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5화 〉 [454화]5성 모임
* * *
"덱스터 르 방!"
"그래, 친구. 자네의 친구이자 전 마왕, 덱스터 르 방일세."
덱스터는 무사시의 말에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알려주지 않아도, 내가 덱스터 르 방이라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는 말이라네."
"어째서 이렇게 도미닉 경에게 관심을 가지는 거지?"
"물론, 아주 간단한 이유지."
덱스터는 무사시의 물음에 뱀처럼 갈라진 혀를 날름거렸다.
"딸이 도미닉 경을 좋아하니, 아버지 된 처지에서 응원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
"자네도 자네 딸이 도미닉 경을 좋아하므로 이렇게 응원하고, 간섭하는 것 아닌가."
운류 무사시는 덱스터의 말을 듣고 트집을 잡으려고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덱스터의 말은, 한 치의 거짓 정보도 섞이지 않은 진실이었으니까.
"자네나 나나, 딸 바보인 것은 변하지 않지."
덱스터 르 방은 마치 마왕처럼 사악하게 웃었다.
과연 전 마왕다운 모습이었다.
"그러니 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둘 다 진심이지 않은가."
덱스터는 운류 무사시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 목소리에 담긴 마성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운류 무사시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딸을 위해서 조금 도움을 준 것이, 잘못되었다는 건가?"
무사시는 덱스터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자네에게는 미안하게 되었네. 하지만 나도 딸을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일세. 그러니..."
"아직."
"...음?"
덱스터는 이미 도미닉 경이 자기 딸과 이어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운류 무사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운류 무사시는 그런 덱스터의 도발 가득한 행동에도 묵묵히 침착함을 유지하더니, 이내 한 마디 말을 내뱉었다.
"아직 끝난 건 아니지."
운류 무사시가 덱스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안다는 말이 있네. 그러니 아직 결과는 봐야 알 수 있어."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안다라."
덱스터가 무사시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축포를 터뜨리기엔 이르지."
무사시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자기 딸에게도 승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내가 저번에 자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자네의 딸을 본 적이 있었지. 예쁘고, 문무를 겸비한 아가씨더군."
"칭찬 고맙네."
덱스터는 자기 딸을 칭찬하는 운류 무사시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그러나 운류 무사시는 덱스터의 딸에 대해서 좋은 면만 말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지금 상황에서 덱스터의 딸은 히메와 연적 관계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칭찬만 하기엔, 마치 무사시가 모든 것을 인정하고 패배를 선언한 것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아직 히메는 패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운류 무사시는 덱스터를 향해 자기주장을 내뱉었다.
"자네 딸에게는, 중대한 단점이 있네."
덱스터의 딸과 도미닉 경이 이어질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
"대가가 있소?"
도미닉 경은 봉인이 풀린 상태의 뚜 르 방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왕이 원하는 대가라니,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일까?
도미닉 경은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마왕 뚜 르 방도 도미닉 경이 당황했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마왕답게 따로 도미닉 경의 당황스러움을 정리해주지는 않았다.
"별 건 아니에요."
마왕 뚜 르 방은 어깨를 으쓱하며 도미닉 경에게 대가에 대해서 말했다.
"그, 봉인 되었을 때 말이에요."
마왕 뚜 르 방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부끄러워진 모양이었다.
".음? 아. 2등신일 때를 말하는 거요?"
도미닉 경이 뚜 르 방의 말에 바로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평상시에 가차랜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뚜 르 방이었다.
뽀작뽀작 걸어 다니며, 참모장을 데려다니는.
"네."
뚜 르 방은 도미닉 경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환한 웃음과 함께, 뚜 르 방은 자신이 원하는 대가를 말했다.
"그때가 되면..."
도미닉 경은 꿀꺽 침을 삼켰다.
마왕의 스케일이면, 대가도 꽤 크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큰 의미가 없었다.
뚜 르 방의 대가는, 상상 이상이었으니까.
"제게 사탕을 잔뜩 사주세요."
"...?"
"조금만 더 인심 써서, 유기농에 슈가 프리로."
마왕 뚜 르 방은 그렇게 말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도미닉 경은 순간 뚜 르 방의 제안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대가가, 고작 사탕이라는 말인가?
도미닉 경이 뚜 르 방을 빤히 쳐다보다, 뚜 르 방은 부끄러운지 시선을 피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 어쩔 수 없어요. 충치가 생긴 바람에 참모장이 사탕을 당분간 금지시켰단 말이에요."
뚜 르 방의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인해 새빨갛게 변했다.
"아, 보상으로 사탕만 준다면, 저랑 오늘 온종일 같이 다닐 수 있어요."
뚜 르 방은 도미닉 경에게 한 발자국 슬쩍 다가왔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도미닉 경은 뚜 르 방의 제안에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뚜 르 방의 제안을 수락했다.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뚜 르 방의 제안은 손해 볼일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탕이라고 해봤자 얼마나 비싸겠는가.
그런 사탕 몇 킬로그램으로 5성 모임에 대해 잘 아는 가이드가 붙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득이었다.
"키, 킬로그램 단위로는 안 먹거든요?"
뚜 르 방이 어이가 없다는 듯 도미닉 경에게 항변했으나, 도미닉 경은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튼 좋소. 당신의 말대로 하겠소."
도미닉 경은 결국 뚜 르 방의 제안을 수락했다.
"...어째서인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어요."
"손해라니, 당신이 원한 대가가 아니오."
도미닉 경은 이 계약이 정당하다고 주장했으나, 뚜 르 방은 마왕답게 말을 바꿔 도미닉 경에게 추가적인 보수를 요구했다.
"...머리나 좀 쓰다듬어 줄래요?"
"음? 뭐, 그러리다."
도미닉 경은 마왕 뚜 르 방이 추가적으로 원한 대가도 문제없이 제공했다.
뚜 르 방은 봉인이 풀렸음에도 키가 약간 작은 편에 속했기에 도미닉 경이 머리를 쓰다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도미닉 경의 어설픈 손길. 뚜 르 방은 눈을 감고 그 손길에 몸을 맡겼다.
"보수를 받았으니, 이제 일할 차례겠죠."
그리고 제법 만족스럽다는 듯 히죽 웃더니, 이내 머리를 쓰다듬던 도미닉 경의 손목을 잡고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 가요. 보여 줄 것이 참 많아요."
도미닉 경은 갑자기 손목을 잡은 뚜 르 방의 행동에 당황했으나, 이내 자연스럽게 뚜 르 방의 인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
"자네의 딸에게는 중대한 단점이 있네."
덱스터가 무사시에게 말했다.
"그건 너무 생각이 많다는 것이지."
덱스터는 그것이 히메의 단점이라며 단언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감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머리로만 무언가 하려고 한다는 뜻일세."
"이래도 될까? 저래도 될까? 라고 생각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말지."
"그리고 이런 일이 한둘씩 늘어나면, 자신감마저 사라져."
"우물쭈물 어영부영하다가 거의 포기에 가까운 상태까지 가기도 하지."
"반면, 우리 딸은 어떠한가?"
"우리 딸은 눈치라고는 하나도 보지 않는 활발한 아이일세."
"그 말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지고 싶은 것을 다른 이들에게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지."
"적극적인 성격이야말로, 사랑을 쟁취하기에 아주 큰 장점 아니겠나!"
덱스터는 한 차례 장황한 연설을 한 것처럼 설명했다.
그 모습은 굉장히 짜증 나고 불쾌한 느낌이었으나, 운류 무사시는 그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녀의 딸은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편이었으며, 몇 년의 기간 동안 도무지 진전이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자신도, 일부러 딸의 연애 사업을 도와주기 위해 나름 이런저런 일하지 않았던가.
운류 무사시는 이렇듯 갑자기 나타난 딸의 라이벌, 그것도 굉장히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에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째서 자네 딸은 도미닉 경에게 관심을 가진 거지?"
무사시가 덱스터에게 물었다.
"도미닉 경과 어떤 연관점이 있었길래 말이야."
"모른다!"
덱스터는 당당하게 모른다고 말했다.
"사랑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그냥 좋아한다니 그러려니 하는 거지!"
덱스터는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전 마왕다운 웃음소리였다.
"반대로, 자네의 딸은 어째서 도미닉 경을 좋아하지?"
덱스터가 운류 무사시에게 다시금 화두를 던졌다.
"내가 보기엔 사랑에 빠질 일이 하나도 없던 것 같은데, 어째서 저렇게나 도미닉 경을 좋아하는지 묻고 있는 걸세."
덱스터의 말에 무사시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덱스터의 말에 대답을 던졌다.
"자네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줘야겠군. 사랑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지? 한눈에 반하면 그게 사랑 아닌가? 내가 내 아내에게 반했듯, 내 아내가 나에게 반했듯 사랑은 그렇게 한순간에 찾아오는 법이지."
"과연."
덱스터는 무사시에게 말했다.
"아무튼, 이미 우리 딸은 적극적으로 도미닉 경에게 다가가고 있을 걸세."
덱스터는 무사시를 보며 비열하게 웃었다.
"이제 남은 건, 손자 볼일 뿐이겠군."
덱스터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히죽거렸다.
"글쎄."
무사시는 그런 덱스터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결과는 나지 않았으니, 모르는 일이지."
덱스터는 무사시의 말에 고개를 돌리고 더 크게 히죽거렸다.
바보 같으니. 이게 다 내 계략인지도 모르고 말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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