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7화 〉 [456화]도둑 고양이들
* * *
히메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저택에서 잠시 일하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히메는 용돈을 벌기 위해 아버지의 제안을 수락했다.
새로 나온 암기 세트를 사기 위해 약간의 돈이 필요했다.
그녀가 부탁한다면 그녀의 아버지 운류 무사시는 당연히 용돈을 주겠지만, 히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히메는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고, 무언가에 기대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사시도 그런 히메의 성격을 잘 알기에 바로 돈을 주기보다 일을 시키고 보수로 용돈을 주는 것을 택한 것이고.
무사시가 히메에게 부탁한 것은 바로 5성 모임에서 메이드로 일하라는 것이었다.
무사시가 히메에게 그런 제안을 한 것은 세 가지의 이유였다.
우선, 히메가 남들보다 먼저 5성들과 안면을 익힐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5성들의 강함을 보며 깨달음을 얻길 바라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류 무사시가 꾸민 알 수 없는 계략이 바로 그 세 번째 이유였다.
"그거 아나, 덱스터?"
운류 무사시는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덱스터 르 방에게 말을 건넸다.
"?"
덱스터 르 방은 운류 무사시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뭘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는 말인가?
"내 딸이 오늘, 여기서 일하고 있네."
"그게 뭐."
무사시의 말에 덱스터는 황당하다는 듯 대꾸했다.
갑자기 그 말은 왜 한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지금쯤이면 도미닉 경과 만났겠지."
"...그렇다고 해서 내 딸이 유리하다는 건 변하지 않아."
덱스터는 뚜 르 방이 히메를 누르고 사랑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내 딸은, 강하니까."
뚜 르 방의 강력한 힘을 믿는 것이다.
뚜 르 방은 5성 이상의 힘을 가진 마왕.
그에 반해, 운류 무사시의 딸은 4성급의 무력을 가진 쿠노이치.
힘의 차이는 극명했다.
덱스터는마왕답게미의 기준 중 하나가 무력이라고 믿는 사람 중 하나였고, 뚜 르 방의 무력은 5성 이상인 만큼 도미닉 경도 뚜 르 방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하는 법이지."
운류 무사시가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힘이 차이가 나더라도 전술과 전략이 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네."
"흥. 전술과 전략을 뛰어넘는 강력한 힘이 있다면 그만이다."
덱스터가 운류 무사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운류 무사시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분명히 덱스터의 딸이 더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압도적인 힘이라고 했나?"
"그래."
운류 무사시가 덱스터에게 묻자, 덱스터는 즉답했다.
그러자 운류 무사시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렇다면 우리 딸이 더 강하겠군."
"...그게 무슨 헛소리지?"
덱스터는 운류 무사시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뚜 르 방과 히메. 둘 사이의 힘의 차이는 명백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무사시는 덱스터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인가?
그런 의문을 해소하기라도 해주려는 듯, 무사시는 덱스터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이 저택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아는가?"
"...?"
덱스터 르 방은 도대체 운류 무사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덱스터 르 방은 이 저택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충직한 고그...!"
그제야 덱스터는 무사시의 계략을 알아차렸다.
"설마... 다 계획을 하고 딸을 불러들인 건가?"
"그렇지."
운류 무사시는 그렇게 말하며 여유로운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경악을 금치 못 하는 덱스터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쯤이면... 그래. 자네 딸과 내 딸이 싸우고 있을 수도 있겠군. 내 딸은 생각이 많은 만큼 질투도 많아서 말이야."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아는 법이지. 라고 말한 운류 무사시는 어디서 가져온 지 모를 차 한 잔을 마시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가면에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
뚜 르 방에게 날아가던 쿠나이는 뚜 르 방에게 닿지 못했다.
뚜 르 방이 손을 들어 올리자, 쿠나이는 저절로 힘과 속도를 잃고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누구신데 저를 도둑 고양이라고 부르시죠?"
뚜 르 방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히메를 쳐다보았다.
얼굴은 웃는 표정이었으나, 묘한 살기가 뚜 르 방에게서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도미닉 경과의 시간을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진 것이리라.
"운류 히메."
히메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암기들을 꺼내 들었다.
"운류 히메라."
뚜 르 방은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생각했지만,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애초에 마왕인 그녀가 그런 세세한 것까지 기억할 필요는 없기도 했고.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네요."
"...!"
그 말이 히메의 자존심을 긁었는지, 무표정하던 히메의 얼굴이 움찔거렸다.
"메이드 복을 입은 것을 보니 고용인 같은데, 저를 방해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
뚜 르 방은 계속해서 히메를 도발했다.
그러나 히메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대신, 손에 들고 있던 암기들을 뚜 르 방에게 다시 던질 뿐이었다.
도미닉 경은 바로 옆에서 히메와 뚜 르 방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잠시 멍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도미닉 경은 암기가 날아다니고, 보라색 에너지 덩어리가 흩날리는 복도를 바라보았다.
히메는 복도의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를 돌아다니며 그 기동성을 살려 공격했고, 마왕은 압도적인 마력으로 사방에 탄막을 생성하고 있었다.
이는 마치 비행기와 대공 포대 간의 눈치싸움과도 같았다.
히메가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비행기라면, 마왕은 압도적인 화력을 투사하는 대공 포대와 같았던 것이다.
물론, 두 사람 간의 성급 차이가 있기에 최종적으로 이기는 것은 마왕이 되었어야 옳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사람의 승부는 다른 이에게 방해받고 말았다.
"싸, 싸움은 나빠!"
누군가의 난입으로 말이다.
갑자기 난입한 누군가는 싸움은 나쁘다면서 히메와 뚜 르 방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그는 키가 3미터는 될 법한 거구의 사내였는데, 전체적으로 매우 큼직큼직한 사람이었다.
손으로는 뚜 르 방을 한 번에 쥘 수 있을 것 같았고, 입으로는 히메를 한입에 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얼굴은 또 얼마나 큰지, 일반적인 크기의 가면이 그의 눈 하나를 가릴 수 있을 정도였다.
"폭력은 나빠."
거인은 두 사람의 뒷덜미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히메와 뚜 르 방은 갑자기 난입한 거인의 행동에 놀라 어버버거릴 뿐이었다.
도미닉 경은 갑자기 두 사람의 사이에 난입해 둘 모두를 제압한 이 거인을 보고 놀라 그의 정체를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요?"
도미닉 경의 물음에 거인이 답했다.
"고그는 고그다."
"고그?"
자신을 고그라고 소개한 거인의 손이 있던 뚜 르 방이 깜짝 놀랐다.
"설마, 그 슈팅가르드의 고그라구요?"
"아는 사람이오?"
도미닉 경이 뚜 르 방에게 말하자, 뚜 르 방은 여전히 뒷덜미를 잡힌 자세 그대로 설명했다.
"슈팅가르드 최고의 파일럿 중 하나예요. 슈팅가르드의 원로 5성 중 하나기도 하구요."
"고그는 고그다. 어려운 수식어 싫다."
도미닉 경은 또 다른 지역의 등장에 조금 머리가 아파 왔다.
"슈팅가르드는 어디요?"
"말 그대로 무언가를 쏘는데 특화된 사람들이 사는 도시예요. 고그는 그런 도시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단한 5성이구요."
뚜 르 방은 도미닉 경에게 상세한 이야기했다.
"저, 나중에 싸인이라도 해주실수 있나요?"
뚜 르 방이 반짝이는 눈으로 고그에게 부탁했다.
"어렸을 때 봤던 만화영화 고그와 모그의 팬이었거든요."
"싸인...?"
고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싸인을 해주기 위해 두 사람을 내려놓고는, 뒷주머니에서 종이 뭉치와 펜을 꺼내 들었다.
투박하고 강렬한 싸인을 한 고그는 뚜 르 방을 포함한 세 사람을 위해 세 장의 싸인을 해주었다.
도미닉 경은 갑자기 싸인을 건넨 고그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일단 주니까 받아들였다.
"여기서 내 팬을 만나다니, 즐겁다."
고그라고 불린 파일럿은 세 사람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자신을 알아본 것에 너무나도 기뻐하는 듯 보였다.
"그나저나, 당신이 왜 여기에 있죠?"
뚜 르 방이 고그의 싸인을 소중하게 보관하며 말했다.
"당신은 오늘 집에 있는다고 들었는데요."
"...?"
뚜 르 방의 말에 고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가 우리 집이다."
"!"
그제야 뚜 르 방은 왜 고그가 여기에 있는지 알아차렸다.
애초에 그의 집이었으니, 여기 있는 게 당연하였다.
"세상에."
뚜 르 방은 몇십 번이나 이 집에 5성 모임을 위해 왔었으면서도 이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래서일까? 뚜 르 방은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그나저나 왜 싸우던 거지."
고그는 조금 전까지 싸우던 히메와 뚜 르 방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도미닉 경 때문예요."
뚜 르 방은 차마 거짓말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도미닉 경과 함께 다니고 있었는데, 저 여자가 갑자기 공격해서 말이예요."
"...도미닉 경은 내 거니까."
"?"
히메는 뚜 르 방의 말 사이에 아무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게 말했다.
다행스러운 건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아무도 듣지 못한 것은 확실했다.
"아무래도 사랑싸움인 모양이군."
아무튼 고그는 뚜 르 방의 설명을 듣고 제멋대로 해석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싸움은 나쁘다."
고그는 그렇게 말하며 둘을 다그쳤다.
"어머니 지구 위에서 싸우는 건 안 된다. 어머니가 걱정한다. 그러니 하늘 위에서 싸워라. 엄마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싸우는 건 나쁜 거 아니다."
상상도 못 한 말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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