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2화 〉 [471화]예상치 못한 만남
* * *
"돈 카게야샤?"
"...삼촌?"
설마 이런 곳에서 다시금 돈 카게야샤를 만나게 될 줄이야.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도미니아 경의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도미니아 경 일행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도미닉 경을 만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무슨 일로 여기에 있소?"
도미닉 경이 먼저 카게야샤에게 물었다.
"저희야 뭐, 아침거리 찾으러 나왔습니다, 삼촌."
돈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도미닉 경은 그 말에 슬쩍 돈 카게야샤가 끌고 있는 카트를 바라보았다.
전체적으로 즉석 식품들이 가득하기는 했으나, 아침으로 먹기에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음식들이었다.
"과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방금 한 말을 들어 보니 저들과 아는 사이 같던데 누구요? 나를 아는 모양이던데..."
돈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의 질문에 움찔하더니, 이내 그 답지 않게 우물쭈물거렸다.
"그, 제 조카들입니다."
그리고 그가 내뱉은 말은, 최대한 도미니아 경을 숨기는 쪽이었다.
사실 도미니아 경과 도미닉 경이 마주치는 것 자체는 그다지 큰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 자체에서 도미닉 경과 도미니아 경이 마주치는 건 아주 큰일이었다.
돈 카게야샤가 미래의 도미니아 경에게 듣기로는, 이 시간대에 과거의 도미니아 경이 존재했다.
그 말인 즉, 타임 패러독스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과거의 도미니아 경과 현재의 도미니아 경이 만난다면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중앙 시스템은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것도 예상하고 미래의 사람들을 데려온 것이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조카들이라?"
도미닉 경은 다시 한번 세 명의 여성을 보았다.
한 명은 긴 백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방패를 메고 총과 단검을 허리춤에 차고 있었고, 한 명은 푸른 경찰 제복을 입고 진압 방패와 산탄총을 들고 있었으며, 한 명은 양 허리춤에 권총 한 자루씩을 달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특히 백발의 여성을 보면서 왠지 도미니아 경이 자라면 저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했다.
"확실히 조카들이라면 나에 대해서 알 수도 있겠구려."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돈 카게야샤는 고개를 돌려 도미닉 경이 보지 못하는 각도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일이 잘 풀리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방심하는 순간 문제가 생기는 법.
돈 카게야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 타이밍에, 경찰 제복을 입은 여성이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저, 할아버지... 아니, 도미닉 경."
"음?"
도미닉 경은 가까이 다가온 여성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도미닉 경이 그 여성을 자세히 쳐다보자, 그 여성은 부끄러운지 안절부절못했다.
그녀는 어째서인지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그 사실에 집중하느라 방금 전 이 여성이 자신을 할아버지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그냥 넘기고 말았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기에 싸인을 좀 해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말한 여성이 도미닉 경에게 싸인용 종이와 펜을 건넸다.
도미닉 경은 그 종이와 펜을 받아들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이내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도미닉 경은 그 종이에다가 가볍게 싸인했다.
"여기 있소."
도미닉 경이 싸인한 종이를 다시 여성에게 건네자, 여성은 이제 거의 숨이 넘어갈 것처럼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러나 거친 호흡과는 달리, 도미닉 경의 싸인을 받아드는 손놀림은 굉장히 정중하고 엄숙하기까지 했다.
"...괜찮소?"
도미닉 경은 상태가 이상해 보이는 여성을 보며 안부를 물었다.
"물론이죠, 도미닉 경!"
그러나 여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굉장히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도미닉 경은 아직도 호흡이 거친 여성의 모습에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으나, 무언가 굉장히 기뻐보였기에 딱히 더 안부를 묻지는 않았다.
"어, 음... 아무튼, 저희는 이제 아침을 먹어야 해서 말입니다."
돈 카게야샤가 한껏 흥분한 여성을 뒤로 잡아당기며 말했다.
아무래도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어 보였으나, 확실히 지금은 아침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도미닉 경은 돈 카게야샤의 말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과연. 아직 아침도 먹지 않았는데 귀찮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돈 카게야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다시 만난 것도 인연이니 그 아침밥, 내가 살 수 있도록 해주시오."
"음? 삼촌이 말입니까?"
도미닉 경은 돈 카게야샤가 끌고 있던 카트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아침은 간단히 먹을 생각이었던지, 카트에는 대용량 치킨 너겟과 샐러드 용 야채, 그리고 페럴란트 식 스튜 밀 키트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소. 내가 지급할 테니, 조금 더 챙겨도 좋을 것 같소."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근처에 있던 몇몇 냉동식품들도 카트에 넣어 주었다.
돈 카게야샤는 그 모습이, 어째서인지 손자 손녀들에게 밥을 챙겨 주는 할머니 같은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
"총 1,217,200 크레딧입니다. 혹시 포인트 카드 있으세요?"
"없소."
"그럼 포인트 카드 만들어 드릴까요? 블랙 그룹 포인트 카드는 어디에서나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으시고, 또"
"아니, 괜찮소. 그냥 해주시..."
"아, 삼촌. 잠시만요. 저 포인트 카드 있습니다."
잠시 후, 도미닉 경은 물건들을 계산했다.
약 121만 크레딧이라는 거금이 쓰이기는 했으나, 도미닉 경은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돈 카게야샤와 그의 조카들에게 밥 한 끼 사준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비싼 것도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도미닉 경의 인벤토리에는 이미 엄청난 양의 재화가 쌓여 있었다.
고작 121만 크레딧 정도로는, 도미닉 경에게 그다지 큰 타격도 아니었다.
"영수증 필요하신가요?"
"그렇소."
도미닉 경은 영수증만큼은 제대로 챙겼다.
사실, 이 백화점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앞에서 하는 노점의 경품을 받기 위해서가 아닌던가.
다른 이들에게 밥을 사주면서, 도미닉 경의 이득도 확실히 챙긴다.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그... 감사합니다, 삼촌. 덕분에 오늘 아침은 풍성하게 먹겠군요."
돈 카게야샤가 도미닉 경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양손에는 도미닉 경이 사준 먹거리들로 가득했는데, 봉투 하나 당 웬만한 사람의 일주일 치 식량은 될 것 같았다.
"고마워할 것 없소. 이렇게 만난 인연이니."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면서 힐끗 노점의 경품 뽑기 돌림판을 바라보았다.
현재 그 노점에는 꽤 긴 줄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아침부터 장을 보는 이들이 겸사겸사 줄을 선 것 같았다.
도미닉 경은 더 늦기 전에 저 줄을 서야겠다고 생각하며, 돈 카게야샤에게 말했다.
"아무튼 이제 아침을 먹으러 가 보시오. 이미 늦은 시간 아니오?"
"아, 그렇긴 하지요. 네."
돈 카게야샤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돈 카게야샤도 도미닉 경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기는 했다.
지금 당장은 어떻게든 무마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렇게 오래 있으면 있을 수록 문제가 생길 확률도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돈 카게야샤와 도미니아 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돈 카게야샤는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에게 다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도미니아 경과 메리, 그리고 미네르바를 데리고 어제 잡아 놓은 숙소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아무래도 도미니아 경과 닮은 것 같은데."
도미닉 경은 뒤를 돌아 걸어가기 시작한 네 사람 중 흰 머리의 여성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기분 탓이려나."
그러나 도미닉 경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렇게 말했다.
어린 도미니아 경의 장난감 권총은 도미니아 경의 왼쪽에 있지만, 방금 전에 만났던 여성의 권총은 허리 뒤에 메어져 있었다.
또한 허리춤에 찬 암기도 그 위치가 사뭇 달랐다.
'조카라고 했으니, 도미니아 경과 비슷한 다른 사람이겠지. 친척끼리 닮을 수도 있으니.'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내 하얀 머리의 여성에 대한 관심을 거뒀다.
사실, 미래의 도미니아 경이 과거의 도미니아 경과 장비의 위치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래의 도미니아 경은 어렸을 적의 보물을 너무나도 소중히 여겨 늘 몸에 지니고 다니기 위해 커다란 가방을 메고 다녔다.
그 가방을 메기 위해서는 몇몇 장비들을 이동시켜야 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도미니아 경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이 그런 사실을 알 리는 만무했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미래의 도미니아 경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경품 돌림판 노점에 줄을 서려고 했다.
"음?"
땅에 떨어진 낡은 오리 너구리 인형을 발견하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이건..."
도미닉 경은 바닥에서 구르는 낡은 오리 너구리 인형을 주웠다.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디자인.
도미닉 경은 이것이 돈 카게야샤가 모으고 다녔던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돈 카게야샤가 이걸 떨어뜨린 모양인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잠시 오리 너구리 인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경품 돌림판이 있는 노점과, 방금 전 돈 카게야샤가 간 방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이내 낡은 오리 너구리 인형을 들고 돈 카게야샤가 간 곳을 향해 걸어갔다.
돈 카게야샤를 언제 다시 만날 지 모르는 일이었으니, 이쪽이 더 급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도미닉 경은 한 손에 낡은 오리 너구리 인형을 들고는 돈 카게야샤를 찾아 길을 걸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