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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32화 (408/528)

〈 432화 〉 [431화]5성 심사

* * *

"아, 그럼 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해볼까?"

도미니아 경의 충격적인 발언에 메리와 미네르바도 동참했다.

도대체 그녀들은 어째서 이 시간대에서 4성 심사를 보겠다는 것인가?

타임 패러독스가 무섭지 않은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급 심사에 대해서 만큼은 타임 패러독스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가차랜드의 중앙 시스템과 모든 서브 시스템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끊임없이 연산했다.

이는 어떠한 사건이나 특정한 상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가차랜드에 존재하는 개개인을 비롯한 모든 오브젝트에게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 시스템이 기준으로 삼을 기준 시간이 필요했다.

가차랜드는 중앙 시스템 서버에 등록된 이 기준 시간을 통해 움직이고 있었다.

반면, 도미니아 경이 한 행동을 조금 설명하자면 과거의 이벤트를 다시 보려고 단말기의 시간을 뒤로 돌리는 행위였다.

겉으로는 시간이 되돌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내부를 보면 여전히 그녀는 중앙 시스템의 기준 시간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과거에서 4성 심사를 받더라도, 사실상 현재에서 받는 것과 차이가 없다.

이는 이벤트로 인해 미래에서 온 이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무튼, 엄마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4성이라도 따서 가야 해."

도미니아 경은 4성 심사를 무슨 자격증 따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게 나처럼 미리 직업이라도 구해 두라니까."

메리는 도미니아 경을 백수 보듯 쳐다보며 커피를 마셨다.

아마 그 커피는 메리가 지금까지 마셨던 그 어떤 커피보다 달 것이다.

도미니아 경은 메리의 도발에 고개를 홱 돌려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차마 메리의 말에 반박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현재의 도미니아 경은 백수나 다름없었고, 심지어 그녀의 친구인 미네르바 마저 경찰 대학에 있었으니 그녀를 도와줄 수 없었다.

도미니아 경은 화가 난 듯 씨익씨익거리더니, 이내 돈 카게야샤에게 짜증을 부렸다.

"삼촌! 쟤가 나 놀려요!"

"내가 보기엔 둘 다 잘못했는데?"

그러나 돈 카게야샤도 도미니아 경의 편은 아니었다.

도미니아 경은 마지막으로 믿고 있던 삼촌마저 자신을 배신하자, 말문이 막혀 끙끙 앓더니 이내 자리를 박차고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디 가?"

그녀의 절친한 친구, 미네르바가 물었다.

"승급 심사장!"

도미니아 경은 그렇게 말하며 가게를 나섰다.

아마 이대로라면 혼자서 승급 심사장에 갈 것이 분명했다.

남아 있던 돈 카게야샤와 미네르바, 그리고 메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나섰다.

목적지는 도미니아 경과 마찬가지로 승급 심사장이었다.

...

행정부 산하 성급 심사장.

"자! 검성 칭호를 따실 분은 이 쪽입니다! 실수로 성급 심사장으로 가시지 마시고, 이쪽으로 오세요!"

"천마 칭호 팝니다. : 사용한 적 없음."

"동동주 다 판다."

"행정부는 다람쥐를 뿌려라!"

성급 심사장 앞은 여전히 분주했다.

이번에는 칭호 심사도 같이 보는지 심사장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는데, 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잡상인들과 그들 사이에서인지도를 얻으려는 관심종자들까지 모여 광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보자. 5성 심사장은 어디에 있는지."

도미닉 경은 심사장 입구에 있는 안내 지도를 보며 5성 심사장을 확인했다.

그러나 5성 심사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도미닉 경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한번 지도를 보았지만, 여전히 5성 심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도미닉 경은 입구에 있는 안내 직원에게 다가가 5성 심사장에 대한 것을 물었다.

"실례하오만, 5성 심사장이 어딘지 알 수 있겠소?"

"아, 설마 5성 심사를 보러 오신 건가요?"

"그렇소."

"성함이?"

"도미닉 경.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오."

도미닉 경은 안내 직원에게 몇 가지 정보를 전달했다.

그러자 안내 직원은 그 정보를 타블렛에 기록 하더니, 이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네. 도미닉 경이요. 네. 네. 알겠습니다."

안내 직원은 다시 전화를 끊더니, 환한 미소와 함께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도미닉 경을 안내할 사람을 보냈다고 합니다. 광장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안내할 사람이 찾아올 거예요. 그분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 알겠소."

도미닉 경은 안내 직원의 말대로 잠시 광장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5성 인원이 적어 따로 심사를 보는 모양이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근처 벤치에 풀썩 앉았다.

"앗, 따가!"

도미닉 경이 너무 부주의하게 앉은 덕분에, 미리 그 벤치에 앉아 있던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도미닉 경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비명을 지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가면을 쓰고 턱시도를 입은 남자였는데, 손에는 리틀 도미닉 경 인형과 바늘이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리틀 도미닉 경의 눈을 달다가 바늘에 손가락을 찔린 모양이었다.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눈이 하나라도 되냐!"

턱시도를 입은 가면의 남자는 도미닉 경을 향해서 버럭 화를 내며 도발했지만, 도미닉 경은 실제로 눈이 하나였기에 전혀 도발당하지 않았다.

대신 도미닉 경은 그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미안하오. 내가 선객을 미리 보지 못하고... 잠깐, 슈퍼 디럭스 공?"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은 턱시도 가면을 보며 익숙한 얼굴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그가 빌런 슈퍼 디럭스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는 슈퍼 디럭스도 마찬가지였는지, 도미닉 경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성급 심사 때마다 만나는 것 같소."

"그러게."

도미닉 경은 슈퍼 디럭스를 보며 매우 반가워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인연이었으니까.

예전에 리틀 도미닉 경의 인형을 양산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듣기만 했을 뿐 실제로 만난 적은 그보다도 더 전이었다.

"요즘 뭐하고 지내시오?"

도미닉 경이 슈퍼 디럭스에게 물었다.

"뭐, 늘 똑같지. 네 인형을 만들고, 팔고, SNS하면서 빌런 짓 좀 하고..."

최근에는 지하철에서 이불을 깔고 자 봤지. 라고 자기 악행을 자랑하는 슈퍼 디럭스.

"뭐, 오늘은 성급 심사하러 온 거지만."

"과연. 옷을 잘 차려입었길래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소."

도미닉 경은 슈퍼 디럭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몇 성 심사요?"

"4성."

슈퍼 디럭스는 자랑스럽게 손가락 4개를 펼치며 말했다.

"인형을 만드는 김에 인형술도 좀 배웠더니, 인형술을 배운 괴도 빌런은 희소성이 높다면서 가치가 확 뛰었거든. 어쩌면 네 덕분이야."

슈퍼 디럭스는 도미닉 경의 덕분이라며 겸양을 떨었다.

"이제 나도 4성이니, 도미닉 경과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겠지. 아니,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이미 역전당해 놓고 말이야."

슈퍼 디럭스는 혼란스럽다는 듯 횡설수설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보며 슈퍼 디럭스가 4성 심사를 보게 되어 긴장한 것이라고 여겼다.

"진정하시오. 자.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도미닉 경은 인터넷에서 본 호흡법을 기억하며 그렇게 말했다.

도미닉 경의 말에 따라 슈퍼 도미닉은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그러자 조금은 긴장이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후. 이제 좀 괜찮네. 고마워, 도미닉 경."

"별말씀을."

슈퍼 디럭스는 도미닉 경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나저나 도미닉 경은 얼마 전에 4성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왜 여기 온 거야? 다른 사람들 응원하러? 아니면 저기 칭호라도 받으러 온 거야?"

"아, 5성 때문에 왔소."

"...5성?"

"그렇소. 5성."

도미닉 경은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슈퍼 디럭스는 차마 설명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도미닉 경에게 다시 물었다.

"5성이라고?"

"그렇소."

도미닉 경은 여전히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사실, 도미닉 경이 이렇게 5성을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도미닉 경은 성급을 일종의 훈장처럼 여겼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보상이나, 혹은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포상.

그런 의미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실제로 도미닉 경은 엄청난 업적에 대한 보상으로 3성과 4성을 찍었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도미닉 경은 5성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수만 분의 일이라는 아주 적은 숫자만이 5성을 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페럴란트에서도 훈장을 받은 인물들은 손에 꼽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는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아주... 심각한 기만이었다.

가차랜드에서 5성이 가지는 가치는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5성이라는 것은, 가차랜드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의미.

최근 초월/6성 패치로 인해 조금은 빛이 바래긴 했지만, 여전히 5성이 가지는 뜻은 최고의 가치라는 뜻이었다.

이렇듯 가차랜드에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거머쥔 자가 그 가치를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면 어떻게 될까?

"야! 너, 진짜 이건 아니지!"

정답은 '화가 난다.'였다.

슈퍼 디럭스는 도미닉 경의 행동에 너무나도 황당한 나머지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가차랜드에서 가장 뛰어난 이들에게만 허락된 5성을 저리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니, 명예를 중시하는 도미닉 경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슈퍼 디럭스는 화를 내면서도 한 편으로는 도미닉 경이 5성의 가치를 잘 모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과 동시에, 슈퍼 디럭스는 도미닉 경에게 5성의 가치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하려고 했다.

"이봐, 도미닉 경. 잘 들어. 5성은 말이야­"

"도미닉 경?"

그래. 설명을 하려고 했다.

누군가가 둘 사이에 끼어들기 전까진.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 맞습니까?"

세 갈래로 세운 노란 머리와 두 갈래로 세운 노란 수염.

그리고 노란 양복까지.

그 사람은 바로, 성급 심사를 담당하는 심사 위원, 미스터 노바였다.

그는 평소에는 심사 위원으로 도미닉 경을 평가하는 자리에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평소의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와는 달리, 어딘가 긴장하고 굳은 모습의 미스터 노바.

그럴 수밖에.

그는 지금 도미닉 경을 심사하는... 즉, 위에 있는 자가 아니라­

"...위원회 분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5성이 될지도 모르는 도미닉 경을 데리러 온, 메신저에 불과했으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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