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1화 〉 [480화]에상치 못한 과정
* * *
"오, 세상에.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도미니아 경은 앨리시아의 따뜻한 품속에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도미니아 경은 지금,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평소라면 분명 어디서 사고치고 다니냐고 엄격하게 뭐라고 할 텐데...
그러나 도미니아 경은 이어진 앨리시아의 말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가면 보자?"
앨리시아가 도미니아 경의 귓가에 그렇게 속삭이자, 섬뜩한 감각이 도미니아 경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그래, 그렇겠지. 이게 바로 우리 엄마지.
"하, 하하..."
도미니아 경은 어색하게 웃었다.
앨리시아는 그 웃음을 동의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미지 관리구만."
돈 카게야샤는 앨리시아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미지 관리요?"
돈 카게야샤 옆에 있던 메리가 말했다.
"어떻게 되었든 지금 도미닉 경 앞이잖냐. 미래의 아버님에게 잘 보여야 미래가 뒤틀리지 않을 테니, 겉으로는 일단 자애로움을 연기하는 거겠지."
돈 카게야샤는 정확하게 앨리시아의 행동의 의미를 꿰뚫어 보았다.
앨리시아는 도미니아 경을 한참 동안 안고 있다가 적합한 타이밍에 풀어 주었다.
이는 즉석에서 앨리시아가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도미닉 경에게 잘 보이려는 계획 말이다.
"아무튼, 이제 집으로 가자꾸나."
앨리시아는 일부러 도미닉 경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말했다.
"이제 곧 이벤트도 끝나니, 지금이 딱 적기잖니."
"이벤트가 끝난다라?"
도미닉 경이 앨리시아의 말에 흥미를 가졌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구려."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잠시 과거의 공지사항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정말로 곧 [미래로의 회귀] 이벤트가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기껏해야 며칠의 말미만이 남아 있을 뿐.
도미닉 경은 문득 어린 도미니아 경을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어린 도미니아 경도 돌아가는 것일까?
"음."
도미닉 경은 집에 돌아가면 도미니아 경과 좀 더 많이 놀아줘야겠다는 생각했다.
물론, 눈앞에 있는 도미니아 경과도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도미니아 경과 같이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미닉 경. 그러니..."
"그, 괜찮다면 점심이나 다 같이 먹겠소?"
나이스.
앨리시아는 도미닉 경의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앨리시아는 도미니아 경의 어머니인 만큼, 도미닉 경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먼저 같이 밥을 먹자라는 의미는, 상대를 가족이나 그에 따르는 사람으로 대한다는 의미였다.
그 말인 즉, 지금의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와 도미니아 경에게 제법 높은 호감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고, 모든 것이 앨리시아의 뜻대로 되어 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그래도 괜찮을까요?"
앨리시아는 짐짓 괜찮겠냐는 듯 그렇게 물었다.
"물론이오."
그렇게 말한 도미닉 경은 이미 엉망이 된 캠핑장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 날아다니는 메카 들고양이의 습격으로 난장판이 된 이 장소는, 더 이상 밥을 해먹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무엇보다도, 방금 전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잖소. 그러니 제대로 밥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소?"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앨리시아 뒤에 있는 네 사람, 돈 카게야샤와 도미니아 경, 메리와 미네르바를 가리켰다.
"...그렇겠네요."
그렇게 말한 앨리시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도미닉 경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그래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오."
"그럼, 사양 않고."
그렇게 말한 앨리시아 부인은 다시 돈 카게야샤와 도미니아 경, 메리, 그리고 미네르바를 쳐다보았다.
그 얼굴이 어땠는지는 그 네 사람만이 볼 수 있었지만, 그 네 사람의 반응을 보면 꽤 이상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
도미닉 경은 일행들을 이끌고 꽤 괜찮은 음식점을 찾아갔다.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검색만 하면, 지도에 딱 표시를 해주니까 말이다.
가격이 조금 나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도미닉 경의 지갑은 풍족했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도미닉 경은 미래에서 온 도미니아 경의 어머니... 그러니까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는 며느리가 될 이가 꽤 마음에 들었다.
아마 그러니 미래의 도미닉 경이 그녀를 며느리로 들였던 거겠지. 라고 도미닉 경은 생각했다.
"어머. 이거 도미니아 경에게 꼭 어울릴 것 같네."
앨리시아는 도미니아 경에게 근처 옷 가게의 마네킹에 걸려 있던 원피스를 가리켰다.
"...아, 좀. 엄마. 저건 너무 하늘하늘하잖아."
"뭐 어떻니? 예쁘기만 하구만."
"저번에도 고딕풍 드레스를 입히려고 하더니."
앨리시아와 도미니아 경은 서로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들의 대화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검열 시스템의 영향으로 그들의 말 일부분이 뚝뚝 끊겨서 들렸기 때문이었다.
"저번에■■■가■■■■■를 사서 내게■■는 바람에 내가 얼마나 쪽팔렸는지 알아?"
"얘는? 그래뵈도 브랜드였단다?■■■■■에서 나온 신상이었어."
"그러니까! 남들은 다 평범하게 지하철이나 버스 타고■■■■같은 중저가 브랜드 입고 다니는데, 나만■■■■■같은 곳에서 파는■■■■■를 입고 다니잖아! 너무 눈에 띈다고!"
"중저가 브랜드를 입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닌다고? 그게■■■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나?"
"아니, 그 뜻이 아니잖아! 오늘따라 왜 그래?"
도미니아 경은 앨리시아가 왜 이렇게 답답하게 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평소의 앨리시아가 경제 관념이 투철하고 절약 정신이 강하다는 인상이었다면, 지금의 앨리시아는 마치... 도미니아 경의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다.
경제 관념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돈 아까운 줄 모르는 철부지같은 모습!
"...아버님 앞이니까."
그러니 좀 도와라. 집에 가서 더 혼나기 싫으면.
앨리시아가 도미니아 경의 귓가에 그렇게 속삭였다.
도미니아 경은 그제야 앨리시아가 도미닉 경 앞에서 내숭을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실제로 앨리시아는 도미닉 경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일부러 교양있는 척, 얌전한 척은 다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내숭의 극의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앨리시아는 도미닉 경 앞에서 이렇게 내숭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도미닉 경이 이런 부류의 여성에 대해서 나름의 환상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미닉 경은, 페럴란트에 있었을 당시 지속해서 보던 여성이 하나 있었다.
모두 잘 알겠지만, 그 여성이란 바로 앨리스 백작 영애였다.
척박한 페럴란트에서도 남자들만 가득한 군대와 기사단 속에서 가장 자주보는 여성이란, 앨리스 백작 영애가 전부였다.
당연하게도 도미닉 경의 머릿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은 앨리스 백작 영애의 모습으로 박혔다.
귀족 출신으로서 교양이 넘치고, 귀부인으로서 행동에 품위가 넘치며, 기사답게 진취적인 인물.
도미닉 경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물론, 앨리스 백작 영애가 가차랜드에 휴가차 놀러 오면서 그 환상은 어느 정도 깨져 버리긴 했으나, 지금까지 쌓아 올려진 이상적인 여성상까지 깨져 버린 것은 아니었다.
미래에서 온 앨리시아는 바로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앨리시아가 도미닉 경의 저택에 갈 때마다, 도미닉 경의 아내, 즉 앨리시아에게는 시어머니요, 도미니아 경에게는 할머니가 되는 분께서 해주시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정작 그런 아내가 아니어서 미안해요.'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내 눈에는 그대만큼 아름다운 여성이 없소.'
앨리시아는 문득 그때를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음? 왜 그리 웃소?"
도미닉 경은 갑자기 웃는 앨리시아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니에요. 도미닉 경은 미래와 조금 다르구나, 싶어서 말이죠."
"...? 그렇소?"
도미닉 경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여기로군."
도미닉 경이 위치를 파악하고 바로 그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고개를 들어, 엄청난 높이의 건축물을 바라보았다.
"...여기에 그런 고급 식당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도미닉 경은 의외라는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도미닉 경이 있는 곳은 바로, 블랙 그룹 백화점이 있는 곳이었다.
"뭐, 일단 가보도록 합시다."
도미닉 경은 사람들을 이끌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타서 지도에 적혀 있는 대로 가장 높은 층의 버튼을 눌렀다.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는 가장 높은 곳에 도착했다.
도미닉 경이 가장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여기인가 보군."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 '거센 폭풍 속의 영웅들'이라는 간판을 바라보았다.
간판의 옆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듯 푸른색으로 뱅글뱅글 도는 육각형 접시가 있었다.
"흠."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다른 곳을 찾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는 노릇.
도미닉 경은 그렇게 식당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세요. 혹시 예약하셨나요?"
"아니, 아니오."
"그러신가요? 몇 분 이신가요?"
"여섯 명이오."
도미닉 경은 바로바로 직원의 말에 답했다.
"지금 자리가 없어서 1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하거든요. 옆에 대기실에 계시면 불러드리겠습니다."
"음. 알겠소."
도미닉 경은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는 대기실로 갔다.
"미안하구려. 미리 알아보고 예약했어야 하는데..."
"아니에요. 얻어 먹는 것도 죄송한데 사과까지..."
도미닉 경과 앨리시아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옆에 있는 대기실로 이동했다.
"아무튼, 오늘은 걱정하지 마시구려. 내가 낼 테니, 마음껏... 음?"
도미닉 경은 일행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다가, 문득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도미닉 경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도미닉 경을 빤히 쳐다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두 사람 중 하나가 도미닉 경을 유심히 노려보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아주 익숙한 사람과 마주하고 말았다.
"...히메 공이 거기서 왜 나오시오?"
그곳에는, 도미닉 경을 아주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는 운류 히메가 있었다.
무릎 위에 2등신의 뚜 르 방을 올려 둔 채, 뚜 르 방의 볼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