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7화 〉 [476화]예상치 못한 레이드
* * *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 도착한 이후 지금 만큼 정신이 명쾌하고 상쾌한 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페럴란트 당시 날카롭던 감각과 정신이 돌아온 것만 같았다.
"재밌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방패를 쥔 손에 힘을 줘보았다.
"오히려... 힘이 넘치는 느낌이야."
정작 도미닉 경의 말과는 반대로 그의 손에는 그다지 힘이 없었으나, 도미닉 경은 오히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애초에 도미닉 경은 포식자라기보다는 피식자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언제나 자기보다 강한 마족들을 상대로, 평범한 인간의 육신으로 싸워왔으니까.
지금처럼 스탯의 보정을 받는 삶은, 어쩌면 도미닉 경을 나태하게 만들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디 버프를 받아 스탯의 보정을 거의 받지 못하는지금의 상황은... 도미닉 경에게 초심을 상기시켜 주었다.
"정말 재미있어."
도미닉 경은 크큭. 하고 웃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들고 있던 방패가 카가각 소리를 내며 긁히는 소리를 내었다.
여러분들은 그 소리로 짐작했겠지만, 그것은 거대 기게 들고양이가 앞발을 들어 도미닉 경을 할퀸 소리였다.
그러나 지금의 도미닉 경은 이미 초심으로 돌아가, 페럴란트 당시의 날카롭던 그 모습을 거의 되찾은 상태.
도미닉 경은 섬광처럼 휘둘러진 고양이의 앞발을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그 각도는 기묘하기 그지없어서, 합금으로 된 칼날 발톱과 발톱 사이에 방패의 모서리를 끼워 넣은 듯한 형국이 되었다.
거대 기계 들고양이는 당황스럽다는 듯 야옹거렸다.
설마 자기 공격에도 방패가 박살 나지 않을 줄이야.
조금 전 펀치를 통해 전투력을 감안한결과를 생각하면, 방패와 함께 도미닉 경은 두 동강이 나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러지 않았다.
방패의 겉 부분에 긁힌 자국이 남기는 했으나, 방패는 멀쩡했다.
아니, 멀쩡하다못해 오히려 발톱과 발톱 사이를 막아 다음으로 이어질 공격을 봉쇄했다.
거대 기계 들고양이는 도미닉 경을 향해 반대편 팔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저 기묘한 각도의 방패에 걸려 버린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꼴사납게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거대 기계 들고양이가 짜증이 난다는 듯 마구 울어댔으나, 도미닉 경은 입꼬리가 거의 광대까지 올라간 상태로 그런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발톱과 발톱 사이에 걸린 방패의 아랫부분을 발로 뻥 걷어찼다.
그러자, 지렛대의 원리로 인해 위에 있던 합금 칼날 발톱 하나가 뚝 부러지고 말았다.
"방패가 좋아서 다행이었어."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방패를 회수했다.
가차랜드의 장비는 뚫리거나 훼손될지언정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용한 공격이었다.
"!"
거대 기계 들고양이는 완전히 무력화된 자기 발톱 하나를 보며 마구 하악질을 해댔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짜증이 난다는 듯 말이다.
이내 이 고양이는 이 짜증의 원흉인 도미닉 경을 보았다.
고양이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도미닉 경을 향해 포효했다.
얼마나 자신이 화가 났는지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도미닉 경의 바로 앞에서 입을 벌리고 포효한 거대 기계 들고양이.
물론, 지금의 도미닉 경이 그런 좋은 상황을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도미닉 경은 방패의 모서리를 있는 힘껏 휘둘러 거대 메카 들고양이의 콧잔등을 찍었다.
거대 메카 들고양이는 두꺼운 장갑으로 둘러져 있었으나, 일부분은 생명체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코나 입, 수염 같은 부분들은 말이다.
도미닉 경은 바로 그 점을 노려 공격을 한 것이었다.
기계인 부분은 아무리 때려도 멀쩡하겠지만, 저렇게 '나 약점이오.'하고 드러난 부분이라면 말이 달랐다.
물론, 방패 모서리로 친 것은 도미닉 경의 철저한 계산 아래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 전 도미닉 경의 공격에 아파하면서도 몸을 움직이지 못 하는 거대 기계 들고양이의 모습에 그 정답이 있었다.
그렇다.
도미닉 경은 그 짧은 순간에 거대 기계 들고양이에게 상태 이상 기절을 먹인 것이다.
"지금이다!"
도미닉 경이 뒤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던 돈 카게야샤와 도미니아 경, 메리와 미네르바를 향해 소리쳤다.
"아, 알겠습니다!
"
그 외침에 깜짝 놀란 돈 카게야샤가 손에 쥔 할버드를 꽉 쥐었다.
여전히 그 할버드에는 돈 카게야샤의 특수 능력 [그리하여 불의 신이 진노하나니]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였다.
돈 카게야샤는 할버드의 끝자락을 양손으로 잡고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 하는 거대 메카 들고양이의 뒤로 달려가 뒷다리의 발목 힘줄 부분을 향해 그 거대한 할버드를 휘둘렀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불꽃의 궤적이 허공에 수놓아지며 거대 메카 들고양이의 오른쪽 뒷 발이 무력화되었다.
"영광입니다!"
메리는 한 손에는 산탄총을, 한 손에는 방패를 든 채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조금 전 도미닉 경이 한 것처럼 방패로 발톱과 발톱 사이를 묶어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든 뒤, 역시나 발목 부분의 힘줄을 향해 연속으로 산탄총 세례를 갈겼다.
돈 카게야샤의 공격처럼 깔끔하게 무력화가 되지는 않았으나, 거대 들고양이는 힘이 빠진다는 듯 왼쪽 뒷다리를 굽혔다.
두 개의 뒷다리가 무력화되자, 거대 들고양이는 앉은 자세가 되었다.
물론 이 상태만이라면 기절 시간이 끝났을 때 다시금 공격을 이어 나갈 수 있었겠지만, 거대 기계 들고양이에게는 불행하게도 고양이에게 달려드는 두 명의 사람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내가 왼쪽을 맡을게!"
그렇게 말한 미네르바가 쌍권총을 난사했다.
그러나 권총은 경장갑에 효과적인 무기였기에 거대 기계 들고양이처럼 두꺼운 장갑과 가죽을 가진 개체에는 큰 피해를 주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지. 이것만큼은 안 쓰려고 했는데...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미안 해요!"
그렇게 말한 미네르바는 품속에서 낡은 다이너마이트 묶음을 꺼내 들었다.
그곳에는 재밌게도 박춘배와 말레이의 사인이 그려져 있었다.
이 다이너마이트 묶음은 박춘배와 말레이가 승급했을 때 일성 동맹의 사람들이 돈을 모아 만들어 준 일종의 축하 트로피였다.
그러나 이건 박춘배와 말레이의 특성처럼, 강력한 한 방을 가진 무시무시한 폭발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미네르바는 박춘배와 말레이가 일성 동맹에게서 받은 이 무시무시한 폭발물 트로피를 가지고 있는가?
그건,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였다.
'그, 양로원의 다른 분들께서 불안해 하시니까 그 트로피는 돌려보내는 것이...'
'뭐? 에잇! 나약한 노인들 같으니! 나 때는 말이야, 도미닉 경에게도 도전할 정도로 담이 큰 사람들 뿐이었어!'
'...박춘배 저 할배가 노망이 났나. 미네르바야. 여기 이거 가져가라. 여기선 위험하다고 하니, 네가 집에 가져다 놔 주렴.'
그렇다.
박춘배와 말레이는 이 트로피를 꽤 자랑스럽게 여겼는지 양로원에도 이 트로피를 가져가려고 했다.
그러나 조금 전에도 말했듯, 이 트로피는 폭발물이었기에 가차랜드 양로원의 사람들은 이 트로피를 보고 두려워했다.
안 그래도 삭신이 쑤셔서 죽겠는데, 폭발에 휩쓸리고 나면 부활해도 일주일은 근육통에 시달릴 것이었으니까.
결국 트로피는 미네르바의 손에 쥐어졌다.
집에 돌려보낸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리고... 미네르바는 그 트로피를 인벤토리에 넣고는, 깜빡 잊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고로케의 고소한 냄새에 못 이겨 트로피에 대한 것을 깜빡한 것이다.
아무튼, 지금, 이 순간 미네르바는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에게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렇게 제대로 된 딜을 넣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미네르바는 최대한 이 다이너마이트 뭉치의 심지를 짧게 자른 뒤, 조금 전 돈 카게야샤가 휘둘렀던 할버드의 궤적으로 뛰어가 그 심지를 가져다 댔다.
불로 이루어진 궤적은 아직 [그리하여 불의 신이 진노하노니]의 영향으로 남아 있는 상태였고, 당연히도 다이너마이트 뭉치에는 불이 붙었다.
"으, 떨리네."
미네르바는 곧바로 그 다이너마이트 뭉치를 왼쪽 앞발을 향해 집어 던졌다.
까딱하면 폭발에 휩쓸릴 수도 있었으나, 미네르바는 몸놀림이 빠른 원딜러였기에 폭발에 휩쓸리는 일은 없었다.
"3, 2, 1. 지금."
미네르바가 카운트 다운을 세자, 그에 맞춰 다이너마이트 뭉치가 폭발했다.
엄청난 매연과 그을음이 폭발음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폭발한 그 순간에는 거대 기계 들고양이에게 얼마나 데미지가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이윽고 검은 연기가 걷히자 명확하게 그 피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거대 기계 들고양이의 왼쪽 앞발은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장갑은 다 떨어져 나가고, 다리를 구성하던 금속 프레임은 찌그러져 제구실을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이스!"
도미니아 경이 연기를 뚫고 나와 미네르바에게 손을 들고 다가왔다.
"고마워!"
미네르바는 그런 도미니아 경에게 하이 파이브로 화답했다.
"그나저나, 너는 다 끝난 거야?"
미네르바가 도미니아 경에게 말했다.
"물론이지."
미네르바는 문득 도미니아 경의 허리춤에서 단검 몇 개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도미니아 경이 들고 있는 리볼버의 총알 몇 개가 격발되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리고 도미니아 경의 검에 묻은 검은 기름을 보았다.
다음으로, 도미니아 경의 방패에 가득 박힌 금속 파편들을 보았다.
"...한바탕 난리를 친 모양이네."
미네르바는 도미니아 경의 상태에 혀를 내두르며 마지막으로 도미니아 경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도미니아 경은 그런 미네르바의 말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가 광대에 걸릴 정도로 큰 미소를 말이다.
...확실히, 도미니아 경은 도미닉 경의 핏줄이었다.
연기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도미니아 경을 비롯한 네 사람의 힘으로 거대 기계 들고양이는 네 다리를 잃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끔찍한 고통에 고양이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으나, 아직 도미닉 경의 기절 상태 이상이 풀리지 않아 그럴 수도 없었다.
그만큼 이 모든 일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거대 기계 들고양이는 기절이 풀리자마자 바닥에 풀썩 쓰러져 마구 포효를 내질렀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듯 말이다.
"끝났네."
돈 카게야샤와 도미니아 경, 메리와 미네르바는 저 거대한 기계 들고양이를 완전히 제압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 만큼은 조금 생각이 달랐다.
"...아직인가?"
도미닉 경은 다시 방패를 들어 올리고 경계 태세를 취했다.
"...? 삼촌. 무력화가 되었으니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도미닉 경이 경계를 하던 모습을 바라본 돈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이 괜한 경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네 다리를 잃은 거대한 기계 들고양이가 갑자기 터보 엔진을 가동시키며 하늘로 날아오르기 전까지는.
맙소사.
이제 도미닉 경과 그 일행들은, 거대한 기계 들고양이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비행 기계 들고양이를 상대하게 된 것이다.
"야옹."
거대한 비행 기계 들고양이가 도미닉 경을 노려보았다.
이제 더 이상 굴욕은 없을 것이라는 듯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