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6화 〉 [475화]예상치 못한 레이드
* * *
도미닉 경은 가장 먼저 장비를 갖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저 거대한 기계 들고양이에게 다가갔으나, 그런 도미닉 경보다 빠른 것이 있었다.
바로, 시스템 창이었다.
[경고! 경고!]
[가차랜드 서부 캠핑장에 있는 모든 시민들에게 알려드립니다.]
[현재 가차랜드 서부 캠핑장에 스토리 모드 177지역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출몰했습니다.]
[4성, 5성이 아니거나 스토리 모드 177지역을 깨지 못한 분들께서는 신속하게 가까운 안전지대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빠르기도 하군요."
돈 카게야샤가 할버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는 벌써 그의 특수 기술, [그리하여 불의 신이 진노하나니]를 사용하고 있었다.
금속의 가루가 흩뿌려지고, 그의 할버드에 형형색색의 불꽃이 튀었다.
"일단, 전위는 내가 서는 게 좋겠소."
도미닉 경은 거대 기계 들고양이의 손톱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거대 기계 들고양이의 손톱에는 무언가 부패하고 썩어가는 것이 묻어 있었는데, 대놓고 나 위험하다고 광고라도 하듯 녹색의 불길한 연기가 휘감겨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 냄새로 미루어보아 음식물 찌꺼기라고 생각했다.
참치 통조림을 보고 환장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근처의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거나 한 것이 틀림없으리라.
"177지역의 몬스터들이 얼마나 강한지 가늠이 되지 않는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방패를 앞세운 채 다시 기계 들고양이 앞으로 전진했다.
기계 들고양이는 도미닉 경을 보며 계속해서 하악질을 하고 있었는데, 침이 달린 기계 꼬리는 꼿꼿이 세워져 있었고, 등에 있는 외부 장갑들이 일제히 곤두섰다.
고양이가 다 그렇듯, 도미닉 경을 경계하는 것이었다.
저 거대한 기계 고양이는 도미닉 경에게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었는데, 1미터에 이르는 날카로운 합금 칼날들은 특수한 코팅을 한 듯, 햇빛에도 반짝거리거나 하는 것 없이 그림자 속에 감춰져 있었다.
그러나 코팅이 완전하지는 않은 듯, 곳곳에 묻은 음식물 찌꺼기들은 부패해가며 독소를 배출하고 있었고, 그 독소에 노출된 부분에는 약간이지만 확실히 녹이 슬어 있었다.
"왜 4성이나 5성이 아니면 대피하라고 했는지도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저벅저벅 고양이에게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고양이가 도미닉 경에게 발톱을 세운 채 앞 발로 가볍게 펀치를 날렸다.
아무래도 견제의 의미가 있는 거겠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양이의 공격을 방패로 막아 냈...
"!"
...막아 내지 못했다!
도미닉 경은 분명히 방패로 고양이의 공격을 막아 내는 데에 성공했으나, 날카로운 고양이의 발톱은 도미닉 경의 방패를 그대로 뚫어 버리고 도미닉 경의 팔뚝에 상처를 남겼다.
"...이 정도인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도미닉 경은 고양이가 다시 공격을 하기 전에 바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현재 상태를 점검했다.
놀랍게도, 고양이의 발톱에 묻어 있던 것들은 꽤 강력한 독소를 가지고 있었는지 도미닉 경은 시야가 조금 어지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느낌이 아니었다.
도미닉 경은 정말 저 고양이의 일격으로 엄청난 디 버프에 걸린 상태였다.
체력 재생력 감소, 독으로 인한 지속적인 피해,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의 감소...
도미닉 경은 현재 약간의 어지럼증 때문에 정확한 디 버프의 숫자를 세지 못했지만, 대충 가늠해도 디 버프는 스무 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삼촌?"
돈 카게야샤는 휘청거리는 도미닉 경을 보며 경악했다.
그가 아는 도미닉 경은, 기본적인 스탯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었다.
특히나 방어력과 저항력에 있어서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서 항상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에게 상태 이상이란 그저 재채기 한 번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런 도미닉 경이 저렇게 힘겨워한다는 것은, 저 거대 기계 들고양이의 피해량이 상당하다는 뜻이었다.
그게 기본적인 물리 피해든, 혹은 독으로 인한 상태 이상 피해든 간에, 도미닉 경의 방어력과 저항력을 뚫을 수 있을 만큼.
그 말인 즉, 지금 눈앞에 있는 거대 기계 들고양이는, 도미닉 경과 상성이 맞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흐."
그러나 도미닉 경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어째서 도미닉 경은 이 부조리한 상황에서, 저렇게 환하지만 기분 나쁜 웃음을 지을 수 있는가?
그건 바로, 도미닉 경이 현재 디 버프로 인해 이성이 날아가기 직전이기 때문이었다.
"돈 카게야샤."
"아, 네!"
도미닉 경은 몸에 배일 정도로 계속해온 예의범절따위는 모두 내다 버리고, 돈 카게야샤를 불렀다.
돈 카게야샤는 그런 도미닉 경의 모습을 보며 흠칫 놀랐다.
돈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과 대련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지금, 이 시간대이든, 혹은 돈 카게야샤가 살던 시간대이든 말이다.
그러나 돈 카게야샤는 그 어떤 시간대에서도, 이처럼 섬뜩한 기분이 드는 도미닉 경을 본 적이 없었다.
사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미래의 도미닉 경은 돈 카게야샤의 대부였고, 대부로서 돈 카게야샤와 진심으로 싸울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미래의 도미닉 경은 적어도 5성 이상인 상태.
아직 4성에 머무르고 있는 돈 카게야샤와 진심으로 대련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현 시간대의 도미닉 경도 마찬가지였다.
도미닉 경은 그저 돈 카게야샤가 오리 너구리 인형을 주는 대신 대련을 신청했었기에 말 그대로 '대련'을 했을 뿐, 진정으로 싸운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것치고는 꽤 처절하게 돈 카게야샤를 때려 눕힌 것 같지만, 도미닉 경이 진심으로 상대했더라면 그 이상의 굴욕이 나왔을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도미닉 경이 가차랜드에서 살면서 성격이 꽤 유순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도미닉 경은 조금 전의 피해로 인해 온갖 디 버프를 둘둘 감게 된 상황.
이로 인해 도미닉 경의 정신력과 저항력도 크게 감소한 상황이었다.
그 말인 즉, 도미닉 경은 현재 이성을 거의 상실한 채, 과거의 본능에 몸을 맡기기 시작한 것이라는 뜻이었다.
페럴란트에서 도미닉 경이 마족들을 상대로 마구 날뛰던, 그때의 본능에.
"지금부터 내가 저 녀석의 시선을 끈다. 딜은 알아서 넣어."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한 뒤, 인벤토리에서 적당한 붕대 하나를 꺼내 팔에 둘둘 감은 뒤, 그 위에 포션을 뿌렸다.
붕대는 예전에 스토리 모드를 깨면서 얻었던 잡동사니 중 하나였고, 포션은 어제도 만났었던 양아치가 줬었던 바로 그 포션이었다.
"도미닉 경이 포션을 쓰는 몇 안 되는 진귀한 광경...!"
어째서인지 돈 카게야샤의 뒤에 있던 메리가 그 모습을 보며 감격했다.
돈 카게야샤는 메리가 왜 저렇게 감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도미닉 경이 한 말을 지키기 위해 불타는 할버드를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알겠습니다, 삼촌. 있는 힘껏 딜을 넣어 보겠습니다."
"...그래."
도미닉 경은 왼손을 주먹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왼팔에 감겨진 붕대는독으로 인해 검게 변한 피와 포션이 뒤섞여 검붉게 변한 채였다.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그 검붉은 붕대가 마음에 들었다.
"...크큭."
"응?"
도미닉 경은 왼팔에 감겨진 붕대를 보며 평소처럼 웃었... 아니, 평소와 조금 다르게 웃었다.
도미닉 경은 잠시 방패를 내려놓고, 붕대를 감은 팔로 이마를 짚으며 광소를 터뜨렸다.
"...맙소사."
돈 카게야샤는 그런 도미닉 경을 보며 두려운 듯 움찔하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저 고양이에게 공격당하면, 중2병이 발병하는 건가?"
돈 카게야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물리적, 상태 이상적 피해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피해까지 준다니!
돈 카게야샤는 절대로 저 고양이에게 공격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그건 돈 카게야샤 등 뒤에서 무기를 점검하던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서, 설마 할아버지께서 저런 면모가 있을 줄이야."
도미니아 경은 언제나 할아버지인 도미닉 경의 인자한 모습만을 보아왔기에 저런 모습이 꽤 낯설었다.
"저거지! 저게 바로 진짜 도미닉 경이야!"
반면, 메리는 도미닉 경의 팬으로서 도미닉 경의 예전 행적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도미닉 경의 모습에 열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흰 머리가 인상적인 불법 비디오 상인에게서 산 페럴란트 당시의 도미닉 경의 모습을 메리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메리는 도미닉 경이 저렇게 날뛰는 것을 보며 이 상황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어... 저는 일단 뒤로 가면 되죠?"
미네르바는 허리춤에 있던 두 자루의 권총을 들어 올린 채 도미닉 경과 조금씩 멀어졌다.
물론 미네르바는 원거리 딜러였기에 거리를 두는 것이 당연했으나, 어째서인지 지금은 그런 이유가 아닌 것만 같았다.
"크큭."
도미닉 경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웃으며, 다시 방패를 집어 들었다.
어째서인지 도미닉 경의 왼팔에 감은 검붉은 붕대에 검은 피가 다시 스며들면서 용의 형상이 나타난 것만 같았지만... 아니, 착각이었을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