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8화 〉 [477화]예상치 못한 조력자
* * *
거대한 기계 들고양이는 네 다리가 멀쩡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뜬금없이 튀어나온 터보 엔진 호버링 장치를 통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맙소사."
그 모습을 보던 돈 카게야샤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2페이즈가 있다고? 그렇다면 최소 중간 보스급 이상이라는 뜻인데?"
"9개의 생명이예요."
그때였다.
돈 카게야샤는 문득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했다.
이 목소리는 설마
돈 카게야샤는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말을 건 사람의 정체를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돈 카게야샤는 자기 짐작이 맞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돈 카게야샤를 경악에 빠뜨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돈 카게야샤의 시선을 일부러 무시한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177지역의 몬스터인 기계 들고양이들은 9개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 있어요. 물론 너무 험한 곳에서 살다 보니 정확하게는 한두 번 정도의 목숨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어쨌든 성가신 건 분명하죠."
돈 카게야샤는 설명을 이어 나가는 사람을 자세히 보았다.
그녀는 하얀 단발머리에 검은 코트를 입고 검은 중절모를 쓴 여성이었는데, 붉은 넥타이가 인상적이었다.
돈 카게야샤는 힐끗 도미니아 경과 미네르바가 있는 곳을 보았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도미니아 경은 지금 새롭게 등장한 이 여성의 존재를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물론, 눈앞에 있는 여성도 도미니아 경과 미네르바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직 조금 전의 폭발의 여파가 가시지 않아, 둘은 검은 연기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긴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돈 카게야샤는 굉장히 공손한 태도를 취한 채 눈앞의 여성에게 말했다.
"어머, 제가 못 올 곳에 왔나요?"
"그 뜻이 아닙니다. 제 말은"
"그만. 저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벌 생각이면 그만둬요."
여성은 중절모를 깊게 눌러쓰며 돈 카게야샤의 말을 막았다.
"그럴 리가요, 앨리시아 영애. 아니, 부인."
돈 카게야샤는 그런 여성을 앨리시아 영애라고 불렀다.
아니, 부인이라고 정정했다.
그 뜻은...
"그래서, 우리 딸은 어디에 있는 거죠?"
앨리시아 부인이 주머니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돈 카게야샤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돈 카게야샤는 앨리시아 부인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앨리시아 부인은 담배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담배를 피는 때가 드물게 있었는데, 그건 그녀가 아주 큰 스트레스를 받을 때였다.
그리고 그렇게 큰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는, 절대로 그녀를 도발하거나 건드리면 안 되었다.
만일 이러한 주의를 어겼다면, 그 뒤는...
돈 카게야샤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
도미닉 경은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한 플라잉 메카 들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기계 들고양이는 도미닉 경을 아주 오만한 태도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군."
도미닉 경은 오히려 그렇게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플라잉 들고양이를 보며 씨익 웃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미닉 경 스스로는 잘 모르는 도미닉 경의 성격이 드러난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페럴란트에서 마족들과 싸울 당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싸우는 것을 좋아했다.
몸이 으스러지고, 정신이 녹아내리며, 마음이 꺾일 것 같은 전투.
도미닉 경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런 전투였다.
처음엔 당시 가족을 잃었던 슬픔에 빠져 그런 식으로 자신을 학대한 것이었으나, 이후 이런 전투방식은 도미닉 경의 기본적인 태도로 자리 잡았다.
그런 도미닉 경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상대가 숨겨둔 한 수를 꺼내 들 때였다.
그럴 때마다, 도미닉 경은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와 함께 마치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했다.
그만큼 그는 한 때 전투에 미친 전투광이요, 피와 살육에 미친 광인이요, 철과 불로 뼈와 살을 갈라내는 도살자였다.
괜히 그가 '행복한' 도미닉 경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거, 페럴란트의 성격이 돌아온 도미닉 경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두근거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지. 그렇게 숨겨둔 한 수를 꺼내 날 즐겁게 해주어야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검과 방패를 들어 올렸다.
조금 전 1페이즈에서 들고양이를 제압하다가 힘을 줘 다시 터진 상처가 신경 쓰일 법도 했지만, 도미닉 경은 그런 것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도미닉 경은, 엔돌핀과 아드레날린이 과다하게 분비되어 이미 반쯤 광인의 영역에 도달하기 직전이었다.
이 전투, 분명히 재밌다!
...라고 생각한 도미닉 경.
그런 도미닉 경의 마음을 알았는지, 플라잉 메카 들고양이는 하악질을 하며 도미닉 경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금 전보다 명백하게 빠르게 날아다니며, 도미닉 경의 방어를 교란시키려는 듯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플라잉 메카 들고양이.
도미닉 경은 그 놀라운 속도에 다소 놀란 듯 보였으나, 이내 패턴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도, 분명히 일종의 습관이 배어 있었다.
"좌. 우. 좌. 좌. 좌. 우. 좌. 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플라잉 메카 고양이의 공세를 막아 내기 시작했다.
플라잉 메카 고양이는 조금 전 1페이즈에서 모든 발톱을 잃어 버렸기에, 직접 할 수 있는 공격은 몸통 박치기와 어느새 장착되어 있던 작은 포탑들이었다.
도미닉 경은 멀리서 쏘아대는 포탑의 공격에 방패를 들어 막아 내었다.
손목이 조금 아려오기는 했으나, 방패는 1페이즈 때와는 다르게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었다.
문제는 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와 부딪치는 몸통 박치기였다.
플라잉 메카 고양이는 금속으로 된 장갑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그 충격량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몸통 박치기한 번 방패로 막거나 흘려보려고 해 보았으나, 무려 12미터라는 거구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질량은 도저히 막아 내기 힘든 것이었다.
물론 5성 도미닉 경의 스탯이라면 충분히 막아 낼 수도 있겠으나, 지금의 도미닉 경은 디 버프로 인해 그 스탯이 절반 이상 감소된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이 문제가 가장 큰 문제였다.
도미닉 경은 날아다니는 것을 요격할 수 있는 방도 자체가 없다는 문제 말이다.
도미닉 경은 검과 방패를 쓰는, 순수한 근접 탱커였다.
먼 거리에 있는 적을 견제하거나, 날아다니는 적에게 효과적인 한 방을 먹여줄 수단이 전무하다는 뜻이었다.
"...이대로라면 굉장히 불리하겠는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당연하게도, 도미닉 경은 이런 불리한 상황조차 행복해하고 있었다.
애초에 도미닉 경은 언제나 불리한 전장에서 불리한 상성으로 싸워왔던 역전의 투사였고, 근성의 기사였다.
그런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이런 '사소한' 페널티는 오히려 도미닉 경을 더 즐겁게 만들 뿐이었다.
"슬슬 힘이 돌아오는 느낌이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방패를 쥔 쪽의 손을 쥐었다가 펼쳤다를 반복했다.
무엇보다도 도미닉 경은 스탯이 점점 돌아오고 있었다.
상태 이상 저항력이 낮아졌다고 한들, 도미닉 경의 저항력 스탯은 가차랜드에서 최상위 권이었다.
디 버프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 시간이 그다지 길지는 않다는 소리였다.
"으음..."
도미닉 경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인지 완전히 포식자의 눈처럼 변한 동공이 무서웠다.
"어떻게 해야 저 녀석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도미닉 경이 그렇게 고민하며 계속해서 플라잉 메카 들고양이의 공세를 막아 내었다.
이제 도미닉 경은 플라잉 메카 들고양이의 공격을 다른 생각하며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스탯이 복구된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아버... 아니,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은 문득,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도미닉 경은 몸통 박치기를 시전하는 메카 고양이의 공격을 방패로 흘리며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충격을 흡수하기 위함도 있지만, 자신을 부른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주군?"
도미닉 경은 자신을 부른 사람을 바라보았다.
흰 머리에 검은 양복, 검은 코트, 그리고 검은 중절모.
목에 멘 넥타이는 쨍하게 붉어, 아주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 여성의 모습을 보며 문득 앨리스 백작 영애가 생각이 났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여성은 중절모를 깊게 눌러쓰더니, 입에 물고 있던 파이프 담배를 손에 쥐고 허공에 연기를 뿜어내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특수 기술을 사용했다.
"[페럴란트 갱]"
그 순간, 이 드넓은 캠핑장의 구석구석 몸을 숨길 수 있을 만한 곳에서 검은 양복에 중절모를 쓴 이들이 권총과 기관단총, 산탄총을 들고 나타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미닉 경이 가장 좋아하는 탈 것 중 하나인 거미전차.
양산형 거미전차를 탄 양복들이 건물 뒤에서 튀어나오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증기기관을 탄 양복들도 속속히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였다.
조금 전 도미닉 경을 부른 여성처럼, 검은 양복에 검은 중절모를 쓴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인 것을 확인한 여성은, 다시금 파이프 담배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고는, 도미닉 경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
"앨리시아, 참전합니다."
그 눈빛은, 도미닉 경이 페럴란트에서 자주 보던 눈빛이었다.
바로, 앨리스 백작 영애의 눈빛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