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9화 〉 [448화]가면 무도회
* * *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도미닉 경은 땅에 털썩 쓰러지는 카닐리온 변경백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마지막에 선택을 바꾼 것이 정답이었어."
도미닉 경은 선택을 하려던 그 순간, 카닐리온 변경백의 눈빛을 보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도미닉 경은 카닐리온 변경백에게서 살기를 느꼈다.
마치 선량한 것처럼 위장했지만 마지막 순간, 도미닉 경이 선택을 하려는 그 마지막 순간에 그의 진심이 드러난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속아 넘어갔을 수도 있지만, 도미닉 경은 백전불굴의 베테랑.
이런 살기를 감지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나저나..."
도미닉 경은 잠시 지금까지의 정보를 종합했다.
오닉스 백작과 카닐리온 변경백이 죽었다.
이로 인해 도미닉 경이 가지게 된 정보는 오직 한 가지.
엠버 사략선장이 반동분자라는 사실 뿐이었다.
나머지는 카닐리온 변경백과 관련된 것이었기에 사실상 없는 정보나 다름없었다.
"...아무래도 정보를 더 얻어야 할 것 같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네 번째 턴의 선택지로 증거 찾기를 눌렀다.
그리고 두 가지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궁중 마법사 루비안은 귀족입니다.]
[당신은 아메시스트 궁중백이 아닙니다.]
"흠."
도미닉 경은 그 증거들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주머니에 있었던 쓸모없는 정보들을 제거했다.
[아메시스트 궁중백이 죽었습니다.]
[아메시스트 궁중백은 귀족이었습니다.]
"맙소사."
그때, 갑자기 또 다른 이의 죽음이 알려졌다.
[30%의 인원이 죽었습니다. 두 개의 방이 폐쇄되었습니다.]
도미닉 경은 이 정보들을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아메시스트 궁중백에 대한 정보는 방금 전 도미닉 경이 얻었던 정보였다.
그러나 그 정보를 얻기 무섭게 쓸모없는 정보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참으로 비극적인, 그리고 불운한 일.
"...아무래도 다음 턴에는 이동을 해야 할 것 같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다섯 번째 턴의 선택지로 [이동하기]를 골랐다.
...
다섯 번째 턴에서, 미네르바는 여우 가면을 쓴 여성을 만났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그, 혹시 서로 조사하기를 누를 생각이 없..."
미네르바는 여성에게 공생을 제안하려고 했으나 여성은 이미 선택지를 고른 듯 말없이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빠르기도 하지."
미네르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선택지를 골랐다.
미네르바가 고른 선택지는 바로 [조사하기]였다.
일단 정보를 최대한 모으려는 것이 그녀의 작전이었다.
[상대방을조사했습니다.]
[그녀는 레이디 스피넬입니다.]
[그리고... 반동분자입니다.]
"!"
반동분자?
미네르바는 놀란 눈으로 레이디 스피넬이라고 불린 여우 가면의 여성이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레이디 스피넬은 그 자리에 없었다.
"제 이름, 알고 가셨길 바라요."
여우 가면의 여성이 미네르바의 등 뒤에서 나타나 그녀의 목을 그어 버렸기 때문이다.
[궁중 마법사 루비안이 죽었습니다.]
[그녀는 귀족이었습니다.]
미네르바는 목이 그여 말도 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대로 탈락.
여우 가면의 여성 레이디 스피넬은 무심한 눈으로 죽은 미네르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합장을 하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게임이니, 용서하시길."
여우 가면의 여성은 이후 다음 턴의 선택지를 골랐다.
아무래도, 이 매력적인 여우 가면의 여성이 이 게임의 변수가 될 것 같았다.
...
여섯 번째 턴.
원탁이 인상적인 거대한 회의실.
그곳에서는 현재 네 명의 사람이 존재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은 처음이네."
"그러게."
도미니카 경과 앨리스.
"...이렇게 만날 수도 있군."
"그러니까요."
돈 카게야샤와 미래의 도미니아 경.
이 네 사람은 넓지도, 좁지도 않은 회의실에 서로 간격을 두고 앉아 있었다.
"그나저나,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군."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기믹이기도 하오."
앨리스 백작 영애의 말에 돈 카게야샤가 답했다.
그 말대로, 그들의 눈앞에는 지금까지의 선택지와는 다른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나고 있었다.
[망자 재판]
[세 명 이상의 사람.]
[너무 많다.]
[우릴 설득하라.]
"...흠."
돈 카게야샤는 갑자기 나온 기믹을 읽고 당황했으나, 이내 이것이야말로 이 게임이 정치 게임인 이유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마구 사람들을 암살하면 좋지 않다는 사실도 이때 알아차렸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돈 카게야샤 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여기서 누구 하나는 죽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도미니카 경이 말했다.
"...이건 도대체 뭘까?"
앨리스 백작 영애는 자기 머리 위에 떠 있는 숫자를 보며 말했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벌써 2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4인조였나?"
도미니카 경이 돈 카게야샤를 슬쩍 떠보았다.
그러나 반응은 정작 다른 곳에서 나왔다.
바로 옆에 있던 미래의 도미니아 경이 움찔한 것이었다.
"...그랬군."
도미니카 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죽은 이는 총 네 명.
그중 두 명이 앨리스 백작 영애를 선택했으니, 사실상 나머지 두 명의 망자가 저들 중 하나를 찍지 않는 이상 이미 끝난 게임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진 것 같네."
"...음."
앨리스 백작 영애의 머리 위에 있던 숫자가 2에서 3이 되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분위기에 휩쓸려 앨리스 백작 영애를 찍어 버린 모양이었다.
마지막 한 명의 망자가 돈 카게야샤를 찍어 주기는 했으나, 이미 과반수 이상이 앨리스 백작 영애를 찍어 버린 상황.
결국, 앨리스 백작 영애는 정치질 아닌 정치질의 희생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뭐, 재밌긴 하네."
앨리스 백작 영애는 망자들에게 끌려가면서 그렇게 말했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제대로 된 정치질을 한번 해 보고 싶어."
그 말을 끝으로, 앨리스 백작 영애는 완전히 망자들에게 끌려가 버렸다.
그리고... 남은 세 사람에게, 다섯 번째 턴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이미 사람이 죽었다는 것 때문인지, [암살하기]와 [대비하기]가 사라진 채로.
...
[궁중 마법사 루비안이 죽었습니다.]
[그녀는 귀족이었습니다!]
[에스메랄다 남작 부인이 망자에게 끌려갔습니다.]
[그녀는 귀족이었습니다!]
"..."
도미닉 경은 새로운 방에 도착하자마자 들려오는 두 명의 사망 소식을 듣고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궁중 마법사 루비안 역시 도미닉 경의 단둘밖에 없는 정보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정보가 되어 버렸다.
이제 도미닉 경에게 남은 정보라고는 엠버 사략선장이 반동분자라는 것뿐이었다.
"굉장히 일이 안 풀리는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작은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니아 경은 이내 이 상황이 질렸는지 이제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턴의 도미닉 경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이제 여기서 이동할지, 아니면 증거를 찾을지 생각해 봐야겠군..."
도미닉 경은 잠깐 [증거 찾기]와 [이동하기] 사이에서 고민했다.
"역시, 정보가 먼저겠지."
도미닉 경은 아무래도 정보가 적다는 점을 생각해 증거를 찾기로 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다시 두 장의 카드를 받았다.
[레이디 스피넬은 반동분자입니다.]
[당신은가넷 자작이 아닙니다.]
"흠."
도미닉 경은 또다시 정보가 쓸모없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아무래도 오늘 도미닉 경은 운수가 상당히 나쁜 날인 모양이었다.
[가넷 자작이 죽었습니다.]
[그는 귀족이었습니다.]
"..."
도미닉 경은 또다시 쓸모가 없어진 정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운이 따라주지 않는군."
도미닉 경은 쓸모가 없어진 정보를 폐기하며 남은 카드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다.
[여섯 명의 사람이 죽었습니다.]
[두 개의 방이 추가로 폐쇄됩니다.]
다음번에는, 좀 더 쓸모 있는 정보가 나오길 빌며.
...
"으윽...!"
가넷 자작... 그러니까 돈 카게야샤는 분하다는 눈빛으로 여우 가면을 쓴 여성, 레이디 스피넬을 노려보았다.
바로 전 턴에 다른 이의 죽음을 본 돈 카게야샤는 이내 지금까지 죽은 인원 중 반동 분자가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말인 즉, 아직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4명 중에 반동분자가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죽여나갈 수밖에 없겠군.'
돈 카게야샤는 그런 생각으로 레이디 스피넬에게 암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레이디 스피넬은 모종의 특별한 기술로 돈 카게야샤의 살기를 감지하고는, 이미 [대비하기]를 누른 상태였다.
그 결과, 돈 카게야샤는 암살을 실패함과 동시에 역습을 당해 탈락당해 버린 것이다.
돈 카게야샤는 너무나도 분한 나머지, 마지막까지 서서 레이디 스피넬을 노려보았다.
[가넷 자작이 죽었습니다.]
[그는 귀족이었습니다.]
여우 가면을 쓴 여성은 서서 죽은 돈 카게야샤를 바라보며 슬쩍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이는, 마지막까지 놀라운 의지를 보여 준 전사에 대한 예우였다.
잠깐 묵념한 여우 가면은 이내 일곱 번째 턴의 선택지를 골랐다.
어쩌면 중요한 행보가 될 수도 있는 선택지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