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4화 〉 [463화]미션, 스타트!
* * *
도미닉 경은 눈앞에 묶여 있는 두 명의 사람을 보며 혼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미안한데 이것 좀 풀어 주시오."
"혹시 풀기 어려우면, 여기를 잡아당기면 되오. 풀기 쉽게끔 매듭을 지어 놨거든."
그들은 자신이 묶인 밧줄의 매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먼저 한 번 봐야 하는 그런 경우요? 그럼 잠시만 기다리시오. 한 번 실습해 보겠소."
그렇게 말한 이는 도미닉 경에게 다가와 스스로 밧줄을 풀어냈다.
"이렇게 풀면 되는 거요. 아시겠소?"
"혹시 그 마저 어려우면 그 칼로 베어내도 괜찮소."
그렇게 말한 이들은 다시 밧줄로 자기 몸을 꽁꽁 묶었다.
도미닉 경은 어이가 없다는 듯 둘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밧줄을 풀어 주었다.
밧줄은 너무나도 느슨하게 매어져 있어 푸는 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고맙소! 포로로 잡혀 있었는데, 덕분에 풀려날 수 있었소!"
"...혼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소만."
"에이, 그럴 리가 있겠소? 포로로 있는 동안 적의 정체를 알아내거나, 아이스크림을 훔치거나, 비밀 문서나 1급 보안 구역으로 가는 열쇠 등을 얻을 수 있긴 했지만, 도저히 이 밧줄은 못 풀겠더군."
도미닉 경은 방금 전 스스로 밧줄을 푼 것은 도대체 뭐냐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가차랜드는 넓었고 가차랜드스러운 사람들은 많았다.
그 사실을 기억한 도미닉 경은, 이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구해줘서 고맙소."
"구해 준 사례를 하고 싶은데..."
그렇게 말한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도미닉 경에게 보답했다.
수염을 길게 기른 사람은 수염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도미닉 경에게 건넸는데, 도미닉 경은 그것이 이 가짜 전함에 대한 설계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쩌면, 이 전함의 지도라고 볼 수도 있었다.
"포로 생활하면서 우연히 주운 거요. 마침 지나가던 평범한 중간 보스가 이걸 들고 있길래, 술을 같이 마시며 친해진 뒤 얻었지."
"...?"
도미닉 경은 수염을 길게 기른 포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 만의 방법으로 이 설계도를 얻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번엔 내가 보답을 할 차례로군."
양복을 입고 있던 포로는 품속에서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 연락을 보냈다.
"...전화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구조 신호라도 보낼 수 있었던 것 아니오?"
"우연찮게도 지금까지 통화권 이탈이어서 말이오."
아마 그랬을 걸요. 라고 말한 양복 포로는 전화기 너머로 몇 마디를 내뱉었다.
양복 포로가 전화를 끊자, 곧바로 시공간이 뒤틀리며 하늘에서 하나의 서류 가방이 떨어졌다.
"이게 도움이 될 거요."
그렇게 말한 양복 포로는 서류 가방을 그대로 도미닉 경에게 넘겨주었다.
"이게 뭐요?"
도미닉 경은 서류 가방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500점 짜리요."
"...500점?"
"그렇소."
그러나 양복 포로가 하는 말은 다소 황당했다.
"그걸 인벤토리에 넣으면, 최종 점수에 500점이 합산될 거요."
"최종 점수라니, 그게 뭐요?"
도미닉 경이 처음 듣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슈팅가르드에서는 서로의 강함을 측정하는 정도 중 하나로 점수, 즉 스코어링이라는 개념을 쓰오."
양복 포로가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스코어링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점수지. 이 점수들은 곳곳에 숨은 오브젝트들을 모으거나, 혹은 이렇게 우리처럼 포로로 잡힌 이들을 구출하면 올라가오."
"점수라. 점수를 올려서 좋은 점은 무엇이오?"
도미닉 경은 이 점수들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 포로들에게 물었다.
"그건 단순하지. 기분이 좋소."
"...그렇소?"
양복 포로는 당연하다는 듯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겠소? 내가 이만큼이나 베테랑이다, 내가 이만큼이나 강하다는 걸 사람들에게 가장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으니 말이오."
수염이 성성한 포로가 양복 포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커다란 바위를 들어 올린다거나, 오우거를 잡았다거나 하는 피상적인 현상으로 강함을 설명하는 것보다, 난 무려 17만 점 만큼 강하다! 라고 말하는 것이 더 확 와닿는 법이지."
"음음. 슈팅가르드에선 당연한 일이오."
그렇게 말한 두 명의 포로들은, 이내 주섬주섬 밧줄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무튼, 이제 우릴 구해줬으니 이만 가보시오."
"이제 더 드릴 보상도 없으니, 이만 우리를 두고 가시오."
"음?"
도미닉 경은 다시 주섬주섬 자기 몸을 밧줄로 묶기 시작한 두 사람을 보며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왜 다시 몸을 묶는 거요?"
"그야, 다음번을 위해서지."
"후발 주자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묶여 있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오?"
"아, 그렇다고 다시 우리를 구하진 마시오."
"추가적으로 점수를 주지는 않으니까 말이오."
그렇게 말한 두 사람은 밧줄에 몸을 묶고는, 어느새인가 천장을 향해 뻗어나간 밧줄을 두어 번 잡아당겼다.
그러자 천장에서 누군가가 두 사람을 끌어올리는 듯, 두 사람은 허공으로 솟구쳐 사라졌다.
도미닉 경은 두 사람이 사라진 천장을 올려다보았지만, 천장에는 그 어떤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역대급으로 이상한 사람들이로군."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 있으면서 웬만한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고 자부했으나, 이번에 만났던 두 포로는 그중에서도 역대급으로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도미닉 경은 잠깐 두 사람이 사라진 천장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이 전함의 설계도를 얻었으니, 가짜 도미닉 경이 있는 곳으로 바로 갈 수 있겠군."
도미닉 경은 설계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설계도에는 가짜 도미닉 경이 있는 방이 표시되어 있었고, 그 방으로 가는 세 갈래의 길을 보여 주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곱 갈래였다.
세 갈래의 길은 또다시 두세 갈래의 길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미닉 경은 그중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설계도에 나온 대로,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레버를 당겨 숨겨진 문을 열었다.
레버는 오랫동안 쓰지 않았는지 조금 뻑뻑했으나,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그런 레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숨겨진 문을 연 도미닉 경은 폴짝 뛰어 바닥에 열린 비밀 공간을 향해 뛰어들었다.
도미닉 경이 비밀 공간에 뛰어들자마자, 열렸던 비밀 문은 기다렸다는 듯 닫혔다.
그리고... 쓰러졌던 고철 로봇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
"흠. 실수했나?"
도미닉 경은 끝없이 이어진 통로에서 떨어지며 그렇게 생각했다.
도미닉 경은 방금 전 얻었던 설계 도면을 다시금 유심히 바라보며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 보았는지 고민했다.
한참을 떨어지고 있는데도 아직 바닥이 보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여기보다, 저쪽 길을 갔었어야 했"
도미닉 경은 설계도에 있는 다른 길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의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 하나가, 도미닉 경이 든 설계도에 구멍을 냈기 때문이었다.
도미닉 경은 순식간에 설계도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검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순간 방패가 공기 저항을 받아 손에서 놓칠 뻔했지만, 도미닉 경은 가까스로 방패를 집어 들 수 있었다.
"방금 뭐였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도미닉 경은 이 통로에서 같이 떨어지기 시작한 고철 로봇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은 이 고철 로봇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이 고철 로봇들은 도미닉 경이 들어온 통로를 통해서 우수수 쏟아져 내리고 있었는데, 그 수가 수백, 수천이었다.
...적어도 도미닉 경이 이 급박한 상황에서 느끼기엔 그랬다.
"이런, 아무래도 방해꾼이 붙은 모양이로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검과 방패를 제대로 쥐었다.
그리고 마침 눈앞에서 도미닉 경에게 총을 쏘려던 고철 로봇 하나에게 합리적인 일격을 먹여주었다.
고철 로봇은 도미닉 경의 방패치기에 산산조각이 나 부품 별로 분해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일단 하나!"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계속해서 고철 로봇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방패를 밀쳐 냈다.
가끔은 색깔이 다른 고철 로봇이 나타나 도미닉 경의 검과 방패에 특별한 효과를 부여했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고철 로봇들을 처치하며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으로.
...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나을까.
"음!"
도미닉 경은 마침내 바닥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엔, 이상한 법칙이 작용하는 모양이군..."
도미닉 경은 우수수 떨어지는 로봇들의 파편 사이로 보이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도미닉 경이 들어온 입구에서부터 현재 도미닉 경이 선 땅까지의 거리는 고작 10미터 정도로 보였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체감상 수백, 수천 미터는 내려온 기분이었다.
실제로 도미닉 경이 처리한 고철 로봇의 수를 생각하면, 적어도 오백 미터 이상은 내려왔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도 천장과 도미닉 경 사이의 거리는 고작 10미터 정도.
도미닉 경은 이 알 수 없는 법칙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의문은 나중에 풀어야겠군."
도미닉 경은 이 알 수 없는 법칙에 의문이 들었으나, 여기엔 도미닉 경의 의문에 답해 줄 이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미닉 경은 의문을 풀려고 노력하는 대신, 일단 이 상황부터 먼저 마무리 짓자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저 길을 따라서 가면 되겠어."
도미닉 경은 인벤토리에서 가짜 전함의 설계도를 꺼내 이 통로의 끝에 있는 커다란 격납고 문을 확인했다.
이제 저 문을 넘어 복도 하나를 넘으면, 바로 가짜 도미닉 경이 있는 장소로 갈 수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도미닉 경은 곧바로 격납고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제 이 상황의 끝이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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