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80화 (447/528)

〈 480화 〉 [479화]예상치 못한 과정

* * *

"앨리시아라고?"

도미닉 경은 갑자기 나타난 검은 양복의 여성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주군... 그러니까 앨리스 백작 영애와는 무슨 사이지?"

흰 머리에 검은 양복,앨리스 백작 영애를 닮은 눈빛.

그리고 앨리스 백작 영애와 비슷한 앨리시아라는 이름.

도미닉 경은 분명히 저 여성이 앨리스 백작 영애와 어떠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글쎄요, 어떨런지."

앨리시아는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그 연기를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아쉽게도 시스템상, 미래의 중요한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어서 말이예요. 미래에 영향이 가는지라서."

"음."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한 것도 납득한 것이지만, 앨리시아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앨리시아의 존재는 '미래에 영향이 갈 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는 말은, 도미닉 경에게도 꽤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소리겠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자신을 납득시키며 힐끔 날아다니는 기계 들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도와줘서 감사하오."

도미닉 경은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으며 평소처럼 예의 바른 기사로 돌아왔다.

플라잉 메카 들고양이는 이미 수많은 검은 양복들에게 둘러싸여 엉망진창인 된 채 바닥에 추락하고 있었다.

"대단한 위력이로군."

도미닉 경은 이제 빛으로 화해 사라지는 고양이를 보았다.

앨리시아가 나타난 이후, 플라잉 메카 들고양이는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쓰러지고 말았다.

수많은 검은 양복들이 내뿜는 화력도 화력이었지만, 그 모든 화력이 원거리 무기였기에 온전히 한 점으로 집중될 수 있었다.

"사기라고 부를 수도 있겠어."

"뭐, 아버... 아니, 도미닉 경만 할까요."

도미닉 경이 그 특수 기술을 보며 사기스럽다고 중얼거리자, 앨리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반론했다.

"강력한 위력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만, 그 강력한 기술을 막아 내는 사람들은 미래에 없죠."

앨리시아는 또한 미래에 도미닉 경보다 더 단단한 탱커는 몇 없다고 말하려다가 말을 바꾸었다.

이 역시 미래에 영향을 주는 정보였고, 무엇보다도 현 시대의 최고 탱커인 도미닉 경에게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구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런 것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나저나, 여기엔 무슨 일로 온 거요?"

오히려 도미닉 경은 앨리시아가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 의도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물론 도미닉 경도 아직 '미래로의 회귀' 이벤트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도미닉 경이 보아왔던 미래의 인물들은 모두 도미닉 경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꺼리고 있었다.

예외적으로 어린 도미니아 경과 돈 카게야샤가 있었지만, 어린 도미니아 경은 혼자 있기엔 너무 나이가 어렸고, 돈 카게야샤도 도미닉 경과 만나려는 의도로 도미닉 경과 만났던 것은 아니었다.

오리 너구리 인형이라는 인연으로 인해 서로 만나게 되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직접적인 만남을 피하는 것만 봐서 그런지, 도미닉 경은 이렇게 직접 다가오는 것 자체가 조금 어색했다.

그런 사실을 앨리시아도 알았는지,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나쁜 의도는 없었다는 듯 말했다.

"도미니아 경을 잡으러 왔어요."

"도미니아 경을?"

도미닉 경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어느 도미니아 경인지를 물었다.

"어느 쪽 말이오?"

"어느 쪽이라뇨?"

"어린 도미니아 경이오, 아니면 여기 있는 도미니아 경이오?"

"어린... 도미니아 경이요?"

앨리시아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도미닉 경에게 되물었다.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보고, 어린 도미니아 경에 대해선 앨리시아도 몰랐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쩐지 이 시대로 시간 여행을 가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

앨리시아는 마침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도미닉 경이나 도미니아 경에게 보내는 분노가 아니었다.

제 3자에 대한 분노였다.

"돌아가기만 해 봐, 남편이라고 있는 건 아주 세상 물정을 몰라선­"

"...앨리시아 공?"

"아."

앨리시아는 도미닉 경의 말에 거의 완전히 연소된 담뱃재를 탁탁 털어내고는 파이프 담배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 다 듣지는 못하셨겠죠?"

"뭔가 노이즈가 낀 것 같아서 말이오. 괜찮은가 싶어서."

앨리시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자기가 중얼거린 말 중 미래를 바꿀지도 모르는 말들을 했을지도 몰랐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시스템은 자동으로 앨리시아의 말을 검열해준 모양이었다.

"못 들으셨다면 다행이예요."

앨리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캠핑장에 있는 도미니아 경을 쳐다보았다.

...

현재 도미니아 경은 캠프 앞 모닥불에서 무릎을 꿇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메리는 자기 방패와 산탄총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너 잡으러 왔었다고 말하면 그만이야."

"뭐?"

"애초에 나 시간 경찰이잖아. 너 잡으러 온 것도 맞고."

메리는 그렇게 말하며 이 사건에서 한 발짝 뺐다.

"그러고 보니, 그런 설정이었지."

"설정은 아니야. 진짜 시간 경찰이니까."

"그런 것치고는 시간 경찰과 연관된 게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자리에서 휴가를 냈거든."

"아하."

미네르바는 메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네르바도 경찰 대학에 합격한 만큼, 어느 정도는 시간 경찰에 대해서 잘 알았다.

그들은 다양한 시간 선을 오가기 때문에 시스템 인더스트리 다음으로 시간 선이 꼬여 있기로 유명했다.

그러니 휴가를 낸 메리와 휴가를 내지 않은 메리가 한 곳에 있을 확률도 충분히 있는 것이었다.

...이상한 생각이었지만, 가차랜드에선 말이 되는 일이었다.

"미, 미네르바?"

도미니아 경은 미네르바를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니, 나도 애초에 따로 여행왔다가 만난 거였으니까..."

미네르바는 도미니아 경의 기대를 무참히 박살 냈다.

하지만 미네르바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앨리시아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꽤 자주 듣고 자랐다.

그의 할아버지들인 박춘배와 말레이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사람이었다.

'마침내 이 악당계에 초신성이 등장했다.'

'슈퍼 디럭스가 은퇴한 지금 진정한 빌런의 계보가 끊겼었는데 그 계보를 이어가는 천재다.'

그렇게 할아버지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앨리시아 부인에 대해서 들었던 탓에, 미네르바는 앨리시아 부인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성향에 대해서도.

앨리시아 부인은 흑막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돈을 펑펑 쓰는 무계획적인 호인의 이미지에 가깝다면, 앨리시아 부인은 모든 것을 자기 계획 아래에 집어넣고 조종하는 스타일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그녀가 일을 저질렀다는 증거를 전혀 남기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만큼 앨리시아 부인은 잔혹하고, 이성적이며, 천재적인 악당이었다.

...아마도.

그런 그녀가 이렇게 직접 행차했다는 것은, 그만큼 지금, 이 상황이 중요하다는 반증이었다.

적어도 미네르바는 그렇게 생각했다.

뭐,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미네르바는 다른 집안의 일에 손을 뻗을 만큼 오지랖 넓은 사람은 아니었다.

질 확률이 100%에 수렴하는 일에 발을 내밀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도 아니었고.

도미니아 경과의 우정은 중요하긴 했지만... 우정은 우정이고,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지 않은가.

'미안. 그래도 몇 마디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거야.'

미네르바는 도미니아 경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면서 그런 입 모양을 보여 주었다.

도미니아 경은 미네르바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할 것을 알아차리자,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자기가 생각해도 미네르바가 도와줄 것은 없었다.

미네르바의 말대로, 그녀가 도미니아 경을 도와줄 수 있는 건 그저 몇 마디의 변명뿐이리라.

"삼촌?"

대신 도미니아 경은 삼촌인 돈 카게야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돈 카게야샤도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나도 도와줄 수 없을 것 같구나."

"...어째서요?"

"네 어머니의 성격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돈 카게야샤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돈 카게야샤는 앨리시아와 그다지 나이 차가 크지 않았다.

그 말인 즉, 비슷한 시절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뜻이기도 했다.

돈 카게야샤는 학창 시절의 앨리시아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모습은 한 조직의 수장이 되면서, 그리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면서, 또 누군가의 엄마가 되면서 꽤 부드러워진 상태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내막을 알고 있는 돈 카게야샤로는, 괜히 앨리시아 부인의 화를 긁어 부스럼 만들기는 싫었다.

"...휴."

도미니아 경은 외통수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

도미니아 경은 모닥불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곧 있을 자신에 대한 처분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시각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다가왔다.

"도미니아 경?"

"...네, 엄마."

도미니아 경의 앞으로 앨리시아가 다가왔으니까.

도미니아 경은 곧 있을 호된 잔소리를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분명 카랑카랑한목소리로 도미니아 경이 한 잘못에 대해서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 보리라.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도미니아 경이 기다리는 잔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도미니아 경은 자신을 꼭 안아주는 따뜻한 품을 느꼈다.

도미니아 경이 놀라 눈을 번쩍 뜨고 자신을 안아준 사람을 바라보았다.

앨리시아가, 도미니아 경을 품에 꼭 안아주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서럽게 눈물을 흘리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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