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3화 〉 [482화]예상치 못한 후일담
* * *
"그래서, 언제 온대?"
앨리스 백작 영애는 도미닉 경에게서 최신형 그래픽 카드를 받아들고는 그렇게 되물었다.
그 그래픽 카드는 도미닉 경이 기어코 경품 코너에서 받아 낸 것이었다.
실제 그래픽 카드의 정가보다 약 20% 정도 비싸게 구한 셈이 되었지만, 실제로 판매되는 가격에 비하면 굉장히 싸게 구한 셈이었다.
물론 도미닉 경은 그런 것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가 될 것 같소."
"내일이나 모레라..."
앨리스 백작 영애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관심이 사라진 듯 그래픽 카드만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도미닉 경의 말에 대답한 것은 도미니카 경이었다.
"잠깐, 모레면 이벤트가 끝나는 날인데."
도미니카 경이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미래로의 회귀] 이벤트가 끝나는 날이 바로 그날이잖아?"
"...그렇소?"
도미닉 경은 다시 한번 공지사항을 읽어보더니, 이내 도미니카 경의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지사항에 깨알 같이 적힌 글씨에 적힌 대로라면, 이벤트는 이틀 뒤에 끝이 날 것이었다.
"노린 건가?"
도미니카 경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그건 아닐 거요."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도미닉 경이 알기로, 히메는 이번 이벤트와는 거의 연관이 없어 보였으니까.
연관이 없다는 말은, 이벤트를 거부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이벤트가 끝나는 날을 굳이 따져가며 만날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이틀 뒤일까?"
"글쎄."
"아마 부모님과도 담판을 지어야 하나 보지."
"...?"
도미닉 경은 다시금 방에서 나온 앨리스 백작 영애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모님과 담판을 짓는다니,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저번에 보니까 히메라는 사람, 꽤 양갓집의 규슈인 것 같았어. 그렇다면, 남의 집에 갈 때에도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리지."
그렇게 말한 앨리스 백작 영애는 냉장고로 가 맥주 한 캔을 꺼냈다.
그리고 시원하게 캔 하나를 다 비워 버린 앨리스 백작 영애는, 이내 다른 캔 하나를 더 꺼내 들고 소파로 다가와 앉았다.
한 손에는 도미니아 경의 사진을 들고 바라보고 있는 상태로 말이다.
"흠..."
도미닉 경은 앨리스 백작 영애의 말에 뭔가 석연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미닉 경은 운류 히메의 아버지, 운류 무사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도미닉 경이 아는 운류 무사시라면, 히메가 다른 이의 집에 놀러 가는 데 딱히 반대하지는 않을...
"...모르는 일이겠지."
도미닉 경은 문득 자신이 상대에 대해서 무작정 속단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운류 가문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몇 번 본 것만으로 상대를 파악하려고 했다.
"아무래도 주군의 말이 가장 말이 되는 것 같소."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소파에 앉았다.
"하뿌."
도미닉 경의 복잡한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인지, 도미니아 경이 도미닉 경에게 다가와 무릎을 토닥였다.
아마 키가 더 컸으면 도미닉 경의 어깨를 토닥였겠지만, 아직 도미니아 경은 도미닉 경의 무릎 정도밖에 오지 않는 꼬마 아가씨였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이 자신을 격려해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고맙소, 도미니아 경."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안아 들고 무릎 위에 앉혔다.
무릎 위에 앉은 도미니아 경은 갑자기 높아진 시야에 놀라 바둥거렸으나, 이내 쑤욱하고 올라가는 것이 재밌었던지, 도미닉 경의 무릎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다시금 도미닉 경을 졸랐다.
"하뿌! 함 번 더!"
도미닉 경은 볼이 빨갛게 상기된 도미니아 경을 보며 피식 웃더니, 이내 다시금 도미니아 경을 쑤욱 들어 올렸다.
"꺄하!"
도미니아 경은 그 짜릿한 스릴을 즐기는 듯 있는 힘껏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히메가 이틀 뒤라고 한 것은, 어쩌면 도미니아 경과의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라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
"...설마."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금 도미니아 경을 번쩍 들어 올리며 같이 놀아주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런 도미닉 경의 저택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공주님의 말 대로로군."
도미닉 경의 저택에서 약 1km 정도 떨어진 숲속, 가장 높은 나무 위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 수상한 인물은 가장 높은 나무에서도 가장 높은 곳, 즉 나무의 꼭대기에 있는 나뭇잎을 한 발로 밟고 서 있었는데, 나뭇잎은 그 어떤 무게도 받지 않는 것처럼 그저 바람결에 살랑일 뿐이었다.
그야말로 허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경공술!
그는 검은 양복을 입고 구름 무늬가 가득한 푸른 스카프를 목에 매고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는 바로 닌자였다.
물론 이 사람은 도미닉 경도 나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바로, 운류 가문의 집사 닌자였기 때문이었다.
"공주님의 말대로 이곳에 도미닉 경의 집이 있을 줄이야."
집사 닌자는 도미닉 경의 저택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도미닉 경의 저택은 산간 벽지에 위치해 있었는데,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고, 절벽 위 쪽엔 숲이 우거져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절대 도미닉 경의 저택을 찾을 수 없는 구조였다.
다행스럽게도 예전에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낡은 발판들이 있어 집사 닌자는 아주 손쉽게 절벽을 오를 수 있었지만, 닌자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도미닉 경이나 그 일행의 초대 없이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천혜의 요새였다.
심지어 저 저택을 보라.
넓은 앞마당에는 무려 3픽셀에 달하는 물 타일이 있어 낚시도 가능하지 않은가.
그 말인 즉,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저택이라는 뜻이었다.
"공주님께서 반하신 이의 저택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집사 닌자는 도미닉 경의 저택을 조금 더 자세히 둘러보았다.
저택까지의 거리는 매우 멀어 맨눈으로는 자세한 것을 식별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집사 닌자에게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운류 가문의 비전 인술로 인해 아무리 먼 곳에 있는 것이라도 가까이서 보는 것처럼 느껴지게 할 수 있었다.
"우리 닌자 야구단이 항상 플레이 오프에 진출할 수 있는 이유지..."
집사 닌자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사실, 이 먼 곳을 보는 인술에는 큰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이렇게 자기도 모르게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아무튼, 집사 닌자는 도미닉 경의 저택의 구석구석을 보며 도미닉 경의 씀씀이나 혹은 대외적인 이미지 관리 등을 예상했다.
"저건... 모형 전함인가?"
집사 닌자는 도미닉 경의 집 구석에 있는, 집보다도 커 보이는 전함 '모형'을 바라보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통에 의하면, 성좌 백수의 거인은 도미닉 경의 도움으로 중요한 경기를 이긴 적이 있다고 했다.
아마 저건 바로 그 보답으로 받은 것이겠지.
"그 외에는... 탈 것 정도인가?"
집사 닌자는 도미닉 경의 차고에 있는 탈 것들을 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차고에 있는 탈 것들 중 도미닉 경의 기함, '페럴란트의 영광'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미닉 경의 탈 것이 적은 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도미닉 경이 보상으로 받은 것만 하더라도... 아니, 생각해 보면 도미닉 경이 직접 구매한 탈 것은 페럴란트의 영광이 전부였다.
"그 말인 즉, 꽤 알뜰하게 산다는 뜻이겠지."
집사 닌자는 도미닉 경이 가차랜드 내에서 손으로 꼽히는 사람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렇게 돈을 벌면서도 검소함을 잃지 않는 도미닉 경의 모습에 꽤 큰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역시 공주님께서 좋아하실 만한 인물인가?"
집사 닌자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혈통인가..."
집사 닌자는 도미닉 경의 혈통에 대해서 생각했다.
믿을 만한 정보통에 따르면, 도미닉 경은 농노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 말인 즉, 어떠한 위기에 빠졌을 때 가문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지."
집사 닌자는 이내 잡념을 털어 버리고는, 품속에서 무려 지름만 30cm, 길이만 2m에 달하는 돌돌 말린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것을 꺼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건 닌자의 기술일 것이다.
집사 닌자는 그 양피지를 펼치고는, 또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사람 키만 한 붓을 가지고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수려한 글씨체로 무언가를 끄적인 집사 닌자는, 이내 다시 품속에서 아주 작은 거울을 꺼내 하늘에 떠 있는 운류 가문의 전서응에게 신호를 보냈다.
전서응은 하늘을 날며 집사 닌자가 쓴 거대한 글자들을 보았다.
그러고는, 하늘을 크게 두 바퀴 돌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전서응이 향하는 곳은 바로 운류 가문의 성, 히메토츠키사이고 성이었다.
...
전서응은 성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의 앞에 착지해 발톱에 먹물을 묻히고는 종이에 수려한 글씨로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닌자로 유명한 운류 가문의 전서응에게 있어서, 글씨를 보고 쓰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전서응이 쓴 글자를 바라보던 누군가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아래로 내려가서 말을 꺼내 봐야겠구나."
누군가는 전서응에게 육포 두 조각을 물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아주 우아한 발걸음으로 전서응이 있는 방을 나갔다.
그 방에는 전서응만이 남아, 누군가가 건네준 육포 두 조각을 맛있게 먹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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