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2화 〉 [481화]예상치 못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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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는 도미닉 경을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무릎에는 마왕 뚜 르 방을 올려놓은 채, 볼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이다.
"우연이네요."
히메가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우리 둘이 친해진 김에 같이 밥이나 먹으러 나왔다가, 이렇게 도미닉 경을 볼 줄이야."
"?"
히메의 무릎 위에 앉아 있던 2등신의 뚜 르 방이 고개를 갸웃했다.
뚜 르 방의 뿔에 달린 테니스 공들이 뚜 르 방의 고개를 따라 움직이며 히메의 가슴을 쿡쿡 찔렀지만, 히메는 그다지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는 도미닉 경은... 그래요. 뒤에 계시는 분들은?"
히메는 도미닉 경의 등 뒤에 있는 무려 네 명이나 되는 여성과, 한 명의 거구를 바라보았다.
"음."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을 통해 왜 히메가 저렇게 심통이 나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히메는, 그저 도미닉 경이 다른 여자와 같이 있다는 것에 불안 해하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그건...
"안녕하세요, 히메 씨. 저는 도미닉 경의 ■■■, 앨리시아라고 합니다."
도미닉 경이 생각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앨리시아가 앞으로 나와 히메와 악수를 청했다.
"뭐, 뭐요?"
"?"
히메는 갑자기 환한 웃음과 함께 악수를 청하는 앨리시아를 보며 당황을 금치 못했다.
도미닉 경과 관련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정확한 단어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메는 그 순간, 저들이 미래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미래에서 온 도미닉 경의 손님들이군요?"
히메는 그제야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환하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얼마나 밝은지, 무릎에 앉아 있던 뚜 르 방이 반쯤 녹아내리듯 말랑말랑해질 정도였다.
물론, 이건 뚜 르 방이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히메에게 기대고 있는 것일 뿐이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다행이다. 전 또 도미닉 경이 쓸데없이 여성 관계를 늘리려는 줄 알고"
히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음속에 있던 말을 무심코 내뱉고 말았다.
히메는 곧바로 자신이 실언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급하게 입을 막았으나, 이미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었다.
"아니, 아니예요."
히메는 순식간에 자기 말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걱정 하지마시오. 내가 친하게 지내는 건 히메 공 뿐이니."
"...그런가요?"
도미닉 경은 히메를 달래기 위해 그렇게 말했지만, 이는 사실이기도 했다.
도미닉 경은 여기저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으나, 뜻밖에 친한 사람을 꼽으라면 굉장히 그 범위가 좁아졌다.
그나마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도미니카 경이나 앨리스 백작 영애, 그리고 운류 히메 정도.
"!"
"...그래. 뚜 르 방 당신과도 친하긴 하오."
굳이 더하자면 뚜 르 방 정도일까.
그러나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에게서 떨어져 나온 분신이고, 앨리스 백작 영애가 페럴란트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인연이라면, 가차랜드에서 운류 히메만큼 가까운 인물은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뚜 르 방의 경우는 진정으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친구라기보다는... 일종의 귀여운 조카에 가까운 포지션이었으니.
"아무튼,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을 꼽으라면, 난 당연하게도 당신을 뽑겠소.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
히메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도미닉 경이 한 말 때문이었다.
도미닉 경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니!
그리고 그 말을 도미닉 경에게 직접 들을 수 있다니!
히메는 그 순간, 지금까지 도미닉 경을 향해 행했던 모든 애정어린 행동들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이건 히메가 너무 일방적인 사랑을 하다 보니 기대감이 낮아져서 생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히메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히메를 바라보고 있었다.
히메는 도미닉 경의 하나뿐인 눈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맑고 투명해서, 그 너머에 비친 히메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줄 정도였다.
히메는 도미닉 경의 시선에 한참을 빠져 있었다.
아니, 한참을 빠져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히메는 도미닉 경에게 집중하고 있었고, 도미닉 경도 히메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 히메가 생각하기엔 그랬다.
히메는 그 깊고 투명한 에메랄드 색 바다... 아니, 눈동자 속에 빠져 허우적댔다.
사람은 위기의 순간이 오면 본심이 드러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위기의 순간이라고 봐도 좋았다.
히메는 도미닉 경의 눈동자에 빠져 익사하기 직전이었으니까.
적어도 지금의 히메를 보면 익사한다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히메는 지금, 숨을 쉬는 것도 잊고 도미닉 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메 공?"
도미닉 경은 갑자기 숨 쉬는 것도 잊고 도미닉 경을 멍하게 바라보는 히메를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이었던가?"
앨리시아는 어째서인지,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아니, ■■■."
"...돈 가문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삼촌이자, 대부니까."
앨리시아와 돈 카게야샤는 그 모습을 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이어 나갔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음."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은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시스템이 자의적으로 이 대화가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고, 검열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도미닉 경이 저 둘의 말을 들었더라도 딱히 특별한 반응은 없었을 것이다.
도미닉 경은 현재, 숨도 쉬지 않고 멍하게 있는 히메를 깨우려고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히메 공? 히메 공!"
도미닉 경은 히메의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아."
도미닉 경의 행동이 도움이 되었던 것인지, 히메는 얼빠진 소리를 내며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히메는 잠시 도미닉 경의 시선을 피하고자 고개를 숙였다.
지금 다시 도미닉 경을 바라봤다가는, 다시금 그 눈빛에 빠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히메는 괜히 무릎 위에 늘어져 있는 뚜 르 방의 조랭이떡 같은 손을 만지작거리거나, 인절미 같은 볼을 주욱 늘어뜨렸다.
"?"
뚜 르 방은 익숙하다는 듯 히메의 손길을 받아들였지만, 이내 그 손길에서 한 줄기 미혹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뚜 르 방은 히메를 올려다보았다.
히메는 뚜 르 방의 크고 동그란 눈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도미닉 경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했다.
도미닉 경은 히메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히메에게도 도미닉 경은 '중요한 사람'이었다.
이 사실은 아주 명확해서, 히메는 조금 전 도미닉 경의 눈을 바라봤을 때 그 사실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의 눈빛을 통해 자기 눈빛을 볼 수 있었다.
그 눈빛은 여전히 사랑에 빠진 소녀의 눈빛이었고, 다른 사람들의 접근에 질투하는 여인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눈빛이 겉으로 드러났다는 뜻은, 이미 히메의 무의식은 도미닉 경에게 고백을 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히메는 지금까지 자기가 했던 행동들을 생각해 보았다.
히메는 겁쟁이였다.
도미닉 경에 대한 사랑이 그토록 크다면서, 항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부끄러워서 도미닉 경에게 고백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미뤄왔다.
"히메 공?"
히메에게 있어서 도미닉 경은 참 특별한 사람이다.
처음 만남에서는 어쩌면 오해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히메는 해적에 대해서 심각할 정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해적 복장을 한 도미닉 경에게 겁에 질린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히메는 이후에 만나면서 도미닉 경을 향해 가지게 된 감정은 진짜라고 여겼다.
처음에는 오해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는 정말 도미닉 경을 사랑하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물론 진짜 말한다면 많이 부끄럽긴 하겠지만, 그만큼 히메는 진심이었다.
"히메 공?"
히메는 그제야 자기 마음을 확실하게 정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우유부단한 히메는 더 이상 없었다.
히메는 자기 감정을 확실히 알고 있었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히메 공?"
히메는 바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뚜 르 방이 다리와 다리 사이의 홈을 따라 미끄럼틀을 타듯 스르륵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묘하게 그것이 재밌었는지, 뚜 르 방은 미묘하게 흥분한 표정으로 만세 포즈를 취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히메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히메는 지금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머릿속에 있었고, 한 가지 행동만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었으니까.
히메는 굳게 결심한 표정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도미닉 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도미닉 경, 저와 사귀"
"히메 씨 외 한 분? 히메 씨 외 한 분 계십니까?"
"히메 공? 다음 차례요."
"...아."
하지만 히메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식당에서 다음 순번인 히메와 뚜 르 방을 불렀기 때문이었다.
히메는 조금 전까지 타오르던 열정이 식었다는 듯 뚜 르 방을 안아 들고는 식당으로 향했다.
그러나 오늘의 히메는 조금 달랐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히메와는 달랐다.
지금까지의 히메가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이렇게 방해를 받으면 의욕이 꺾이던 사람이라면...
"저기, 도미닉 경."
"음?"
오늘의 히메는, 정말 모든 것을 확고히 다진, 퍼펙트 히메였다.
"오늘, 도미닉 경의 집에 같이 가도 될까요?"
"상관은 없소만... 무슨 일로?"
"별 건 아니예요."
히메가 눈을 빛내며 도미닉 경에게 웃었다.
"도미니카 경과 앨리스 백작 영애와 할 말이 조금 있어서."
그 미소는, 지금까지 해왔던 그 어떤 미소보다도 더 밝은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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