니아 경은 의자에 앉아 있는 앨리시아를 보고 바로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먀."
도미니아 경은 아직 이 상황이 꿈이라고 생각한 듯, 앨리시아가 앉은 소파를 향해 아장아장 기어 왔다.
그리고 소파 위를 향해 폴짝 뛰어오르더니, 앨리시아의 무릎 위에 엎드렸다.
"어마."
도미니아 경은 그 자세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다.
도미닉 경은 문득 시계를 보았다.
확실히 아직은 어린아이에게는 꽤 이른 시간대임이 분명했다.
"...도미니아."
앨리시아는 자기 무릎 위에서 천사처럼 자는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았다.
앨리시아는 그 귀여움에 떨리는 손을 천천히 가져갔지만, 차마 도미니아 경을 건드리지는 못했다.
건드렸다가, 이 천사같이 자는 도미니아 경이 깰까 봐 두려워졌던 것이다.
앨리시아는 손에 카메라를 든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도움이 필요하시오?"
"...네."
도미닉 경은 곤란해하는 앨리시아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앨리시아는 안절부절못하더니, 이내 도미닉 경에게 카메라를 건네주었다.
도미닉 경은 카메라로 무릎에서 자는 도미니아 경을 몇 컷 찍었다.
그리고 다시금 앨리시아에게 그 카메라들을 건네주었다.
앨리시아는 도미닉 경에게 건네받은 카메라들을 확인하더니, 감격에 찬 표정을 지으며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래도 도미니아 경의 귀여움에 넋이 나간 것 같았다.
도미닉 경은 차를 마시며 앨리시아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그, 아스파라거스 베이컨 말이에 대한 레시피를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돈 카게야샤가 중간에 눈치 없이 큰 소리를 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도미니아 경은 새근새근 잘만 자고 있었다.
...
잠시 후, 현관문 앞.
"...감사합니다, 도미닉 경."
앨리시아는 도미닉 경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중절모를 다시 눌러썼다.
그 뒤에는 돈 카게야샤가 있었는데, 도미니카 경에게서 받은 아스파라거스 베이컨 말이의 레시피를 인벤토리에 소중히 넣고 있었다.
도미니아 경은 도미니카 경의 도움으로 다시 방에 있는 침대로 돌아간 상태였다.
도미니아 경은 잠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앨리시아는 이제 다시 미래의 도미니아 경을 만나러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으니까.
"감사할 것 없소. 내가 한 건 없으니까."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에게 겸손하게 말을 건넸다.
도미닉 경은 실제로 자신이 한 일이 없다고 여겼다.
모든 것은 도미니아 경이 앨리시아에게 한 일일 뿐,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그저 집 안에 저들을 손님으로 들인 것뿐이지 않은가.
"다음에도 또 찾아오면 좋겠구려, 며늘 아가."
도미닉 경이 장난스럽게 그렇게 말하자, 앨리시아는 한 방 먹은 표정이 되었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글쎄. 아마도 처음부터요."
도미닉 경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앨리시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꺼냈다.
"도미니아 경과 그렇게나 친숙한데다가, 무의식적으로 여기저기 힌트를 흘리고 다녔잖소."
"...그렇군요."
앨리시아는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시스템이 미래의 정보에 대해 검열을 하고 있다는 믿음에 조금 마음이 느슨해졌던 모양이었다.
"무엇보다도 오늘 대화에서도 대놓고 남편이라는 둥, 도미니아 경을 낳았다는 둥 하지 않았소."
"아."
앨리시아는 그제야 자신이 오늘 했던 말들을 기억해냈다.
확실히 그 말들은 충분히 진실을 알아챌 수 있는 증거들이었다.
"그럼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겠군요, 아버님."
"음."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마?"
그때였다.
도미닉 경은 문득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리고 현관을 바라보며 눈을 비비고 있는 도미니아 경을 볼 수 있었다.
"어마, 어디가?"
앨리시아는 쿵. 하고 무언가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에게 떠넘긴 죄책감일까?
앨리시아는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 도미니아 경의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앨리시아 대신 도미니아 경에게 대답해 준 것은, 돈 카게야샤였다.
"그, 네 어머니는 일하러 가야 해서 말이야."
그것은 다소 거짓말이 섞여 있었지만, 아이를 상처 입히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거짓말이기도 했다.
"그럼 언제 와?"
도미니아 경은 여전히 앨리시아와 돈 카게야샤를 보며 되물었다.
"...글쎄."
돈 카게야샤는 힐끗 앨리시아를 쳐다보았다.
언제 인지 기억하냐는 눈빛이었다.
"...빨리 올게."
앨리시아가 어린 도미니아 경에게 그렇게 말했다.
"...웅."
도미니아 경이 앨리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나름 씩씩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앨리시아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돌리고 살짝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어쩌면, 미래의 도미니아 경이 그렇게 도미닉 경의 저택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녀에게 있어서 집이란 그다지 큰 의미가 있는 곳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저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공간이었을지도 모르니까.
그에 반해, 도미닉 경의 저택은 어렸을 적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공간이었을 테니까.
"빠리 다녀오새요."
도미니아 경은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앨리시아는 그 모습을 보며 다리가 풀릴 뻔했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버텨 내었다.
앨리시아는 어린 도미니아 경에게 간섭을 할 수 없다.
이제 곧 이벤트는 끝날 테고, 도미니아 경은 그렇게 다시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갈 것이었다.
간섭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문제였다.
만일 여기서 간섭을 한다면, 그건 어떻게든 타임 패러독스가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둔다면, 과거의 앨리시아가...
앨리시아는 어린 도미니아 경을 보며 후회와 갈등 속에서 헤엄치기 시작했다.
과거 딸에게 잘해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후회.
그리고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그 과거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갈등.
그러나 그런 갈등은 곧 의미가 없어졌다.
[[!][주의][!]]
[1.이변이 일어났습니다!]
[2.현재 이 시스템 창이 보이신다면, 신속히 그 자리를 벗어나주시기 바랍니다.]
[2.현재 이 시스템 창이 보이신다면, 그 자리에서 엎드려 이변이 종료되길 기다려 주십시오.]
[3. 2번 항복은 오로지 하나만 존재합니다. 다른 하나가 보이신다면, 무시하십시오.]
[4. 3번 항목은 거짓말입니다.]
[5. 4번 항목도 거짓말입니다.]
[6. 아무튼 이 시스템 창이 보이신다면 그]
...이변이 일어났다.
그것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이변이 말이다.
["흐어아아아..."]
도미닉 경이 있는 숲길 사이로, 나무들을 무너뜨리며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손녀는 어디에 있는 거지...?"]
뿔 달린 무시무시한 도깨비 가면인 한냐 가면을 쓴, 하얀 소복을 입은 거인이.
[☆☆☆☆☆한 밤에 용의 피에 눈뜬■■■■]
예상치 못한 이름을 달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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