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6화 〉 [435화]심사
* * *
도미닉 경은 검게 변한 방 안에서 몇 가지 사소한 시련을 겪었고, 모두 별일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시련의 내용은 화살, 총알, 레이저부터 우주 전함까지 다양했다.
이를 사소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 모든 것은 도미닉 경을 죽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죽기 직전까지는 몰아쳤었지만.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소한 것들과는 달리, 지금 도미닉 경이라도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종류의 병기가 나타났다.
[마지막 단계 시작. 행성 파괴 병기 앞에서 살아남으십시오.]
"맙소사."
도미닉 경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포신의 규모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 포신은 도미닉 경이 가진 거미 전차가 가뿐히 오갈 수 있을 정도로 구경이 넓었다.
저번에 이면 세계 12지역에서 봤던 적의 불가사의 행성 간 탄도 미사일보다도 더 커보였는데, 그 포신의 끝은 정확히 도미닉 경을 향하고 있었다.
피할 곳은 없었다.
도미닉 경이 있는 방은 매우 좁았기에 어디로 피하더라도 저 거대한 포탄에 직격당하고 말리라.
결국 도미닉 경은 방패를 들어 올렸다.
평소와 같이.
[행성 파괴 병기가 발사됩니다. 셋. 둘. 하나.]
놀랍게도, 행성 파괴 병기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니, 엄청난 소리가 나기는 했으나, 도미닉 경은 너무나도 가까이 있었던 나머지 순식간에 귀가 먹먹해져 폭음 자체를 듣지 못했다.
도미닉 경은 저 멀리서 불꽃을 튀기며 날아오는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 그것은 도미닉 경을 칠 듯 날아왔다.
도미닉 경은 방패를 몸쪽으로 당기듯 들어 올리며 두 다리를 땅에 깊숙이 박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포탄이 도미닉 경의 방패와 닿았을 때, 도미닉 경은 포탄과 함께 무려 100m는 가뿐히 넘을 만큼 밀려나고 말았다.
그리고 일어난 거대한 폭발에
도미닉 경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맙소사. 저거 인간인가? 인간이 맞긴 한 건가?"
"놀라는 것도 당연하겠지. 생각해 보면 5성급 탱커가 나온 건 처음이잖아? 게다가 결국 마지막 일격은 막지도 못했고."
"마지막 일격은 막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5성을 넘어 초월급 딜러들도 저만큼의 피해는 줄 수 없어."
다섯 명의 배심원은 도미닉 경의 놀라운 성능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마지막에 무려 138m나 밀려난 거 봤어?"
"거기까지 막아 내었다는 게 더 신기하더라고."
"...조용."
배심원들 사이에서 혼란이 가중되자, 붉은 눈의 여성이 사람들의 소리를 음 소거했다.
배심원들은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자 깜짝 놀랐으나 이내 그것이 붉은 눈의 여성이 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고 모든 시선을 붉은 눈의 여성에게로 향했다.
"앞으로 하나 정도만 더 보도록 합시다."
붉은 눈의 여성이 배심원들에게 말했다.
"두 사람분의 시험으로도 충분할 것 같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지금처럼 최소 3개는 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흠."
사람들의 음 소거는 어느 순간 풀려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아직 시험을 꺼내지 않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운영 팀의 동글동글한 남자와 그래픽 팀의 여자였다.
"...운영 팀은 이미 도미닉 경이 충분한 세일즈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운영 팀이 먼저 선수를 쳤다.
"도미닉 경의 성능, 캐릭터, 그리고 가차랜드에서 이룩한 것들을 생각하면 이미 충분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거 당했네."
그래픽 팀의 여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운영 팀은 현재 도미닉 경은 운영 팀의 기준에 부합한다고 선수를 쳐 시험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어쩔 수 없네. 그럼 이젠 그래픽 팀의 차례만 남은 거지?"
그래픽 팀의 여성은 후드를 푹 눌러쓴 채 도미닉 경에게 시험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죠? 오늘 배심원 역할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해서 말입니다!"
배심원들이 있는 방 안으로 누군가가 무례하게도 문을 뻥 차고 들어와 소리쳤다.
그는 레게머리를 한 로봇이었는데, 목에는 무려 세 개나 되는 헤드셋을 끼고 있었다.
"오, 저 자가 바로 우리가 시험해야 할 녀석인가요? 늦었으니 바로 들어가도록 하죠! 예아!"
"잠"
배심원들은 갑자기 난입한 로봇을 만류하려고 했지만, 이미 로봇은 막무가내로 도미닉 경을 향해 시험을 내렸다.
이는 배심원들에게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
"...?"
도미닉 경은 폭발에 휘말려 잠시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꽤 강인한 전사였기에 그다지 오랫동안 기절해 있지는 않았다.
도미닉 경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주변을 둘러본 일이었다.
검은색.
그러나 도미닉 경은 방금 전에 있었던 검은 슬라임의 공간과, 지금의 검은 공간은 전혀 다른 공간임을 알아차렸다.
방금 전의 공간이 마치 방이었다면, 여기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막 속의 공간같았다.
"..."
도미닉 경은 이 광경을 보며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기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
도미닉 경은 다급하게 다시 한번 말을 꺼내려고 노력했으나 도미닉 경의 말은 마치 입 앞에 유리가 있는 것처럼 막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도미닉 경은 이 하얀 공간에서 말조차 하지 못하게 된 현 상황에 큰 혼란을 느꼈다.
도대체 어떤 시험인지 감 조차 잡히지 않는 것이다.
혹시나 방금 전처럼 무언가를 막거나, 혹은 그와 비슷하게 무언가를 상대해야 하는 것인가 싶어 방패를 들어 올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
결국 도미닉 경은 잠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기다리다 보면 무언가 답이 나오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
"맙소사."
붉은 눈의 여성은 현재 꼬일대로 꼬여 버린 시험 상황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픽 팀의 시험은 시각적인 제한이었다.
시야를 쓰지 못하는 곳에서의 대처법을 보며 5성에 어울리는 대처를 했는지를 보는 것.
그것이 그래픽 팀이 생각한 과제였다.
이것만 있었더라면 도미닉 경은 무난하게 시험을 통과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지금까지 도미닉 경이 보여 준 것만 하더라도 충분히 5성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은 그저 의례적인 추가 시험일 뿐이었다.
... 중간에 SFX 팀이 끼어들지만 않았더라면 그랬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붉은 눈의 여성이 SFX 팀의 로봇에게 물었다.
"응? 아니, 그게... 소리를 다 없애버린 것뿐인데."
SFX 팀은 말 그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음 소거 해 버렸다.
SFX 팀은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해 보려고 했다.
어떻게 보면 그래픽 팀이 생각한 시험과 비슷한 것이었지만...
이 두 팀의 시험이 섞이며, 시험의 난이도는 급격하게 올라가고 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어떤 것도 듣지 못한 채 존재해야만 하는 것.
목적도 없고, 목표도 없다.
아니, 목적과 목표는 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도미닉 경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게 생각한 붉은 눈의 여성은 무심코 서버 관리 팀의 코더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하는지는 알 것 같네요."
코더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내 붉은 눈의 여성에게 말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저건 오류도 아니고, 버그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해서 서버를 롤 백하려면 무슨 문제가 더 생길지 모르구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붉은 눈의 여성은 그 말에 잠시 눈을 감았다.
코더의 말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코더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이내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건 바로, 도미닉 경이 가진 목표를 새롭게 정립해 주는 것이었다.
...
[자신을 관조하고, 이 공간을 빠져나오세요.]
"...!"
도미닉 경은 마침내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눈을 번쩍 떴다.
아니, 그건 모두 착각일지도 모른다.
사실 도미닉 경의 머릿속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만큼 이 공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 시스템 메시지가 이 공간을 버티지 못한 도미닉 경 자기 환각이라도 상관이 없었다.
일단, 이뤄야할 목적이 생겼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도미닉 경은 잠시 눈을 감고 자기 내부를 관조했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 맥박이 맥동하는 소리, 무언가 삐하고 귀에 울리는 소리...
이는 도미닉 경의 피부 아래였다.
도미닉 경은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보았다.
도미닉 경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지나, 도미닉 경은 이내 심상 세계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곳은 도미닉 경의 정신 상태를 표현하고 있었는데, 절반은 페럴란트의 황폐함, 절반은 가차랜드의 화려함으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마치 인공 지능이 그린 그림과도 같군.'
도미닉 경은 인공 지능이 그린 그림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는 사실, 도미닉 경이 우연찮게 보았던 인공 지능 그림에 대한 무의식적인 감상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도미닉 경은 무의식의 영역까지 가라앉았다.
그곳에는 도미닉 경의 트라우마와 도미닉 경의 성격 기저에 깔린 모든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 무의식을 넘어, 또 다른 새로운 공간에 진입했다.
그리고 그곳은...
[시험에 통과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제 마지막 시험만 남으셨습니다.]
도미닉 경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여섯 존재의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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