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4화 〉 [433화]배심원들
* * *
도미닉 경은 한 손에 랜턴을 든 미스터 노바의 안내받아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곳은 성급 심사장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었는데, 미스터 노바는 그곳에서도 더 깊은 곳으로 도미닉 경을 안내했다.
"여긴... 상당히 어둡구려."
"비밀 유지가 필수라서 말이지요."
도미닉 경과 미스터 노바가 가는 곳은 아주 어두운 통로였다.
심지어 여기는 시야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의 광원조차 존재하지 않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어두운 공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곳곳에 붙어 있는 야광 공룡 덕분에 그다지 이 공간이 무섭지는 않다는 점일까.
"저 야광 공룡들은 대체 뭐요?"
"아, 전에 몇몇 분들께서 이 통로가 너무 어두워서 무섭다고 하셔서 말입니다. 제안을 받아들여 곳곳에 형광 공룡을 붙여, 조금은 덜 무섭게 해봤습니다."
도미닉 경은 미스터 노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어슴푸레한 불빛만 있었더라면 더 무서웠을지도 모르는 이 어두운 공간은, 형광 공룡이라는 깜찍한 요소로 그다지 무섭지 않은 공간이 되어 버렸으니까.
"이제 거의 반쯤 왔군요."
미스터 노바는 그렇게 말하며 랜턴 불을 껐다.
도미닉 경은 안 그래도 어두운 공간에 빛마저 사라진 탓에 조금 당황했으나, 이내 황홀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도미닉 경의 눈앞에 엄청난 광경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별빛의 다리라고 하는 곳입니다. 5성 심사를 받는 분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지요."
도미닉 경은 눈앞에 있는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 공간은 마치 하늘의 은하수를 떼어다가 박아 놓은 듯한 공간이었는데 이곳 만큼은 형광 공룡이 필요가 없을 만큼 은은하게 밝았다.
도미닉 경은 홀린 듯 앞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
도미닉 경이 발을 내딪을 때마다 바닥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파문이 일어났다.
그 파문은 주변에 있는 작은 별빛들을 밀어내며 새로운 별자리들을 만들어 냈는데, 이내 도미닉 경이 발을 떼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또 다른 별자리를 만들어냈다.
도미닉 경은 이 광경이 너무나도 신기해 탭댄스를 추듯 발을 놀려보았다.
그러자 별빛들은 저 멀리 흩어졌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마치 별빛으로 이루어진 파도와도 같았다.
"이런 공간이 있을 줄이야."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수많은 놀라운 광경을 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이토록 신비한 광경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이제 이곳을 지나면, 5성 심사를 위한 또 하나의 공간을 지나게 됩니다."
미스터 노바는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우주를 담은 듯한 열쇠를 꺼냈다.
수정으로 된 열쇠 안에는 작은 은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는데, 미스터 노바는 그 열쇠를 이 긴 공간의 끝에 집어넣었다.
"거기서부터 도미닉 경의 심사는 시작됩니다. 그러니..."
도미닉 경은 문득 이 아름다운 공간이 반으로 갈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빛이 있으라.
우주의 너머에는 빛으로 가득한 공간이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그 찬란한 빛에 차마 눈을 뜰 수 없었다.
눈만 뜰 수 없었다면 좋았을 것을.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방향성을 상실하는 감각.
이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저 멀리 미스터 노바의 말이 들렸다.
"부디, 좋은 결과를 얻으시기를."
그 말과 함께, 도미닉 경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
"이번엔 내가 먼저 시작하지."
스토리 팀의 남자가 말했다.
"과연 그는, 이 상황에서 어떤 서사를 보여 줄 것인가?"
...
잠시 후, 도미닉 경은 알 수 없는 곳에서 눈을 떴다.
"...어지럽군."
도미닉 경은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방금 전의 상황이 너무나도 어지러웠던 나머지, 도미닉 경의 저항력으로도 차마 다 저항하지 못한 탓이다.
도미닉 경은 일단 정신을 차리자마자 검과 방패를 들어 올리며 주변을 경계했다.
어째서인지 주변의 모습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주변은 여전히 입체적이었으나, 도미닉 경의 눈에는 마치 평면처럼 보였다.
세상은 마치 양피지처럼 되어 있었고, 모든 물건들은 가장자리가 잉크로 그려진 것처럼 되어 있었다.
"도대체 여긴 어디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세상의 모습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세상은 평면처럼 보였다.
도미닉 경은 이 상황에 대해 대단히 신기해하면서도 도대체 누가, 왜, 어째서 자신을 이런 곳에 데려왔는지를 고민했다.
"도대체 날 여기로 데려온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잠시 방패를 내렸다.
아무리 주변을 살펴도 도미닉 경을 위협할 만한 일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건 도미닉 경의 오만이었다.
"...!"
적은 도미닉 경이 방심하는 틈을 타 도미닉 경을 기습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은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바로 땅을 굴러 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방패와 검을 들어 올렸다.
도미닉 경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습격한 이를 바라보았다.
"...맙소사."
그리고 도미닉 경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미닉 경을 습격한 이는, 바로 도미닉 경이었기 때문이었다.
...
"자기 자신을 넘어선다는 서사, 참 좋지 않아?"
스토리 팀의 남자는 마치 빗으로 머리를 빗듯 만년필로 양피지에 글씨를 써 내려갔다.
"자기 자신이라는 한계마저 뛰어넘어야, 진정한 5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안 그래?"
"악취미."
그래픽 팀의 여성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스토리 팀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악취미라고 해도 좋아."
스토리 팀의 남자는 그런데도 히죽 웃었다.
그의 머리를 이루는 잉크가 땅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글씨가 되었다.
"클리셰는, 잘 먹히니까 클리셰인 법이니."
그의 기계 시종들이 다가와 땅에 떨어진 잉크들을 싹싹 지워나갔다.
그러나 잉크들은 계속해서 그 위에 덧칠되고 덧칠되어, 이제는 흔해빠진 글자가 될 뿐이었다.
...
"맙소사."
도미닉 경은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탄식을 터뜨렸다.
"또 다른 나라고?"
도미닉 경이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그는 도미닉 경과 똑 닮은 얼굴, 똑 닮은 몸을 가지고 똑같은 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누가 보더라도 도미닉 경과 쌍둥이처럼 판박이였다.
그러나 도미닉 경과 헷갈릴 일은 없었는데, 이는 또 하나의 도미닉 경의 몸이 잉크로 구성되어 있어 무채색으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이 갈색 머리에 에메랄드빛 눈, 그리고 적, 녹, 황의 삼색 깃털을 가진 것과 달리, 또 하나의 도미닉 경은 회색 머리에 옅은 회색 눈, 흰색, 회색, 검은색의 삼색 깃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도미닉 경은 눈앞에 있는 또 하나의 도미닉 경을 보며 알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그만큼 눈앞에 있는 또 하나의 도미닉 경은, 도미닉 경과 똑 닮아 있었다.
도미닉 경은 눈앞의 도미닉 경이 자기를 따라 방패를 들어 올리는 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곳은 자기 자신과 싸워야만 하는 곳인 모양이군."
도미닉 경은 이 상황 자체가 불친절하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알려주는 것도 없이, 그저 스스로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다니.
이게 바로 5성 심사인가? 라고 도미닉 경은 생각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의 생각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또 하나의 도미닉 경이 도미닉 경을 향해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음!"
도미닉 경은 방패를 더욱 높이 들어 올리며 또 하나의 도미닉 경의 공격에 대비했다.
여차하면 바로 방패로 후려칠 준비하면서 말이다.
...
"마침내! 우리 영웅은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시련을 이겨 낼 것인가?"
"이쯤 되면 조금 흥미롭기는 하군요."
스토리 팀의 남자는 이제 완전히 흥분한 듯 마구 서사적인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의 성격, 혹은 습관인 모양이었다.
운영팀의 둥글둥글한 남자도 마찬가지로 지금의 상황에 흥미를 보였다.
이 상황 자체가 어릴 때 소년 만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 아니던가.
그런 장면을 눈앞에서 생생히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둘은 흥분할 수밖에 없다.
"기대하지 마. 허무할 거니까."
그때, 그런 두 남자의 기대에 초를 치는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녀는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체크무늬 셔츠를 덧입은 뒤, 바지 뒷 주머니에 구겨진 담배곽과 라이터를 쑤셔 박은 여성이었다.
머리는 사자처럼 흐트러져 있었고, 안경은 언제 닦았는지 모를 정도로 뿌옇게 먼지가 쌓여 있었으며, 옷에는 에너지 드링크와 커피 얼룩으로 가득했다.
무엇보다도, 몸에서 진한 커피 향과 담배 쩐내가 같이 나는,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서버 관리 팀."
"그래. 서버 관리 팀이야."
운영 팀에서 부른 사람은 바로,서버 관리 팀 소속의 코더였다.
"그나저나 기대하지 말라니, 무슨 소리지?"
스토리 팀의 남자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분명히 난 서술했어. 도미닉 경과 똑같은 스펙이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문제라는 거지."
"...?"
"잠깐만, 나도 좀 보자."
서버 관리 팀의 코더는 잠시 스토리 팀의 남자를 옆으로 밀어내고 도미닉 경과 또 하나의 도미닉 경이 싸우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아, 역시."
서버 관리 팀 코더는 무언가를 알아낸 듯 피식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기지?"
"아니, 별 건 아니고."
스토리 팀의 말에 서버 관리 팀이 답했다.
"너, 장비에 대해서는 서술했냐?"
"아."
스토리 팀의 남자는 멍청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 말대로, 스토리 팀에서 또 하나의 도미닉 경을 만들 때 스펙만 신경을 썼지, 장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서버 관리 팀의 코더는 다시 한번 도미닉 경과 또 다른 도미닉 경의 싸움을 바라보았다.
원본 도미닉 경은, 시종일관 또 다른 도미닉 경에게 스턴을 먹이며 일방적인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래서 로망만 가득한 멍청이들은."
서버 관리 팀의 코더는 그렇게 말하며 스토리 팀을 비웃었다.
여전히 도미닉 경은, 또 다른 도미닉 경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