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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35화 (411/528)

〈 435화 〉 [434화]심사

* * *

"인생은 실전이야."

서버 관리 팀의 코더는 뒷주머니에서 꾸깃한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싸구려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일방적으로 또 다른 도미닉 경을 몰아붙이는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 서버 관리 팀만큼 실전에 능한 사람들도 없지."

코더가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거기서 지켜보라고. 로망만 가득한 멍청이들."

그렇게 말한 코더는 이내 코딩 창을 켜고 한 손으로 무언가를 마구 조작하기 시작했다.

...

"흠. 꽤 쉬운 상대... 라고 해야 할지."

도미닉 경은 잉크가 되어 사라진 또 하나의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착찹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나름 어려운 싸움이 될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너무나도 싱겁게 자기 자신을 이겨 버렸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도미닉 경은 가짜 도미닉 경을 잡은 이후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한 잉크 세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건 5성 심사의 일부인 모양이군."

도미닉 경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주변이 양피지와 잉크로 된 세상에서 눈부실 정도로 하얀 배경에 형광빛의 0과 1로 가득한 세상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눈부신 하얀 벽 때문에 숫자가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확실히 0과 1로 되어 있었다.

도미닉 경은 조금 더 주변을 둘러보며 이곳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싶었으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하얀 벽과 녹색 0과 1만이 보일 뿐이었다.

"여기는 또 무슨 심사를 할지 모르겠군."

[DDD센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도미닉 경이 이곳에 대한 불만을 작게 중얼거리자, 마침 딱 기다렸다는 듯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왔다.

[DDD센터는 Damage, Destroy, Demolition의 약자입니다. 여기는 온갖 것들을 손상시키고, 망가뜨리고, 터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당신은 온갖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공격에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느냐로, 당신의 '성능'을 확인할 계획입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

"이것 참, 이번에는 그래도 심사에 대해서 알려주기는 하는구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5성 심사를 보러 온 상태였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동의하겠소."

[피실험자가 동의했습니다. 이제부터 '탱커' 심사가 시작됩니다.]

도미닉 경은 그 메시지를 보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어디에서 공격이 이어질 지 몰랐기 때문이다.

"왠지 처음 가차랜드에 왔을 때가 생각이 나는군."

도미닉 경은 방패를 들어 올리며 피식 웃었다.

2지역 1스테이지였던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때, 도미닉 경은 함정에서 나오는 발사체를 방패로 막아가며 버틴 경험이 있었다.

마지막에는 방패로 발사체가 나오는 입구를 막아 버리기까지 했었지.

도미닉 경은 그때, [탱커] 특성을 얻을 수 있었다.

도미닉 경은 지금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탱커]의 자질을 시험받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탱커]로서의 성능을 확인하는 것이겠지만 뭐, 그리 다른 것도 아니리라.

도미닉 경은 방패를 든 채로 눈동자를 굴리며 어디에서 공격이 이어질 지 계속해서 확인했다.

조금만 건드려도 바로 터질 것만 같은 상황에서, 도미닉 경은 온몸을 긴장시킨 채 나타날 무언가를 기다렸다.

...그러나 도미닉 경의 기다림이 무색하게도, 이 방에서는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함정인가? 내가 방심한 틈을 타 공격하려는?

내심 당황한 도미닉 경이 그렇게까지 생각할 정도로 이 공간은 고요하기만 했다.

"!"

그때, 도미닉 경의 등 뒤에서 무언가 설치가 되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방심을 시키려는 수작이었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빙글 돌려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방패를 내밀었다.

"...이건?"

그러나 도미닉 경은 이내 허탈한 표정으로 방패를 내려놓고 말았다.

도미닉 경이 방패를 겨눈 곳에는, 멍청하게 생긴 허수아비 하나가 입에 파티용 대롱을 물고 양팔에 폭죽을 든 채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허수아비는 너무나도 무시무시하게도...

폭죽을 터뜨리며, 파티용 대롱을 뿌뿌 불기 시작했다!

...

"어, 어?"

코더는 갑자기 오류를 일으키는 코드들을 보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럴 리 없는데, 이럴 리 없는데?"

코더는 엉망진창으로 꼬이기 시작하는 코드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애초에 심각할 정도로 꼬인 코드였지만, 어째서인지 저번에 봤을 때보다 더 꼬여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코더는 일단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코더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 이 잡것들이!"

그리고 그 문제는, 대체적으로 다른 코더들의 장난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

지금까지 코드가 너무 안정적인 나머지 버그를 끼워 넣던 코더들의 행동들 말이다.

코더들이 하던 행동은 마치 젠가를 하는 것과 같았다.

아래의 코드를 빼내 위에 얹고, 그 아래의 코드를 빼내어 위에 얹는 행위의 반복.

그중 썩은 막대도 있었고, 직사각형이 아닌 오각형이나 원형의 막대도 있었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엔 별일 없이 서 있는 젠가.

물론, 제대로 본다면 이 공든 탑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잘 알겠지만, 얼핏 봐서는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 않는 것까지 똑같았다.

그러나 그 말은, 어느 날 갑자기 툭 하고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무너지는 시기가, 하필이면 지금이었다.

"제멋대로 버그나 만들고...!"

서버 관리 팀의 코더가 화가 난 듯 책상을 쾅 내리쳤다.

얼마나 세게 내려쳤는지 철로 된 책상이 휘어 폐기처분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그제야 잠시 제정신으로 돌아온 서버 관리 팀의 코더는, 이내 진지하게 지금의 상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스토리 팀!"

"미안."

스토리 팀이 눈치 없게 서버 관리 팀의 앞에 끼어들며 깐죽대기 시작했으나, 붉은 눈의 여성의 제지로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말리지 않았더라도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코더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서버 관리 팀의 코더는 잠시 고민하듯 이마를 짚더니, 이내 붉은 눈의 여성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다른 심사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를 고치려면 최소 30분은 필요해요."

그 말에 붉은 눈의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한다는 뜻이었다.

"현재 상황의 급박함을 생각해 허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쯧. 운영 팀. 어쩔 수 없으니 먼저 해."

그 말과 함께 코더는 바로 운영 팀에게 일을 떠넘겼다.

운영팀은 코더의 행동에 조금 발끈한 듯 미간이 움찔했으나,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코더를 부른 것은 자신이었으니, 마지막까지 책임은 져야하지 않겠냐는 심산이었다.

"좋습니다. 이제 운영 팀에서 심사를 맡겠습... 응?"

그때, 운영 팀의 동글동글한 남자는 뭔가 이상한 것을 봤다는 것처럼 코더의 뒤를 바라보았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응?"

코더는 운영 팀의 행동에 무심코 같이 고개를 돌렸다가 운영 팀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곳에는 여전히 도미닉 경이 서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와 다른 점은...

도미닉 경의 근처에, 검고 끈적한 무언가가 엎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

도미닉 경은 조금 전 폭죽을 터뜨리며 파티용 대롱을 불어제끼던 허수아비를 보며 이게 도대체 무슨 시험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설마 정신력을 테스트하려는 것은 아닐 테고... 라고 도미닉 경이 진지하게 생각하던 순간, 도미닉 경의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정확하게는 도미닉 경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에서 검고 끈적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슬라임...?"

도미닉 경은 그것이 S.P.Y앱에서 서식하는 슬라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슬라임이 왜 여기에서 나오는 거지...?"

도미닉 경은 갑자기 튀어나온 슬라임을 보고 의문에 휩싸였다.

물론, 이는 슬라임의 독단이었다.

슬라임은 문득, 도미닉 경의 주머니에서 코드의 뒤틀림을 감지했다.

사실, 도미닉 경이 주머니에 넣은 슬라임은 몇 번의 뒤틀림을 해결하면서 거의 베테랑 코더나 다름이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고, 그런 슬라임에게 있어서 코드의 뒤틀림을 확인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슬라임은 그다지 머리가 좋지 않아, 도미닉 경의 근처에 있는 코드의 뒤틀림이 어떤 종류인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슬라임은 도미닉 경의 근처에서 일어나는 모든 뒤틀림을 도미닉 경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였기에 슬라임은 도미닉 경에게 닥친 위협을 해치우기 위해 S.P.Y앱에서 나온 것이다.

"!"

도미닉 경은 휴대폰 앱에서 나온 검은 슬라임이 천천히 하얀 공간을 잠식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하얀 공간은 천천히 검은 공간이 되어 가더니, 이내 도미닉 경의 시야 내의 모든 0과 1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검은 공간이 되었다.

"맙소사... 음?"

도미닉 경은 이 놀라운 광경에 감탄을 했으나, 이내 갑자기 날아온 화살 하나에 놀라 방패를 들어 올렸다.

[1단계 시작. 화살 비 속에서 살아남으십시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건가."

도미닉 경은 이 상황이 다분히 의도된 상황이라고 여겼다.

도미닉 경은 방패를 들어 올리고, 턱을 몸쪽으로 살짝 당겼다.

이는 시선은 전방을 향하게 하면서 방패로 최대한 몸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물론, 이를 바라보는 이들은 손을 툭 떨어뜨리고,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고 있었다.

꽤나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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