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8화 〉 [447화]가면 무도회
* * *
"미안하군."
기병 대장은 도미닉 경에게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사과했다.
"믿지 못했어."
[상대방을 조사했습니다.]
[그는 카닐리온 변경백입니다.]
[그는 귀족입니다!]
도미닉 경은 정상적으로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설마?"
도미닉 경은 그가 암살하기를 누르지 않았기를 바랐다.
기병 대장은 도미닉 경을 보며 싱글벙글 웃다가, 이내 웃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암살하기]나 [조사하기]를 누를걸."
기병 대장은 아무래도 [대비하기]를 누른 모양이었다.
"한 턴 손해 봤군."
기병 대장은 소파에 주저앉아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기병 대장의 한숨이 또 한 번 이어졌다.
"[대비하기]를 누른 거요?"
도미닉 경이 기병 대장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의문을 표했다.
"어째서?"
"그야, 내가 그렇게 유도했으니까 그렇소."
기병 대장은 자기 전략을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이미 손해를 본 이상, 차라리 정직하게 말해서 호감이나 얻자는 의도였다.
"처음에 난 일부러 [암살하기]와 [대비하기]에 대한 설명을 누락했지. 하지만 이 게임의 특성상, 그 두 선택지는 곧바로 알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었소. 없었던 화살표가 그렇게 큼지막하게 생겼는데, 안 눌러 볼 수가 없지.그렇다면 상대는 생각할 거요. '왜 상대가 이걸 알려주지 않았을까? 혹시 대비하지 못하게 하고, 암살하려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이오."
기병 대장은 크게 숨을 들이키고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면 상대는 열 명 중 아홉은 [대비하기]를 누르지. 혹은 [암살하기]를 눌러 역으로 공격하려고 하거나. 그러면 나는 [대비하기]를 누르는 거요. 그러면 상대와 똑같이 한 턴을 허비하거나, 혹은 암살을 받아치거나 해서 나름 손해는 보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기병 대장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정말 아주 드물게 당신처럼 [조사하기]를 써서 심리전에서 이기는 사람들이 있지."
기병 대장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일어나시오?"
"이미 내 패가 다 드러났잖소."
기병 대장은 그렇게 말하며 세 번째 턴의 선택지를 골랐다.
"패를 모두 공개한 채 도박을 할 수는 없지. 이제 다른 방에 가서 다른 이에게 도박을 해보려고 하오."
도미닉 경은 기병 대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오닉스 백작이 죽었습니다.]
[그는 반동분자였습니다!]
갑자기 게임 전체에 나타난 전체 메시지.
"음?"
도미닉 경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도미닉 경이 의문을 표하자, 기병 대장이 말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다른 이를 죽인 모양이군."
"죽인다라?"
"암살에 성공하거나, 혹은 대비하기로 암살을 받아치면 저렇게 죽은 이의 정보가 공개되오."
기병 대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이곳에서의 행동들은, '성공할 경우' 정보를 얻는 시스템이오."
"아."
도미닉 경은 기병 대장의 말에 이 게임의 시스템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조사나 증거 찾기는 100% 확률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암살과 대비는 상대방의 행동에 따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도미닉 경은 제법 간단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내 이런 건 미리 설명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런 걸 미리 설명해 줬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렇소."
"그렇다면 그냥 그 생각을 털어 버리시오. 레트로 그라드의 게임들은 부조리로 가득하거든."
"레트로 그라드라."
도미닉 경은 레트로 그라드라는 말에 관심이 갔다.
지금까지 자주 듣기는 했지만, 어떤 도시인지는 알지 못했으니까.
"혹시 레트로 그라드에 대해서 알려줄 수"
"그만. 지금은 선택부터 하시오."
기병 대장은 구석에 있는 숫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8/9]
"당신만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잖소."
"아."
도미닉 경은 기병 대장... 아니, 카닐리온 변경백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민폐를 끼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은 다시 한번 선택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병 대장의 눈을 한 번 힐끗 쳐다본 뒤...
신중하게 선택지를 골랐다.
...
"누가 봐도 삼촌이네요."
"음."
또 하나의 방 안.
화려한 식탁보가 인상적인 식당 안에서,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야차 가면 위로 또 하나의 가면을 쓴 자.
그리고 검은 나비 가면을 쓴 흰 머리의 여성.
"이렇게 된 이상 삼촌, 동맹하죠?"
"그러자꾸나. 일단 그러기 위해선 신뢰를 줘야겠지."
야차 가면 위에 또 다른 가면을 쓴 자가 말했다.
"넌 마담 피루즈. 귀족이구나."
"삼촌은 가넷 자작. 귀족이네요."
둘은 만족스럽게 서로가 서로를 조사한 정보를 공유했다.
"이제 우린 다른 이들에게서 정보를 얻어, 서로 공유하기로 해요."
"동맹이니 당연한 일이지."
야차 가면 위에 가면을 쓴 자와 검은 나비 가면의 여성은 그렇게 말하며 세 번째 턴의 선택지를 골랐다.
그리고 둘 모두 자연스럽게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서로 한 번은 배신하겠다는 생각할 법도 하건만, 둘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다는 듯 행동했다.
뭐, 사실 게임이 끝나고 있을 후폭풍을 대비해 서로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 것이지만...
아무튼, 여기에 두 사람이 동맹을 맺고 한 팀이 되었다.
...
물론, 동맹은 여기에서만 맺어진 것이 아니었다.
검으로 된 왕좌가 있는 소소한 느낌의 알현실.
그곳에서도 또 하나의 동맹이 태어났다.
"너희."
"너군."
두 번째 턴에서 이동하기를 누른 두 사람이 바로 이 알현실에서 만났다.
스팀펑크 스러운 가면을 쓰고 푸른 드레스에 하얀 앞치마를 두른 이가 상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대편에 있는 이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이것만 봐도 서로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동맹을 하는 것은 어때?"
"괜찮네."
"서로 조사하기를 눌러서 정보를 알아낸 뒤, 공유하는 거야."
"마음에 드는군."
둘은 세 번째 턴의 선택지로 [조사하기]를 골랐다.
서로의 뒤통수를 칠 위험이 있기는 했지만, 둘은 서로를 믿었다.
둘 모두 명예를 아는 사람들이었고, 그렇다면 말과 다른 행동을 보일 리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 믿음은 보답받았다.
"파이어 경이네. 서 파이어. 귀족이야."
파란 드레스의 여성이 검은 드레스의 여성에게 말했다.
"넌 에스메랄다 남작 부인이네. 역시 귀족이고."
파란 드레스의 여성은 검은 드레스의 여성의 말에 눈을 찌푸렸다.
"넌 그대로 경인데, 왜 난 한 단계 낮아져서 남작이지?"
"뭐, 게임이니까."
둘은 그렇게 서로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정보가 정확한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이름은 정확할지도 모르지만, 신분에 대해서 만큼은 얼마든지 거짓말할 수 있었으니까.
글쎄. 하지만 그 사실은 조사한 당사자들만이 알 뿐이다.
...
바보 같은 놈.
기병 대장... 아니, 카닐리온 변경백은 도미닉 경이 볼 수 없도록 입을 막고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내가 [암살하기]를 눌렀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카닐리온 변경백은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도미닉 경은 선택지를 고른 뒤, 손바닥에 있는 작은 요정... 같은 것을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방심한 자의 모습.
카닐리온 변경백은 도미닉 경의 여유로운 모습에 암살이 성공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이는 이 작전이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의 표시였다.
그 기대감은 세 번째 턴이 지나고 결과가 나오기 직전에 가장 크게 부풀어, 카닐리온 변경백은 자기 심장 소리를 바로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카닐리온 변경백은 허리춤에 있던 기병도를 뽑아 들고 도미닉 경을 향해 다가 갔다.
그리고...
그는, 도미닉 경의 방패에 맞아, 얼굴이 함몰되고 말았다.
"...엉?"
카닐리온 변경백이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는 눈앞에 보이는 이빨 두 개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이빨이 박살 난 모양이었다.
카닐리온 변경백은 설마 그 이빨이 자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암살이 완벽하게 성공할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카닐리온 변경백의 계획은 완벽했다.
처음에 졌을 때, 일부러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는 대화하며 호감을 쌓고, 이후 체념한 모습을 보여 방심을 유도하는 것까지 성공했다.
그렇기에 카닐리온 변경백은 암살이 성공할 것으로 생각했다.
모든 환경이 갖춰졌으니까.
"어째서...?"
카닐리온 변경백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계획은 완벽했다.
그러나 어째서... 어디서 일이 틀어졌단 말인가?
카닐리온 변경백은 제발 대답을 바란다는 듯 고개를 돌려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죽기 전에, 그가 하는 말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그러나 도미닉 경은 암살을 대비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대신 도미닉 경은, 입을 열어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이름은 카닐리온 변경백이오."
도미닉 경은 마지막 가는 길, 당신의 이름이라도 알기를 바랐다.
마치 전사들이 서로에게 통성명을 하듯이.
...물론, 정작 자기 이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름을 밝혀주는 것이었지만.
"당신은... 귀족이오."
도미닉 경의 말을 끝으로, 카닐리온 변경백은 억울하다는 듯 눈도 감지 못하고 땅에 쓰러졌다.
[카닐리온 변경백이 죽었습니다.]
[그는 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게임 전체에 카닐리온 변경백의 죽음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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