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9화 〉 [468화]축제 3일차
* * *
도미닉 경은 무언가 찜찜함을 끌어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잘 놀다 왔어?"
도미니카 경이 도미니아 경을 안은 채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도미니아 경은 입 가에 알록달록한 설탕 가루들을 묻힌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신나게 놀았던 모양이었다.
"글쎄, 모르겠소."
도미닉 경은 이번 모임에서 얻은 소득이라도 생각해보려고 했으나, 고그라는 5성급 에이스와 만난 것 외에는 그다지 큰 소득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테라스에는 가지도 않았군."
"테라스?"
도미닉 경은 테라스로 자신을 불렀던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그러나 이미 도미닉 경은 그 저택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온 상황이었기에 그 사람의 정체를 알 길은 없었다.
"음? 도미닉 경 왔네? 5성 모임은 어땠어?"
도미닉 경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편한 복장을 입은 앨리스 백작 영애가 도미닉 경을 발견했다.
앨리스 백작 영애는 어디서 구한 건지 모를 휴대용 게임기로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디자인에 자그마한 동물들이 가득 나오는 게임이었는데, 앨리스 백작 영애의 캐릭터로 보이는 것은 땅을 파고 돈주머니를 그 안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나무들에 돈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것을 보면, 그냥 돈 모양의 씨앗인가 싶기도 했다.
"별 건 없었소, 주군. 아무래도 주최 측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라..."
"그래?"
도미닉 경은 자세하게 말할 만큼 정보를 알고 있지는 않았기에 그가 아는 한도 내에서만 말했다.
앨리스 백작 영애는 도미닉 경의 대답에 급격하게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금 휴대용 게임기를 잡고 캐릭터를 움직였다.
이번에는 오렌지 나무를 걷어차며 열매를 수집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벌이 나타나자, 앨리스 백작 영애는 환호성을 내지르며 바로 채집망을 꺼내 들었다.
엄청난 컨트롤로 벌을 잡은 앨리스 백작 영애는, 마침내 도감을 100% 완성시킬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
도미닉 경은 그 말이 무엇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내 도미니카 경이 말을 걸자 그쪽으로 관심을 옮겼다.
"그나저나 내일은 어떻게 할 예정이야?"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글쎄. 모르겠소."
도미닉 경은 자세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기에, 내일 딱히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아마 첫날처럼 아무 데나 돌아다니다가, 재밌어 보이는 곳이 있으면 찾아가 놀 거나 하겠지.
그렇게 생각한 도미닉 경은, 이내 도미니카 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어쩌면 예상치 못한 즐거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그것도 그러네."
도미니카 경은 품속의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미니아 경도 피곤한 모양이니, 오늘은 그냥 일찍 자는 것이 좋겠어."
그렇게 말한 도미니카 경은, 도미니아 경을 침대에 눞히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빨리 자야겠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갑옷을 벗었다.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도미닉 경은, 가볍게 샤워한 뒤 방으로 들어가 자기 침대에 누웠다.
이제 거실에는, 방금 채집한 벌을 박물관에 기증하는 앨리스 백작 영애만 남아 있을 뿐이다.
...
"후아."
가차랜드의 언덕 중 한 곳.
미래의 도미니아 경은 어두운 하늘 위로 날아가는 폭죽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한 손에는 솜사탕이, 한 손에는 어딘가 미묘해 보이는 오리 너구리 인형을 들고 하늘을 환하게 수놓는 폭발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거 좋네."
미래의 도미니아 경의 옆에서 같이 폭죽들을 바라보던 미네르바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메론맛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도미니아 경의 옆에 앉아 있었다.
"미래의 폭죽놀이 보다 좀 더 화려한 것 같아."
"미래엔 이 정도로 돈을 쓰지는 않으니까 그럴 거다."
닭강정이 가득 든 상자를 한 손에 들고 우물거리는 돈 카게야샤가 말했다.
그는 여전히 가면을 쓴 상태로 닭강정을 먹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먹는 것인지 닭강정을 입 주변에 가져다 대는 족족 닭강정은 사라졌다.
카게야샤는 입에 넣은 닭강정을 꿀꺽 삼킨 후,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도미닉 경 삼촌의 재력은 가차랜드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니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삼촌이 마음만 먹으면 차원 두세 개 쯤은 가볍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예요?"
도미니아 경이 카게야샤에게 진심이냐는 듯 되물었다.
도미니아 경은 카게야샤의 말이 허황되다고 생각했지만, 돈 카게야샤는 그 유명한 돈 가문의 사람이었기에 재화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로 허황된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지금의 삼촌은 모르겠지만... 우리 시대의 삼촌은 그럴 거다."
돈 카게야샤는 다시금 닭강정을 하나 입에 집어넣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삼촌이 아직 수령하지 않은 재화만 해도 행성 하나를 백 년 유지할 수 있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도미니아 경은 돈 카게야샤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들었지만 전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경제 관념에 대해 확실하게 주입 당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도미니아 경은 평범한 경제 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재화의 단위는 차를 산다거나, 집을 산다거나 하는 정도가 끝이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행성이니 차원이니 하는 수준의 재화 단위가 흘러나오니 현실감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을 수밖에.
"...아빠가 왜 그렇게 경제 관념이 없었는지 이해가 가네요."
도미니아 경은 그녀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너무나도 경제 관념이 이상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상한 곳에서 금전 감각이 뒤틀려 있었다.
도미니아 경은 본가에 있던 수많은 황금 조각상들을 떠올렸다.
그중에는 도미니아 경이 첫걸음마를 떼었을 때의 조각상과 처음 제대로 된 단어를 말했을 때의 조각상, 그리고 처음 구구단을 완전히 외울 수 있었을 때의 조각상도 있었다.
그렇게 인생의 자잘한 이벤트마다 도미니아 경의 아버지는 도미니아 경의 10배 크기의 황금 조각상으로 그날을 기념했고, 그런 황금 조각상들만 하더라도 무려 삼천 이백 개가 넘어갔다.
그러면서도 쓸데없는 곳에서는 금전 감각이 굉장히 대단해서, 도미니아 경의 아버지는 주식이나 코인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 것보다 은행에 넣어 둔 재화의 이자가 더 많이 들어오는데, 쓸데없이 그런 걸 왜 하냐는 주의였다.
"...잠깐.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아빠가 늘 말씀하시던 게 있었으니까."
도미니아 경은 자본에 있어서 만큼은 언제나 당당하던 아버지가 겸손해지는 때를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도미니아 경의 할아버지, 즉 도미닉 경에 대해서 말을 할 때였다.
'네 할아버지, 그러니까 내 아버지가 되는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서 가장 부자란다.'
'네 할아버지가 가진 자본에 비하면, 내 자본은 태양 앞의 반딧불이 나 다름없지.'
'물론 이건 개인 자산으로 말하는 거란다. 기업 자산으로 친다면... 글쎄. 블랙 그룹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
도미니아 경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고민했다.
그 말인 즉, 도미닉 경의 개인 자산이 한 그룹과 비교되는 정도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룹의 자산과 비교해도, 잠깐 고민해야 할 정도의 자산.
"세상에."
도미니아 경은 그제야 도미닉 경의 자산이 얼마나 큰 지 아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잠시 자기 손에 들려진 솜사탕을 바라보았다.
기껏해야 1500 크레딧을 조금 넘기는 가격의 솜사탕.
어째서인지, 도미니아 경은 그 솜사탕이 참 보잘 것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뭔가 딱하고 감이 안 오는 수준이네요."
미네르바가 그 사실을 알고는 놀랍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할아버지랑 외할아버지는 왜 그런 분을 라이벌이라고 칭하고 다녔는지 궁금할 정도예요."
미네르바는 자기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인 박춘배와 말레이를 떠올렸다.
정말 오랜 기간 노력해 자수성가했다는 점에서는 존경할 만한 분들이었지만, 어째서 이런 도미닉 경과 스스로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글쎄. 모르는 일이지."
돈 카게야샤가 마지막 하나 남은 닭강정을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옆에 두었던 새로운 닭강정 박스를 들어 올렸다.
"아무튼, 이런 진지한 이야기는 축제와 맞지 않아."
돈 카게야샤가 새로운 닭강정 하나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가면 너머로 닿을락 말락하던 닭강정은 이내 가면 바로 앞에서 사라지고, 돈 카게야샤는 그 맛을 음미하듯 우물거렸다.
"이런 축제는 흔치 않고, 우리가 여기에 남아 있을 시간도 그리 많지 않으니, 지금은 걱정과 고민 모두 떨치고 이 순간에만 집중하자꾸나."
도미니아 경은 돈 카게야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 도미닉 경의 자산이 얼마고, 아버지의 자산이 얼마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지금은 이 즐거운 축제를 즐기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앞으로 이만큼 큰 축제는 일어나기 힘든 만큼, 지금은 축제에 더 집중해야 할 때.
그렇게 생각한 도미니아 경은 다시금 솜사탕을 뜯어 입에 집어넣었다.
솜사탕은, 가격에 상관없이 매우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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