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3화 〉 [472화]예상치 못한 만남
* * *
돈 카게야샤는 어느 정도 도미닉 경과 멀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너희의 정체가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다."
돈 카게야샤가 도미니아 경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요."
도미니아 경도 역시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도미니아 경이 메리를 노려보았다.
메리는 도미닉 경에게서 받은 싸인을 보며 바보 같은 얼굴을 짓고 있었는데, 도미니아 경은 그런 메리의 표정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할아버지가 좋아도 그렇지, 그렇게 위험하게 티를 냈어야 했어?"
도미니아 경이 메리를 툭 쏘아붙였다.
메리는 도미니아 경의 날카로운 말에도 별 상관없다는 듯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액자에 도미닉 경의 싸인을 집어넣었다.
액자가 깨지지 않도록 뽁뽁이로 액자를 잘 감싼 다음 인벤토리에 싸인을 집어넣은 메리는, 그제야 도미니아 경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어쩔 수 없었어. 이 시대의 도미닉 경 싸인은 정말 얼마 없단 말이야."
메리는 지금까지 모은 도미닉 경의 싸인을 슬쩍 도미니아 경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여기 보면 알겠지만, 이 시기부터 요 시기까지의 싸인은 무려 이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메리는 방금 전 받은 도미닉 경의 싸인이 들어갈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경매장에서 거래되는 도미닉 경의 싸인 가격이 있었는데, 이 시대의 가격은 미래 정보 제한으로 인해 자세히 볼 수는 없었으나, 최소 일곱 자리 수의 가차석으로 교환되고 있었다.
도미니아 경은 메리가 모은 싸인 아래에 언제 싸인이 된 것인지, 그리고 가격은 얼마인지 적혀 있는 것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메리가 도미닉 경을 존경한다는 사실은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었으나, 이 정도로 집착에 가까운 존경심을 보여 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팔 거야?"
"아니, 전혀."
"그런데 왜 가격을 그렇게 상세하게 알고 있는 거야?"
"없는 건 돈 모아서 사려고."
메리는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애초에 내가 졸업하자마자 시간 경찰에 지원한 이유도, 그만큼 돈을 많이 받아서니까."
과연. 도미니아 경은 메리가 왜 이렇게나 빠르게 시간 경찰이 되었는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생각해 보니까, 시간 경찰이면 이렇게 놀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냐?"
메리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미네르바가 메리에게 말했다.
"그리고 도미니아 경을 잡으러 온 거였다면서. 이렇게 놀고 있어도 되는 거야?"
"..."
미네르바의 말에 메리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애초에 도미니아 경이 잘못한 일이 뭔지도 안 알려주지 않았어? 적어도 난 들은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그건 묻지 말아줘."
미네르바의 질문에 답한 것은 도미니아 경이었다.
도미니아 경은 뭔가 찔리는 것이 있었는지 미네르바의 시선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뭐, 그건 넘어가도록 할게."
미네르바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나저나, 이제 저흰 어디 가서 밥을 먹어야 하죠?"
미네르바가 돈 카게야샤에게 물었다.
"아, 어젯밤에 있었던 곳 근처에 괜찮은 곳이 있어서 말이다."
돈 카게야샤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목적지를 찾은 듯 어느 한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캠핑장에서 먹을 예정이다."
도미니아 경과 메리, 그리고 미네르바는 돈 카게야샤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그곳에는 꽤 넓은 공터가 하나 있었다.
"저기서 조리를 해서 먹으면 될 거다."
돈 카게야샤가 가리킨 곳 근처 공터의 구석에는 공용 조리 공간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돈 카게야샤는 저기서 조리를 할 모양이었다.
"어쩐지 즉석 식품을 많이 사더라니."
도미니아 경은 돈 카게야샤가 왜 즉석 식품 위주로 음식을 샀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었어. 숙박할 수 있는 곳은 이미 꽉 차버려서 말이다."
돈 카게야샤는 그렇게 말하며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현재 가차랜드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고,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이미 가차랜드는 포화 상태였다.
"이런 곳이라도 찾은 것에 감사해야겠지."
돈 카게야샤는 그렇게 말하며 인벤토리에서 텐트 두 개를 꺼냈다.
그것은 매우 높은 등급의 텐트여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펼쳐지는 종류의 것이었다.
순식간에 공터에는 두 개의 고급 텐트가 설치되었다.
돈 카게야샤는 인벤토리에서 바베큐 그릴과 냄비, 그리고 방금 전에 백화점에서 산 숯을 꺼냈다.
그리고 그의 특수 기술, [그리하여 불의 신이 진노하노니]를 사용해 숯에 불을 붙였다.
...이런 화려한 기술을 고작 불을 붙이는 데에 쓰냐고 할 법 하지만 가차랜드에서는 이렇게 특수 능력으로 소소한 이득을 보는 일은 꽤 흔한 일이었다.
실제로 돈 카게야샤가 설치한 텐트 근처에 있던 한 사람은, 세수하러 가기가 귀찮은지 특수 기술로 물을 소환해 그 자리에서 세수를 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숯에 불을 붙인 돈 카게야샤는 이내 방금 전에 샀던 즉석 식품들을 하나둘 꺼냈다.
냄비에는 페럴란트 식 스튜가 담겼고, 바베큐 그릴에선 방금 전에 샀던 고기들이 올라갔으며, 오븐에 구워야 하는 것들은 공용 조리 공간에 있는 오븐으로 해결했다.
그렇게 하나둘 요리가 준비되자, 꽤 그럴싸한 만찬이 네 사람을 위해 준비되었다.
"자, 그럼 이제 아침을 먹어볼까?"
돈 카게야샤는 그렇게 말하며 일단 나머지 세 사람에게 스튜를 한 국자씩 떠 주었다.
그릇은 물론 돈 카게야샤의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이었으며, 혹시나 몰라 공용 조리 공간의 싱크대에서 한 번 씻고 온 물건이었다.
"뭐, 이건 이거대로 느낌이 있네요."
메리가 그렇게 말했다.
"늦은 밤이라면 모를까, 아침부터 이러고 있는 건 왠지 대학교 MT 갔다가 좀비처럼 일어난 사람들 같단 말이지..."
경찰 대학에 합격해 신입생 MT까지 갔었던 미네르바는 묘한 기분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와."
도미니아 경은 꽤 그럴싸한 페럴란트 식 스튜의 맛에 감탄했다.
할아버지 집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가 해주시던 맛과 거의 비슷했다.
"즉석 식품이라고 해서 조금 얕봤는데, 얕볼 것이 아니네요."
"뭐, 너희 고모 할머니께서 만든 레시피니까 말이다."
"고모 할머니요?"
"너희 할아버지의 여동생 분 말이다. 레미 할머니."
"아."
도미니아 경은 그제야 페럴란트 식 스튜 밀 키트의 진실을 깨달았다.
레미 고모 할머니는 블랙 그룹의 회장, 모르가나 블랙의 총애받는 사람이었다.
아마 레미 고모 할머니께서 블랙 회장에게 페럴란트 식 스튜를 대접한 일이 있었겠지.
모르가나 블랙 회장은 그 스튜가 마음에 들었을 테고, 결국 이 레시피를 써서 밀 키트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미래에는 잘 보이지 않던데 말이에요."
"재료가 워낙 흔하니까."
돈 카게야샤는 당장 들어가는 재료만 확인했다.
밀가루, 감자, 당근, 닭고기.
가끔 버터.
고작 그 정도로 만들 수 있으니, 밀 키트 보다는 그냥 재료를 사서 만드는 쪽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겠지.
"뭐, 그런 것들은 페럴란트 식이 아니라 페럴란트 풍이라고 말하지만 말이다."
돈 카게야샤는 약간 진하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파였기에, 가장 마지막에 졸아든 한 국자를 퍼냈다.
그러고는 숟가락으로 크게 한 번 퍼서 입으로 가져갔다.
뭉글뭉글하게 익은 감자와 당근의 은은한 단맛이 혀를 간지럽혔다.
"그나저나 이거, 좀 방해되네요."
도미니아 경이 얼굴에 쓴 가면을 매만졌다.
"스튜가 자꾸 흘러내려서 말이에요."
"뭐, 식사 중에는 어쩔 수 없지."
돈 카게야샤가 그렇게 말하며 스튜를 한 숟가락 더 떠먹었다.
그는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었기에, 가면을 쓰고도 익숙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처음에는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아왔기에, 도미니아 경이 하고자 하는 말을 잘 알고 있었다.
"밥 먹을 때엔 잠시 가면을 벗어도 괜찮을 거다. 어차피 우린 미래에서 왔으니, 우릴 알아보는 사람도 적을 테고."
"그렇겠네요."
도미니아 경은 돈 카게야샤의 말 대로 잠시 가면을 벗었다.
메리와 미네르바도 도미니아 경이 가면을 벗자, 역시나 같이 가면을 벗었다.
말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녀들도 식사하는 데 가면이 꽤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후아. 이제야 좀 괜찮네요."
도미니아 경이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오랫동안 가면을 썼던 탓인지, 가면에 눌린 머리카락이 엉망이 되어 있었던 탓이다.
"그래도 이제 좀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네."
미네르바가 머리가 엉망진창인 도미니아 경을 보며 깔깔 웃었다.
미네르바의 머리카락도 도미니아 경 못지 않게 엉망이었지만, 도미니아 경의 머리카락은 흰색이라 더 눈에 잘 띄었기 때문이었다.
"남 말하네."
도미니아 경은 미네르바의 놀림에 투덜거리며 다시금 스튜를 한 숟가락 떠서 입에 가져갔다.
그러나 그 스튜가 도미니아 경의 입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도미니아 경?"
익숙한 목소리가, 도미니아 경의 등 뒤에서 들렸기 때문이었다.
멈칫. 하고 도미니아 경의 움직임이 멎었다.
아니지, 아니겠지.
도미니아 경은 문득 자기가 가면을 벗었다는 사실도 잊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른 사람을 바라보았다.
"도미니아 경...?"
그리고 거기엔, 도미니아 경이 예상했던 대로 도미닉 경이 있었다.
한 손에는 낡은 오리 너구리 인형을 든 채로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