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84화 (451/528)

〈 484화 〉 [483화]정리

* * *

똑똑똑.

이튿날, 도미닉 경은 이른 아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얼마나 절묘한 시간에 문을 두드렸는지, 아침 수련을 마친 도미닉 경이 샤워를 막 끝냈을 때였다.

"누구래?"

"모르겠소. 택배인가?"

현관으로 가는 도중,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이라고 해서 알 리가 없었다.

"혹시 히메 씨인가?"

"이런 이른 아침에? 흠..."

도미닉 경은 고개를 갸웃하며 걸음을 옮겼다.

도미니카 경은 지금 아침 준비하고 있느라 바쁜 상태였으니, 그나마 할 일이 없는 도미닉 경이 누구인지 확인하러 간 것이다.

"누구시오?"

"저예요, 앨리시아."

"아."

도미닉 경은 그 말에 문을 열고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정말 앨리시아가 있었다.

앨리시아의 뒤에는 돈 카게야샤가 있었는데, 그는 오리 너구리 인형이 가득 든 망태기 외에도 또 무언가가 가득 든 망태기를 들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 온 거요?"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의 할아버지니까요. 제가 여길 아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

"...과연."

앨리시아는 머리에 쓴 중절모를 벗은 채 가슴팍에 선서하듯 올려 두었다.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렇게 손님을 계속 세워두실 겁니까?"

돈 카게야샤가 도미닉 경에게 웃으며 장난으로 투덜거렸다.

도미닉 경은 그제야 자신이 손님들을 밖에 세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곳을 깨달았다.

"이런 실수를. 들어오시오."

도미닉 경은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거실로 안내했다.

도미닉 경은 둘을 안으로 들여보낸 이후에도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미래의 도미니아 경이나 메리, 그리고 미네르바는 보이지 않았다.

"나머지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된 거요?"

"아, 별 건 아니예요. 타임 패러독스가 일어날까 봐 찾아오질 못 하는 것뿐이니까요."

"타임 패러독스?"

"여긴 지금 또 다른 도미니아 경이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한 앨리시아는 문득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도미닉 경의 집에 있는 방 중 하나였는데, 재밌게도 그곳은 도미니아 경이 자는 방이었다.

"저기에 지금 도미니아 경이 있겠죠?"

"어떻게 안 거요?"

"도미니아 경은 늘 저 방을 좋아했으니까요."

앨리시아는 추억이라는 듯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매번 여기에 놀러 올 때마다 저 방에서 자겠다고 고집을 피웠는데, 이제야 그 진실을 알게 되었네요."

도미닉 경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도미니아 경이 있는 방을 힐끔 보았다.

잠깐 그 방을 바라보던 도미닉 경은, 문득 이들이 여기 왔다는 사실을 도미니카 경에게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참, 내 정신 좀 보라지. 혹시 아침은 먹었소? 도미니카 경이 아침을 하는데, 괜찮다면 같이 드시겠소?"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앨리시아는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거절하기 시작했다.

"아니, 저희는 잠시 도미닉 경을 뵈러 온 것이니까요."

"그래도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 왔는데, 식사 정도는 대접할 수 있는 일 아니겠소?"

그렇게 말한 도미닉 경은 곧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밖이 소란스럽던데, 누구야?"

"글쎄..."

도미닉 경은 저들의 호칭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고민했으나, 이내 이렇게 말했다.

"미래에서 온 내 지인들이오."

"미래에서?"

"그렇소. 도미니아 경과도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지."

도미닉 경의 말은 미래의 정보에 저촉되지 않았는지, 다행스럽게도 그대로 도미니카 경에게 전달되었다.

실제도 저 둘은 미래에서 온 도미닉 경의 지인들이기도 했고, 도미니아 경과 관련된 인물들이기도 했으니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한 셈이다.

"흠."

도미니카 경은 잠시 도미닉 경의 말에 고민하더니, 이내 도미닉 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밥은 먹었대?"

"아무래도 안 먹은 것 같소."

"다행이네. 마침 스튜를 끓이려던 중이라."

도미니카 경은 펄펄 끓고 있는 스튜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물과 재료를 좀 더 넣고 끓인다고 해서 맛이 변하거나 하지는 않으리라.

도미니카 경은 갑자기 늘어난 입에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오히려 식사를 대접하지 못해 안달이 난 상태였다.

이는 도미닉 경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는 척박한 페럴란트의 법도 때문이었다.

아무리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라도, 혹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도 일단 손님으로 맞이한 이상, 식사 한 끼라도 대접을 해야 하는 것이 페럴란트의 법도였다.

이는 죽음과 같은 불길한 것을 집 안으로 들이기 싫어하는 페럴란트의 미신 때문이었다.

페럴란트는 척박한 만큼 찾아오는 손님도 굶주리거나 지친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태에서 밥이나 물 한 모금 주지 않는다면, 집 안에서 객사할 확률이 높았다.

집 안은 반드시 평화롭고 안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페럴란트 사람들에게 있어 밥이나 물을 주지 않아 손님이 죽게 된다면, 그건 집 안으로 죽음을 초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풍습의 기원은 앨리스 백작 영애가 온 현재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도미닉 경이 있었던 중세 페럴란트에서는 그랬다.

그렇기에 도미닉 경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도미니카 경도 페럴란트의 법도에 따라 집에 들어온 손님에게는 밥 한 끼라도 대접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법도에 대해서 알아보는 사이, 도미니카 경은 순식간에 다섯 배나 양이 늘어난 스튜를 완성시켰다.

맛은 조금 연하긴 하겠지만, 그건 소금을 조금 더 치면 해결될 문제였다.

"흠."

도미니카 경이 페럴란트 식 스튜에 소금을 조금 집어넣은 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도미니카 경은 인상을 찌푸리며 무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표정을 슬쩍 보았다.

그러고는, 도미니카 경의 가려운 부분을 슥 긁어 주었다.

"곁들이는 건 베이컨을 감은 아스파라거스 구이로, 메인은 치즈를 올려 구운 햄버그가 좋겠소."

"역시, 뭔가 부족하긴 했지?"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말에 고민이 해결되었다는 듯, 다시 환한 표정과 함께 후라이팬을 꺼냈다.

"그럼 일단 요리를 만들고 있을 테니까, 도미닉 경은 가서 스튜를 좀 나눠 주고 있어."

"알겠소."

도미닉 경은 선반을 열어 오목한 그릇들을 꺼내 스튜를 담아내었다.

그리고 나무 숟가락들을 꺼내 스튜가 담긴 그릇에 꽂아 두고는, 거실에 있는 앨리시아와 돈 카게야샤에게 말했다.

"밥 먹으러 오시오!"

그 말에 앨리시아와 돈 카게야샤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어쩔 수 없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

"잘 먹었습니다."

앨리시아가 손수건을 꺼내어 입 가를 닦아내며 말했다.

그녀의 앞에 있던 접시는 싹 비워진 상태였는데, 아무래도 요리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전 한 그릇 더 주십쇼!"

돈 카게야샤는 우악스럽게 스튜를 먹더니, 이내 또 그릇을 내밀며 한 그릇을 더 졸랐다.

"도미니카 경께서 이렇게나 요리 솜씨가 좋으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돈 카게야샤는, 도미니카 경이 건네주는 스튜 한 그릇을 꿀꺽꿀꺽 마시듯 먹었다.

돈 카게야샤는 총 스튜 일곱 접시, 베이컨을 말아낸 아스파라거스 열아홉 개, 그리고 치즈를 올려 구운 햄버그 여섯 개를 먹고 나서야 만족한 듯 배를 두드렸다.

물론 그렇게 많이 먹는 도중에도 가면은 단 한 번도 벗지 않았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긴 가차랜드였고, 어떻게 밥을 먹든 신기할 것이 없는 곳이었으니까.

"아무튼, 이제 밥을 먹었으니..."

도미닉 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찬장을 열었다.

그리고 꽤 비싸 보이는 메이커의 찻잔들을 꺼냈다.

"차라도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할 말이 있어서 왔다고 했었으니."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다른 사람들을 거실로 보냈다.

그러고는 꽤 고급 브랜드의 차를 우려내어 사람들 앞에 한 잔씩 내려놓았다.

은은한 단맛이 매력적인 홍차였다.

"그래, 여기에 온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소?"

도미닉 경은 마지막으로 자기 찻잔을 가지고 오며 앨리시아에게 물었다.

앨리시아는 도미닉 경이 우려 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찻잔을 내려놓고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내일 돌아가는 것은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도미닉 경."

"...그렇소."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이면 [미래로의 회귀] 이벤트가 끝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래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릴 겸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이라."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의 말에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영원한 이벤트는 없는 법이고, 영원한 만남도 없는 법이니까.

"뭐, 언젠가 또 이 이벤트가 복각한다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않겠소."

그리고 영원한 이별도 없는 법이라고 도미닉 경은 생각했다.

그렇기에, 도미닉 경은 눈앞에 있는 앨리시아와 돈 카게야샤를 보며 웃었다.

"내일이라고 했소?"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힐끗 어린 도미니아 경이 자고 있을 방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내일 어린 도미니아 경도 돌아가겠구려."

"그렇겠죠."

앨리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찻잔을 들고 차를 마셨다.

그러고는 잠깐 말없이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도미닉 경에게 이런 부탁했다.

"도미닉 경."

"음."

"가기 전에, 어린 도미니아 경을...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앨리시아는 어린 도미니아 경을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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