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7화 〉 [466화]슈팅 후일담
* * *
"괜찮아요?"
도미닉 경이 멍하게 폭발 장면을 바라보고 있자, 히메가 다가와 도미닉 경에게 손을 내밀었다.
히메는 조금 전, 비행기로 가짜 도미닉 경을 날려 버리기 전에 조종석에서 탈출해 빠져나온 상태였다.
일반인이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녀는 쿠노이치로서 훈련된 전문가여서 손쉽게 가능했다.
"...괜찮소."
도미닉 경은 히메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예요."
히메가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말하며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주었다.
"딱 맞춰 도착했구려."
도미닉 경이 히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나저나, 전혀 이해되지 않는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을 하나씩 풀어나갔다.
"갑자기 히메 공이 나타난 것도 그렇고, 고그 씨가 나타난 것도, 슈팅가르드의 방식으로 결투하는 것도, 가짜들이 나타난 것도 작위적이오."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하자 히메의 몸이 움찔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이 이상한 상황들의 연속에 대해 생각하느라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마치, 굉장히 작위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 같은..."
"그, 그런 것은 둘째치고 말이죠!"
히메는 부자연스럽게 도미닉 경의 말을 끊으며 화제를 돌렸다.
"아직 5성 모임이 끝나지 않았으니, 다시 저택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떨까요?"
"음?"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에 아직 자신이 5성 모임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도미닉 경은 5성 모임을 아직 제대로 즐기지 못한 상황.
도미닉 경은 그 사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할 것 같구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잠시 가짜 전함의 바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일단 제대로 내려가는 것이 먼저일 것 같소."
"도미닉 경!"
그때, 아주 완벽한 타이밍에 누군가가 도미닉 경을 불렀다.
도미닉 경은 열려 있는 벽면 위로 두 대의 비행기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바로 고그와 뚜 르 방의 기체였다.
"구해주러 왔어요!"
고그와 뚜 르 방은 열려진 벽면 너머로 기체를 몰아 내부 공간에 정지했다.
"이 뒤에 타면 돼요!"
뚜 르 방은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에게 비행기에 타라는 듯 손가락으로 기체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그냥 있으라는 법은 없는 것 같구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뚜 르 방의 기체에 타려고 했다.
"잠깐만요!"
그때, 히메가 도미닉 경을 붙잡았다.
"저 기체를 보니까 아무래도 두 사람이 제대로 타기엔 부적절해 보여요. 그러니까, 제가 탈게요."
히메는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과 행동에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시오. 난 고그 씨의 비행기를 얻어 탈테니."
도미닉 경은 고그를 향해 거기 탈 수 있느냐고 외쳤다.
그러자 고그는 복엽기 뒤편, 꼬리편 기관총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무래도 저기에 타면 된다는 것 같았다.
도미닉 경은 고그에게 감사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그의 뒷 좌석에 앉았다.
"..."
"..."
히메와 뚜 르 방은 서로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마치 귀찮게 왜 방해하냐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도미닉 경의 앞이었기에, 두 사람은 아무 내색하지 않았다.
"먼저 가 있겠다."
고그가 도미닉 경을 태운 뒤, 복엽기의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먼저 바깥으로 활공해 저택을 향해 사라졌다.
...
불타고 구멍 뚫려 추락하기 시작한 가짜 전함 속에는 이제 히메와 뚜 르 방만이 남아 있었다.
"...왜 방해를 하는 거지?"
뚜 르 방이 히메에게 말했다.
얼마나 그 목소리가 차갑던지,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히메가 몸을 움찔할 정도였다.
과연 마왕의 관록이라는 말인가?
히메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왕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히메는 의외의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뚜 르 방의 눈빛은 질투나 연심이 아닌, 불만이 가득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불만?"
히메는 뚜 르 방의 눈빛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
뚜 르 방은 히메에게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
히메가 뚜 르 방이 가진 불만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뚜 르 방은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그야, 내게 올 사랑이 줄어드니까."
"...?"
히메는 투덜거리는 뚜 르 방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단편적인 말만 내뱉었거니와 너무 자기 중심적인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메는 이후 뚜 르 방이 내뱉은 말 몇 마디로 어느 정도의 상황은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도미닉 경은 내 삼촌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어."
"매일매일 머리를 쓰다듬어 줘야 해."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는 아이들에게만 관심을 주고, 더 이상 날 쓰담 쓰담해주지 않는단 말이야."
"..."
히메는 그 순간, 눈앞에 있는 뚜 르 방이 미래의 뚜 르 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진짜 뚜 르 방이 되, 미래를 본 뚜 르 방일지도 모른다.
히메는 그렇게 생각하며 뚜 르 방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조금 전에 뚜 르 방이 내뱉은 말 중 신경 쓰이는 단어 하나를 되물었다.
"결혼?"
"응. 도미닉 경은 기혼자니까."
뚜 르 방은 자연스럽게 도미닉 경에 대한 정보를 흘리기 시작했다.
히메는 도미닉 경이 미래에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나, 도대체 누구와 결혼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누구랑?"
"그건... 윽!"
히메는 뚜 르 방에게 도미닉 경이 미래에 얻게 될 아내의 정보를 물었다.
뚜 르 방은 천진난만하게도 그 정보를 내뱉으려고 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뚜 르 방에게 무언가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약속된 시간이 지났습니다.]
[당신은, 다시 봉인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뚜 르 방.]
[당신의 선택은, 언제나 옳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요.]
[선택할 시간입니다, 뚜 르 방.]
[예기치 못한결과에 대비하십시오.]
히메는 지금까지 들었던 시스템의 목소리와는 이질적인, 마치 남성과 여성의 차이만큼이나 극명한 시스템의 소리를 듣고 의문에 빠졌다.
그러나 그 의문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이 시스템의 말이 들리자마자, 뚜 르 방은 점점 비율을 잃고 2등신의 몸으로 변해 갔기 때문이다.
히메는 쪼그라드는 뚜 르 방을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
"그래서, 도미닉 경의 아내가 누구인지 말해주고 가!"
"도미닉 경의 아내는..."
그러나 히메가 뚜 르 방에게서 제대로 된 대답을 듣는 일은 없었다.
뚜 르 방이 대답해주는 것보다, 쪼그라들어 2등신의 동글동글한 몸이 되는 것이 더 빨랐기 때문이다.
"...?"
2등신이 된 뚜 르 방은 히메의 품속에서 그 동글동글한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히메의 품속에서 빠져나와 뽀작뽀작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맙소사..."
히메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굴기 시작한 뚜 르 방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
뚜 르 방은 충격을 받아 주저앉은 히메를 향해 뽀작뽀작 걸어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 모습은, 아무리 봐도 조금 전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히메는 그런 뚜 르 방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뚜 르 방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뚜 르 방이 타고 왔던 비행기에 올라타 추락하는가짜 전함에서 탈출했다.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히메는 조금 전 뚜 르 방이 했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로 인해 조종이 다소 불안정해져 기체가 조금 흔들렸으나, 2등신의 뚜 르 방은 그런 덜컹거림이 즐거운 듯 말랑말랑한쪽 팔을 활짝 펴고 즐거워하기만 할 뿐이었다.
...
5성 모임이 있는 저택의 테라스.
운류 무사시는 분노한 듯 덱스터 르 방의 멱살을 잡았다.
5성이 이른 이후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거의 완성된 무인인 무사시로서는 이례적인 분노였다.
"네놈...!"
"하하! 완벽하군!"
무사시는 덱스터를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덱스터는 그런 무사시의 꼴이 우스운지 미친 듯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어째서 이 둘은 이렇게 갑자기 사이가 나빠진 것일까?
그건 바로, 조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감히, 내 딸의 행보를 방해하려고 인과를 뒤틀어?"
"뒤틀다니. 시스템이 인정할 정도로만 살짝 건드렸을 뿐일세."
덱스터 르 방은 무사시에게 히죽거리며 웃었다.
운류 무사시는 덱스터의 말을 듣고는 혀를 크게 찼다.
그 말 대로, 덱스터 르 방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에서 그의 능력을 썼을 뿐이었으니까.
사실, 모든 일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더라면, 방금 전처럼 엉망진창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뚜 르 방은 히메를 만나기 전에 고그를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고그의 큰 팬인 뚜 르 방은 고그를 따라 비행기를 타러 갔을 것이고, 도미닉 경이 혼자 남았을 때 일손을 도와주러 온 히메가 도미닉 경과 마주쳤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는 5성 모임을 안내하러 돌아다니며 도미닉 경과 히메 사이의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덱스터가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
"괜히 내가 마왕이겠나?"
덱스터가 히죽거리며 잡혔던 멱살을 간단히 풀어 버렸다.
무사시가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었더라면, 덱스터는 전 마왕이라는 점이었다.
덱스터는 무사시의 계획을 듣자마자 인과를 뒤틀어 버렸다.
뚜 르 방과 고그가 만나는 시기를 히메와 마주친 이후로 설정했고, 이후 도미닉 경과 히메가 같이 있지 못하게끔 인과를 뒤틀어 양산박이 쳐들어오도록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상에 없었던 양산박의 신입 간부가 나타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뚜 르 방도 반쯤 공기화 되고, 덱스터의 재산의 절반이 날아가는 페널티가 있었지만 이는 덱스터에게 있어서 그다지 큰 페널티는 아니었다.
괜히 그가 마왕이겠는가?
"아무튼, 이번엔 비긴 것 같군."
덱스터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무사시의 계획에 한 방 먹였다는 고양감 때문인지, 그의 동공은 염소처럼 가로로 쭉 찢어져 있었고, 혀의 끝자락은 뱀처럼 갈라져 날름거리고 있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한 덱스터는 지옥의 불길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무사시는 덱스터가 사라진 곳에 남은 그을음을 보며 애써 분노를 참았다.
...아직, 무사시에게는 도미닉 경과 히메의 사이를 가깝게 만들 계획이 수두룩했기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