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2화 〉 [451화]축제 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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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2일차.
오늘의 도미닉 경은 축제를 즐기지 않고 잠시 집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이들은 축제를 즐기러 나간 상태였고, 집에는 오로지 도미닉 경 뿐이었다.
어째서 도미닉 경은 이 즐거운 날에, 그것도 도미닉 경을 위한 축제가 열리는 날에 집에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도미닉 경이 아침 일찍 받은 편지 한 장에 있었다.
[친애하는 도미닉 경에게.]
[안녕하십니까, 도미닉 경. 행정부의 대외 홍보관, 투르 마르치라고 합니다.]
[일단 축제 도중 연락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 5성급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특별한 모임에 당신을 초대하고 싶어 부득이하게 실례를 범했습니다.]
[혹시라도 이 내용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오후 1시 경 행정부 앞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드레스 코드는 딱히 없으나, 괜찮으시다면 도미닉 경이 보여주실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의상으로 부탁드립니다.]
편지의 내용은 평범한 초대장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까지 평범하지는 않았다.
5성급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특별한 모임.
도미닉 경은 아무래도 5성급 이상의 모임이 따로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긴, 5성급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으니, 자체적으로 커뮤니티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잠시 소파에 앉았다.
아직 시각은 오전 11시.
오후 1시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일단 좀 더 꾸미고 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잠시 신화 급 스킨을 꺼냈다.
그리고 다리미를 가져와 신화 급 스킨의 옷깃을 바짝 세우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티가 잘 안 나겠지만, 이런 사소한 부분이 멋을 만드는 법이다.
...
오후 1시.
도미닉 경은 행정부 앞에 도착했다.
행정부는 오늘따라 꽤 한산했다.
축제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밖에 나가 있기도 했고, 직원들도 축제를 즐기기 위해 휴가를 쓴 지라 행정부는 반쯤 마비 상태에 가까웠으니까.
"일단 오기는 했는데..."
도미닉 경은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편지에서 말한 대로 행정부 앞에 도착하기는 했으나, 도미닉 경은 주변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거, 속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그건 아닙니다,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도미닉 경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가차랜드의 사람들은 어째서인지 뒤에서 나타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당신이 바로 투르 마르치요?"
"바로 아시는군요."
도미닉 경은 무언가를 잔뜩 안고, 잔뜩 달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투르 마르치라는 사람은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여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모습의 중년남성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가 입고 있는 의상과 장식을 본다면 평범하다는 말은 쏙 들어갔다.
그는 캐릭터가 그려진 거대한 베개를 한 팔로 들고, 족자봉 몇 개를 반대편 쪽 손에 쥐고 있었으며 주머니에서는 데포르메화 된 캐릭터 열쇠고리들이 가득 흘러나와 있었다.
도미닉 경이 그런 그를 신기하게 쳐다보자, 투르 마르치는 부끄러운 듯 멋쩍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이렇게 변명했다.
"대외 홍보관이라서 말입니다. 굿즈만큼 홍보하기 편한 것은 없지요."
겸사겸사 부수입도 좀 얻고 말입니다. 라는 말은 작게 말했다.
"아무튼, 여기에 도미닉 경이 왔다는 말은 저희의 제안을 수락하신다는 뜻이겠지요?"
"그렇소."
도미닉 경은 5성 모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도미닉 경이 본 5성이라곤 고작 운류 히메의 아버지, 운류 무사시 밖에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제가 당신을 안내해야 할 차례로군요. 따라오시지요."
투르 마르치는 도미닉 경의 말을 듣자마자 몸을 돌려 어디론가 향했다.
도미닉 경은 투르 마르치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행정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걸대한 리무진을 볼 수 있었다.
"여기에 타시지요."
투르 마르치는 마침 대기하고 있던 운전 기사에게 문을 열게끔 시켰다.
"타고 계시면, 모임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줄 겁니다."
"당신은 같이 안 가오?"
"저는 다른 분들을 기다려야 하니까요."
투르 마르치는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이 차에 탈 때까지 기다렸다.
"이야기라도 좀 나누고 싶었소."
"저도 오늘은 좀 바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나중에 또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도미닉 경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투르 마르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도미닉 경은 아무런 질문도 하지 못한 채 차에 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좋은 만남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투르 마르치가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말하자, 운전 기사가 도미닉 경이 탄 쪽의 문을 부드럽게 닫았다.
그리고 잠시 후, 리무진은 도미닉 경을 태우고 어디론가 향했다.
도미닉 경은 창밖을 보려고 했으나, 창엔 짙은 코팅이 되어 있어 전혀 밖을 볼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답답하시지요? 아무래도 5성급의 회동은 비밀스럽게 진행되다 보니, 모임에 참석하시는 분들에게도 비밀을 위해 이런저런 것을 하고 있습니다."
운전 기사는 도미닉 경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렇게 말했다.
"그렇구려."
도미닉 경은 그 말에 바로 창밖을 보려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쿠션이 굉장히 푹신하구나.
그런 잡다한 생각하면서 말이다.
...
잠시 후.
도미닉 경을 태운 리무진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제가 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운전 기사는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이 탄 쪽의 문을 열었다.
"고맙소."
도미닉 경은 운전 기사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도미닉 경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 일은 바로 주변을 둘러보는 일이었다.
"음."
도미닉 경은 이곳이 숲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저택임을 알아차렸다.
"여기가 바로 5성 모임이 있는 곳인가."
"그럼, 즐거운 모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운전 기사는 한참 감상에 빠진 도미닉 경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리무진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때, 문득 도미닉 경은 돌아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도미닉 경이 운전 기사에게 돌아갈 때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했으나, 이미 운전 기사는 저 멀리 사라진 이후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금 저택의 외관을 둘러보았다.
저택은 꽤 관리가 잘 된, 고풍스러운 곳이었다.
크기도 제법 커, 도미닉 경의 집 보다 약 열 배는 더 큰 것만 같았다.
그쯤 되면 사실상 성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
"이런 집은 참 비싸겠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조금 더 저택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저택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았다.
저택으로 가는 길에는 분수와 정원이 있었다.
정원은 도미닉 경의 허리만큼 오는 관목들로 되어 있었는데, 그 관목들이 벽을 세워 정원 내부는 마치 미로처럼 되어 있었다.
나무들이 키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아마 정원에서 길을 잃는 사람들이 꽤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도미닉 경은 이내 분수가 있는 곳 근처에 도달했다.
분수는 무려 오단으로 되어 있었는데, 위에서부터 물이 내려오면서 마치 물의 장막같은 것이 생기는 구조였다.
"이런 건 집에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도미닉 경은 분수를 보며 꽤 괜찮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저택 외부는 볼 것이 참 많았다.
지붕 위에 장식된 가고일 석상들과, 정원 곳곳에 서 있는 알 수 없는 이들의 석상들.
담쟁이 덩굴이 타고 올라가 친환경적으로 변한 울타리.
그리고 그 너머 작게 보일 정도로 먼 곳에 있는 온실까지.
그렇게 저택을 구경하며 걸음을 옮기자, 도미닉 경은 순식간에 저택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미닉 경은 문득 저택의 입구에 둥근 손잡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이 손잡이로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해야겠지."
도미닉 경은 손잡이를 들고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무언가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문이 살짝 열렸다.
"누구십니까?"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라고 하오. 오늘 5성 모임이 있다고 해서 왔소."
"5성 모임이라."
문이 열리고 나타난 이는 허리가 살짝 굽은 노인이었다.
그는 머리가 살짝 벗겨져 있었고, 매부리코에 툭 튀어나온 턱이 인상적인 노인이었는데, 낡은 예복을 입고 한 손에는 랜턴을 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집을 관리하는 집사 정도의 위치인 것 같았다.
그는 반대편 손에 종이 뭉치를 하나 들고는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읽어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는 것을 찾았는지, 노인은 종이 뭉치를 다시 돌려놓고 문을 활짝 열었다.
"어서 오시지요, 도미닉 경. 모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렇게 도미닉 경은 모임이 있는 저택의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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