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3화 〉 [452화]5성 모임
* * *
도미닉 경이 저택 내부에 들어서자, 도미닉 경은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받았다.
도미닉 경은 이 압박감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한 번 훑어보았다.
"...선객들이 있었군."
도미닉 경은 도미닉 경과 살짝 거리를 둔 채 도미닉 경을 바라보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 같이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가면 무도회 이벤트가 진행 중이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면을 쓰고 올 걸 그랬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얼굴을 매만졌지만 이내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도미닉 경의 손끝에 닿은 감촉은 도미닉 경의 얼굴이 아니라, 차가운 무언가였기 때문이었다.
도미닉 경은 당황하며 손바닥으로 얼굴에 무엇이 있는지 만져 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것이 가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이 저택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자동으로 가면이 씌워지는 모양이었다.
그 넓은 정원에 나 혼자였던 것 같은데, 이런 이유에서였나.
도미닉 경은 서로의 정체를 모르게 하기 위해 일부러 한 사람 씩 저택에 데려다주는 방식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도미닉 경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이 생각하는 것보다 이 절차는 꽤 중요한 일이었다.
중앙 시스템은 5성에 도달한 인물들이 연합해 거대한 카르텔을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비록 초월 등급의 등장으로 5성의 위상이 조금 내려오기는 했으나, 여전히 5성은 가차랜드의 최정상에 위치한 인물들이었다.
하나하나가 가차랜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거물들이었고, 하나하나가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인지도를 가진 인물들이었다.
그런 인물들이었기에 중앙 시스템 및 기타 시스템들은 5성급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했다.
이렇게 서로를 알아볼 수 없도록 가면을 씌운 것도 마찬가지였다.
적당한 정도의 친목은 이해하지만 카르텔은 용서하지 않겠다.
그런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중앙 시스템의 경고였다.
"...아무래도..."
"...확실히..."
도미닉 경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는 것을 들었다.
아무래도, 확실히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을 보니, 무언가 도미닉 경의 정체를 짐작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결국 수군거리던 사람들 중 하나가 도미닉 경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도미닉 경인가?"
"...그렇소."
그는 도미닉 경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어떻게 아셨소?"
"그야, 행동이 수상해서지."
"행동이 수상하다?"
"이런 곳에 자주 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주변을 신기하게 쳐다보지 않아. 익숙하니까. 하지만 자네는 들어오자마자 바로 주변부터 둘러보더군."
"시선이 느껴져서 그랬소."
"그게 바로 자네가 처음 이곳에 왔다는 증거일세.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가차랜드에서 한 가닥하는 사람들이라, 시선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거든."
"흠."
도미닉 경은 그 말이 옳다고 여겼다.
확실히, 도미닉 경은 어설프게 행동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걱정 말게."
도미닉 경의 앞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는 도미닉 경이 아니었노라고 말해 두지."
"...?"
"자네도 이 모임을 즐기고 싶을 것 아닌가. 그러니 약간의 수고는 감수해 줄 수 있네."
"어째서 이렇게 도와주려는 거요?"
도미닉 경은 눈앞의 남자가 왜 자기 정체를 숨겨 주려는지 의문을 표했다.
"그야, 미래의 사위를 위한 일이라고 해 두지."
남자는 도미닉 경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꼬이는 건, 내게 있어서 그다지 달갑지 않거든."
"...사위?"
도미닉 경은 어이가 없다는 듯 반문했으나, 남자는 도미닉 경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외쳤다.
"도미닉 경은 아니군."
"흠."
"도미닉 경인 줄 알았는데!"
그러자 주변의 사람들은 도미닉 경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며 도미닉 경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있다가, 테라스로 오게. 사위가 될 수도 있는 자와 조금 대화하고 싶으니."
남자는 도미닉 경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도미닉 경은 남자에게 무언가 물어볼 것이 많았지만, 남자는 이미 도미닉 경에게 관심이 없다는 연기를 하며 저 멀리 사람들 틈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흠."
도미닉 경은 남자의 도움으로 자신에게 향한 의심의 눈초리가 많이 가셨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아직 도미닉 경에 대한 의심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여전히 일부 몇몇 사람들은 도미닉 경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의미가 있기는 한 건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도미닉 경을 의심할 사람은 의심하고,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도미닉 경은 이내 이 행동이 의미가 없잖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적어도 도미닉 경에게 향한 관심을 많이 줄여 준 것만으로도 도미닉 경이 저택 내부를 움직이기엔 다소 편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이상, 저택을 좀 둘러봐야겠군."
도미닉 경은 자신이 계속해서 문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내 이곳에서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도 좀 만나 보고 말이야."
도미닉 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5성 모임에 초대되었으니, 다른 5성들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
도미닉 경은 저택 내부를 둘러보았다.
저택 내부는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어 보였다.
기껏해야 화려한 샹들리에, 고풍스러운 가구들, 고급스러운 벽지로 이루어진 평범한 저택.
조금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도미닉 경은 알지 못하는 이들의 초상화가 가득 걸려 있었다는 점일까.
딱 봐도 수백 점은 넘어 보이는 이 초상화는 제각기 다른 사람들을 그려 놓았는데, 도미닉 경은 그중 우연찮게도 도미닉 경이 아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비스듬히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운류 무사시의 초상화였다.
"이 초상화들은 5성들을 그려놓은 것인가?"
도미닉 경은 초상화들이 나란히 전시된 복도를 따라 걸었다.
초상화들에 그려진 사람들은 화려한 그림체로 제각기 자기 특성과 특수 기술에 대해서 은근슬쩍 보여주고 있었다.
운류 무사시의 경우는 일부러 초상화의 배경의 위와 아래를 비스듬하게 배치해 차원조차 자를 수 있는 그의 특성을 보여 주었다.
어떤 이들은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데, 배경에 버섯 구름이 일어나거나, 혹은 다친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거나, 혹은 반투명한 정령들과 놀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활과 화살, 그리고 총을 들고 있었는데, 화살 비가 내리거나, 총을 한 손에 쥐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포효를 내지르거나, 혹은 사냥한 곰과 사슴을 밟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중 하나의 초상화를 유심히 보았다.
방금 전, 배경에 버섯 구름이 그려진 지팡이를 든 남성의 모습이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 파괴학파의 대마도사, 율리우스]
"음."
도미닉 경은 별의 수를 보며 확실히 이 초상화들이 5성들을 그린 것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은 이렇게 초상화를 보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여겼다.
아직 5성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이런 소소한 정보들은 도미닉 경에게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간단하게라도 보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다른 초상화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벨 수 없는 것은 거의 없다."]
[★★★★★ 동방의 검신, 운류 무사시]
["바람이 선선하군요. 당신은 더 느끼지 못하겠지만."]
[★★★★★ THE 쿠노이치, 운류 이치코]
"흠흠."
도미닉 경은 초상화 하나하나를 감상하며 꽤 재밌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캐치 프라이즈라고 해야 할까?
화려한 초상화 아래에 적당한 말과 인물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으니, 보는 맛이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도미닉 경이 한참 동안 초상화를 감상하며 걸음을 걷자, 어느새 도미닉 경은 복도의 끝에 다다랐다.
"여기까지가 초상화의 끝인가."
도미닉 경은 거의 수백 개는 되는 초상화를 일일이 구경하며 왔지만, 벌써 끝이라는 사실에 입맛을 다셨다.
"음?"
그때, 도미닉 경은 문득 초상화의 행렬 마지막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끼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아주 하얀 백지였는데, 초상화의 크기와 똑같은 크기였다.
"어째서 흰 종이가...?"
도미닉 경은 그 흰 종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째서 이 종이가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는지 이해했다.
["행복해서 죽을 것 같소. 행복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
그곳은, 바로 도미닉 경의 초상화가 걸릴 곳이었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이 5성이 된 것은 고작 며칠 전이었으니, 아직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것이리라.
아마 저 정도로 화려한 초상화를 그리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 감회가 새롭군."
도미닉 경은 자기 초상화가 걸릴 자리를 보며 새삼스럽게 자신이 5성이 되었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했다.
"역시나."
그때였다.
도미닉 경의 옆에서 누군가가 도미닉 경을 보고 탄성을 터뜨렸다.
도미닉 경은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탄성을 터뜨린 사람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당신은 도미닉 경이었군요?"
그리고 거기에는,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보라색 나비 가면을 쓴 여성이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