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6화 〉 [455화]도둑 고양이들
* * *
"여기는 클래시카 섬의 사람들의 모임이 있는 곳이에요. 저기는 레트로 그라드의 5성들이 모이는 곳이구요.”
뚜 르 방은 도미닉 경에게 정말 5성 모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클래시카 섬과 레트로 그라드라.”
도미닉 경은 레트로 그라드에 대해서는 자주 들었지만, 크래시카 섬은 처음 듣는 곳이었다.
“클래시카 섬과 레트로 그라드는 어떤 곳이오?”
“클래시카 섬은 장기나 체스, 바둑같은 것을 좋아하는, 말 그대로 클래식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뚜 르 방은 도미닉 경의 질문에 상세히 대답해주었다.
“클래시카 섬의 사람들은 5성이라는 말 대신 그랜드 마스터나 국수, 명인이라는 자체적인 단어를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어쩌면, 그건 그들이 폐쇄적인 섬에 살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요. 라고 뚜 르 방은 첨언했다.
“레트로 그라드는 조금 독특한 곳이에요. 일단 평균적인 나이가 가장 높은 도시이기도 하지만...”
뚜 르 방은 잠깐 말을 멈추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말해야 조금 순화시켜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일까?
“뭐랄까, 추억에 사로잡혀 망령이 되어 버린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죠.”
전혀! 마왕 뚜 르 방은 자신이 왜 마왕인지 여실히 알려줄 수 있는 단어들을 선택했다.
그야말로 마왕이기에 할 수 있는 폭언!
“흠.”
도미닉 경은 그런 뚜 르 방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은 꽤 단순한 사람이었기에, 그런 단순한 설명이 더 크게 와닿는 것이다.
“과연.”
그때, 도미닉 경은 문득 다른 것이 궁금해졌다.
도미닉 경은 지체하지 않고 자기 궁금증을 뚜 르 방에게 물어보았다.
“그나저나, 왜 저렇게 그룹이 나눠져 있는 거요?”
“뭐, 5성이라고 해서 다들 서로를 알고 싶은 건 아니니까요.”
뚜 르 방은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익숙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음."
도미닉 경은 뚜 르 방의 말에 바로 이해했다.
지금까지 공개된 5성 인원의 수는 도미닉 경까지 333명.
도미닉 경은 이 인원이 가차랜드에서의 숫자라고 생각했으나, 지금까지의 설명을 들어 보면 가차랜드를 비롯한 모든 지역에서 333명이라는 소리였다.
"각자의 도시에 5성 커뮤니티가 따로 있는 모양이오?"
"뭐, 그렇죠. 보통은."
이렇게 특별한 모임이 있는 것이 아니면, 도시 간의 교류는 거의 없으나 다름없으니까요. 라고 뚜 르 방이 말했다.
도미닉 경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모임이니 조금은 다른 사람들도 보고 싶었건만."
"도미닉 경은 사람들을 사귀는 것을 좋아하나 봐요?"
뚜 르 방이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소."
도미닉 경이 뚜 르 방의 말을 인정했다.
도미닉 경은 사실, 사람들과의 교류가 적극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선 모르는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과 사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고 봐도 좋았다.
"사람들과 교류하려면 중앙 로비로 가는 것이 좋아요."
뚜 르 방은 도미닉 경의 말에 자연스럽게 5성 모임에 대한 설명을 녹여냈다.
"중앙 로비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라 교류도 활발하거든요."
도미닉 경은 문득 로비에 있던 수십 명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도미닉 경이 들어오자마자 모든 시선을 집중하지 않았던가.
뚜 르 방의 설명대로라면, 그들은 새로운 인물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임이 틀림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자가 테라스로 오라고 했었군."
도미닉 경은 잠시 뚜 르 방을 만나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요?"
뚜 르 방이 도미닉 경의 중얼거림을 듣고 되물었다.
"모르겠소. 다들 가면을 쓰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5성들을 잘 몰라서인지 알 수 없었소."
도미닉 경은 자신과 만났던 그자가 자신을 사위가 될 자라고 한 것을 떠올렸다.
도미닉 경이 생각하기엔 운류 무사시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확실한 건 아니었다.
"테라스라. 아무래도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나 봐요."
"비밀스러운 이야기라."
도미닉 경은 뚜 르 방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할 것이 있어 도미닉 경과 비밀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는 말인가?
도미닉 경은 갑자기 호기심이 일었다.
"아무래도 빨리 테라스에 가 봐야 할 것 같소."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하자 뚜 르 방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도미닉 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랑 좀 더 있어 줄 생각은 없나요?"
"음!"
도미닉 경은 뚜 르 방이 살짝 울먹이며 도미닉 경을 올려다보는 것을 보았다.
확실히, 도미닉 경은 현재 레이디의 안내를 받고 있었다.
이는 레이디 뚜 르 방의 호의 덕분이었으며, 덕분에 도미닉 경은 5성 모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가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테라스로 가는 건 조금 있다가 해야 할 것 같군. 레이디를 울려선 안 되는 일이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뚜 르 방을 달랬다.
"그, 일단 당신의 안내를 다 받은 다음에 가겠다는 소리였소. 오해하게 해서 미안하오."
도미닉 경은 필사적으로 뚜 르 방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뚜 르 방은 언제 울먹였냐는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렇소."
뚜 르 방은 마치 기회를 잡았다는 듯 도미닉 경에게 당당하게 한 가지를 요구했다.
"그럼 머리를 쓰다듬어 주세요."
"음?"
"이렇게요."
뚜 르 방은 도미닉 경의 손을 잡고 자기 머리 위로 올렸다.
도미닉 경은 순간 뚜 르 방의 행동에 당황했으나,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뚜 르 방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뚜 르 방이 그러길 바랬으니, 해 주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나.
뚜 르 방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도미닉 경의 손길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렸다.
"헤."
뚜 르 방은 도미닉 경의 손길이 마음에 드는 지, 바보 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좋아했다.
도미닉 경은 언제까지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어야 할지 몰라, 계속해서 뚜 르 방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의 고민은 곧 해결되었다.
"!"
갑작스럽게 어디선가 암기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과 뚜 르 방 사이에 날아온 암기들로 인해, 도미닉 경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멈추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이는 뚜 르 방도 마찬가지였다.
뚜 르 방도 갑자기 날아온 살기가 넘치는 공격에 도미닉 경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나고 말았다.
"...아버지께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셔서 왔더니."
복도의 그림자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미닉 경과 뚜 르 방은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 자리에 없었다.
대신, 도미닉 경과 뚜 르 방의 뒤에서 또다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목격하게 되었을 줄이야."
도미닉 경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없었다.
"도미닉 경, 도미닉 경, 도미닉 경."
목소리의 주인공은 도미닉 경의 이름을 세 번 불렀다.
각각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른 감정을 내비쳤다.
처음 도미닉 경을 부를 때엔 분노.
두 번째 도미닉 경을 부를 땐 절제.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도미닉 경을 불렀을 땐...
그 어떤 감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요?"
도미닉 경은 이 목소리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익숙함을 넘어서 잘 아는 목소리였다.
그건 바로, 운류 히메의 목소리였으니까.
그러나 도미닉 경은 고개를 저으며 운류 히메가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여기는 5성 모임이었으니까.
도미닉 경이 알기에 히메는 5성이 아니었으니, 여기에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도미닉 경은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숨어서 도미닉 경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
목소리의 주인은 도미닉 경의 말과 행동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다시금 도미닉 경과 뚜 르 방에게 암기를 던졌다.
이번엔 다행스럽게도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날아오는 암기를 쳐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공격도 막히자마자 그림자 속의 존재는 더 이상 공격할 이유가 없다고 여겼는지, 마침내 스르르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다.
"...히메 공?"
도미닉 경은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이를 바라보며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림자 속에서 나온 것은, 바로 히메였다.
...그것도 메이드 복을 입은.
이는 도미닉 경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어째서 히메 공이 여기에...?"
"아버지께서 일을 도와달라고 해서 왔더니."
히메는 냉혹한 표정으로 도미닉 경과 뚜 르 방을 바라보았다.
"이런 일을 다 보네요."
도미닉 경은 히메의 표정을 보며 그녀가 상당히 분노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표정이 아니었다.
그녀의 여우 귀와 꼬리가 분노로 인해 바짝 선 상태였으며, 심지어 꼬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되어 알 수 없는 요사한 기분을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히메의 표정은 여전히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표정만으로 기온이 내려간다면, 히메의 주변에는 이미 만년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리라.
그런 도미닉 경의 혼란한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히메는 무표정한 얼굴로 도미닉 경과 뚜 르 방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뚜 르 방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노려보면서 쿠나이를 조준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이 도둑 고양이."
그리고 다시 한번 뚜 르 방에게 쿠나이가 날아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