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4화 〉 [473화]예상치 못한 혼란
* * *
"도미니아 경?"
도미닉 경은 가면을 벗은 미래의 도미니아 경을 보고 바로 도미니아 경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의 볼살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촌께서 왜 거기서 나오십니까?"
"아니, 난 떨어뜨린 것을 돌려주러 온 거요."
도미닉 경은 손에 든 낡은 오리 너구리 인형을 보여 주었다.
"...아!"
그 오리 너구리 인형을 본 도미니아 경은 옆에 멘 가방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가방 아래에 뚫린 구멍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구멍은 마치 날카로운 칼로 벤 듯 반듯하게 잘려 있었는데, 아무래도 축제를 노린 소매치기의 소행인 듯싶었다.
도미니아 경은 가방에서 몇 개의 물건이 더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다행스럽게도 추억이 가득한 보물들은 아니었기에 도미니아 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던 도미닉 경은, 문득 돈 카게야샤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도미니아 경, 맞소?"
"...네."
돈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의 표정을 보고 차마 거짓말할 수가 없었다.
도미닉 경의 눈은 깊었고, 그 깊이 속에는 꽤 많은 연륜이 담겨져 있었다.
이는 도미닉 경이 페럴란트와 가차랜드에서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쌓아온 경험에 의거한 것이었다.
이런 도미닉 경의 눈앞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곧바로 들킬 것을 의미했다.
돈 카게야샤가 도미닉 경 만큼이나 관록있는 사람이었더라면 모르겠지만, 돈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 보다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아니었다.
"...왜 방금 전에는 그 사실을 숨긴 거요?"
돈 카게야샤의 말에 도미닉 경이 실망한 듯 말했다.
"그랬더라면 더 좋은 것으로 사줄 수 있었을 텐데!"
"아, 그쪽입니까."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의 일행들이 자신을 숨겼다는 사실보다, 미래의 도미니아 경에게 맛있는 밥 한 끼를 사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더욱 분노했다.
사실, 도미닉 경은 이렇게나 크게 화를 낼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뭐랄까...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어딘가 비틀린 사람이었다.
물론 싸우면서 기분 나쁘게 히죽거린다거나, 호기심이 너무 많아 참지를 못한다거나 하는 등 다소 기행을 일삼기는 하지만 겉으로 알려지지 않은 뒤틀림도 매우 많았다.
그중 하나는 바로 가족애였다.
도미닉 경은 어렸을 때 가족들과 헤어진 이후로 고향이 마족들에게 휩쓸려 사라져 버린 사람이었다.
그 말인 즉, 도미닉 경은 어렸을 때 가족과 헤어진 뒤 오랜 기간을 홀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물론 그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으나, 그들은 진짜 가족이 되어 줄 수 없었다.
도미닉 경의 스승들은 마족과의 싸움에서 하나둘 사라져갔고, 도미닉 경과 결혼하고 싶다던 여성들은 도미닉 경이 농노 출신임을 알고 멀어져 갔다.
그런 상황에서, 도미닉 경은 가족에 대한 생각을 꾹꾹 억눌러 왔었다.
가차랜드에 도착해 레미와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이는 도미닉 경의 오랜 한인 가족애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기는 했다.
도미닉 경이 페럴란트에서 미친개처럼 날뛰던 것에 비하면, 가차랜드의 도미닉 경은 매우 유순하고 신사적인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러나 너무나도 오랜 기간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던 그 한은 여전히 도미닉 경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해 도미닉 경을 외롭게 하고 있었다.
도미니카 경과 조우하고, 앨리스 백작 영애와 다시 만난 이후에도 그랬다.
도미닉 경은, 그 근본이 꽤 외로운 사람이었다.
물론, 그는 기사였기에 이런 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잘 숨기며 살아왔지만...
"살이 좀 많이 빠진 것 같군."
도미닉 경의 눈앞에 도미니아 경... 그러니까 미래의 손녀가 나타나자 도미닉 경의 마음 깊숙한 곳에 억눌려 있던 가족애가 스프링 튀어 오르듯 튀어나온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보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도미닉 경이 보기에, 도미니아 경은 거의 해골이나 다름없었다.
팔다리는 이쑤시개만큼이나 가늘었고, 허리는 톡 치면 부러질 것 같았으며, 손가락은 검과 방패를 들기엔 너무나도 얇아 보였다.
물론 이는 도미닉 경의 시선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도미니아 경은 평균보다 약간 더 큰 키와 평균적인 몸무게를 가지고 있었고, 탱커인 만큼 활동량도 많아 근육도 꽤 발달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도미니아 경이 한 끼에 먹는 양은 꽤 많은 편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도미닉 경이 방금 전 도미니아 경 일행의 물건들을 같이 사주었을 때, 도미닉 경은 무려 120만 크레딧이 넘어가는 비용을 사용했다.
가차랜드는 신기하게도 식재료의 물가가 굉장히 싼 곳이었다.
가차랜드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중 하나인 타이쿤 시티에서는 가차랜드 전체의 인원을 먹이고도 한참 남을 정도의 식재료가 매일매일 생산되고 있었다.
그뿐인가?
타이쿤 시티 너머에 있는 대륙의 도시, 세인트 시뮬라시옹에서 수입되는 수입산 식료품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만큼 가차랜드의 식료품 물가는 저렴한 편이었다.
사과 하나에 20크레딧 정도로 계산한다면, 대략적인 가차랜드의 물가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120만 크레딧이라는 숫자는 무려 사과만 해도 6만 개를 살 수 있는 거금.
물론 도미닉 경이 산 물건을 제외해야 한다는 함정이 숨어 있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도 도미니아 경의 일행이 먹는 양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미래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이렇게 말랐소? 어렸을 때는 그렇게 통통했으면서... 마음이 아프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면서 방금 전 샀던 즉석 식품들과 식재료 몇 개를 도미니아 경의 앞에 내려놓았다.
"어... 할아버지? 그, 저 괜찮아요. 아직 밥을 먹지 않은 상태라서 그럴 거예요."
"그래요, 삼촌. 이제 식사를 하려던 중입니다."
도미니아 경이 필사적으로 도미닉 경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내뱉었다.
돈 카게야샤도 도미니아 경을 도와 최대한 도미닉 경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둘의 말을 유심히 듣더니, 이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상황에서 이렇게나 갑작스럽게 행동하는 것은 어딘가 어색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미닉 경이 흥분을 가라앉히자, 이내 도미닉 경은 방금 전의 상황을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도미닉 경은 미래의 도미니아 경과 일면식도 없었던 상황.
미래의 도미니아 경은 도미닉 경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모르겠지만, 도미닉 경은 미래에 도미니아 경이 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을 뿐, 이렇게나 살갑게 다가갈 정도로 잘 알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도미닉 경은 미래의 도미니아 경을 보자마자 굉장한 호감과 기쁨을 동시에 느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실상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할 리는 없는 노릇.
"그... 당연한 일입니다, 삼촌."
그런 도미닉 경의 의문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돈 카게야샤가 도미닉 경에게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
"미래에서 오는 건 저희 뿐만이 아니라서 말이죠."
"...그게 무슨 소리요?"
도미닉 경이 돈 카게야샤에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미래에서 저희가 도미닉 경에게 쌓아왔던 호감도까지 따라온다는 소리입니다."
"...?"
도미닉 경은 돈 카게야샤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미래의 호감도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라는 말인가?
그런 도미닉 경의 혼란을 알아차린 돈 카게야샤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간축의 어긋남으로 인해 생기는 인과율이..."
"그만, 그만."
도미닉 경은 본격적으로 설명을 이어 나가려는 돈 카게야샤의 말을 막았다.
"그러니까, 내가 도미니아 경에게 호감을 가지는 이유는, 미래의 내가 도미니아 경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어서라는 뜻이오?"
"거의 비슷합니다. 사실 삼촌의 처지에서 보면 저희가 미래에서 온 셈이지만, 저희 처지에서 본다면 과거의 사건이나 사고를 복각하는 느낌이기에."
"복각한다라?"
도미닉 경은 그 말을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아마 도미닉 경의 카드를 새로이 찍어낼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사건이나 사고를 복각한다니, 그게 무슨"
도미닉 경은 계속해서 생기는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자, 잠깐! 배가! 배가 너무 아파!"
옆자리의 텐트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배가, 배가!"
도미닉 경은 갑자기 일어난 소란에 놀라 난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배를 부여잡은 채 땅바닥을 마구 뒹굴고 있었는데, 그의 배는 심각할 정도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배가 너무 아파! 살려 줘! 누가 구급차를!"
남자는 다급하게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누군가의 도움보다 그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 더 빨랐다.
"그윽... 그그극....!"
이제 남자의 배는 마치 촉수가 기어 다니는 듯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남자는 힘이 다한 듯 신음 소리마저 내지 않게 되었다.
남자는 미동도 없이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남자의 몸이 움찔움찔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서서히 양팔로 몸을 일으키더니, 이내 속에 있던 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게워 낸 것은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끔찍한 촉수들이 마구 튀어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캠핑장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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