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0화 〉 [469화]축제 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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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시작된 지 3일차.
도미닉 경은 아침 일찍 일어나 가차랜드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걸 사 오라는 말이지..."
도미닉 경은 오늘 아침, 앨리스 백작 영애에게서 받은 쪽지를 펼쳤다.
그 쪽지에는 앨리스 백작 영애가 원하는 것에 대한 목록이 적혀 있었다.
이온 음료라던가, 나쵸라던가 간식거리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몇몇 목록들은 도미닉 경이 알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픽 카드...? 청축식 키보드는 뭐고, 게이밍 마우스는 또 뭐지?"
도미닉 경은 마치 외계어로 적힌 것만 같은 글자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에게는 휴대폰이 있었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은 그 휴대폰으로 정보를 검색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도미닉 경은 인터넷으로 그것들에 대한 정보를 검색한 뒤에야 앨리스 백작 영애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앨리스 백작 영애는, 게임을 위해 이 모든 것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게임이라. 그게 크게 재밌는 건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웃도어 파에 몸을 쓰는 일을 좋아하는 도미닉 경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차랜드는 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 곳이었다.
지금도 보라.
걷기만 했는데, 이벤트가 생기지 않는가!
"저, 거기 가시는 분? 네. 당신요."
도미닉 경은 길을 걷다가 문득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도미닉 경이 고개를 돌려보자 거기엔 익숙한 얼굴의 여성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올가미에 묶여 거꾸로 매달린 채 도미닉 경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지인이 있었다.
바로, 성좌 아임 낫 리틀이었다.
"그... 죄송한데, 저 좀 풀어 주실 수 있나요? 아무래도 혼자서는 못 풀 것 같아서..."
성좌 아임 낫 리틀은 도미닉 경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도미닉 경은 아침 일찍 나왔음에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을 우려해 가면을 쓰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머리 위의 삼색 깃털은 그대로였지만, 그것만으로는 인물을 특정하기 어려운 법이었다.
"...어째서 그런 곳에 매달린 거요?"
도미닉 경은 참으로 경이로울 정도로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린 아임 낫 리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임 낫 리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설마 길 한복판에 함정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과연."
도미닉 경은 아임 낫 리틀의 푸념을 들으며 그녀를 올가미에서 해방 시켜 주었다.
아임 낫 리틀은 땅에 두 다리를 디디는 것이 오랜만이라는 듯, 굉장히 감격한 표정을 지은 채 손가락으로 바닥을 쓸어내렸다.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네요."
아임 낫 리틀이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인사했다.
아무래도 여전히 아임 낫 리틀은 도미닉 경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도와주신 보답으로 뭔가 해드리고 싶은데, 혹시 제가 도울 일이라도 있을까요?"
아임 낫 리틀은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말했다.
도미닉 경은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문득 도미닉 경은 그녀가 매우 유명한 가차튜버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도미닉 경도 그녀의 영상을 구독하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도미닉 경은, 이내 아임 낫 리틀에게 도움을 청하자고 마음먹었다.
바로, 이 청축인지 적축인지 모를 키보드와 그래픽 카드, 그리고 게이밍 마우스를 사는 걸 도와달라고 말한 것이다.
"도와주겠다면... 이것들에 대해서 좀 알려주실 수 있겠소?"
도미닉 경은 곧바로 손에 든 쪽지를 아임 낫 리틀에게 보여 주었다.
"주군... 아니, 지인이 사달라고 하는데, 나는 이런 쪽에 대해서 무지해서 말이오."
"음."
아임 낫 리틀은 도미닉 경이 건네준 쪽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적혀 있는 목록을 보더니, 이내 이렇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굉장히 게임에 진심인 사람인가 보네요. 그 지인 분. 목록 하나하나가 예사롭지가 않아."
아임 낫 리틀은 그렇게 말하면서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고민했다.
약간의 시간 뒤, 아임 낫 리틀은 눈을 번쩍 뜨고는 도미닉 경을 향해서 이 목록에 대해서 말했다.
"키보드와 마우스는 괜찮은 걸 추천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번에 협찬으로 들어온 것이 몇 개 있거든요. 구해주신 보답으로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그래픽 카드는..."
아임 낫 리틀은 그래픽 카드의 사양을 보며 난색을 표했다.
"이 정도로 좋은 그래픽 카드는 가격이 좀 나갈 뿐 더러, 지금 거의 품절 상태일 거예요. 아니, 확실히 품절일 거예요."
"어째서요?"
도미닉 경이 아임 낫 리틀에게 그래픽 카드에 대한 이유를 물었다.
"최근에 어떤 곳에서 코인이라는 새로운 재화를 채굴한다고 그래픽 카드를 쓸어담아 갔거든요."
"그곳이 어디오?"
"어디긴 어디겠어요, 양산박이겠지."
아임 낫 리틀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까, 양산박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5성 모임이 있던 저택을 습격했다고 나오더라구요. 아마 그 습격 자금을 코인으로 벌고 있었던 거겠죠."
"흠."
도미닉 경은 잠시 어제 있었던 습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가짜 전함은 크기가 크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각목과 합판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긴, 그 정도의 크기에 들어갈 합판과 각목이라면 값도 제법 나가겠지."
"뭐라구요?"
"아니, 아니오. 신경 쓰지 마시오."
도미닉 경은 적어도 수백 미터 이상의 전함을 만들 목재 값을 생각해 보다가 아임 낫 리틀의 물음에 다시 제정신을 차렸다.
"아무튼, 그래서 그래픽 카드는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이 보다 두 단계 아래라면 충분히 물량이 있겠지만..."
그건 사무 용이지 게임 용은 아니니까요. 라는 말을 아임 낫 리틀은 목구멍으로 삼켰다.
"뭐, 웃돈을 주거나 하면 중고 정도는 구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 분이 원하는 것은 완전 신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소?"
"예약해서 구입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요즘 나오는 족족 팔려 나가다 보니 예약을 해도 한 달은 있어야 할 거예요."
도미닉 경은 아임 낫 리틀의 말에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 달이라.
사실 도미닉 경은 앨리스 백작 영애가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지는 모르는 상태였다.
가차랜드와 페럴란트의 시간 축이 다르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언제쯤 돌아갈 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도미닉 경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다.
"이왕이면 최대한 빠르게 구하고 싶소만."
도미닉 경은 혹시 아임 낫 리틀이라면 이 상황을 해결할 묘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말을 걸었다.
"뭐, 있긴 있죠. 어려워서 그렇지."
아임 낫 리틀은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게 무엇이오?"
도미닉 경은 아임 낫 리틀에게 그 방법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아임 낫 리틀은 손가락을 두 개 펼치며 도미닉 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는, 이미 구입한 사람에게서 웃돈을 주고 사는 방법이에요. 혹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가서, 예약권을 가진 사람에게서 그 예약권을 사는 방법도 있구요."
다만 아임 낫 리틀은 이 방법은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부류들 중에서는 사기꾼도 많아서요. 돈만 잃고 물건은 얻지 못하는 상황도 자주 발생해요. 제가 그랬거든요."
아임 낫 리틀은 사기꾼들을 생각하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 번째는, 마침 축제라서 할 수 있는 일이긴 해요."
아임 낫 리틀은 그렇게 말하며 노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노점들 중에서는 가끔 그래픽 카드같은 고가의 장비를 경품으로 내거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런 걸 노려서 얻는 방법도 있어요."
"노점이라."
도미닉 경은 아임 낫 리틀의 손가락을 따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문을 연 노점은 아주 소수였다.
그마저도 경품을 거는 가게가 아닌, 술이나 안주를 파는 식당에 가까운 노점들 뿐이었다.
아마 아침에 일어나 숙취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해장국과 해장술을 파는 모양이었다.
"으음..."
도미닉 경은 그런 노점들을 바라보면서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그래픽 카드를 얻기 위한 여정은 꽤 오래 걸릴 것 같았으니까.
"그, 주소를 적어 주시면 제가 가진 키보드와 마우스를 보내드릴게요. 주소를 밝히기 어려우시면"
"아, 여깄소."
도미닉 경은 인벤토리에서 수첩을 꺼내 집 주소를 적은 뒤, 그 페이지를 찢어 아임 낫 리틀에게 건네주었다.
아임 낫 리틀은 그 종이를 받아들며, 어째서인지 달콤한 젤리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음. 네. 물건은 돌아가면 바로 이 주소로 보내드릴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임 낫 리틀은 도미닉 경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 그래도 작은 그녀의 키가, 도미닉 경의 무릎까지 작아졌다가 다시 골반까지 올라왔다.
"조심해서 들어가시오."
도미닉 경은 그런 아임 낫 리틀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전한 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일단 다른 것들을 산 뒤, 그래픽 카드에 대한 걸 고민할 생각이었다.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무려 1등에게는 무려 8만 가차석 상당의 3박 4일 레트로 그라드 여행권을! 2등에게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놀라운 스쿨버스 탈 것을!"
도미닉 경은 문득, 아침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노점 하나를 발견했다.
" 3등에게는 최신형 그래픽 카드를 드립니다!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1등에게는 무려 그 유명한 탐험가 도라가 가이드를 해드립니다!"
"음?"
도미닉 경이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던, 그래픽 카드에 대해 외치는 노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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